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무노조 신화는 깨질까? 수없이 던진 질문이지만 돌아오는 건 ‘아직’ 메아리뿐이다. 노조를 만들던 자도, 노조 만들기를 도왔던 자도 모두 지쳤다. 지치지 않은 건 삼성뿐이다. 지난 2월 삼성SDI 과장급 직원으로 구성된 ‘삼역모’(삼성의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는 사람들의 모임)’가 회사의 회유와 협박에 내부 균열이 생기며 자진 해체를 결정한 것이 커다란 상처였다.
“지금 생각하면 삼역모가 반공개로 활동한 것부터가 문제였다. 그럼으로써 끊임없이 삼성 측에 신호를 보낸 거다. 일부 언론도 함께 당했다고 본다. 언론 노출 한 번 할 때마다 그들은 자신의 몸값을 올린 셈이다. 처음부터 반신반의하긴 했는데···.”
삼역모의 결성과 와해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한 노동계 인사는 아직 그들의 ‘배신’으로 입은 상처가 채 가시지 않은 듯했다. 그가 지켜본 바로 삼역모 멤버 상당수는 삼성의 유혹에 스스로 넘어갔다. 삼역모 결성을 계기로 “삼성에 노조 깃발을 꽂겠다”라며 열과 성을 다했던 노동계로선 참담한 심정일 수밖에 없다.
김갑수 삼성해고자복직투쟁위원장은 지난 4월22일 이건회 회장의 퇴진과 함께 발표된 삼성의 경영쇄신안을 주의 깊게 봤다. 혹시나 노조 관련 언급이 있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역시나였다. 물론 애초부터 큰 기대는 품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올해 초 삼성특검이 출발할 때부터 삼성 관리직 사원은 ‘특검이 밝힐 수 있는 게 없다. 삼성은 끄덕없다’라며 현장 직원에게 압력을 넣었다”라고 말했다. 삼성특검 분위기 속에 행여 노조 결성 움직임이 생길까 현장 단속을 철저히 했다는 것이다. 거꾸로 말해 특검이 제대로 수사를 했다면 삼성 노동자에게도 ‘자신감’이 생길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무노조 경영'에 균열의 틈 보여
실제로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 이후 삼성 ‘무노조 경영’에도 균열의 틈이 보인다. 민주노총 경기본부 이종란 노무사는 “요즘 들어 삼성 현장 노동자의 상담 문의가 꾸준히 는다. 그동안 개별적으로 관리당하던 노동자가 ‘나만 당한 게 아니라, 삼성이 이 사회 전체를 유린하고 있었구나’ 하고 공감하면서 뭔가 해보려는 분위기가 느껴진다”라고 말한다. 삼성 노동자가 민주노총 등 노동단체를 접촉해도 삼성이 함부로 해고 협박을 하지 못하는 것도 과거와는 사뭇 달라진 점이다. 김갑수 위원장도 “요즘 현장 노동자를 만나 보면 삼성이 이렇게 망가진 까닭이 회사를 바로잡는 구실을 할 노조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라고 말한다. 노조의 필요성을 공감하는 이들이 증가한 것이다. 2010년 복수 노조 허용, 산별 노조 흐름 등 외부 환경도 좋은 편이다.
하지만 삼성 무노조 신화가 무너지리라 속단하기는 이르다. ‘관리의 삼성’이 여전히 아무런 변화의 모습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삼역모의 사례에서 보듯 삼성의 조직적인 회유와 협박의 힘은 강력하다. 박점규 금속노조 미조직비정규사업부장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작은 소모임 중심으로 차근차근 삼성의 노조 결성 운동을 이끌어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현장에서는 잔잔한 바람이 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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