역사의 시계추가 거꾸로 흔들리는 소음 속에서 가을이 깊어간다. 교과서 문제가 이렇게까지 세상을 시끄럽게 하리라고 예측한 이는 별로 없었다. 막무가내식 밀어붙이기, 법령 위반, 엉터리 예산 집행 등 ‘법과 원칙’을 무시한 비정상적 통치 행위가 국가를 잠식하고 있다. 교육부의 비밀 TF팀 운영 논란은 총제적인 ‘역사 도발’의 한 단면일 뿐이다.

10월 중순 들어 여론이 국정교과서 반대 쪽으로 기우는 조짐을 보이자, 박근혜 대통령이 전면에 나섰다. 청와대로 여야 지도부를 불러 윽박질렀고,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국정화를 못 박았다. 총선 선거구 획정 등 정치권의 주요 이슈는 올스톱되었다.

누구도 정국 해법의 열쇠를 내놓지 못하는 가운데 논란은 ‘강 대 강’으로 치닫고 있다. 그리고 다시금,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과 맞닥뜨린다. 도대체 박 대통령은 왜 이런 혼란을 야기하면서까지 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하는가. 야권은 물론 새누리당 관계자들조차 궁금해하는 질문이다.

의견이 분분하지만, 정치권에서 해석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먼저 박 대통령의 ‘역사 전쟁’으로 보는 시각이다. 진보·개혁 진영에 의해 ‘왜곡’된 아버지의 과거사를 바로잡겠다는 ‘신념’이라는 것이다. 진보 보수를 떠나 많은 정치권 관계자들이 이런 견해에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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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24일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는 자신의 과거사 인식에 대해 공개 사과했다.

2012년 9월24일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잊을 수 없는 날이다. 박 대통령은 당시 대선을 앞두고 “인혁당 사건에 두 개의 판결이 있다”라는 자신의 발언이 논란이 되면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5·16, 유신, 인혁당 사건 등은 헌법 가치가 훼손되고 대한민국 정치 발전을 지연시켰다”라며 자신의 과거사 인식에 대해 공개 사과했다.

그때 그 기자회견 전날 밤 ‘사고’가 있었다. 친박계 핵심 김재원 의원이 기자들과 저녁 식사 자리에서 “박근혜 후보가 정치를 하는 건 아버지의 명예회복을 위한 것이다”라고 말해 파문을 일으켰다. 이튿날 공개 사과가 빛을 잃게끔 만든 일이었다.

지금은 잊혔지만, 김재원 의원은 당시 이런 말도 했다. “(박근혜 후보가 공개 사과를 하는 것은) 베드로가 예수를 부인하는 것과 마찬가지다”라는 말이었다. 베드로는 박근혜 대통령, 예수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뜻한다. 상황이 불리해서 잠깐 아버지의 과거사를 부인했을 뿐, 속내는 그렇지 않다는 이야기였다. 실제로 당시 박근혜 후보 대선 캠프에 직간접으로 관여했던 이들은 “그날 기자회견이 박 대통령 인생에서 가장 치욕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공공연히 한다.

그렇게 대통령이 된 베드로는 명예회복을 꿈꿨다. 박 대통령은 2013년 6월 청와대 회의에서 “교육 현장에서 진실이나 역사를 왜곡하는 것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곧 이어 ‘이승만 전문가’인 유영익 전 한동대 석좌교수를 국사편찬위원장에 앉혔고, 교학사 교과서 논란이 불거졌다.

2014년 2월에는 “교과서에 오류와 이념 편향 논란이 발생하지 않도록 균형 잡힌 역사 교과서 개발 등 제도 개선책을 마련하라”고 교육부에 주문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기 전까지 박근혜식 ‘역사 바로 세우기’는 착착 진행 중이었다. 공교롭게도 국정교과서가 도입되는 2017년은 박정희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다.

 

ⓒ연합뉴스 2011년 11월14일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 경북 구미시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 부근에 세워진 박정희 동상 제막식에 참석했다.

국정교과서 도입되는 해는 박정희 탄생 100주년

역사 교과서 국정화가 박근혜 대통령의 ‘한풀이’라는 시각은 명쾌하긴 하다. 그런데 그렇게 온 나라를 마비시킨 사태를 대통령의 ‘사부곡’에서 비롯된 문제라고만 해석하면 되는 일일까. 정가에서 이런 유의 해석이 우세한 이유는 도무지 박 대통령의 ‘수’가 읽히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보수층을 결집시키기 위한 카드라는 분석이 나오지만, 총선은 아직 6개월 남았다. 총선용 이슈라기엔 너무 이르다.

오픈 프라이머리 논란으로 격화된 새누리당 내 갈등을 덮기 위해 청와대와 김무성 대표가 ‘합작 포석’을 둔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럴듯한데 허점이 있다. 김무성 대표가 국정화 이슈에 불을 댕긴 것은 8월 광복절 즈음. 오픈 프라이머리 문제로 청와대가 김무성 대표를 공개 비판하는 등 갈등이 최고조에 달한 것은 9월 중순이다. 시점상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렇다 보니 여의도의 ‘선수’들 중에는 박 대통령이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 아니냐고 보는 이도 있다. 이를테면 국정교과서 카드가 임기 후반 TK(대구·경북)와 보수 지식인층을 대상으로 한 ‘친위체제 구축용’이라는 것이다. 무슨 말일까. 이들은 굳이 다독일 필요가 없을 만큼 박 대통령의 확고한 지지 기반 아닌가.

