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스토리


대선주자들의 ‘총선나기’

절박한 ‘무대’의 일보후퇴

오세훈의 대선방정식, ‘정치 1번지’에서 풀릴까

광주 찾은 문재인의 배수진

4년 ‘벽치기’한 김부겸, 새로운 도전 나서나

일석이조 노리는 ‘안길동’의 도전

기자들은 의석수를 어떻게 예상할까

 

4월6일 오전 11시40분 경기도 용인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표창원 후보(용인정) 지원에 나섰다. 문 전 대표가 모습을 보이자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문 전 대표와 사진을 찍고 사인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길게 늘어섰다. 꽃과 선물 꾸러미를 건네는 지지자들도 많았다. 흡사 아이돌 가수의 게릴라 콘서트를 보는 듯했다. 문 전 대표는 표창원 후보와 1시간가량 카페 거리를 돌았고 지지자들은 그 뒤를 따라다녔다. 문 전 대표가 점심을 먹고 나올 때까지 지지자 수십명이 식당 앞에 진을 치고 있었다. 식사 후, 문 전 대표는 용인갑 백군기 후보 지원에 나섰다. 여기에서도 비슷한 풍경이 펼쳐졌다.

문재인 전 대표는 여전히 뜨거운 정치인이다. 가는 곳마다 구름 인파를 몰고 다닌다. 문재인이 나서면 온라인도 들썩거린다. 4월6일 오후, 문 전 대표가 지원에 나선 표창원과 백군기 후보의 이름이 실시간 검색어 상위에 올랐다. 선거 기간 중 포털사이트 검색어에 오르는 것은 모든 후보가 선망하는 홍보 방법이다.

ⓒ시사IN 조남진문재인 전 더민주 대표가 4월6일 경기도 병점역 앞에서 더민주 후보의 지원 유세를 하고 있다.

당연히 문재인 전 대표는 선거판에서 모시고픈 0순위 인물이다. 문 전 대표는 매일 10여 곳의 선거 현장을 누비고 있다. 4월7일에도 군포·시흥·인천·부평 등 10여 곳에서 유세를 벌였다. 문 전 대표의 수행비서는 “와달라는 곳이 너무 많다. 지난 총선과 대선 때보다 더 많은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문재인이 당에서 받는 대우는 인기에 못 미친다. 문재인은 더불어민주당의 대선주자였고 대표였다. 그럼에도 지난 1월 말 총선 승리와 정권 교체를 위해 공천권을 내려놓고 물러났다. 불출마로 백의종군을 선언했다. 문 전 대표의 희생, 표창원·김병관·양향자 등 새 인물 수혈, 필리버스터에서 나타난 기존 의원들의 노고 등이 평가받았고, 여기에 김종인 비대위 대표의 카리스마가 어우러져 더민주의 승리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다. 더민주가 상승기류를 타자, 국민의당과 안철수 대표가 길을 잃었다. 천정배·김한길 의원 등도 야권 연대를 주장하며 안철수 대표와 대립했다. 국민의당이 파국으로 치닫자, 안철수 대표는 “광야에서 죽어도 좋다”라며 버텼다. 외로운 처지였다. 종편과 새누리당이 응원에 나설 정도였다. 새누리당 공식 페이스북 계정에 “새누리당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를 응원합니다.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신념으로 새정치 실현해내시기를 기원합니다”라는 글이 올랐다.

그러나 더민주의 아름다운 시절은 봄꽃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 공천 혁신이 셀프 공천으로 끝나면서다. 비판이 일자 김종인 대표는 “김대중 전 대통령식으로 끝 번호에 넣어 동정을 구하는 식의 정치는 안 하는 게 좋다”라고 하면서 당무 거부로 승부수를 던졌다. 문 전 대표가 급히 상경해서 김 대표를 설득했다. 언론은 석고대죄를 했다고 보도했다.

