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9일 천안함 사건에 대한 유엔 안보리 의장성명이 채택되었다. 이로써 유엔에서 천안함 사건에 대한 조처가 일단락되었다. 그렇다고 이를 천안함 사건의 해결로 볼 수는 없다. 천안함 사건의 본질은 최근 남북 간의 긴장과 대립이 지속적으로 고조되어왔고, 이로 인해 NLL 해역의 불안정이 심해진 데서 찾을 수 있다. 즉 천안함 사건은 종국적으로 남북 간에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성격을 갖는다. 그렇기 때문에 유엔 안보리에서 구속력 있는 조처가 나오기는 어려웠다.

천안함 사건이 본질적으로 남북관계 속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라면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 천안함 문제를 당장 남북대화의 틀 속에서 다루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 남북 간에 신뢰가 소진된 상태에서 어떠한 성과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북관계는 상당 기간 단절과 실종이 불가피해 보인다. 그렇다고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도 없는 형국이 아닌가. 그래서 중간 단계를 거칠 필요가 있다.

안보리 의장성명은 “정전협정의 완전한 준수를 촉구하고, 분쟁을 회피하고 상황 악화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적절한 경로를 통해 직접 대화와 협상을 가급적 조속히 재개할 것”을 권장한다. 또한 천안함 사건으로 중단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 재개도 마냥 미루어둘 수 없는 상황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북한의 핵능력은 아무런 통제 없이 증대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현안 과제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천안함 사건으로 중단된 6자회담 프로세스를 재가동하는 것 외에 다른 방도가 없다. 6자회담을 열어 북한 핵문제 해결과 함께 안보리 권장사항을 이행하는 차원에서 관련국 간에 ‘정전협정 준수와 남북 간 분쟁 방지 문제’를 병행 논의하는 것이다. 6자회담 프로세스에서 어느 정도 진전이 있게 되면 이를 토대로 천안함 문제를 직접 당사자인 남북 문제로 전환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순서로 가야 한다.

북한은 지금 안보리 의장성명에서 북한을 공격의 주체로 명기하지 않은 점과 ‘직접 대화와 협상’을 강조한 점에 안도할 것이다. 이것이 북한으로 하여금 6자회담에 참여하게 하는 명분이 될 수 있다. 사실 안보리 의장성명 채택 직후 북한은 6자회담 참여 의사를 밝힌 바 있고, 판문점에서 유엔사와의 대화에도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북한이 6자회담에 참여하기 위해 또다시 전제조건을 들고 나올 가능성이 없지 않지만 그렇다고 미리 못을 박아 쉽게 활용할 수 있는 경로를 차단할 필요는 없다. 미국·중국이 천안함 사건 이전에 보인 협력 체제를 가동한다면 어떤 것도 6자회담 재개에 장애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천안함 사건이 갈 길 바쁜 김정일 정권으로 하여금 중국에 대한 의존을 깊게 하고 그 결과 우리의 대북 영향력을 제한함으로써 북한을 근원적으로 바꾸어보려는 이명박 정부의 노력을 무위에 그치게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가 지금의 단기적이고 국면 대응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중장기적 전략구도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6자회담 재개에 나서야 하는 것이다.

한반도 문제 주도권 미·중에 넘겨줄 것인가

안보리 의장성명 이후 국면에 대응하려면 먼저 상황 관리에 주력하면서 그동안의 단선적인 정책에서 벗어나 좀 더 종합적이고 입체적인 대북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천안함 사건과 이후 조성된 정세 변화를 냉정하게 평가하고 대북정책을 보완하는 계기로 삼는 지혜가 필요하다. 우리가 전략과 대안을 갖고 대처하지 못하면 미국과 중국의 전략이 한반도에서 각축을 하게 되고 결국 한반도 문제의 주도권을 미국과 중국이 쥐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남북이 모두 더 이상 실패하지 않으려면 국력이나 국제사회에서 위상이 월등한 우리에게서 새로운 돌파구가 나와야 한다. 안보리 의장성명에서 권장한 ‘적절한 경로를 통한 직접 대화와 협상’을 출구로 삼는 전략을 모색하고 이를 실천에 옮기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급선무다. 과거의 6자회담이 비효율적이었다고 해서 6자회담 자체가 불필요하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인식이다. 천안함 사건은 최소한 6자회담의 과정을 거쳐야 해결의 길이 열릴 것이다. 우리가 대안을 갖고 6자회담에 적극 나서고 그것을 남북관계 정상화의 계기로 활용하는 세밀한 정책 조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현 단계에서 남북관계를 정상화하는 일은 매우 어려운 과제임이 분명하지만 가변적 요소 또한 적지 않기 때문에 여지를 열어놓고 다양한 대안을 강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기자명 이봉조 (전 통일부 차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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