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성 · 정대세, 남북 16강 쌍끌이?
  • 이진수(축구 평론가)
  • 호수 140
  • 승인 2010.06.14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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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 월드컵에는 강팀만 출전하는 게 아니다. 지역 예선은 통과했지만 세계무대에서는 약체로 평가받은 국가도 꽤 있다. 뉴질랜드·남아공·북한·온두라스가 대표적이다. 이들이 이번 월드컵에서 1승을 거두기란 쉽지 않다. 현실적인 목표는 승점 1점 또는 1골이 아닐까 싶다.

뉴질랜드는 이번 월드컵 본선 진출국 중 최약체다. FIFA 랭킹에서 북한보다 20계단 정도 앞서지만 이는 기량이 좋기 때문이 아니라 오스트레일리아가 떠난 뒤 약체들뿐인 오세아니아에서 골목대장이 된 덕분이다.
뉴질랜드는 역대 FIFA가 주관한 대회에서 1무11패(4득점 36실점)에 머물렀다. 처음 출전한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 3전 전패를 당했고 2009년 대회까지 3차례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도 1무8패로 부진했다. 그것은 국내 환경이 좋은 성적을 내기에는 좋지 않기 때문이다. 뉴질랜드 국내 프로 축구팀은 대부분 세미 프로다. 유일한 프로팀 웰링턴 피닉스는 뉴질랜드가 아닌 오스트레일리아 프로 리그에서 활동한다. 뉴질랜드 자국 리그 역사도 6년밖에 안 됐다. 이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 뉴질랜드가 28년 만에 월드컵 본선 진출권을 따낸 것은 오스트레일리아가 이번 월드컵 지역 예선부터 아시아로 편입된 게 결정적이다. 뉴질랜드는 오스트레일리아가 없는 오세아니아의 지역 예선에서 1위에 올라 아시아 플레이오프 최종 승리 팀 바레인을 1승1무로 따돌리고 남아공행 티켓을 손에 넣었다.

   
ⓒReuter=Newsis
뉴질랜드 축구 대표팀(위)은 2010 남아공 월드컵 본선 진출국 가운데 최약체로 꼽힌다.

뉴질랜드에서 큰 인기를 누리는 종목은 럭비와 크리켓이다. 축구는 이 두 종목에 비해 광고 협찬비와 미디어 노출 빈도가 크게 떨어진다. 뉴질랜드 축구대표팀 별명은 ‘올 화이트(All Whites)’다. 홈 상하의 유니폼도 모두 흰색이다. ‘올 블랙(All Blacks)’이라고 불리며 전폭적인 인기를 누리는 럭비 국가대표팀과 모든 게 상반된다.

뉴질랜드 축구대표팀은 오스트레일리아와 미국파가 주축이다. 소수 유럽파 중 핵심은 ‘캡틴’ 라이언 넬슨(수비수·잉글랜드 블랙번)이다. 사령탑은 1982년 월드컵에 수비수로 출전한 리키 허버트 감독(48)이다. 허버트 감독은 한국의 홍명보와 같은 뉴질랜드 축구의 얼굴이다. 허버트 감독은 웰링턴 피닉스 감독을 겸임한다. 이유는 웰링턴 선수들의 기량이 다른 팀 선수들보다 월등하게 좋아 국가대표 중 3분의 1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뉴질랜드는 이번 월드컵에서 이탈리아·파라과이·슬로바키아와 F조에 속했다. 객관적인 전력에서도 밀리고 이들과 A매치를 치러본 경험도 없다. 또 선수 전원이 월드컵 출전이 처음이라 큰 대회 울렁증까지 겹칠 게 뻔하다. FIFA는 “지난해 6월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이라크와 0-0으로 비겨 FIFA 주관 대회 첫 승점을 얻은 뉴질랜드가 이번에 사상 첫 월드컵 승점을 챙길지 궁금하다”라고 평가했다. 뉴질랜드는 유럽 국가 가운데 FIFA 랭킹이 가장 낮은 슬로바키아와의 조별 리그 1차전에 모든 걸 걸어야 한다.

   
ⓒAP Photo
남아프리카공화국 축구 대표팀(위)은 개최국 프리미엄을 등에 업고 기적 같은 16강행을 노린다.

‘개최국=16강행’ 불문율 깨질까

개최국 남아공은 개최국 프리미엄을 등에 업고 기적 같은 16강행을 노린다. 월드컵 축구 역사상 한 번도 깨지지 않은 불문율이 있다. 개최국이 모든 대회에서 2라운드 이상 오르는 성적을 기록했다는 사실이다. 과거 월드컵은 남미 또는 유럽에서 대부분 열렸다. 두 대륙은 세계 축구를 이끄는 양대 산맥. 개최국 기량도 상위권에 속했다. 게다가 환경·판정 등에서 ‘호스트 프리미엄’까지 더해졌다. 2002 한·일 월드컵에서도 앞선 대회에서 1승도 거두지 못한 한국과 일본이 각각 4강, 16강에 올랐다. 남아공 월드컵은 월드컵 역사상 처음 아프리카에서 열리는 대회다. 아프리카 국가 중 가장 발전한 남아공이 그 영예를 안았다. 그러나 남아공이 만일 16강 진출에 실패한다면 사상 처음으로 2라운드 진출에 실패한 개최국이라는 치욕도 맛보게 된다.

