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23일 서울 도심을 활보했던 그랜트 얼룩말 ‘세로’의 탈출 사건은 하나의 뉴스거리로 소비됐다. 2019년 6월에 태어난 세로는 부모가 모두 세상을 떠나면서 혼자가 되었다. 탈출 이후 암컷 얼룩말 ‘코코’와 함께 지내던 세로를 8월29일 적외선을 이용한 열화상 카메라로 담았다. 코코는 산통(말의 배앓이)에 의한 소결장 폐색 및 괴사로 10월에 폐사했다. ⓒ박창환
2023년 3월23일 서울 도심을 활보했던 그랜트 얼룩말 ‘세로’의 탈출 사건은 하나의 뉴스거리로 소비됐다. 2019년 6월에 태어난 세로는 부모가 모두 세상을 떠나면서 혼자가 되었다. 탈출 이후 암컷 얼룩말 ‘코코’와 함께 지내던 세로를 8월29일 적외선을 이용한 열화상 카메라로 담았다. 코코는 산통(말의 배앓이)에 의한 소결장 폐색 및 괴사로 10월에 폐사했다. ⓒ박창환

서울 지하철 5호선 아차산역에서 10분만 걸어가면 그들을 볼 수 있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예전엔 몰랐다. “서식지: 남아프리카, 아르헨티나, 남태평양”이라고 적힌 사자, 코끼리, 바다사자가 서울 광진구 능동에 모여 있다. 수십 년 전엔 자국의 동물과 함께 끌려온 콩고 주민도 있던 그 자리에 그랜트 얼룩말 ‘세로’가 있었다. 펜스 바깥 호모사피엔스들에게 제공되는 정보는 이들의 발톱이 몇 개인지, 임신 기간이나 수명은 얼마인지 같은 것들. 나는 다른 이야기를 알고 싶다. 서식지에 맞게 수만 년 동안 진화해온 그들의 눈과 코, 다리는 무엇을 보고 어떤 냄새를 맡고 어떻게 달리기를 원하는지, 누구를 사랑하고 어떨 때 기쁨과 슬픔을 느끼는지, 펜스를 힘껏 뛰어올라 난생처음 바람을 가르며 달릴 때 그의 심장이 얼마나 뜨거웠는지, 그리고 그가 몸으로 하는 말을 들은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러니까 그들이 얼마나 존엄한 존재인지에 관한 이야기 말이다.

기자명 사진 박창환·글 홍은전(작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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