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여섯살 직장맘 ㄱ씨. 두 돌짜리 아이를 친정 어머니가 돌본다. 노모는 몸살이 났고 남편은 출장 중. 자신은 또 야근이다. 아이를 찾고 맡기는 하루하루가 살얼음판. ‘육아 전쟁’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요즘, 국회 보좌관 ㅂ씨(35)가 솔직히 부럽다. 그는 네 살, 다섯살 두 아들을 둔 맞벌이 남편인데 최근 “아이들이 환해졌다”라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아파트 단지 내 가정형 어린이집(32평)에 다니던 아이들이 지난 3월부터는 자신이 근무하는 국회 직장 어린이집으로 출퇴근을 함께하기 때문이다.

국회 어린이집은 340명에 달하는 대기 인원을 해소하기 위해 올해 제2어린이집을 개원했다. ㅂ씨는 이곳에 아이들을 맡기면서 보육료 부담이 절반으로 줄었다. 민간 시설에 다닐 때는 두 아이에게 이래저래 매달 100만원 상당의 보육비가 들어갔지만 지금은 58만원. “돈도 돈이지만 퇴근이 늦어져도 눈치를 보지 않아서 좋다. 민간 어린이집에 있을 때는 마음이 불안하고 원장님께 미안하고…. 그래서 자주 어린이집에 간식도 사서 넣었다. 국회 어린이집은 밤 10시까지 맘 놓고 맡길 수 있다. 추가 시간 비용은 밥값만 내면 된다. 아이들 먹는 것도 친환경 농산물이고, 교육 프로그램과 시설이 좋으니까 퇴근해서 집에 데려가려 하면 애들이 안 가려고 그런다. 여기 어린이집은 ‘신난다’고.”
 

ⓒ청와대 제공청와대 직장 어린이집이 3월5월 개원했지만 공개되지는 않았다. 위는 이명박 대통령이 맞벌이 엄마들과 타운미팅하러 찾아간 서울 관악구의 한 보육시설.

보육의 질은 사실상 교사에게 달렸다. 국회 어린이집 교사들은 모두 정규직. 보수는 150만∼200만원 선으로 국공립에 비해 조금 더 높은 수준이다. 사실 교사들이 바라는 건 ‘돈’보다 교사 ‘수’이다. 정부가 제시한 기준 1대3(0세), 1대20(6∼7세) 비율보다 국회는 좀 더 느슨하다. 할머니 교사나 다문화 교사 등 보조교사가 있어 정교사들은 교육에 전념할 수 있다. 민간 어린이집에서는 청소·식사 등 잡무가 많아 ‘돌봄’ 보육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국회 어린이집의 보육료는 국공립 수준이다. 나머지 운영비를 ‘직장’이 채워준다. 영유아보육법에 따라 직장 보육시설의 경우 사업주가 전체 운영비의 50% 이상을 지원하도록 되어 있다. 국회 어린이집의 경우 57%에 달하는 11억2756만원이 지원됐다(2010년 예산 기준). 한 아이 1인당 연간 394만원을 지원한 셈이다. 같은 기준을 적용해 〈시사IN〉이 주요 국가기관 및 지자체, 공공기관의 직장 보육시설에 대한 지원금을 비교해본 결과, 서울시(272만원)〈정부청사(319만원)〈국회(394만원)〈수원시(456만원)〈청와대(462만원)〈한국전력(516만원) 순으로 나타났다(왼쪽 그래프 참조).
 

직장이 ‘국가’인 공무원들은 사실 큰 행운을 누린다고 할 수 있다. 정부청사 직장 어린이집에 근무하는 한 직원은 “외부에서 특혜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부담스럽다. 직장이 국가기관이라는 이유 때문에 보육의 질을 높이고 싶어도 예산이 깎인다. 교사 대 원아 비율을 낮추고 싶어도 당장 주민들에게도 개방하라는 원성이 나온다”라며 시설 공개를 꺼렸다. 그도 그럴 것이 ‘민간인’이 국가의 지원 혜택을 누리기 위해서는 국공립 어린이집을 다녀야 하는데 경쟁률이 치열하다. 전체 시설의 5.5%에 불과하고 대기자가 평균 78명에 이른다. 90%를 차지하는 민간 어린이집은 정부 지원이 가장 적다. 지원금은 영아(0∼2세) 기본보육료가 전부(저소득·장애인 등 차등 지원 제외). 민간 시설의 세 살 이상은 사각지대다. 