남아공은 멕시코·우루과이·프랑스와 같은 조에 속했다. 익숙한 날씨와 환경, 홈팬들의 일방적인 응원,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판정의 이점 등이 더해져야만 16강행을 기대할 만하다. 어쨌든 최근 남아공은 전력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월드컵 개최국으로 결정된 뒤 지역 예선 없이 오랜 시간 팀을 정비할 여유를 가진 결과다. 남아공은 지난해 컨페더레이션스컵 준결승에서 브라질에 0-1로 석패했고 3·4위전에서는 스페인에게 연장 접전 끝에 2-3으로 졌다. 앞선 조별 리그에서는 아시아 챔피언 이라크와 0-0으로 비겼고 뉴질랜드를 2-0으로 꺾었다. 남아공 카를루스 아우베르투 파헤이라 감독은 “월드컵 16강 진출은 에베레스트 산 정상에 오르는 것과 같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FIFA 홈페이지는 프랑스·멕시코를 16강 진출 유력국으로 꼽고 있다. 다윗 남아공이 골리앗 3국과 싸워 살아남을 수 있을까. 만일 남아공이 16강에 오른다면 월드컵 역사에 길이 남을 이변 중 하나가 된다.

   
ⓒReuter=Newsis
브라질·포르투갈·코트디부아르와 함께 죽음의 조에 속한 북한(위). 1966 잉글랜드 월드컵의 영광을 재현하려고 한다.

북한, ‘어게인 1966’ 꿈 이룰까

이번 월드컵에서 최대 이변을 꿈꾸는 나라는 북한이다. 1966 잉글랜드 월드컵 이후 무려 44년 만에 월드컵 무대를 밟은 북한은 우승 후보인 브라질·포르투갈·코트디부아르와 G조에 속해 있다. 이른바 ‘죽음의 조’에서 동네북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도 북한은 포기하지 않고 훈련에 매진했다. 지난해 10월 프랑스에서 훈련했고 11월에는 브라질 프로팀과 평가전을 치렀다. 이후에는 남아공으로 건너가 현지 적응훈련을 하면서 현지 프로팀, 잠비아 대표팀과도 싸웠다. 이어진 카타르 4개국 초청대회에서 우승한 북한은 터키에서 2월까지 한 달 넘게 손발을 맞췄다. 북한에는 스타가 없다. 그나마 스타라고 하면 일본에서 뛰는 정대세(가와사키 프론탈레), 러시아 로스토프 소속 홍영조 정도다. 북한이 합숙 훈련에 집중하는 것도 부족한 개인 기량을 조직력으로 메우겠다는 의도다.

현실적으로 북한은 조별 리그에서 3패를 당할 가능성이 높다. 그것도 모두 대패가 예상된다. 브라질·포르투갈·코트디부아르가 서로 물고 물리면서 승점이 같아지면 골득실로 16강행을 가린다. 따라서 일단 조 최하위가 유력한 북한에게 대승을 거두는 게 무조건 유리하다. 북한은 공격수까지 11명 전원이 수비를 해도 상대 화력을 무실점으로 막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1966 월드컵 때도 북한이 이탈리아를 꺾고 8강에 올라 포르투갈과 대등한 경기를 하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북한이 만일 이번 월드컵에서 16강에 진출한다면 월드컵 조별 리그 역사상 최대 이변으로 남을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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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중미 다크호스 온두라스(위)는 ‘반란’을 꿈꾼다. 그러나 스페인·칠레·스위스와 같은 조에 속해 반란이 성공하기는 쉽지 않다.

북중미 다크호스 온두라스도 반란을 꿈꾼다. 온두라스의 월드컵 본선 진출은 1982 스페인 월드컵 이후 28년 만이다. 온두라스에게 2009년 10월14일은 국가 기념일과 같았다. 당시 온두라스는 북중미 예선 최종전을 치렀다. 상대는 1969년 축구 때문에 전쟁까지 벌인 앙숙 엘살바도르. 1-0으로 숙적을 꺾은 온두라스는 같은 시각 미국과 2-2로 비긴 코스타리카를 골득실에서 따돌리며 북중미 3위로 월드컵 출전권을 따냈다. 온두라스는 우승 후보 스페인, 브라질에 이어 남미 예선 2위에 오른 칠레, 조직력이 좋은 스위스와 같은 조에 속했다. 모두 어려운 상대다.

축구는 이변이 참 많은 종목이다. 1950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우승 후보 잉글랜드가 미국에 0-1로 패했다.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는 북한이 이탈리아를 1-0으로 꺾고 8강에 올랐다. 크로아티아는 첫 출전한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 3위를 차지했다. 2002 한·일 월드컵 개막전에서 세네갈은 ‘디펜딩 챔피언’ 프랑스를 1-0으로 꺾었다.

스타가 없고 경험이 적은 팀이 강팀과 싸울 때 할 수 있는 것은 상대보다 한 발짝 두 발짝 더 뛰는 것뿐이다. 그렇게 열심히 뛰다보면 운도 따를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골도 넣을 수 있고 잘 하면 비길 수도 있다. 정말 큰 행운이 거푸 따른다면 이길 수도 있다. 남아공에서 천운을 누릴 팀은 어디일까. 우승팀과 빅 스타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는 월드컵에서 약체의 반란도 쏠쏠한 관전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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