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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국정화 강행 이유는?


‘자유의 적’이 된 자유주의자들


최인훈의 〈광장〉이 공산주의 미화?

 

해외 학자들 “한국 정부 국정화, 아베와 똑같아”


국정화 전선, ‘상식 대 비상식’으로

 

국정화가 몰고 온 역사 열풍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진영의 규모와 저변이 확대되고 있다. 진보와 보수가 함께 국정교과서 추진 중단을 요구하고, 역사학과를 넘어 학계 전반에서 교수들이 반대 성명서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둘러싼 전선이 ‘상식 대 비상식’ 구도로 재편되는 모양새다.

서울대학교 교수들은 10월28일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우려하며 국민들께 드리는 말씀’을 발표했다. 서울대 16개 단과대학이 모두 참여한 성명에는 명예교수 10명을 비롯해 교수 총 382명이 서명했다. 2008년 교수 381명이 이름을 올렸던 한반도 대운하 반대 성명 이후 처음 있는 대규모 성명서 발표다.

자연대 대표로 나온 물리학과 최무영 교수는 “답이 정해져 있는 듯 보이는 자연과학도 수많은 학설과 해석을 통해서 발전했다. 학문을 하나로 통일하는 것은 비과학적이다”라고 국정화 반대 이유를 밝혔다. 서양사학과 한정숙 교수는 “(국정교과서는) 좌우익 대결 문제가 아니라 학문과 반학문, 교육과 반교육, 민주주의와 독재의 대립이다. 서명자 명단만 봐도 (진영 논리가 아님을) 확실하게 알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나란히 국사편찬위원장을 지냈던 정옥자 명예교수와 이태진 명예교수, 보수 성향의 역사학자인 한영우 명예교수가 국정화 반대 성명에 참여했다. 한영우 명예교수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일부 검정교과서의 서술에 큰 문제가 있었다”라며 국정화 찬성론자들의 주장을 일정 부분 인정하면서도 “수정 명령 이후 좌편향 문제가 많이 해소됐다. 국정화는 전체주의 국가에서나 가능한 얘기다”라고 국정교과서를 반대했다.

ⓒ연합뉴스10월29일 이화여대 학생들이 전국여성대회에 참석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학교 방문에 반대하며 행사장인 대강당으로 가던 중 경찰과 충돌했다.

여론의 저울추도 ‘국정교과서 반대’ 쪽으로 기울었다. 10월30일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국정화에 반대한다는 여론은 49%로 찬성 36%보다 13%포인트 높게 나타났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공식 발표 이후 처음 치러진 10월16일 조사에서는 찬성과 반대가 각각 42%로 팽팽하게 갈렸다.

77개 대학과 3개 역사학회가 국정교과서 집필 거부를 선언한(10월27일 기준) 가운데 교육부 산하 단체인 한국학중앙연구원(이하 한중연)도 이 대열에 동참했다. 한중연 소속 한국학 전공 교수 10명 중 8명은 성명서를 내고 “국정교과서는 한국 사회가 일궈온 국제적 위상을 송두리째 무너뜨릴 수 있다”라며 국정교과서 집필 거부를 선언했다. 이번 성명에 참여하지 않은 두 사람은 권희영·정영순 교수다. 교학사 역사 교과서 대표집필자인 권 교수는 10월26일 국가경쟁력강화포럼에서 국정교과서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등 국정화 지지의 선봉에 나서고 있다. 정 교수는 10월16일 발표된 국정교과서 지지 교수 102인 명단에 포함됐다. 이배용 한중연 원장 역시 대표적인 친박 인사로 분류된다. 심재우 한중연 한국사학 교수는 “국정화는 너무 엄중한 사안이어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대세가 국정화 반대라는 것을 분명히 알려주고 싶었다. 이건 50대50의 대결이 아니라 상식과 비상식의 싸움이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이명익10월28일 서울대 교수들이 소속 교수·명예교수 382명이 서명한 ‘국정화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위).

교육부 산하 단체 ‘한중연’ 연구자들도 반대

교사와 학부모를 중심으로 한 국정화 반대 열기도 뜨겁다. 전국 유·초·중·고 교사 2만1379명은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는 거짓 교과서로 아이들을 가르칠 수 없다”라며 10월29일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시국선언을 했다. 이제까지 나온 국정화 반대 선언 가운데 단일 집단으로는 최대 규모다. 교육부는 곧바로 보도자료를 내고, 시국선언을 주도한 변성호 전교조 위원장 등 전교조 간부를 검찰에 고발하고 참여 교사들은 징계 처분하겠다고 밝혔다. 10월27일에는 양산 학부모들이 〈양산시민신문〉에 “대한민국 역사를 함부로 바꾸지 마라”는 제목의 전면광고를 실었다. 공동성명에 이름을 올린 학부모 1459명이 1000원씩 낸 돈으로 광고비를 마련했다. 경기도민 1만26명도 10월29일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경기도민 1만인 선언’이란 이름으로 역사 쿠데타 중단을 촉구하는 전면광고를 〈경향신문〉에 게재했다. 행정예고가 종료되는 11월2일을 앞둔 주말에는 국정화 반대 촛불집회가 서울시내 곳곳에서 열렸다.

대학가에는 국정화를 조롱하는 대자보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10월19일 연세대에 북한식 어투로 국정화를 비꼰 “국정교과서를 찬성하는 우리의 립장”이라는 대자보가 붙자, 고려대는 “고등중학교 력사 교과서 국정화는 우리 공화국 인민의 시종일관한 립장”이란 제목의 대자보를 내놓으며 ‘북한식 풍자 대자보’의 맥을 이었다. 이화여대에는 북한식 선전 포스터 위에 “모두 다 국정교과서에로!”라는 표어가 박힌 국정화 반대 포스터가 교정에 나붙었다.

10월29일에는 이화여대 학생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방문을 반대하는 항의 시위를 하던 중 이를 저지하던 사복 경찰과 충돌이 벌어졌다. 박 대통령은 ‘전국여성대회’ 축사를 위해 이화여대를 찾았다. 학생들은 ‘국민의 뜻을 거스르는 박근혜 대통령을 환영할 수 없습니다’라고 쓰인 손팻말과 펼침막을 들고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등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학생들 시위에 막힌 박근혜 대통령은 정문이 아닌 후문을 통해 학교로 들어갔다.

야당은 국정화 반대 전국 버스투어를 시작했다. ‘세계가 걱정하는 국정교과서, 정말 창피합니다’라는 문구가 쓰인 홍보버스는 11월2일까지 전국을 돌며 국정화 반대의 필요성을 알리고 대국민 서명을 받는다.  

한편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찬성하는 쪽에서는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국정화를 지지하는 지식인 500인 선언에 이름이 오른 일부 인사가 본인 동의 없이 명단에 포함된 것으로 드러났다. 노환규 전 의사협회장은 ‘거절했는데도 불구하고 명단에 이름이 올랐다’며 트위터에서 불쾌함을 토로했다. 명의를 도용당했다는 항의가 이어지자 언론사들은 500인 명단을 기사에서 삭제했다.  ‘국정화 지지 교수 102인’ 선언에 참여했던 상당수 교수들이 교육부의 설득과 회유로 이름을 올렸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이 선언은 명단 공개 당시에도 소속과 전공 없이 이름만 나와 있어 신뢰성에 의문이 제기된 바 있다(〈시사IN〉 제424호 “국정화 지지 교수, ‘전공이 왜 필요하죠’” 기사 참조).

기자명 김연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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