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수당 ‘없던 일’ 예방접종 ‘곤란해’
  • 차형석 기자
  • 호수 171
  • 승인 2010.12.27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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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도 예산안 날치기 처리 과정에서 ‘행방불명’된 복지 예산이 한둘이 아니다. 여당 내에서조차 필요하다고 인정한 것들이었다. 정부가 말만 번드르르하게 하고 실천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거세다.
문제 하나. 겨울철 경로당에 난방을 하는 게 중요할까, 아니면 여름철 경로당에 에어컨을 설치하는 게 중요할까? 우스개 질문으로 보이지만, 지난 11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예산소위에서 실제로 ‘경로당 난방비 논란’이 벌어졌다. 2011년도 보건복지부 예산안에서 지난해 경로당 난방비 지원금(전국 5만9500여 개 경로당에 426억원 지원)이 전액 삭감된 것이 발단이었다. 보건복지부는 이 사업이 지방 이양 사업이고, 지난해 (정부가 반대했지만) 여야가 합의해 예산에 포함시키면서 2010년에 한시적으로 시행한다고 했기 때문에 예산안에서 삭감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논란은 이낙연 민주당 의원이 2011년도 지식경제부 예산안에 ‘경로당에 에어컨을 설치해주는 비용(298억원)’이 있다는 것을 찾아내면서 시작되었다. 에너지 고효율 제품을 저소득층 위주로 이용하게 하자는 취지로 추진된 사업이었다.

   
ⓒ하남보건소 제공
2011년 신규 사업으로 추진한 A형 간염 영유아 필수 예방접종 지원 사업도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없던 일이 되었다.
국회 속기록을 보면, 논란은 꽤 오래 이어졌다. 아무리 한시적이고 지방 이양 사업이라고는 하지만 겨울철에 경로당 난방비를 국비로 지원하는 것은 어렵고, 여름철에는 국비로 에어컨을 설치해주겠다는 게 상식적이냐는 질문이 잇따랐다. 하지만 보건복지부 측에서는 ‘법에 따라 어떻게 할 수 없다’고 하소연하듯 말했다. 주승용 민주당 의원은 “이건 보건복지위를 무시하는 것이다. 지식경제부는 아주 힘이 세니까”라고 말했다. 추미애 민주당 의원은 보건복지부 차관에게 “차관님도 무척 화가 나겠다”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보건복지위의 여야 의원이 문제점을 공감했고, 일단 경로당 난방비 지원 사업은 436억원을 증액하기로 의결했다. 나중에 국회 예결위에서 여야가 정치적으로 타결하자는 것이었다.

12월8일 국회 본회의에서 2011년도 예산안이 날치기 통과되는 와중에도 다행히 경로당 난방비 지원 예산(436억원)은 살아남았다. 여야 의원들이 한목소리로 문제점을 지적했고, 예산안을 강행 처리한 한나라당으로서도 투표권을 가진 노인층의 여론이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여당 대표가 약속한 양육 수당도 ‘실종’

결과를 두고 보면 경로당 난방비 지원 건은 행복한 경우에 속한다. 보건복지위에서 여야가 합의해 늘려달라고 요청한 보육시설 미이용 아동 양육수당 증액분(2743억원)은 ‘없던 일’이 되어버렸다. 사정을 알고 보면 한나라당으로서는 할 말이 없게 되었다.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가 “시설을 이용하지 못하는 아동에 대한 양육수당을 보육 가정의 70%까지 늘리고, 월 20만원을 일괄 지원할 수 있도록 하겠다. 다른 예산을 깎는 한이 있더라도 국회 예산심의 과정에서 반드시 관철시킬 생각이다”라고 공언해왔기 때문이다. 이른바 ‘안상수표 70% 복지론’이었다. 그동안 보육시설을 이용하는 가정에는 소득 하위 70%까지 양육비를 지원해왔고, 보육시설을 이용하지 않는 가정은 차상위 계층까지만 지원했기 때문에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여당 대표가 보육시설을 이용하지 못하는 소득 하위 70% 가정까지 양육비를 지원하겠다고 증액을 약속했으니, 보건복지위 여야 의원은 환영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여야 보건복지위 의원들이 논의해 2743억원을 증액해달라고 요청한 것이었는데, 예산안 날치기 와중에 이 증액 요청분이 ‘행방불명’되고 만 것이다.