호남 공천은 심각했다. 특히 광주 공천은 최악이었다. 김상곤 전 경기교육감 등 중량급 인사들은 배제됐다. 현역 의원이 빠져나간 자리는 인지도 낮은 신인들로 채워졌다. 체급 차가 컸다. 대진표가 성사되자, 지역에서 들고일어났다. 호남을 무시한다는 여론이 돌기 시작한 것이다. 더민주 김홍걸 국민통합위원장은 “셀프 공천과 호남 공천으로 더민주는 완전히 점수를 까먹었다. 실망감은 문 전 대표가 김종인 대표를 모셔온 것과 정부·여당에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 것으로까지 옮아붙었다”라고 말했다. 광주 무등로타리클럽 허장수 총무는 “지난 대선 때 광주는 92%의 표를 문재인에게 몰아줬다. 광주는 민주당과 문재인이 이렇게는 안 된다, 좀 더 강하게 박근혜 정권과 싸워달라고 회초리를 드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정헌율 국민의당 전북 익산시장 후보는 “민주당의 호남 공천이 터닝포인트였다. 인물 간 경쟁이 안 되면서 호남 민심이 급격히 국민의당으로 옮아가기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문재인 옆에 광주 출마자는 한 명도 없었다

공천 이후, 호남 민심이 더민주에게서 떠나기 시작했다. 광주의 분위기는 전남을 삼키더니 전북까지 넘어갔다. 그동안 ‘반문 정서’ ‘문재인 호남홀대론’은 종편 패널들이 던지는 흘러가는 노랫가락에 불과했다. 주목을 끌지도 못했다. 그런데 더민주의 호남 지지율이 곤두박질치자 스멀스멀 살아났다. 여기에 불을 댕긴 것은 더민주의 선거 사령탑이었다. 김 대표는 문 전 대표에 대해 “다닐수록 호남 여론이 더 악화된다. 분열 책임이 있는 인물들은 자중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정장선 선거대책본부장은 “문재인 호남행, 현 시점에서 적절한지 당과 협의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철희 중앙선대위 종합상황실장은 “문재인 호남행, 중앙당이 자제 권유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신선영4월8일 문재인 전 대표와 김홍걸 더민주 국민통합위원장(오른쪽)이 국립 5·18민주묘지를 방문했다.

‘참여정부 호남홀대론’은 근거가 없고, ‘반문 정서’는 실체가 모호한 이야기였다. 광주의 한 언론사 사장은 “새누리당 응원을 받는 안철수 대표와 국민의당을 광주 시민들이 좋아하지 않는다. 호남 의원 물갈이 여론도 거세다. 다만, 더민주와 문재인이 대권을 잡기에는 부족하다는 여론이 있다”라고 말했다. 전남 지역의 한 언론사 편집국장은 “문재인이 호남에 오면 ‘반문 정서’라는 말조차 사라질 것이다. 호남은 여전히 문재인을 사랑한다”라고 말했다.

종편은 문 전 대표를 호남에 갈까 말까를 놓고 망설이는 우유부단한 정치인으로 매도했다. 3월28일 문 전 대표는 페이스북에 안도현의 시를 올렸다. “그날은 절대로 쉽게 오지 않는다. 그날은 깨지고 박살 나 온몸이 너덜너덜해진 다음에 온다. …그날은 그날을 고대하는 마음과 마음들이 뒤섞이고 걸러지고 나눠지고 침전되고 정리된 이후에 온다.”

4월8일, 문재인 전 대표가 드디어 호남을 찾았다. 첫 일정은 망월동 5·18 묘역이었다. 문 전 대표는 무릎을 꿇었다. “광주가 보내신 과분한 지지, 너무 잘 알고 있다. 대선 패배로 실망시켜드렸고, 그 이후에도 이기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고, 정권교체의 모습도, 희망도 보여드리지 못했다. 그래서 여기 광주에서 광주 정신을 되새기는 것으로 다시 시작하고자 한다.” 광주 양동시장 꽃집에서 만난 한 할머니는 문 전 대표와 김홍걸 위원장의 손을 잡고 눈물을 보였다.

4월8일 오후 2시30분, 광주의 중심가 충장로 한복판에서 문 전 대표는 광주 시민 앞에 섰다. “아무리 부족하고 서운한 점이 많아도, 그래도 새누리당과 맞서 정권교체 해낼 정당은 우리 더불어민주당밖에 없다. (호남이) 저에 대한 지지를 거두시겠다면 저는 미련 없이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겠다. 대선에도 도전하지 않겠다.” 시민 수백명이 ‘문재인’을 연호하며 지지를 보냈다. “끝까지 싸워 나가겠다” “정권교체를 실현하겠다”는 부분에서 시민들은 가장 큰 박수를 보냈다. 전남 완도에서 양어장을 하는 이해영씨(58)는 “호남이 더불어민주당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말을 꼭 해주고 싶어서 광주에 왔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문재인의 정치적 앞날은 여전히 어둡기만 하다. 대규모 군중이 집결한 충장로에 더민주 광주 후보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기자명 주진우 기자 다른기사 보기 ac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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