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로’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2023 올해의 사진] 사진 박창환·글 홍은전(작가) 서울 지하철 5호선 아차산역에서 10분만 걸어가면 그들을 볼 수 있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예전엔 몰랐다. “서식지: 남아프리카, 아르헨티나, 남태평양”이라고 적힌 사자, 코끼리, 바다사자가 서울 광진구 능동에 모여 있다. 수십 년 전엔 자국의 동물과 함께 끌려온 콩고 주민도 있던 그 자리에 그랜트 얼룩말 ‘세로’가 있었다. 펜스 바깥 호모사피엔스들에게 제공되는 정보는 이들의 발톱이 몇 개인지, 임신 기간이나 수명은 얼마인지 같은 것들. 나는 다른 이야기를 알고 싶다. 서식지에 맞게 수만 년 동안 진화해온 그들의 눈과 코, 다리는 2023 올해의 인물 ‘박정훈 대령’, 그의 봄을 기다린다 [편집국장의 편지] 차형석 편집국장 올해의 인물. 매년 〈시사IN〉 편집국 구성원들의 무기명 투표와 토론을 통해 선정한다. 올해는 의견이 빨리 모아졌다. 해병대 전 수사단장 박정훈 대령이다.2023년 7월20일. 해병대 1사단 소속 채 아무개 상병이 경북 예천에서 수해 실종자를 수색하던 중 순직했다. 장병들의 안전을 도외시한 무리한 수색이라는 비판이 거셌다. 안타까웠던 그 사건이 해병대 수사단장이던 박정훈 대령의 일상을 뒤흔들 거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수사를 맡은 그는 개정된 군사법원법에 따라 ‘법대로’ 사건을 경북경찰청에 인계했다. 사건을 인계한 날, 그는 ‘아빠 없이’ 아이를 낳는다는 것 [새로 나온 책] 시사IN 편집국 부모 말고 모모로진느 마이올로 지음, 변유선 옮김, 사계절 펴냄“우리는 여전히 법 바깥에 있는 엄마들이다.”책 제목 그대로다. 부모(父母) 말고 모모(母母). 프랑스에 사는 로진느와 나탈리는 서로 사랑하는 두 여성이자 아이들을 함께 키우는 모모다. 로진느는 이렇게 적는다. “내가 나탈리와 아이를 갖기로 약속하고, 정자 공여 시술로 3.24㎏, 50㎝의 행복을 만나기까지는 대략 3년 반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무엇보다 법률 전문기자인 그는 ‘아빠 없이’ 아이를 낳는 과정에서 겪을 수 있는 현실적이고 법률적인 문제들을 조목조목 비판하고 “왜 저렇게까지?” 정말 궁금하다면 [기자의 추천 책] 나경희 기자 취재를 하다 보면 ‘이게 지금 현실일까’ 싶을 때가 있다. 이 부서 저 부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전화를 돌리다 어느새 통화 대기음을 따라 흥얼거리는 내 목소리를 들을 때, 자식 잃은 부모가 손톱으로 땅을 긁으며 통곡하는데 하늘은 시퍼럴 때, 열차에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이 땅을 기어가는 장애인들에게 쌍욕을 퍼부으면서 질서정연하게 그들을 피해 갈 때.많은 사람들이 ‘장애인들이 지하철 타려고 이준석이랑 싸운 일’ 정도로 기억하는 출근길 지하철 투쟁은 놀랍게도, 동시에 놀랍지 않게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그때 고작 두세 번 취재를 했다는 [기자의 추천 책] 사랑하니까, 달리 보이더라 김연희 기자 저자 홍은전은 〈비마이너〉 연재 글에서 자신이 해온 일을 설명할 때 겪게 되는 어려움에 대해 썼다. 13년간 노들장애인야학에서 교사로 일했던 그에게 사람들은 묻는다. “그런 일의 기쁨이 무엇인가요?” 스스로도 만족스럽고 듣는 사람도 이해했다는 느낌을 받은 순간은 야학을 그만두고 7년 뒤에야 찾아왔다.“그러니까… 사랑에 빠졌다고요. 아침에 눈 뜨자마자 웃음이 났어요. 