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윤무영지난 4월22일 삼성 회장 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히는 이건희 삼성 회장.

지난 4월22일 이건희 회장이 삼성 회장에서 물러났다. 기자회견을 지켜보던 한 외신 기자는 “대통령 위에 군림하던 왕이 20년 만에 물러난다”라고 말했다. 다음 날 그 기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 회장의 퇴장을 국민이 슬퍼하는 건가? 언론은 모두 천재 경영인의 퇴진을 아쉬워하고 있다.”

삼성 쇄신안이 나오자 언론은 이 회장 경영실적에 대한 찬사 일색이었다. 취임 당시 14조원이던 그룹 매출은 2006년 말 152조원으로 약 11배 가까이 늘었고, 이익은 1900억원에서 14조2000억원으로 75배 증가했다는 양적 성장을 크게 다뤘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는 다 바꿔라” “한 명의 천재가 10만명을 먹여 살린다” “물건만 잘 만들어서는 1등이 될 수 없다.” 이 회장의 어록을 새기면서, 그의 한마디가 사회를 바꿨다고 했다.

삼성은 비약적 성장의 힘을 이 회장의 천재적 경영능력이라고 강조한다. 이를 찬양하는 책과 보도는 셀 수 없이 많다. 지난 4월21일 문화일보는 특검 관계자의 말을 빌려 “이건희 회장이 어느 한 분야에만 집중하는 일종의 천재 타입이라는 느낌이다. 말이 약간 어눌한데 왜 이 사람이 재계 최고 거물인지 나중에 알겠더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삼성의 머리와 심장에서 일했던 김용철 변호사는 이건의 회장의 경영능력에 대해 다르게 평가했다. 김 변호사는 “7년간 본사에 두 번 출근한 이 회장의 ‘신비주의 통치술’을 아무리 호의적으로 본다고 해도 경영능력은 없었다”라고 말했다.

우선 실패한 사업이 너무 많다고 했다. “삼성자동차 투자는 역사상 최악의 실패였다. 독일에서 명품 카메라 ‘롤라이’ 브랜드를 수입했는데 롤라이 시계를 만들다가 상표권 싸움에서 지면서 회사를 날렸다. 미국 컴퓨터 업체인 AST를 인수했는데 AS 비용을 털었더니 손실만 1조3000억원이 넘었다. 중국에서는 텔레비전 판 금액 3000억원가량을 수금하지 못해 손실을 입었다. 더구나 이재용과 관련한 사업은 모조리 실패했다.”

김 변호사는 이 회장의 현장 지도에 따라나선 적이 있다고 했다. 이 회장이 헬기에서 내리자 여자 근로자들이 농구를 하다 달려와서 사인을 해달라고 몰려들었다 한다. 모든 게 연출된 상황이었다. 이건희 회장도 이 사실을 알지만 좋아한다고 했다. 연말이면 이 회장이 방문한 사업장은 항상 특별한 성과를 거두게 돼 있다고 한다.

'천재적’이라고 칭송받는 이 회장의 지적은 파격이었다고 김 변호사는 전했다. “지하수가 15년 뒤에는 큰 자원이 될 것이다. 무조건 사라” “해발 600m 이상 땅을 사두면 돈 된다” “집 주변에 사람 못 오게 다른 집을 모두 사라.” LG에게 냉장고 판매에서 뒤졌다는 보고를 받자, 이 회장은 “반도체에서 한 2조원쯤 빼서 전 가정에 냉장고를 사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이 회장은 평소 관심이 있는 분야에 주문을 많이 했다. 이 회장은 해외에서 옷을 사와  ‘이런 소재 옷을 연구해보라’고 건네는 일이 종종 있다고 한다. 그런데 전문가도 잘 모르는 소재의 제품이었다. 김 변호사는 “이 회장 일가는 잡인들이 쓰는 브랜드는 아예 사지도 않는다. 이 회장은 비큐냐(Vicuna)처럼 국내에서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최고급 소재 옷만 입는다”라고 말했다. 비큐냐는 페루 고산지대에 사는 산양으로, 비큐냐로 만든 코트는 5000만원이 넘는 제품도 있다.
 

ⓒ중앙포토1996년 이건희 회장(가운데)이 삼성자동차 공장을 방문해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이 회장은 홍콩 영화를 제외한 모든 장르의 영화를 즐겨 보는 ‘비디오광’으로 유명하다. 특히 일본 만화영화를 좋아하고 한국 영화도 빼놓지 않고 본다. 때문에 DVD에 관한 지시 사항이 많다고 했다.

“소니 DVD를 오랫동안 사용했더니 열이 나서 오작동이 생기더라” “다른 회사 제품은 밤새도록 사용해도 문제가 없었다” “우리 제품은 소비전력을 줄여서 열 발생을 막아라.” 김 변호사가 공개한 ‘회장 지시 사항’ 문건에 따르면 이 회장은 2003년 8월24일, 10월26일, 11월14일, 11월20일 DVD에 관해 지시를 내렸다.

‘회장님 지시 사항’ 문건에는 경영에 관한 지침은 거의 없고, 시시콜콜한 현안이나 로비 방법까지 지시하는 내용이 담겼다. 김 변호사가 처음 문건을 내놓았을 때 변호사들과 사제단 신부들은 “수준이 낮아서 이 회장의 지시라고 볼 수 없다. 삼성에서 자신의 문건이 아니라고 부인할 것이다”라고 입을 모았다.

 

사이비 종교집단 같은 회의 분위기

이 회장이 회의와 토론을 좋아하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이 회장이 주재하는 회의 또한 특별하다고 한다. 2002년 초 구조본 법무팀장이 되면서 김 변호사는 이 회장이 주재하는 최고 의사 결정기구인 구조조정위원회 회의에 참가하게 됐다. 김 변호사는 “회의에는 엄숙한 우스움이 흐른다”라고 말했다.

회의는 아무 말 없이 이 회장의 말을 듣는 형식으로 진행된다고 한다. 이 회장은 혼자서 계속 말하지만 30분 동안 말 한마디 없이 침묵 속에 회의를 진행하기도 한다고 했다. 이 회장은 담당 임원도 모르는 세세한 부분을 가지고 이야기할 때가 많았다. 김 변호사는 “중요한 사안이 아니라 아주 하찮은 내용도 많았다. 그런데도 삼성과 언론은 천재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라고 말했다.

저녁에 소집된 회의는 식사를 곁들이며 보통 6시간가량 진행된다. 새벽까지 이어질 때도 있다고 했다. 사장들은 회의에 들어가기 전 물을 마시지 않는 것이 불문율처럼 돼 있다. 식사 때 찌개와 와인에는 손도 대지 않는다고 한다. 회의 시간에 화장실 가지 않으려는 고육책이다. 김 변호사는 회의 시간에 집에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밤늦게 집에 안 들어오니까 아내가 걱정하는 당연한 전화였다. 전화를 받았더니 이학수 부회장이 ‘무슨 급한 일이냐’고 물었다. 집에서 왔다고 했더니 모두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했다.”

김 변호사는 “이건희 회장을 신격화하는 사이비 종교 같은 사내 분위기는 참기 힘들었다. 특히 똑똑한 사람들이 바보 노릇을 하게 만드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 “이건희 회장의 어록과 지시 사항을 헌법과 신념으로 받아들이는 게 내게는 무리였다”라고 덧붙였다.

기자명 주진우 기자 다른기사 보기 ac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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