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은 2009년부터 연말 부록으로 ‘행복한 책꽂이’를 펴내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독서 리더들의 면면은 바뀌었지만, 이들이 추천한 올해의 책을 볼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미디어에서, SNS에서 요란스럽게 다뤄지지는 않았지만 동굴 속 보석처럼 조용히 반짝이던 책들이 세상에 나온 기분이다.
 

조용히 나 자신과 마주 앉을 시간을 만들어주는 한 권의 시집도 있고, 죽음을 목전에 두고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기록도 있다. 물론 묵직한 인문학 서적도, 당장 펼쳐보고 싶은 역사 에세이도 있다. 올겨울, 이 반짝이는 것들을 품고 따뜻한 연말연시를 보내시기 바란다. 

 

독서 리더가 꼽은 올해의 책

독서 리더 33인(가나다순):권경원 권용선 김겨울 김다은 김민섭 김민식 김세정 김소영 김용언 김주원 김현 류영재 박원순 박해성 서정화 양승훈 오지혜 유종선 유진목 유희경 이강환 이기용 이슬아 이승문 이승한 정용실 정은영 정재웅 정홍수 조형근 천호선 최현숙 하명희

 

 

반드시 널리 알려져야 할 원통한 말들이 있다. 널리 알리는 방법 중 하나가 글이고 책이다. 원통한 사람들이 글을 쓰기 어려워서 글 쓰는 사람들과 인터뷰를 했다. 너무 원통해서 기억을 되살리기 힘들었고, 인터뷰도 글쓰기도 힘들었지만 읽기도 힘들다. 그래서 더욱더 읽혀야 하는 책이다. 책을 붙잡기 전 대강은 알고 있었는데, 읽는 동안도 읽고 나서도 많이 힘들었다. 그러고도 벗어나지 못해 SNS와 뉴스에서 보는 선감학원 사건과 피해 생존자들의 소식에 늘 다시 붙들린다. 나를 붙드는 끈 중 하나는 김성곤이다. 1956년 즈음 태어나 첫 기억이 고아원이라는 그는, 일곱 살쯤에 고아원을 도망 나와 인천·서울·부산·제주·목포, 다시 서울을 떠돌다 열 살 무렵 선감학원으로 넘겨졌다.

1957년에 태어나 그와는 다른 어린 시절을 보낸 나이지만 거기까지만으로도 이미 여러 장면에서 얽혀 있다. 그와 다른 폭력을 경험하고, 마을과 시장과 다리 밑을 떠돌다 내 집 대문 앞에서 밥을 구걸하던 김성곤들이 언제부턴가 어딘가로 사라져버렸음을 모르지 않던 나.

그를 인터뷰한 하금철은 내 도벽과 김성곤의 범법을 대놓고 엮다 말고 자신의 도둑질까지 끼워넣었다. 세 명에게 다르게 작동한 가족과 국가와 법과 복지와 이웃들로 인해, 김성곤은 우리와 너무 멀어져버렸다. 선감학원에서 도망 나온 김성곤은 다시 여러 시설과 형제복지원과 삼청교육대로 끌려갔고, 우리들의 배제 속에 우리들을 보호한 법에 수없이 걸려들어 36년이 넘는 감옥살이를 했다. 예순셋의 김성곤은 “인간답게 꽃필 나이에 다 꺾여버린 삶을 이제라도 역사에 내놓아 밝히고 싶”단다.

그러니 이제라도 그 원통한 말들을 들어야 한다. 같은 시대를 살면서 우리가 밀어낸 사람들이고, 국가에 의해 우리 곁에서 “쓸어 담겨져” 안산시 선감도에 버려진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강제 연행, 감금, 폭행, 강제 노역, 굶주림, 죽음을 각오한 탈출을 반복하다 많은 아이들이 죽었고, 되는 대로 내던져진 사회에서 불화하다 자괴와 폭력과 질병과 경계들에 걸려 죽었고, 살아남아 숨어 흩어진 사람들 중 극히 일부인 9명의 피해 생존자들이 예순과 일흔이 되어서야 쏟아낸 말들이다.

이제 “나는 그 사람을 모른다”라고 말할 수 없다. 그들의 증언은 우리 안에 눌어붙어 있는 방관과 혐오와 무력감의 증거이며, 사회와 국가에 대한 불신의 원천이다. 그 어두움 속을 속속들이 밝혀 거기에서 시작해야 한다. 원통한 어린 시절을 증명할 서류도 증인도 없는 그들이 피맺힌 기억을 풀며 우리에게 묻는다, 죽기 전에 진상규명의 꿈을 꾸어도 되느냐고.

기자명 최현숙 (구술생애사 작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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