세상이 다르게 보였어요. 다시 태어난 것처럼. 이 사람들과 함께라면 사는 게 하나도 무섭지 않을 것 같았어요. 무엇이 그렇게 재미있었냐고요? 전부 다요. 날이 좋아서, ‘장애인의 집은 시설’이라 생각하는 당신에게 [새로 나온 책] 시사IN 편집국 보이지 않는 중국스콧 로젤·내털리 헬 지음, 박민희 옮김, 롤러코스터 펴냄“중국은 도시-농촌 간 불평등을 법으로 유지하고 강화하는 유일한 나라다.”지난 19년 동안 중국공산당의 ‘1호 문건’(연초에 중국 정부의 중점 사업을 담아 발표하는 문건)에는 어김없이 농촌 문제가 등장했다. 농민을 기반으로 사회주의 혁명에 성공한 중국공산당으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구호일 수도 있으나, 이는 말 그대로 구호에 그쳤다. 중국 내 도시와 농촌의 불평등 문제는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오랫동안 중국의 농촌, 경제, 교육 등을 연구해온 저자들은 중국이 발전 다 잊고 하나만 기억하자, 우리 모두는 동물이다 김은남 기자 “책을 네 번 읽었다. 너무 좋아서 그리고 너무 어려워서.” 2021년 12월16일 온라인 북토크에 나선 홍은전씨(〈그냥, 사람〉 저자) 말에 화면 너머 참가자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시했다. ‘읽는 당신×북클럽’ 시즌2 마지막 추천도서는 〈짐을 끄는 짐승들〉(수나우라 테일러 지음, 오월의봄 펴냄). 주석 포함 423쪽짜리 ‘벽돌책’이다.‘장애와 동물해방을 얘기하는 데 이렇게나 어렵고 치열한 언어가 필요한가?’ 싶었지만 홍씨는 이 책을 필사적으로 읽어냈다. 자신이 속한 두 개의 세계에 치명적인 균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 하 그는 어쩌다가 소설 쓰는 의사가 되었을까 장일호 기자 이현석 작가는 ‘취미 부자’다. 서핑을 하고 연기를 배운다. 소설 창작교실을 드나든 것도 취미생활 중 하나였다. 2017년 특별한 기대 없이 출품한 〈참(站)〉이 중앙신인문학상에 선정되면서 등단까지 이어졌다. 노동자의 직업병 등을 다루는 직업환경의학과 의사인 그에게 ‘소설가’라는 이력이 추가됐다. 당혹감이 그를 여기까지 밀고 왔다.〈시사IN〉과 동네책방이 함께하는 ‘읽는 당신×북클럽’이 지난 한 달간 읽은 책인 〈다른 세계에서도〉(자음과모음)에 실린 단편소설 여덟 편이 다루는 주제는 ‘낙태죄’, 북한이탈주민, 산재, 우울증, 5·1 ‘정상’에 어긋나면 배제돼야 하는 걸까? 김은남 기자 〈시사IN〉과 동네책방이 함께하는 ‘읽는 당신×북클럽’이 올 하반기 다시 열린다. 〈시사IN〉 기자와 책방지기들이 숙의 끝에 선정한 시즌2 주제는 ‘다양성과 공존’이다.지난 상반기(3월4일~6월10일) 진행된 북클럽 시즌1 주제는 ‘팬데믹 너머’였다. 동네책방 28곳에 모인 독자 340여 명이 추천 도서 세 권(〈공정하다는 착각〉 〈가난의 문법〉 〈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을 동시에 읽으며 팬데믹이 드러낸 가난·공정·불평등의 문제를 이야기했다. 동네책방을 중심으로 지역과 일상의 회복을 꾀하고자 시작한 북클럽이었지만 시즌1 책 좋은 사람 아닌 좋은 동물이고 싶다 [프리스타일] 송지혜 기자 1개월 정도 된 아기 고양이는 앞집 지붕에서 떨어져 내게 구조되었다. 하늘에서 왔으므로 천둥의 신 ‘토르’라는 이름을 붙였다. 성격이 이름을 따라가는지 천둥벌거숭이 같다. ‘엄마’ 같은 호칭은 어쩐지 머쓱하고 딱 들어맞게 느껴지지 않지만, 토르와 서로 눈을 맞추고 끔벅거리다 보면 마치 엄마 고양이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배우자는 나와 같이 살기 시작하면서 토르를 가족으로 받아들였다. 어렵사리 집을 찾아 계약을 하려던 찰나, 부동산에서 ‘애완동물 금지’ 조항이 담긴 계약서를 내밀었다. 