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연평도 무력 도발 직후 만난 북한 전문가가 충격적인 얘기를 했다. 연평도 포격이 있기 전에 훨씬 위험한 시나리오가 군 당국에 입수되었다는 것이다. 이른바 북한 특수부대에 의한 ‘서해 5도 기습 점거’ 시나리오다. 북한군 특수부대가 어느 날 갑자기 서해 5도 중 하나를 기습 점령한 뒤 남측이 반격하기 전에 유유히 사라진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서해 5도를 유린할 능력이 있다는 걸 과시하는 게 이 시나리오의 목적이라고 한다.

얼마 전 정부 고위 당국자를 만나 이 같은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지 물었다. 그는 한 술 더 뜨는 얘기를 들었다며 입을 열었다. 내용은 충격 그 자체였다. 올해 1월 북한을 오가는 NGO 단체 대표가 북한 보위부 요원에게 들었다는 이야기는 이랬다. 1월 초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당과 군의 간부들을 집합시켰다. “지금 위기 상황이다. 생각들을 얘기해보라”고 운을 뗐는데, 한참 동안 침묵만 흘렀다. 그러자 화가 머리끝까지 난 김 위원장이 격한 발언을 쏟아냈다. 바짝 긴장한 간부들이 “당과 장군님이 하라면 우리는 한다”라고 큰 소리로 외치며 분위기가 고조되었다고 한다. 그 뒤 특수부대를 동원해 백령도를 점령한 뒤 ‘깔고 앉은 채’ 정치적 흥정을 벌이고, 남측이 반격하면 ‘핵 맛’을 보여주겠다는 얘기까지 흘러나왔다. 이 당국자는 북한이 지난 1월 중순께 근 10년 만에 육·해·공군 합동으로 대규모 상륙 훈련을 벌인 점을 상기시켰다.
 

ⓒAP Photo북한이 지난 10월10일 조선노동당 창당 65주년 기념식에서 처음 공개한 무수단 미사일. 신형 중거리 미사일로 핵탄두를 장착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핵의 당사자는 한국이다”

연평도 무력 도발은 이미 올해 초부터 징조가 있었던 셈이다. 특히 주목할 사실은 바로 ‘핵 맛을 보여주겠다’는 말이다. 앞의 고위 당국자는 “북측이 그런 얘기를 여기저기 흘렸다”라며 ‘심리전의 일환’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지난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북한은 자신들의 핵 개발이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때문이라고 했을 뿐 남한 때문이라고 한 적이 없다. 속마음이야 어찌 되었건 어떻게 동족의 가슴에 핵을 겨눌 수 있겠는가 하는 게 그들의 일관된 얘기였다. 그러던 것이 이제 핵으로 남한을 공공연하게 위협하는 시대가 되었다.

북한은 이미 지난해에 말보다 행동으로 자신들의 핵이 남한을 겨냥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2009년 7월4일 원산 근처 깃대령에서 북한의 중거리 미사일 7발이 동해를 향해 날아갔다. 7발 중 5발은 개량형 스커드미사일이었다. 뒤에 쏜 두 발은 달랐다. 〈연합뉴스〉 7월5일자에 인용된 정부 소식통은 “7발 가운데 오후 4시10분과 5시40분에 각각 발사된 2발은 비행 속도가 유난히 빨라서 사거리를 줄여 발사한 노동미사일로 추정된다”라고 밝혔다. 북한은 왜 1300㎞에 이르는 노동미사일 사거리를 420여㎞로 줄였을까. 깃대령에서 서울까지 거리가 420㎞이다. 국방부 측은 당시 북한 의도를 파악하고 바짝 긴장했다고 한다. 노동미사일은 핵탄두 장착이 가능하다. 유사시 서울을 향해 핵탄두를 날릴 수 있다는 초강경 무력시위였던 셈이다. 며칠 뒤 이상희 국방부 장관은 “북한 핵은 이제 우리 문제가 되었다”라고 선언했다.

 

 

 

ⓒ사진공동취재단미국의 원자력 항공모함 조지워싱턴호가 11월26일 서해안에서 한·미 연합훈련을 벌이고 있다.