직장 어린이집 있는 민간기업 48%

보건복지부가 조사한 2009년 보육실태 조사 결과를 보면 흥미로운 점이 발견된다. 국공립 어린이집에 대한 선호도는 2004년 조사에 비해 17%나 감소했다. “어린이집을 이용하는 것에 대한 한계가 있다는 점을 인식한 결과로 보인다”라는 게 정부측 설명. 한마디로 ‘포기’한 거다. 대신 새로운 경향도 감지된다. 직장 어린이집 만족도가 가장 높았고 민간 어린이집이 가장 낮게 나타났다. 하지만 직장 보육 시설 비중은 고작 1%다. 현행법상 “상시 여성 근로자 300인 혹은 근로자 500인 이상을 고용하고 있는 사업장”은 의무적으로 직장 보육시설을 설치해야 한다. 방법은 세 가지. 시설을 직접 ‘설치’하거나 그렇지 않을 경우 외부에 ‘위탁’해도 된다. 그마저 불가피하다면 직원들에게 ‘수당’으로라도 지급해야 한다. 국가기관을 포함해 지자체, 학교, 공사, 민간기업 등 의무 사업장은 전체 790개소. 공공기관들은 설치율이 높다. 지자체 100%, 공사 등 유관단체 95%, 국가기관 82%, 학교 82%, 민간기업 48% 순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 의무 사업장이 직장 내 보육시설을 직접 설치하는 대신 수당을 주는 손쉬운 방법을 선택하는 경우도 상당하다는 점이다.

직장 내 어린이집 설치에 대한 정부 지원은 적지 않다. 보육교사의 ‘임금’ 형태로 교사당 월 80만원, 시설비와 비품비의 60%, 시간 연장 보육이나 교재·교구비 등도 지원된다. 여기에 각종 세제 혜택까지. 직장 어린이집에 대한 만족도가 최고인 건 당연했다. 정부 지원에, 기업의 지원까지 보태지니 교사의 처우는 좋아지고 학부모 부담은 줄어드니 당연한 결과 아니겠는가.

제도의 구멍은 있다. ‘설치비 60% 지원’ 규정이 리모델링의 경우에 한정되다보니 기업 입장에서는 땅이 있어도 신축을 꺼린다. 그래서 건물 내 설치로 방향을 틀어도 놀이터 설치 규정 때문에 정원이 50명 이상을 넘지 못하는 문제가 생긴다. 그럼 또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다수의 직원들에게 제기되는 형평성 문제가 기업으로서는 골칫거리다. 기업들이 차라리 전 직원에게 돈으로 일괄 나눠주는 속 편한 방식을 선택하는 건 그런 이유가 크다. 한 대기업의 노조위원장 박 아무개씨는 “사실 몇 만원 양육수당으로 월급 통장에 들어오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하지만 어린이집 입소 경쟁률이 워낙 치열하고 조합원들 사이에서 민감한 이슈다보니, 우리도 회사측에 수당을 요구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직장 어린이집 설치는 의무지만 사실 처벌 조항은 없다. 국회에서는 미이행 사업장에 대한 명단을 공개하거나 과태료를 물리는 방식의 논의가 진행 중이다. 해마다 정부의 지원금은 늘어나고 있는데 출산율은 떨어지는 ‘반작용’의 해법이 여기에 있는지 모른다. 국공립이든 직장이든 정작 필요한 저출산 대책은 지원금이 아니라 ‘시설’이다.

기자명 박형숙 기자 다른기사 보기 phs@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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