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갈 것 없었다. 지난해  편집국에 모두 다섯 아이가 태어났다. 그중 네 명이 첫아이였고, 엄마·아빠의 나이는 죄다 30대 후반이었다. 늦은 출산에 이은 양육과 사회생활 사이에서 힘겨워하는  식구들과 함께 ‘기자 방담'을 진행했다. 2시간에 걸쳐 털어놓은 이야기는 곧 우리 사회 육아 현실의 자화상이었다.

사회:이오성(사회팀 기자):현재 육아는 누가 맡고 있나. 우리 집은 프리랜서인 아내가 일을 그만두고 100% 집에서 전담한다. 장인·장모님은 일을 하시고, 연로한 부모님은 아이를 봐주기 어렵다고 하셨다.

고제규(시사IN Live팀장):나도 공무원인 아내가 육아휴직을 내고 전담한다. 처가나 본가 모두 지방에 있고, 양쪽 모두 연로하시다. 어머니가 누나 아이를 돌보셨는데 너무 힘들어 보였다. 애당초 어른들께 아이를 맡기는 것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시사IN 조남진〉〈시사IN〉 초보 엄마·아빠가 모여 좌담을 진행했다. 왼쪽부터 박형숙·김완숙·고제규·이오성 기자.

김완숙(편집·교열팀 기자):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합쳐 6개월을 쉬면서 아이를 돌봤다. 부모님은 연로하시고 당장 9월부터 동생네 아이를 봐주시기로 했다. 시어머니는 건강 때문에 아이를 볼 수 없다고 미리 말씀하셨다. 고민하다 결국 큰언니 집에 맡겼다. 모유 수유 때문에 (〈시사IN〉 마감 때인) 수요일 아침부터 토요일 새벽까지는 언니 집에서 출퇴근한다. 집은 경기도 고양시이고, 언니네는 서울 강동구여서 ‘도심 주말부부’가 되었다. 언니에게는 월 80만원씩 드린다. 언니도 재작년 큰 수술을 해 몸이 좋지 않은데 미안한 생각이 든다.

박형숙(경제·국제팀 기자):출산휴가 3개월, 육아휴직 3개월 후에 회사에 복귀했다. 지금은 친정어머니가 주 5일 아이를 봐주고 계신다. 69세인 어머니는 아이를 보다가 치아 2개가 빠진 적이 있을 정도로 힘드셨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퇴근 후에라도 아이를 보기 위해 어머니 집 근처로 이사를 준비 중이다. 어머니께 한 달에 100만원씩 드린다. 매주 드리는 용돈 등까지 합치면 20만~30만원은 더 든다. 나도 그렇고 어머니도 그렇고 둘째를 낳을 생각은 전혀 없다.

김완숙:둘째를 낳고는 싶은데 앞이 깜깜하다. 지금 아이를 맡기고 있는 언니네 집도 아이들이 대학생·고등학생이라 이방 저방 전전하며 애를 키운다. 아무리 형제자매 사이라도 애를 맡기는 처지에선 죄인이다. 친정어머니든 시어머니든 돈을 드려도 빚진 기분이다. 그래서 요즘 어린이집을 물색 중이다.

이오성:전에는 조부모 세대가 아이를 봐주면서 육아 문제를 해결했는데, 요즘은 연로한 조부모가 힘에 부쳐 육아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노후를 즐기려는 분도 많고.  

박형숙:고령화를 실감한다. 요즘은 60대가 옛날과 달리 각종 경조사 등에 돈을 많이 쓰면서 활동해야 하는 연령대다. 당신도 친구들과 어울리고 여행 다니고 싶으실 텐데 손자 육아 때문에 그런 것이 차단되는 게 죄송하다.

고제규:박형숙 기자 경우와 비슷하게 대부분 친정 쪽으로 이사 가는 맞벌이 부부가 많다. 

박형숙:열에 일곱은 친정어머니가 키워준다. 아는 선배도 시어머니께 맡겼다가 트러블이 심해서 친정어머니에게 맡겼다가 그것도 여의치 않아 언니들이 돌아가며 봐준다.

이오성:어린이집 등 다른 수단을 알아보지는 않았나.

김완숙:출산휴가가 끝나고 영아전담반이 있는 국공립 어린이집 두어 곳에 전화해봤다. 대기자가 100명이라는 말에 대기자 명단에 올리지도 못했다. 베이비시터를 집으로 들일 생각도 해봤지만, 베이비시터가 아무도 없는 집에서 애와 단둘이 있다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안 놓이더라. 차라리 어린이집이 낫겠다 싶다.