 

이명박 정부 들어 북한 핵의 대남 금기가 깨어지기 시작한 사례는 또 있다. 북한이 깃대령에서 중거리미사일 발사 훈련을 한 지 한 달 뒤인 2009년 8월4일.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방북했다. 당시 클린턴은 김정일 위원장에게 “미국이 북한을 핵으로 공격한다는 것은 오해다. 미국은 그런 계획을 가지고 있지 않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김 위원장은 이에 대해 “우리도 잘 알고 있다”라고 화답했다. 김정일·클린턴 회담이 있고 난 뒤 국내 한 전문가가 워싱턴에서 만난 미국 국무부 고위 관계자는 “우리는 북한 핵이 우리를 공격할 거라고 걱정하지 않는다. 다만 미국을 공격할 의사가 있는 집단에게 확산되는 것을 우려할 뿐이다. 북한 핵의 가장 큰 당사자는 한국이다. 그런데 한국이 왜 적극 나서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북한이 미국의 핵 과학자들을 불러 영변 우라늄 농축 시설을 보여주고, 연평도 무력 도발을 감행한 것에 대해 정부와 여당 일각에서는 이를 ‘햇볕정책 탓’으로 슬쩍 돌리려 했다. 그러자 과거 정부에서 외교안보를 담당했던 인사들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 ‘국민의 정부’에서 대북정책을 총괄한 임동원 특보는 정진석 청와대 정무수석이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북한의 우라늄 농축 사실을 알고도 은폐했다고 의혹을 제기하자, 즉각 이를 반박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전략 비서관으로 북핵 문제를 담당했던 박선원 박사는 〈시사IN〉과 한 인터뷰에서, 참여정부 말부터 이명박 정부 초기에 걸쳐 전개된 북핵 협상 내막을 소상하게 털어놓았다(22~23쪽 딸린 기사 참조). 그의 증언에 따르면 김정일 위원장은 참여정부 시절인 2007년의 2·13 합의와 10·3 합의 그리고 10·4 남북 정상회담 과정을 통해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밝혔고, 일련의 조처를 통해 그것을 실천에 옮기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가 초기에 비핵화 문제에 대한 안목과 의지를 가지고 결단을 내렸다면 적어도 플루토늄을 이용한 미래 핵 개발은 막을 수 있었는데 그러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의 증언을 통해 그동안 일부 전문가 사이에 회자되어온 북한의 미사용 핵연료봉 반출 문제의 진상이 드러났다.

참여정부, 핵연료봉 구매 직전까지 진행

그 경과는 대략 이렇다. 2·13과 10·3을 거쳐 북한 핵 동결과 불능화 합의에 도달한 뒤 한·미 양국은 북한이 진정 비핵화 의지가 있는지 가늠하기 위해 세 가지 조처를 요구했다. 첫째, 영변의 냉각탑 폭파와 같은 정치적 이벤트를 해줄 수 있는가. 둘째, 북한이 보유한 미사용 핵연료봉(약 4000~6000개로 추정)을 폐기하거나 훼손 또는 남쪽에 판매할 수 있는가. 셋째, 고농축 우라늄(HEU) 문제와 관련해 원심분리기를 만들 수 있는 고강도 알루미늄 조각(샘플)을 넘겨줄 수 있는가.

북한은 놀랍게도 냉각탑 폭파와 미사용 핵연료봉 반출 요구를 수용했다. 다만 HEU 문제에 대해서는 그동안 이를 부인해온 연장선에서 이번에도 부인했다. 이것만이라도 큰 성과라고 판단한 한·미 양측은 일단 북한이 허용한 두 가지 사안을 신속히 진전시키고, 영변 지역에 미국 국무부와 국제원자력기구(IAEA) 요원을 상주시켜 감시 활동을 계속하면서, 궁극적으로 HEU 문제까지 해결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냉각탑은 약속대로 2008년 6월27일 오후 5시5분께 폭파되었다. 4000~6000개에 이르는 미사용 핵연료봉에 대해서는 남한에게 이를 사가라고 했다. 다만 남측이 이를 가져다 원자력발전에 사용할 수 있고, 자신들이 그간 투자한 것도 있으므로 국제 시세보다 2배 정도 비싼 금액을 지불할 것을 요구했다. 박선원 박사는 그것이 ‘몇 백억원 수준’이었다고 말했다.