우리는 단호하게 다른 집을 찾기로 했다. 가족 불편한 각성 끝에 흘리는 눈물 조형근 (사회학자) 글로 세상을 배우다 보면 서로 적당히 거리두기가 된다. 읽으며 아프고 분노한 내가 읽은 뒤에 변함없이 일상을 이을 수 있다. 다른 이도 내 글을 읽으며 그럴 것이다. 홍은전이라는 이름 앞에서는 이 안전한 거리가 종종 무너진다.저자 홍은전은 작가, 인권활동 기록가다. 그 전에는 오랫동안 운동단체 노들장애인야학에서 교사 노릇을 했다. 그의 글에 등장하는 이들은 장애인, 선감학원·형제복지원 같은 시설 탈출자, 대추리에서 쫓겨난 농민, 집 빼앗긴 철거민, 세월호 유가족 같은 이들이다. 싸운 이야기, 죽어간 이야기, 죽은 이를 애도한 이야기 동물해방과 장애해방 전범선 (책방 풀무질 대표·밴드 ‘양반들’ 보컬) 지난해 말, 내가 운영하는 책방 ‘풀무질’에서 〈한나 아렌트 사유의 전선들〉의 저자 정창조씨가 세미나를 열었다. 그는 노들장애인야간학교 교사이기도 했다. 내가 동물해방운동을 한다고 하니 그는 책을 하나 선물해줬다. 수나우라 테일러의 〈짐을 끄는 짐승들〉이었다. 누군가 번역 중이고 곧 출간될 거라고 했다. 그리고 며칠 전, 오월의봄 출판사에서 풀무질에 신간을 가져다주었다. 드디어 나왔구나!한국어판에는 〈그냥, 사람〉의 저자 홍은전씨의 추천사도 있었다. 오랫동안 장애해방운동에 힘써온 홍씨는, 지난해 입양한 고양이 ‘카라’를 통해 동물해 기사 후~폭풍 이상원 기자 코로나19 관련 소식이 〈시사IN〉 온라인 페이지에서도 인기였다. 천관율 기자가 쓴 〈시사IN〉 제694호 커버스토리 기사는 〈시사IN〉과 KBS의 공동 웹조사를 다뤘다. 코로나19가 사회를 어떻게 바꾸었는지를 두고 한국인과 일본인의 응답을 비교했다. 기사의 페이스북 호응도 높았고, 같은 내용을 다룬 유튜브 영상도 인기였다. 이종태 편집국장이 쓴 제695호 편집국장의 편지(‘진보 백신 보수 백신’)도 페이스북에서 이목을 끌었다. 코로나19를 둘러싼 백신 논란을 언급했다. 일부 언론의 보도 행태를 비판하는 댓글이 여럿 달렸다.언론 관 고통을 듣고 쓰며 사랑을 배우는 작가 이상원 기자 인터뷰 도중 홍은전 작가는 종종 말을 멈췄다. 짧게는 5초, 어떤 때는 10초 이상 가만히 단어를 고른 뒤에야 입을 열었다. 자신이 겪은 세계관 전복을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를 올해의 저자로 꼽은 출판인들은 이 ‘신중함’과 ‘치열함’, ‘묵직함’이 마음을 울렸다고 했다.올해 홍 작가가 낸 책은 〈그냥, 사람〉. 2015년부터 지난 9월까지 쓴 신문 칼럼을 모아서 펴냈다. 그의 글과 삶 모두 호평을 받았다. 출판인들은 홍은전 작가를 두고 “삶을 진하게 관통하는 글맛” “글을 잘 쓴다는 것은 그저 삶을 살아가는 태도에 다름 독서 리더가 꼽은 2020 올해의 책 시사IN 편집국 남의 집에 놀러가면 책꽂이부터 보곤 했다. 당신도 그랬을 것이다. 내가 읽었던 책을 발견하면 기뻐했고, 몰랐지만 흥미로운 책을 집어 들며 말문을 열었다. 코로나19 세상에서 이제는 힘들어진 풍경이다. 대신 〈시사IN〉이 연결한 우리 시대의 독서 리더들이 자신의 책꽂이를 기꺼이 열어주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좋은 책이 만들어졌고, 눈 밝은 이들이 책의 진가를 알아주었다. 팬데믹 속에서 분투한 출판 노동자와 좋은 책을 소개해준 독서 리더에게 감사드린다. 〈시사IN〉이 선정한 올해의 책 - 2020 행복한 책꽂이 바로가기 고건혁(붕가붕가레 출판인이 꼽은 2020 올해의 책 시사IN 편집국 ‘회사가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일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몇몇 출판인들이 〈시사IN〉 설문에 응답할 수 없는 이유를 메일로 전했다. 