TK는 ‘박정희 향수’가 가장 짙은 지역이다. 박 대통령의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다. 그런데 지난여름부터 TK에서 박 대통령 지지율이 하락하고 있다는 신호가 울리기 시작했다.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사퇴 이후 지역의 ‘신보수층’이 돌아섰다는 이유였다. 특히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고향인 구미를 비롯한 경북 중서부권의 지지율이 TK에서 가장 낮다는 결과가 충격이었다(〈영남일보〉 8월5일자 여론조사). TK의 ‘균열’을 점치는 언론 기사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후 8·25 남북 합의 등으로 지지율이 다시 반등했지만, 청와대로서는 ‘밑바닥이 흔들리는’ 경험이었다. 국정교과서 카드는 TK의 균열 조짐을 봉쇄하는 효과가 있었다. 10월 중순 들어 모든 지역에서 일제히 국정교과서 반대 여론이 우세해졌지만, TK에서는 반대가 찬성을 앞지른 적이 없다. 10월30일 한국갤럽이 발표한 정례조사에서도 TK 지역의 국정교과서 찬성률은 오히려 상승했다. 유승민 의원이 최근 국정교과서에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하는 등 청와대와 각을 세우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는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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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15일 ‘이념 편향 역사 교과서’를 규탄하는 새누리당. 여야가 강 대 강으로 치닫고 있다.

TK 여론에 밝은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국정교과서가 TK는 확실하게 결집시켰다. 유승민을 지지하는 신보수층을 껴안은 것이 아니라, 기존 보수층을 결집시킨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이를 ‘박정희 향수’의 힘이라고 보면 총선 공천권 다툼에서 박 대통령이 유리한 고지를 점한 것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 결과론이기는 하지만, 국정교과서 카드가 ‘신의 한 수’였다는 이야기다.

보수 지식인층에 대한 태도도 마찬가지다. 집권 이후 박근혜 대통령이 보수층으로부터 호되게 당한 적이 딱 한 번 있다. 지난해 문창극 총리 후보자 지명 때다. 당시 박 대통령이 문창극 인사 청문회를 강행하지 않고 우물쭈물하는 태도를 보이자, 보수 지식인층이 강력 반발했다. 각계 보수층의 박근혜 지지 철회 선언이 이어졌다.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가 “악역을 피하려는 지도자는 그만두는 것도 한 방법이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이들의 요구는 명확했다. 인사 청문회를 강행해 진보 진영과의 ‘역사 전쟁’을 벌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문창극 후보자가 자진 사퇴하기 전까지, 이들의 요구는 거세고 집요했다.

보수 지식인층의 반발은, 박 대통령이 역사 전쟁에서 머뭇거릴 경우 언제든 그들이 등을 돌릴 수 있다는 경고였다. 다시 말해 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보수 지식인층을 우군으로 결집시키는 최고의 카드라는 이야기다.

이런 관측이 맞는다면 박 대통령이 TK와 보수 지식인층으로 친위체제를 구축하려는 목적은 뭘까. 물론 레임덕을 막고 안정적인 국정 운영 기반을 마련하려는 이유일 테다. 역대 대통령 중 지역 기반과 이념적 지지층에서 임기 끝까지 버팀목이 되어준 사례는 없다. 너무 앞서 나간 이야기지만, 이를 기반으로 ‘퇴임 이후’에도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어쨌거나 TK와 보수 지식인층을 우군으로 두는 한, 박 대통령으로서는 ‘미래 권력’이 누가 되든 두렵지 않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새누리당 수도권·비박계의 ‘반란’ 가능성 낮아져

물론 청와대가 이처럼 치밀한 전략 아래 국정교과서를 밀어붙이고 있다는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이 더 많은 게 사실이다. 청와대를 너무 ‘과대평가’한다는 것이다.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처럼 “국정교과서 같은 어리석은 일을 강행한 것은 현재 청와대에 정무 기능이 없다는 걸 보여준다”라고 지적하는 이도 있다.

한 가지 확실해진 것은 있다. 일각에서 ‘기대’했던 새누리당 수도권(비박계) 의원들의 ‘반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낮아졌다는 것이다. 정국이 고착화되면서 반대 의견을 냈던 정치인들도 몸을 낮추는 모양새다. 오히려 김재원·윤상현·유기준 등 청와대와 정부로 ‘파견’됐던 친박계 의원이 당으로 복귀하면서 박 대통령의 당 장악력은 더욱 세졌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 의견을 냈던 새누리당 비박계의 한 의원 측 관계자는 “당 지도부가 유·불리를 따지지 않겠다고 한 만큼 상황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대통령의 판단에 당 전체가 이렇게 따라가야 하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이러다 (내년 총선에서) 안 좋은 결과가 나오면 책임은 누가 지나”라고 말했다. 노림수조차 명확하지 않은 박근혜 정부의 ‘역사 도발’이 어떤 후폭풍을 가져올지 아무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기자명 이오성 기자 다른기사 보기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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