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 이 칼럼은 지난 3월14일 발행된 시사IN 오프라인 지면에 실렸습니다.

천안함 사건 1주년이 다가오고 있다.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사건으로 지난 한 해 남북관계는 최악이었다. 10년 동안 유지되어온 ‘6·15 체제’가 무력화되고, 그 자리를 1953년의 정전 체제가 대신하게 되었다. 이는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북한은 그동안 체제 불안정을 심화시키는 외부의 어떤 책동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여러 차례 경고해왔다. 남한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만한 자세로 일관했다. 단선적 대북 정책으로 북한을 압박하는 데만 주력했을 뿐, 그로 인해 야기될 후과에 대해서는 방심했다. 

북한은 2008년 이후 도발과 유화를 되풀이해왔다. 북한은 차츰 도발을 노골화하면서 도발과 유화 사이의 주기를 좁히기 시작했다. 지난 1월 내내 북한은 중단된 남북대화를 재개하자고 요구해왔다. 작년 11월의 연평도 포격 도발에서 유화 국면으로의 전환을 발 빠르게 시도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남한의 반응이 여의치 않자, 회심의 카드로 남한이 쉽게 거부하기 어려운 남북 고위급 군사회담을 선제의했다. 돌이켜보면 북한은 우라늄 농축 시설(UEP) 공개, 연평도 포격 도발 그리고 유화 국면으로 전환하기 위한 일련의 대화 제의에 이르기까지, 사전 기획된 시나리오에 따라 움직였다.

북한, 김일성 생일 전후해 다시 남북대화 제의할 수도

주목할 것은 이 같은 북한의 도발과 대화 제의가 지난 1월 19일 채택된 ‘미·중 공동성명’을 의식하고 영향을 주기 위해 취한 조처라는 점이다. 한반도 문제와 관련한 공동성명의 핵심 골자는 한반도 긴장 완화를 위한 남북대화 개최와 UEP를 비롯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 프로세스의 조기 재개, 두 가지라 할 수 있다. 북한이 남북 고위급 군사회담을 ‘미·중 공동성명’ 채택 다음 날 기다렸다는 듯이 제의한 것도 국제사회를 향해 공동성명 이행 의지를 분명히 밝히는 것이었다.

‘미·중 공동성명’의 바탕에 깔려 있는 또 하나의 공감대는 지난해와 같은 남북관계의 긴장 고조를 미·중 누구도 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반도 문제와 관련한 미·중의 협력을 가일층 강화하기로 약속한 것이다. 남북 간에 군사적 충돌 사태가 재발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미·중 협력의 강화 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점이 2011년 한반도 정세 전망의 핵심 포인트라 할 수 있다.

이 같은 맥락에서 첫째, 미·중은 앞으로 한반도에서 긴장을 고조하는 어떤 행위도 반대할 것이다. 둘째, ‘선 남북대화 후 6자회담’은 바람직하지만 이를 금과옥조로 삼지는 않을 것이다. 남북 간에 불신이 심화된 상태에서 남북대화가 재개되더라도 이른 시간 내에 의미 있는 합의나 성과를 도출하기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셋째, 북한이 UEP 시설을 공개하고 이를 가동하는 마당에 시간을 허비하면 비확산 차원에서 심각한 우려가 제기된다고 미·중은 본다. 중동 혁명과 사상 최악의 일본 대지진으로 인해 미·중이 얼마만큼 협력할지도 불명확하고, 설사 미·중 협력이 강화된다고 해도 이것이 남북관계에 얼마나 희망을 줄지 지금으로서는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왜냐하면 남북관계 개선은 미·중 협력과 함께 우리가 의지와 전략을 갖고 이를 주도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병행되어야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세계식량기구(WFP)와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공동으로 실시한 북한 식량 실태조사 결과가 나오면 조만간 인도적 차원에서 식량 지원 문제에 대한 방침을 밝힐 것이다. 미국이 대북 식량 지원 방침을 공식 천명한다면 이는 대북정책에 변화를 시사하는 신호탄이 될 것이다. 북한도 4·15 김일성 생일을 전후해서 다시 남북대화를 제의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은 남한이 압박을 멈추고 대화와 협력으로 나오지 않는 한 남북대화에 형식적으로 임할 것이다. 대신 북·미 대화를 통한 6자회담 재개 프로세스에는 적극 매달릴 것이다. ‘미·중 공동성명’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 같은 상황에서 남북관계는 어떻게 가야 할까? 남북 간 자체의 동력으로 남북대화를 이끌어갈 수 없다면 6자회담 재개 프로세스의 진행을 통해서라도 남북관계의 진전을 이끌어내려는 움직임이 미·중 협력으로 가능해질 수 있다. 이렇게 끌려가면 북한 붕괴론에 근거한 대북 정책은 변화가 불가피해질 것이다.

기자명 이봉조 (전 통일부 차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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