영변의 플루토늄 핵시설 사이클에서 보면 미사용 핵연료봉은 핵 개발의 맨 첫 단계에 해당한다. 이것을 5㎿ 원자로에 넣어 폐연료봉으로 만든 뒤 냉각탑에서 식히고 재처리하면 핵무기 제조가 가능한 플루토늄이 추출된다. 2·13 합의와 10·3 합의를 거쳐 5㎿ 원자로와 재처리 시설은 불능화되었고, 그 중간 단계인 냉각탑은 폭파되었기 때문에 최초 선행 단계인 미사용 연료봉만 우리가 가져오면 플루토늄을 이용한 미래 핵 사이클을 통째로 해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더구나 4000~6000개 연료봉에서 핵무기 2~3개를 만들 수 있는 8~12㎏의 핵물질이 나오는데, 이것을 몇 백억원대에서 막을 수 있다면 주저할 일이 아니라는 게 당시 한·미 양국의 판단이었다. 미국도 한국이 이를 사는 게 좋겠다고 권유했고, 참여정부도 구매를 전제로 현장 답사까지 마쳤다.

그러나 잔여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참여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거기까지였다. 그 다음은 이명박 정부 몫이었다. 박선원 박사 팀은 그간의 진행 경과를 정리해 이명박 정부에 넘겼고, 이명박 정부에서도 한 차례 현장 조사를 했으나 ‘국제 시세보다 비싸다’는 이유로 사지 않았다. 또 다른 전문가에 따르면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북한에 현금을 지급할 경우, 이것이 핵 개발 자금으로 전용될 것을 걱정했다고 한다.

 

 

 

 

ⓒ외교통상부제공우리 정부 실사단이 미사용 연료봉을 살피려 2009년 2월 북한을 방문했다(위).

 

아이러니한 것은 그 뒤 이명박 정부의 대북 핵정책에서 미사용 핵연료봉 처리 문제가 매우 중요하게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이른바 ‘비핵·개방 3000’이고, 그중에서도 핵문제 해결을 위한 맞춤형 정책이 ‘원샷 딜’을 뜻하는 ‘그랜드 바겐’이다. 그랜드 바겐 중 가장 중요한 내용이 북한의 ‘핵심적 비핵화’인데, 그 내용은 크게 세 가지로 알려져 있다. 첫 번째가 바로 미사용 핵연료봉 반출 문제이다. 두 번째는 이미 만들어놓은 핵물질의 반출, 그리고 세 번째는 원자로 폐쇄 문제이다. 다시 말해 임기 초반 북한이 제의한 대로 미사용 핵연료봉을 사버렸다면 이명박 정부가 내세운 북한 비핵화 문제를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비핵·개방 3000 정책에서 북한이 비핵화를 할 경우 우리 정부가 주선해주겠다고 공언한 액수가 400억 달러(약 45조원)였음을 감안하면, 비교가 안 될 만큼 적은 비용만으로 가능했던 일이다.

역사에는 ‘그때 다른 선택을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운 순간이 꼭 있다. ‘하늘이 준 기회’를 놓친 뒤 상황이 꼬이기 시작했다. 북한은 이명박 정부에 대한 자신들의 기대가 무너진 뒤에도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비핵화를 진행해버리면 남쪽도 어쩔 수 없으리라 한동안 생각했던 것 같다.

북한 핵, ‘MB 핵폭탄’일까?

그런데 2008년 여름부터 북·미 관계가 꼬였다. 부시 정부 임기 말 민주당이 제동을 걸면서 북한에 약속한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문제가 미궁에 빠졌고, 검증 메커니즘을 둘러싸고도 잡음이 일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김정일 위원장이 2008년 8월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이를 계기로 남쪽에서는 ‘조금만 밀어붙이면 무너질 것 같다’는 북한 붕괴론이 힘을 얻었고, 북쪽은 북쪽대로 체제 안보를 위해서 핵무기가 필요하다는 쪽으로 방향을 급선회했다.

