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석 작가는 ‘취미 부자’다. 서핑을 하고 연기를 배운다. 소설 창작교실을 드나든 것도 취미생활 중 하나였다. 2017년 특별한 기대 없이 출품한 〈참(站)〉이 중앙신인문학상에 선정되면서 등단까지 이어졌다. 노동자의 직업병 등을 다루는 직업환경의학과 의사인 그에게 ‘소설가’라는 이력이 추가됐다. 당혹감이 그를 여기까지 밀고 왔다.
〈시사IN〉과 동네책방이 함께하는 ‘읽는 당신×북클럽’이 지난 한 달간 읽은 책인 〈다른 세계에서도〉(자음과모음)에 실린 단편소설 여덟 편이 다루는 주제는 ‘낙태죄’, 북한이탈주민, 산재, 우울증, 5·18 민주화운동, 재소자 인권 등 하나같이 간단치 않다. 11월18일 온라인으로 생중계된 강의는 ‘삶과 소설 사이의 긴장’이라는 제목으로 진행됐다. 이 작가는 의사가 본업인 자신이 등단까지 할 수 있었던 데에 “전문 분야의 이점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범람하는 전문가 에세이 시장에 올라타는 대신 자신에게 찾아온 이야기를 소설 형식으로 풀어내기를 택한 것도 이유가 있었다. “한국에서 출판되는 의료 에세이의 윤리적 문제는 데뷔 전부터 고민을 많이 하고 있었어요. 관련해 함께 공부하는 모임도 있었고요. 소설은 이해관계 상충이나 ‘환자 착취’와 관련해 비교적 자유로운 장르이고, 의료 외 다른 소재 역시 자유롭게 다룰 수 있었습니다.”
질문을 포기하지 않는 글쓰기
이 작가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1996년 ‘건강보험 이동성 및 결과 보고 책무 활동에 관한 법(HIPAA:Health Insurance Portability and Accountability Act)’이 통과되면서 환자 개인정보 보호가 도덕적 문제에서 법적 의무로 전환됐다. 임상 사례는 개인정보를 식별 불가능하게 변경하고 이를 출판물에도 명시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질문은 남는다. ‘각색’은 가능한가? 그렇다면 그것이 ‘에세이’일 수 있는가? “다수의 의료윤리학자들은 식별할 수 없게 변경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특히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온라인을 통해 직접적으로 엮이는 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렇죠.”
〈다른 세계에서도〉는 정답을 찾기보다, 질문을 포기하지 않는 글쓰기가 무엇이고 또 무엇이어야 하는지 보여준다. 소설집 말미에 꼼꼼히 달아둔 참고문헌과 부기(附記)는 쓰는 사람의 윤리가 무엇인지, 작가가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이기도 하다.
다양성과 공존을 주제로 진행된 ‘읽는 당신×북클럽’ 시즌 2 마지막 북토크는 12월16일 열린다. 〈그냥, 사람〉(봄날의책)을 쓴 홍은전 작가가 〈짐을 끄는 짐승들〉(오월의봄)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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