고제규:‘나도 내 아이 보기가 이렇게 힘든데, 남이 과연 잘 봐줄까’ 하는 생각을 하면 믿음이 잘 안 간다. 내가 사는 지역에서는 한 대기업 어린이집이 선호도 1위다. 주민등록번호 나오자마자 신청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 어린이집의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더니 대기 번호가 403번이더라. 그래서 옆 동네에 있는 같은 어린이집에 갔더니 대기 번호가 404번이었다. 아이 낳고 나서 그 어린이집의 대기자 명단에 올렸더니 초등학교 입학할 때가 되어서야 연락이 왔다는 선배도 있었다(웃음).

김완숙:국공립 어린이집도 들어가기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공교육받을 기회를 박탈당한다는 생각이 든다. 국공립 어린이집 짓는 데 20억원이면 된다는데 수천억원짜리 호화 청사 지으면서 지역에 어린이집은 왜 안 만드나? 만날 애 낳으라고 하면서 낳아놓으니까 이게 뭔가.

이오성:아이를 키우면서 생활이 많이 달라졌을텐데.

고제규:특별한 일이 아니면 저녁 술자리 약속은 잡을 수 없다. 퇴근 후 저녁만이라도 내가 아이를 봐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아내가 산책도 나가고 아이 목욕도 시킬 수 있다. 저녁은 부부가 교대로 먹고, 아이를 재우고 난 뒤 밤 11~12시는 돼야 내 시간이 생긴다. 우리 집 시계는 아이다. 아내의 육아 스트레스가 눈에 보인다. 끼니를 거르는 때도 많다. 

김완숙:나도 잘 먹어야 하루 두 끼다. 국도 없이 대충 밥과 김치로 허기만 때운다. 아이 젖 먹이고, 간식·이유식, 남편 저녁까지 챙기고 나서야 저녁밥을 먹는다. 우리 집은 식사 시간만 2시간이다. 아이 재우고 나면 밤 11시인데, 빨래와 청소도 해야 한다.  

이오성:육아 때문에 갈등을 겪는 부부가 많다. 주로 어떤 점이 문제가 되나. 

김완숙:왜 남편들은 애를 섬세하게 못 보는지 불만이다. 복직하기 전까지 아이를 거의 혼자 키우다시피 하면서 우울증에 걸릴 뻔했다. 남편도 아이를 잘 봐주는 스타일이 아니었고, 외출 한번 못하고 24시간 내내 집에 있으면서 내 처지가 너무 슬펐다.

박형숙:결혼 전에는 거의 싸운 적이 없는데 결혼 후에 부부 사이가 틀어진 가장 큰 원인은 아이다. 아이가 생기면서 예전보다 남편의 도움이 훨씬 더 필요해졌다. 사회적으로 육아 스트레스를 풀 해방구가 없으니 오직 남편에게 기대할 수밖에 없어서 갈등이 증폭되는 것 같다.

고제규:육아를 딱 두 사람, 그리고 기껏해야 처가 몫으로 맡겨놓으면 서로가 일상적으로 불만이 쌓인다. 스트레스 폭탄을 안고 있는 거다. 이게 아주 사소한 계기로 터지면 옛날부터 쌓였던 스트레스가 한꺼번에 터진다. 

박형숙:육아 스트레스와 갈등이 해소가 안 되다 보면 자책과 우울로 이어진다. ‘혹시 내 잘못이 아닐까?’ ‘우리 부모 세대는 일하면서도 삼 남매를 키워냈는데’ 하는 생각이 든다.

 

 

 

 

ⓒ시사IN 포토출산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는 직장 내 보육시설(위) 설립이 절실하다.

김완숙:대가족 안에서 공동 육아가 가능했던 옛날과 달리, 요즘은 엄마 혼자 키워야 하는데 육아 스트레스가 너무 크다. 남편에게 하루만이라도 온전히 아이를 맡아보라고 하고 싶다.

