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생명은 이건희 일가로서는 하늘이 두쪽 나도 포기 못할 금쪽같은 회사다. 현재의 출자 구조를 유지하는 중핵 기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임직원 명의 삼성생명 차명 주식이 ‘상속 재산’이라는 특검 결과를 적어도 부분적으로 뒤집는 주장이 나왔으니 삼성그룹에 비상이 걸릴 수밖에 없다. 특검이 1987년 차명 상태로 이건희 회장에게 상속됐다고 판단한 51.75% 가운데 최소 3.75%, 최대 26.00%의 지분이 상속 재산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경제개혁연대가 한국신용평가정보를 통해 198 0년부터 1990년까지 삼성그룹 (연혁)계열사의 타 법인 출자 현황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이병철 회장이 타계한 직후인 1987년 말 당시 계열사였던 신세계와 제일제당(현 CJ)은 각각 29%와 23%의 삼성생명 지분을 갖고 있었다. 이 지분만도 52%에 달하니 당시 삼성그룹 임직원 명의의 차명 지분은 아무리 많아도 48%를 넘을 수가 없다. 그러나 특검은 이 지분이 51.75%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3.75% 포인트의 오차가 생긴다.

이후 삼성생명 지분 변동 상황을 추적해보면 신세계와 제일제당의 지분율이 절반으로 줄어든 것은 1988년 9월이다. 이때 삼성생명이 자본금을 30억원에서 60억원으로 두 배 늘리려고 주주배정 방식의 유상증자를 실시했는데, 자의든 타의든 두 법인주주가 실권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실권 주식 26%(신세계 14.5%+제일제당 11.5%)를 누가 인수했느냐가 밝혀져야 할 핵심 사실로 떠오른다. 그래야만 이건희 회장 재임 시절에 이루어진, 다시 말해 상속 재산이 아닌 차명 주식 규모를 정확하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시사IN 안희태 이건희 일가에게 삼성생명은 금쪽같은 회사다.
1999년 9월 당시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소속 정세균 의원이 발간한 ‘재벌 개혁의 방향과 정책과제’에 따르면, 1994년 1월 현재 신세계와 제일제당의 삼성생명 지분은 각각 14.50%와 11.50%였다. 1988년 9월 유상증자 시점과 변동이 없다. 두 법인주주의 지분 26.00%와 삼성특검이 차명이라고 확인한 삼성그룹 전?현직 임직원 지분 51.75%를 뺀 나머지 지분은 22.25%다. 이 지분의 주인은 확인된 바 있다. 이건희 회장 10%, 삼성문화재단 5%, 삼성에버랜드 2.25%, 고 이종기 전 삼성화재 회장(고 이병철 회장 사위)이 5%를 보유했었다.

따라서 여전히 행방이 묘연한 것은 22.25%와 실권주 26.00%의 차이에 해당하는 3.75%다. 적어도 이 지분은 이건희 회장이 재임하던 시기인 1988년 9월 유상증자 시점에 만들어졌다고 볼 개연성이 커진 것이다. 이것은 신세계와 제일제당의 실권주 26.00% 가운데 일부인 22.25%를 이건희 회장, 삼성문화재단, 삼성에버랜드, 고 이종기 회장 등이 인수했다고 가정한 경우다.

만약 이 회장 등이 당시 실권주를 전혀 인수하지 않았다고 상정하면, 실권주 전량인 26%의 행방이 묘연해진다. 어떻게 가정하든 최소 3.75%, 최대 26%의 지분이 상속된 것이 아니라 선대 회장 타계 이후인 이 회장 재임 시절 만들어졌다고 봐야 논리적으로 모순이 생기지 않는다.

이에 대해 삼성 측은 4월24일 발빠르게 ‘삼성생명 지분 관련 경제개혁연대 주장에 대해’라는 해명자료를 내 특검이 확인한 차명 지분은 문제가 없는 수치라고 반박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삼성생명 차명 지분은 이병철 회장 시절부터 임원 명의로 갖고 있던 주식이 그대로 상속된 부분도 상당 정도 있고, 1988년 유상증자 때 실권분을 임원 명의로 인수한 부분도 있었다. 유상증자 때 인수한 지분의 경우 상속 재산에서 출자해 임원 명의로 사들였다는 해명이다.

경제개혁연대의 재반박이 이어졌다. “3.75%가 선대 회장이 은닉한 재산이라는 삼성 주장이 맞다 해도 그것을 산 것은 적법한 행위인가? 무엇보다 이 사안의 핵심은 신세계와 제일제당이 왜 실권했느냐에 있다.” ‘1988년 9월’이라는 시점은 공교롭게 생명보험사의 상장 움직임이 본격화하던 때였다. 막대한 상장 차익이 기대되는 상황인데도 신세계와 제일제당은 실권이라는 이해할 수 없는 행위를 한 것이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이런 일은 상장 차익을 노린 총수의 영향력으로 볼 수밖에 없다. 지금은 시효(10년)가 지났지만, 당시 두 회사의 주주로서는 이익을 포기한 경영진을 특경가법상 배임으로 걸 수 있는 사안이다”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 유상증자→실권→제3자의 실권주 취득이라는 부당한 과정을 통해 일군 재산이라면, 이를 선대 회장의 상속 재산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국민을 속이는 일이라고 성토했다. 이 사안은 상장 직전 계열사 지분을 사들여 막대한 부를 축적한 ‘이재용 재테크 수법’과 비슷하다는 의혹도 받는다. 경제개혁연대는 특검과 삼성그룹에 해명을, 검찰에 추가 수사를 요구했다.

기자명 장영희 전문기자 다른기사 보기 coo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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