코로나19라는 재앙적 변수를 탓하는 목소리는 현장에서 듣기 어렵다. 매해 위축을 거듭한 출판 시장이 올해라고 다르지 않았다는 평이 더 많다. 이어지는 지면은 출판인들의 고군분투를 기록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다. 한 해를 버텨낸 동료들을 응원하기 위해 출판사 관계자 57명이 설문에 답해주었다. 〈시사IN〉이 선정한 올해의 책 - 2020 행복한 책꽂이 바로가기 출판인이 꼽은 올해의 책누군가의 용기에 출판인들이 꼽은 올해의 책들은? 이상원 기자 “전문 작가가 아닌 글 잘 쓰는 전문 직업인에 의한 에세이 시장이 확고해졌다.” 2020년 올해의 책 설문에 응한 한 출판인이 이렇게 평했다. 직업 작가가 아닌 이들이 자신만의 특수한 경험과 사유를 풀어내 인기를 모았다.올해의 국내서로 뽑힌 〈김지은입니다〉는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성폭력 피해자 김지은씨의 에세이다. ‘안희정 성폭력 고발 554일간의 기록’이라는 부제처럼 책은 저자가 사건을 알리게 된 과정, 피해 상황, 재판 경과 등을 기록했다. 미투 이후에 받은 위협과 조력도 써내려갔다.〈김지은입니다〉는 지난 3월에 나왔는데, 출 ‘우리의 미래가 걸렸다’ 비거니즘 잡지 〈물결〉 송지혜 기자 전범선씨(29)는 2019년 1월 폐업 위기에 놓인 사회과학 서점 ‘풀무질’을 인수하면서 화제를 모았다. 1980년대 당시 풀무질은 노동운동의 성지였고, 〈녹색평론〉 읽기 모임을 하던 이들에게는 생태 사상을 이어온 곳이었다. 1991년생인 그는 현재 풀무질에서 동물권 운동을 하며 사상의 계보를 잇는다.그가 동물권에 관심을 가진 건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 시절 친구 이지연씨와 함께 피터 싱어가 쓴 〈동물해방〉을 읽었다. 이때 ‘동물권’ ‘종차별’ ‘비거니즘(veganism:고통을 지각하는 동물로부터 나온 육고기와 제품, 새로 나온 책 [새로 나온 책] 시사IN 편집국 사랑하는 사람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을 때리베카 울리스 지음, 강병철 옮김, 서울의학서적 펴냄“환자와 가족들은 당연히 이렇게 존중받아야 한다.”이 책을 번역한 강병철씨도 의사다. 그러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소아과 전문의라 할지라도 막상 자신의 자녀가 정신장애를 앓기 시작하자 무력감에 빠진다. 안 가본 병원이 없고 안 해본 치료가 없지만 아이의 상태가 갈수록 악화될 때, ‘그때 가장 간절히 원했던 것은 양질의 정보였다’고 담담하게 적는다. 그때 어렵게 구한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정신장애를 겪는 사람과 그 가족들을 함께 돌봐온 널리 알려져야 할 원통한 말들 최현숙 (구술생애사 작가) 〈시사IN〉은 2009년부터 연말 부록으로 ‘행복한 책꽂이’를 펴내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독서 리더들의 면면은 바뀌었지만, 이들이 추천한 올해의 책을 볼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미디어에서, SNS에서 요란스럽게 다뤄지지는 않았지만 동굴 속 보석처럼 조용히 반짝이던 책들이 세상에 나온 기분이다. 조용히 나 자신과 마주 앉을 시간을 만들어주는 한 권의 시집도 있고, 죽음을 목전에 두고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기록도 있다. 물론 묵직한 인문학 서적도, 당장 펼쳐보고 싶은 역사 에세이도 있다. 올겨울, 이 반짝이는 것들을 품고 따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