박형숙:남편들이 전혀 육아를 돕지 않는 건 아니다. 다만 항상 수동적이고 보조적인 일만 한다는 게 불만이다. 이를테면 아이 낳은 뒤에 우리 남편은 〈아동의 탄생〉이라는 두꺼운 사회학 서적을 사서 읽더라. 그런 것 읽느니 당장 애 기저귀라도 갈았으면 좋겠다(웃음). 나는 남편이 책 읽을 때 가장 열받는다. 나는 하녀처럼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사는데 책 보고 신문 보는 건 사치 같다.

이오성:30대 후반이면 한창 사회생활에 몰두할 때다. 육아와 사회생활을 병행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내 경우는 5일 동안 출장을 다녀왔더니 아이가 나를 못 알아보기에 상처받았다. 그 뒤로 가능하면 출장을 안 가려고 한다. 

고제규: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는 온전히 회사일에만 집중한다. 전에는 집에도 일거리를 안고 갔는데 이제는 불가능하다. 직장 탁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회사로서는 직원의 출산과 육아가 손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박형숙:사람들과 교유할 시간이 없어서 정보력의 한계와 소외감을 느낀다. 우리 일이라는 게 취재원과 시간을 많이 나눠야 하는데 이런 것을 거의 못하다보니 불안해진다. 주어진 조건에서는 최선을 다하지만 일의 성취감이 하강 국면에 접어드는 것을 느낀다. 이대로 직장과 육아를 전쟁하듯 병행하는 도시적 삶을 지속할 것인가, 본질적인 고민을 하게 된다.

김완숙:만약 둘째가 생기면 나는 바로 회사를 그만두어야 한다. 4~5년 아이 키우고 나서 재취업할 경우 그 질이 낮아진다. 육아 때문에 시간제 아르바이트 등 비정규직 일자리를 전전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고제규:육아 문제를 바라보는 직장 내 세대 차이도 있다. 선배들은 직장 ‘슈퍼맘’ 신화가 있다. 우리 세대는 일 못지않게 아이도 중요하다는 가치관이 있다.

이오성:만약 내 요구안이 관철된다면, 정부나 회사 등에 요구하고 싶은 게 있나.

박형숙:네 가지다. 첫째, 육아휴직의 의무화다. 다른 나라처럼 2년 이상이 어렵다면 1년만이라도. 사기업 직장인이 눈치 보지 않을 수 있게끔 말이다. 둘째, 구청 등에서 부모 교육과 부부 상담 프로그램을 운영했으면 한다. 부모는 그냥 되는 게 아닌 것 같다. 셋째, 아이가 있는 부부가 마음 편히 영화 한 편 볼 수 있도록 영화관에서 두 시간만 아이를 봐줬으면 좋겠다. 그것만 해줘도 부부 관계가 훨씬 좋아질 것 같다. 넷째, 모유 좋다고만 장려하지 말고, 젖 마사지 비용을 지원해주고 안심하고 젖을 짤 공간이라도 만들어달라. 요즘 여자들 수유 잘 안 되는 거 순전히 사회·환경 탓이다. 

김완숙:나도 가장 최근에 본 영화가 〈해운대〉다(웃음). 예방접종 비용 부담을 줄여줬으면 한다. 계산해보니 영유아 예방접종 비용이 200만원 정도 든다(병원에서 맞힐 경우). 현재 보건소에서는 필수 예방주사만 맞혀주는데 선택 항목도 보건소에서 무료로 접종해주었으면 좋겠다.

고제규:언제까지 육아를 개인, 특히 여성의 희생에 맡길 건가. 엄마·아빠 일터에 안심하고 맡길 만한 직장 탁아시설을 만드는 게 훨씬 실질적이다. 아이와 함께 출퇴근하는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이 부분이 해결되면 여성 일자리· 육아휴직 등 다른 문제도 함께 풀릴 것이다.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는, 여성도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육아 폭탄’의 뇌관을 제거하는 일이다.

박형숙:정부와 회사가 지원하고, 부모도 비용을 부담하면 되지 않겠나. 우리 직장도 적당한 공간과 교사 두어 명만 확보하면 어려운 일이 아닐 것 같다. 최저생계비 체험처럼, 대통령이나 장관이 보육 체험을 한 달만 해보면 정책이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고제규:노무현 전 대통령도, 이명박 대통령도 텔레비전에서 “애 낳으면 제가 키워드리겠다”라고 했지만 10년째 바뀐 게 없다.

김완숙:4대강 사업 중단하고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하라(웃음).

정리·양정민 인턴 기자

 

 

기자명 이오성 기자 다른기사 보기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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