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수의사는 동물원을 당장 없앨 수 없다면 야생동물을 보호하고 치료해서 다시 자연으로 보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사IN 조남진

김정호 수의사는 팔이 긴 진료복을 입고 있다. 수의복은 원래 반팔인데 야외 활동이 많아서 직접 맞췄다. “공공 영역이 아니면 보호받지 못하는 동물을 진료하고 싶어서” 수의학과에 갔다. 반려동물에겐 주인이 있고 가축은 고기가 될 운명이라면, 야생동물은 “주인 없이 자유로운 존재”처럼 느껴졌다. 2001년 청주동물원에 입사했다. 수의직 공무원은 순환보직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는 동물원에 남기로 한다. 진급이 늦어지더라도 동물원을 좀 더 낫게 바꾸고 싶어서였다. 청주동물원을 토종종 보호 및 연구 중심 공간으로 바꾸고 있는 주역이기도 하다. 그에게 동물원 폐지를 둘러싼 쟁점을 물었다.

관람과 전시를 후순위로 두었다.

방사장 리모델링 후 오히려 음식물이나 돌을 던지는 행위가 크게 줄었다. 열악한 공간에서 동물들이 할 일이 없으니 잠을 자는데, 어떤 사람들은 깨워서 움직이는 것을 보고 싶어 했던 거다. 그렇다고 못하게만 하면 안 된다. 사람들도 가까워지고 싶은 욕구가 있기 때문에 자꾸 대안을 마련해주려고 한다. 건강검진을 받거나 치료받는 과정을 그대로 공개하거나, 방사장에 조류 유리창 충돌 방지 테이프를 붙이는 등 타협점을 찾는 것이다. 관람객 출입이 금지된 조류 방사장에는 멀찌감치 망원경을 두었다. 운이 좋으면 두루미가 뱀을 잡아먹는 모습도 볼 수 있다.

관람객 출입이 금지된 조류 방사장엔 멀찌감치 망원경을 두었다. 운이 좋으면 두루미가 뱀을 잡아먹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시사IN 조남진

코끼리 없는 동물원으로 알려져 있는데, 관람객들이 아쉬워하지 않나.

계속 들여오자는 얘기는 있었다. 코끼리가 산에 있는 것도 이상하고 관리능력도 없었다. 코끼리 수명이 길어서 신규 코끼리를 도입하면 몇십 년은 더 돌봐야 한다. 게다가 한국 겨울이 춥다 보니 굉장히 많은 조건이 필요하다. 몰랐는데 코끼리가 국내에 꽤 많더라. 대구 달성공원에는 1960년대 태어난 코끼리가 살고 있다고 들었다. 그곳에서 잘 키우고 관람하면 된다. 이미 있는데 우리까지 있어야 하나 싶었다. KTX 열차 한두 시간 거리마다 코끼리를 볼 수 있는 동물원이 존재해야 하나.

좁은 공간이 문제라면 에버랜드처럼 사파리 형태로 운영하면 안 되나.

그 정도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해외 국립공원처럼 차를 타고 들어가서 숨어서 보는 게 사파리지, 동물원보다 조금 더 넓다고 사파리라고 할 수 있을까? 국내 사파리 동물원에 가서 사자와 호랑이 못 본 적 있나? 동물이 항상 보인다는 건 인위적 요소가 개입돼 있다는 뜻이다. 그 자체가 사파리가 아닌 거다. 운 좋으면 한두 마리 보고 혹은 못 볼 수도 있다는 전제를 받아들여야 사파리의 개념이 이루어진다. 그건 좁더라도 숨어 있을 공간이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야생동물 보호시설이라 해도 결국 인간을 위해 동물을 가두는 동물원이라는 비판도 있다.

결국 어떤 동물을 가둬놓느냐다. 날개나 부리가 훼손된 영구 장애 개체들은 자연으로 돌려보내면 죽게 된다. 그래도 죽는 것보다는 살아 있는 게 낫지 않나? 인도적 안락사 대신 살 수 있으면 좀 살면 안 되나? 이왕 동물원에서 살아가야 한다면 그 동물이 관람객들에게 보전의 메시지를 줄 수도 있다. 대부분 유리창 충돌이나 쓰레기 때문에 다치는 경우가 많으니까. 그 동물을 통해서 더 많은 맹금류를 구할 수도 있다. 사실 사람들은 보이는 걸 믿으니까. 야생동물 멸종을 계속 이야기하지만, 피부에 잘 와닿지 않는다. 동물원은 그런 동물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동물원에서 일하는 동물원 폐지론자’로 알려져 있는데 오히려 동물원 찬성론자처럼 들린다.

전시 위주 동물원은 언젠가는 사라져야 한다. 다만 없어지기 전에 무엇을 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당장 없앨 수 없다면 야생동물을 보호하고 치료해서 다시 자연으로 보내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 결국 사람들이 동물원을 계속 찾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순기능을 계속 찾아내야 한다. 생추어리 운동이 진행되고 있지만, 야생동물 카페부터 체험 동물원까지 수만 마리 야생동물이 갈 곳을 마련할 수 있을까? 동물원을 개선시키는 정보와 지식이 축적돼야, 생추어리가 만들어지더라도 더 잘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청주동물원에서 홍성현 수의사가 야생동물 보호와 야생 방사를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시사IN 조남진

야생동물 보호와 연구에 비용을 들여야 하는 이유가 뭘까.

토종 야생동물이 잘 못 사는 환경이 되면, 결국 우리도 비슷한 결말을 맞게 된다. 인간은 약간 방어력이 더 있지만 동물은 순수하게 데미지를 받는 존재다. 동물이 인간을 선행해서 피해를 당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그걸 통해서 우리가 스스로를 되돌아볼 수 있다면 의미 있지 않겠나.

청주동물원의 다음 목표는 무엇인가.

동물원수족관법이 시행을 앞두고 있다. 동물원 기준이 엄격해지면 실내 동물원에 있는 사자와 호랑이가 갈 데가 없어질 것이다. 현재 여러 생추어리를 비롯해 폐원 동물원을 위한 쉼터가 만들어지고 있지만, 맹수를 관리하긴 어려울 것이다. 무엇보다 생추어리를 만들려면 큰 예산이 필요하다. 동물원을 잘 고쳐서 햇빛도 보고 비도 맞으면서 여생을 살다 갈 수 있는 생추어리가 되었으면 한다.

청주동물원 수달사의 모습. 수달을 매번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시사IN 조남진
토종 야생동물이 잘 못 사는 환경이 되면, 결국 인간도 비슷한 결말을 맞게 된다. ⓒ시사IN 조남진
기자명 김영화 기자 다른기사 보기 you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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