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소설가의 이름은 하필 ‘강’이었다. 허물없이 다정한 이들이 그를 강아, 하고 부를 때 그는 그 발음을 뭉클하게 느꼈다. 강처럼 길디길게 흐르라고, 해가 비치면 밝게 반짝이라고 부모가 지어준 그 이름. 그래서일까. 소설가 한강씨는 4대강 사업으로 곳곳에서 발파 작업이 시작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지난해 어느 밤부터 잠을 못 이루고 뒤챘다.

“가까운 사람의 등과 허리를 누군가가 강제로 밟아 부수고 있는 것 같은 공포를 느꼈다. 선잠에서 문득 눈을 뜰 때마다 발파 작업과 함께 사라졌다는, 인근의 숲 어디선가 두려워하며 뒤척였을 수달들의 눈이 불쑥 어둠 속에 떠올랐다 사라졌다. 보를 건설하는 강의 바닥에 콘크리트를 바를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도 비슷한 괴로움을 느꼈다. 살아 있는 사람의 따뜻한 살과 뼈를 바르고 거기 콘크리트를 채워 넣는다는 소식을 들은 것처럼.”

이상엽 사진작가가 촬영한 금강의 4대강 사업 현장. 구불구불한 물길에 사람이 그어놓은 ‘직선’은 하루가 다르게 강의 얼굴을 바꿔놓는다.
강물이 신음하면서 많은 것이 제자리를 잃었다. 노순택 사진작가가 영산강에서 촬영했다.
대운하를 포기하겠다던 이명박 대통령은 그 대신 강을 ‘살리겠다’고 선언했다. 멀쩡히 살아 있던 강들을 살리겠다고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순간 그 강은 죽어가기 시작했다. 공사 일정은 탈법과 위법, 초법이 난무했다. 지도자의 ‘결단’ 앞에 그 어떤 것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4대강 속도전은 강뿐 아니라 사람도 죽였다.

이처럼 신음하는 강물에 시인이, 소설가가, 사진작가가 자신의 몸을 섞었다. 강의 아픔을 이미 ‘망각’해버린 이들을 대신해 발품 팔아가며 변해가는 강의 얼굴을 목격했다. 그들은 강과 함께 운다. 강이 아파서 그들도 아프다. 강이 ‘기억해야 할 무엇’이 되어버린 시대. 증인도 없이 죽어갈 강을 위해, 그들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으로 이 시대를 기록한다. 이들 손에 그러쥔 펜과 카메라는 저항과 증언의 도구가 되었다.

한금선 사진작가가 만난 두물머리 농민은 “죽더라도 씨앗을 베고 죽는 게 농민이다”라고 말한다.
그 결과물이 산문집 〈강은 오늘 불면이다〉와 시집 〈꿈속에서도 물소리 아프지 마라〉, 사진집 〈사진, 강을 기억하다〉로 묶여 나왔다(아카이브 펴냄). ‘한국작가회의 저항의글쓰기실천위원회’ 소속 작가 127명과 ‘이미지 프레시안’ 기획으로 모인 10명의 사진작가가 공동 작업했다. 이들은 4대강에 대한 비판은 물론이며 사라져간 생명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이들이 들려주는 강에 대한 추억담 역시 처연하다. 그렇게 저마다 한 자락씩,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강의 얼굴을 보며 ‘곡소리’를 보탰다.

“이 땅을 풍성하게 했던 것은 물의 말”

이들에게 강은 서정과 창작의 원천이었다. 강의 훼손은 곧 근원을 끊어놓는 일이었다. 그래서 시인 고은씨는 그의 시 ‘한탄’에서 “이제 강은/내 책 속으로 들어가 저 혼자 흐를 것이다/언젠가는/아무도 내 책을 읽지 않을 것이다”라고 신음한다. 소설가 하성란씨는 강이 모든 이야기의 시작이었다고 고백한다. “내가 읽었던 어떤 책보다도 풍성한 문장들이었다. 혈관처럼 전국을 흘러가는 수많은 지천들, 수많은 문장들. 이 땅을 풍성하게 하는 것들은 물의 말이다.” 사진작가 강제욱은 묻는다. “아이들은 먼 훗날 우리들을 용서할 수 있을까”라고.

책을 넘길 때마다 전해져 오는 강의 통증과 신음은 적나라하다. 구불구불 연하게 굽이친 강 위에 사람이 그어놓은 ‘직선’은 오만하다. “언제 나의 모래를 퍼갈는지, 내가 안은 물고기며 새들이 배를 뒤집고 나의 몸 위에 소리도 없이 누워버릴는지, 불안에 떨며. 그래서 강은 오늘도 불면이다.(강은교)” 잠들지 못하는 강을 쓰다듬으며 작가들은 강은 우리에게 무엇이었는지, 무엇이어야 하는지 증명한다.

그래서 4대강을 주제로 한 이 책은 분노이자 기도이고, “막지 못하는 사람들도 천벌을 면치 못할 것 같은 두려운 느낌”(신경림)에 몸을 떨며 적어 내린 참회록이다. 작가는 흔히 ‘잠수함의 토끼’ 혹은 ‘광산의 카나리아’에 비유되곤 한다. 그만큼 생명에 대한 감수성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살아온 내력도, 생각도 각기 다르지만 이들은 한목소리로 경고한다. 이제 그만, 내버려두라고. 산천이 본래 그대의 것이 아니었으니 그 삽질을 멈추라고.

 
기자명 장일호 기자 다른기사 보기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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