임동원 특보가 11월29일 〈프레시안〉과 한 인터뷰에는 ‘부시의 핵폭탄’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부시 정권이 2002년 10월 고농축 우라늄 문제를 빌미로 북한에 지원하기로 한 경수로와 중유 공급을 중단하자, 북한이 핵 무장화를 비약적으로 가속시킨 것을 빗대어 미국 식자층이 하는 말이라고 한다. 아무리 북한 비핵화를 내세웠다고 해도 방법이 적절치 못하면 역효과를 낳는다는 역사의 교훈이다.

이런 점에서 2008년 가을부터 재가동된 북한핵은 ‘이명박의 핵폭탄’일까, ‘오바마의 핵폭탄’일까. 2008년 11월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의 오바마 후보가 당선됐다. 오바마 측은 ‘북한과 직접 협상을 통해 2010년 5월 NPT(핵확산방지조약) 평가회의 이전에 북한을 NPT에 복귀시킨다’는 ‘오바마-바이든 플랜’을 마련했다. 그러나 북한은 2009년 1~2월 방북한 미국 전문가들에게 핵무기 보유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2010 평화재단 창립 6주년 기념 심포지엄 중 조성렬 박사 논문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새로운 접근법〉). 이어 4월5일 북한의 표현에 따르면 ‘인공위성’을 발사했고, 5월25일 제2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북한의 이 같은 행동을 둘러싸고 여러 해석이 나온다. 첫째는 2008년 여름을 넘어서면서 북한이 핵 보유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는 해석이다. 이 시기 금강산 피격 사건 및 서해에서의 긴장 고조 등으로 남북관계는 가파른 대치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남한과 재래식 군비 경쟁에서 승산이 없어서 핵을 개발한다’는 북한 핵 개발의 요건과 명분이 착착 갖춰지기 시작한 셈이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북한이 고농축 우라늄을 이용한 핵 개발에 본격 착수하지는 않았다고 지적한다. 즉 2009년 4월의 ‘인공위성’ 발사 때까지만 해도 오바마 정부가 어떻게 나오는지 보자는 심산이 강했다는 것이다. 참고로 그때까지 한국과 미국 정보기관이 파악한 북한의 고농축 우라늄 시설은 파키스탄 칸 박사 팀으로부터 P1 타입 원심분리기 기술과 설계도를 입수하고, 원심분리기 13개와 핵심 부품 일부를  확보한 수준이었다. 그런데 11월18일자 평양발 〈조선신보〉가 지적했듯이, 자신들이 발사한 ‘인공위성’을 오바마 정부가 “탄도미싸일 발사라고 락인”을 찍고 유엔 제재를 발동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북한은 “부시 정권이나 오바마 정권이나 다를 게 없다”라며 고농축 우라늄 핵시설에 올인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중국, 한반도 비핵화보다 안정 우선해

북한 핵 관련 정보에 밝은 한 인사에 따르면 당시 북한은 옛 소련 시절부터 관계를 맺어온 러시아 핵 과학자들과 파키스탄 칸 박사 팀에서 떨어져나온 반미 성향의 일부 핵 과학자들(이 중 일부는 평양에 체류 중이라고 한다)로부터 새로운 P2 타입 원심분리기 기술과 설계도 등을 입수하고, 중국 기업을 통해 우라늄 농축 과정에 필수적인 핵심 부품을 들여왔다고 한다. 사실상 고농축 우라늄 핵 개발에 ‘국방비의 거의 대부분을 털어넣었다’는 것이다.