한나라당은 ‘70% 영유아 양육수당이 북한의 연평도 무력 도발로 인한 안보 강화의 시급성 때문에 잠시 뒤로 밀린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보건복지위와 예결위 속기록을 보면, 그런 말을 찾아보기 어렵다.

국가 필수 예방접종(8종 22회 접종) 지원을 확대하려던 계획도 ‘실종’되었다. 현재 국가 필수 예방접종은 보건소에서 무상으로 실시하고 있지만 민간 병·의원은 30%만 지원하고 있다. 나머지 70% 비용은 부모가 부담해야 한다. 보건복지위에서는 여야 합의로 민간 병·의원에서 예방접종을 할 때 부모가 내는 본인부담금을 현재의 1만5000원 수준에서 5000원 수준으로 낮출 수 있도록 339억원 정도 예산을 늘려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대해 진수희 장관은 “저출산 문제 해소에도 도움이 되고, 아이들 보건을 위해서 필수적이다”라고 하면서도 ‘재정 여건’을 이유로 난색을 표명했다.

예결위에서도 예방접종은 논란이 되었다. 신상진 한나라당 의원은 “0세에서 12세까지 무료로 접종을 한다고 했을 때 국비가 600억원가량 든다. 올해 200억원 들었던 예산에서 400억원만 추가하면 전국의 아동들한테 필수 예방접종을 무료로 실시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에 대한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의 답변은 이렇다. “정부가 백신비 8000원을 지원해주고 있다. 자기부담금이 부담되는 사람은 보건소에 가서 맞으면 무료로 맞을 수 있다. 정부로서는 그 정도면 다 하는 것 아닌가?”

보건소가 많지 않고, 그 예방접종을 위해 먼 데서 택시를 타고 애들을 한두 명 안고 가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별무소용이었다. 결국 보건복지위가 총 472억원(339억원 추가 증액)을 요구했으나 날치기 과정에서 날아가버렸다. 2011년 신규 사업으로 추진한 A형간염 영유아 필수 예방접종 백신 지원 사업(62억원)도 없던 일이 되어버렸다. 좌혜경 진보신당 정책연구위원은 “비용 대비 효과가 큰 사업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인데도 정부가 실천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결식아동·청소년 공부방 예산 ‘0원’

이 밖에도 야당과 시민단체에서 꼽는 누락 예산은 많다. 보건복지부만 해도 여야가 보건복지위에서 합의해 보건복지부 전체 예산을 1조1000억원 정도 증액해달라고 요청했는데, 예결위에서부터 날치기로 통과되면서 요청액 전액이 누락되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방학 중 결식아동 지원 예산이 0원으로 편성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져 크게 논란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청소년 공부방’ 지원 예산도 0원으로 편성되었다.

올해 저소득층 아이들의 학습을 돕는 청소년 공부방 담당 부처를 보건복지부에서 여성가족부로 옮겼는데, 청소년 공부방 기능을 일부 지역 아동센터로 전환하기로 하면서 지원 예산(29억원)을 아예 없애버린 것이다. 전국의 385군데 공부방은 내년부터는 국비 지원을 받지 못하고 해당 지자체가 운영 지원을 떠맡아야 한다. 정창수 좋은예산센터 부소장은 “지자체마저 재정 여건이 좋지 않다고 예산 편성을 늘리지 않게 되면 공부방이나 아동센터들이 곤란한 처지가 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부나 한나라당은 결식아동 급식비 같은 경우 ‘지방 이양 사업이고, 한시적 사업’이기 때문에 예산을 편성할 수 없었다고 해명한다. 하지만 지난해 결식아동 급식비 지원만 해도 지방 이양 사업이었지만 여론을 감안해 국회에서 합의해 예산을 편성한 경우였다. 정창수 좋은예산센터 부소장은 “여태까지 보면 본회의에서 예산안 날치기 통과를 한다고 해도 예결위에서는 어느 정도까지는 합의점을 찾으려고 했는데, 올해는 그 예결위에서도 날치기 통과가 되어버렸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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