2009년 5월 이후부터는 북한 내부 사정을 아는 주변국들도 더 이상 핵 보유를 막는 게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이를 보여준 대표적 예가 중국의 ‘변심’이다. 2009년 7월15일 중국 공산당 중앙상무위원회는 외사영도소조(조장 후진타오) 회의를 개최해 한반도 정책을 새롭게 정리했다. 이어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 외교부 재외 공관장 회의 기간에 중국의 대북정책 관련 내부 회의가 이례적으로 개최되었다. 이 과정을 거쳐 중국 정부는 ‘전쟁 방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이 ‘한반도 비핵화’보다 상위 개념이라는 결론을 내렸다(조성렬 박사 논문 재인용). 당시 정보 소식통은 “북·중 양국 수뇌부 간 접촉에서 북한 측이 ‘안보 불안 때문에 핵을 포기할 수 없다. 대신 중국과 군사 교류를 강화한다. 안보가 보장되면 경제개발에도 적극 나설 것이다’라고 약속했다”라고 밝혔다.

북한의 핵 보유 강행과 중국의 변심은 동북아 정세에 소용돌이를 몰고 왔다. 미·중 관계에 정통한 한 전문가는 중국이 북한 비핵화 노선에서 이탈하면서 미국 국무부의 입지가 축소되었고, 국방부의 ‘북한·중국 견제 노선’이 본격화했다고 말했다. 커트 캠벨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이끄는 국무부 팀은 북한 비핵화를 장기 과제로 두고, 당장은 핵시설 불능화와 비확산에 초점을 두는 ‘전략적 관리’에 입각해 북한과 협상을 추진하려고 했다. 그러나 북한 비핵화를 앞세운 이명박 정부와 국방부의 반대로 좌절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애초 미국 국방부는 중국이 북한 비핵화 노선에 협조하면 전략적 유연성에 따라 주한미군의 감축 및 철군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었으나, 중국이 북한 비핵화 노선에서 이탈하자 방침을 바꿔 주한미군의 장기 주둔 태세로 전환했다. 또한 2010년 2월1일 발표한 QDR(4년 주기 국방 검토보고서) 문서에 태평양으로 뚫고 나오려는 중국 해군을 한국·일본 등의 동맹국과 함께 저지한다는 내용을 추가하기도 했다. 중국이 북한 비핵화에 협조하지 않을 경우 계속 압박을 가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낸 셈이다.

올여름 베이징에서 중·일 안보 담당자들끼리 비공개 회의가 열렸다. 3월26일 발생한 천안함 사건과, 한·미 합동 군사훈련으로 회의 분위기가 팽팽했다. 천안함 침몰 원인을 둘러싸고 신경전이 오간 뒤 이어진 중국 측 발언은 일본 참석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중국은 한국이 확정되지도 않은 천안함 침몰 원인을 북한 소행으로 몰아붙이고, 중국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서해에서 한·미 합동 군사훈련을 강행하려는 것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지켜봤다. 그리고 그 배후에 미국이 있다고 결론내렸다. 올해 초 미국 국방부의 QDR 문서를 보며 미국의 창 끝이 중국을 겨냥하기 시작했다고 느껴왔는데, 천안함 사건이 터졌다. 이것을 기화로 미국이 한국을 앞세워 북한을 압박하는 척하지만 실은 우리를 겨냥하고 있다. 천안함 문제는 남북 차원을 넘어 이제 중국과 미국의 문제이다. 우리는 전술에는 전술로, 전략에는 전략으로 맞설 것이다”라는 게 발언 요지였다. 중국이 말하는 전략적 대응에는 정치·외교·군사적 수단 외에 경제적 수단까지 총동원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어서 일본 참석자들이 긴장했다는 것이다.

중국 측 얘기대로 천안함 문제가 남북을 넘어 미·중 관계로 확대된 것처럼 북핵 문제도 마찬가지다. 이제 북한만의 문제가 아니라 북·중 동맹과 미·중 갈등의 복잡한 함수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다. 요동치는 동북아 정세 속에서 한국의 존재감이 거의 보이지 않는 가운데, 북한의 핵 능력이 ‘방어형’에서 ‘공격형’으로 전환하는 데 1년이면 충분하다는 우울한 전망도 우리 곁을 맴돌고 있다(오른쪽 상자 기사 참조).

 

기자명 남문희 대기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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