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3일 서울 용산 CGV 영화관에서   영상이 나오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9월3일 서울 용산 CGV 영화관에서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 영상이 나오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2016년 일본 출판사 슈에이샤의 〈주간 소년 점프〉에 ‘귀멸의 칼날’이라는 제목의 만화가 연재되기 시작했다. 혈귀(도깨비)로 변한 여동생 네즈코를 인간으로 되돌리기 위해 혈귀를 사냥하는 귀살대에 들어간 카마도 탄지로와 동료들의 투쟁을 다룬 만화다. 만화가 고토게 고요하루의 첫 장편으로 일본 다이쇼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2019년 애니메이션 제작사 유포터블이 만든 TV 시리즈가 공개되면서 원작을 뛰어넘는 큰 인기를 누렸다. 지난 7월18일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이 일본에서 개봉한 지 약 5주 만에 관객 수 2000만명을 넘어섰다. 원작 만화의 단행본(총 23권) 발행부수도 2억 부를 돌파했다.

약 한 달 간격으로 한국에서도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이 개봉됐다. 개봉 전날 예매량만 80만 장을 돌파했고 222만 관객을 동원했던 전작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2021)〉의 기록을 6일 만에 깼다. 개봉 10일째 누적 관객 수 300만명을 돌파하며 역대 일본 애니메이션으로는 가장 빠른 흥행 속도를 보였다. ‘역대급 액션신’ ‘미쳐버린 작화’ ‘압도적 사운드’ 같은 수식어와 함께 우는 관객들로 내내 객석이 들썩거렸다는 후기가 이어졌다. 작품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 아이맥스, 4DX관을 찾는 사람들로 극장이 활기를 띠었다. ‘귀멸의 칼날 팝업 스토어’에도 인파가 몰렸다. 주인공이 욱일기 디자인의 귀걸이를 착용한 점을 들어 ‘우익’ 논란이 일기도 했으나 ‘대세’에 지장은 없었다. 한국판에서는 디자인을 수정했다.

9월3일 서울 용산 CGV 영화관에 마련된  포토존에서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9월3일 서울 용산 CGV 영화관에 마련된 〈귀멸의 칼날〉 포토존에서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2년여 전, 애니메이션으로 〈귀멸의 칼날〉(귀칼)을 처음 접한 뒤 팬이 된 장수지씨(가명)는 국내 개봉 직후 첫 주말, 인천시에 있는 한 극장을 찾았다. 4DX관이 사람들로 꽉 찼다. CGV가 개봉을 기념해 판매하는 귀칼 부채 ‘굿즈’를 사고 싶었지만 이미 매진이었다. 캐릭터가 그려진 팝콘 통만 받아들었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평소에도 좋아하지만 ‘원톱’은 단연 귀칼이다. 캐릭터의 매력 때문이다 “귀칼 다음에 좋아했던 애니메이션이 〈블리치〉인데, 캐릭터의 외모가 길쭉길쭉해 멋진 느낌은 있지만 귀여움은 조금 부족하다. 귀칼은 인물의 키가 아담해서 귀엽다. 또 너무 복잡한 스토리를 좋아하지 않는데 권선징악이 뚜렷해서 좋았다.” OTT를 통해 애니메이션으로 처음 작품을 접한 뒤 원작 만화에 빠져들어 귀칼의 팬이 된 김선재씨(가명)도 “주인공의 조건 없는 선의가 다시 선의로 돌아오고, 동료와 연대해 결국 악을 무너뜨리는 구조가 단순하지만 매력적이다. 현실과는 다르지만 그래서 더 끌린다”라고 말했다.

두 사람의 말처럼 귀칼의 주인공 탄지로는 선량하고 강인한 의지를 가진 인물이다. 처음엔 약하지만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강해지는 성장 서사는 ‘소년 만화’의 전개를 그대로 따라간다. 단순하면서 어렵지 않은 이야기 구조가 대중적 인기의 요인이기도 하다. 9월2일 기준 CGV의 연령별 예매 분포를 보면 20대가 42%로 가장 높고 10대 10%, 30대 25%, 40대 17%로 전 연령대의 관심을 비교적 고르게 받고 있다. 남성 56%, 여성 44%로 성별도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김봉석 영화평론가는 “인기가 높았던 또 다른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과 비교하면 세계관이 복잡하지 않아 진입장벽이 낮은 편이다. 극장판부터 봐도 얼추 이야기를 따라갈 수 있다”라고 말했다.

애니메이션계의 레퍼런스급 작품

귀칼이 한국에서 존재감을 알린 시기는 2021년 1월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이 개봉했을 때다. 팬데믹 한복판이었는데도 관객 215만명을 동원했다(이후 재개봉으로 7만명 추가). 같은 해 2월 26화짜리 〈귀멸의 칼날〉 1기 시리즈가 넷플릭스에서 공개되었다. 팬데믹 상황이 오히려 호재였다. 바깥 출입이 어려운 상황에서 국내외 OTT가 모두 해외 작품을 많이 선보일 때였다. 성상민 대중문화 평론가는 “이 시기 평소 보지 않던 작품들도 접하게 되면서 일본 영화·애니메이션에 편견이 있거나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흥미를 갖게 됐다”라고 말했다. 10대 중후반에 일본 애니메이션과 영화를 접한 이들은 그사이 20대가 되었다.

혈귀의 본거지인 무한성의 공간은 시시각각 바뀐다. ⓒCJ ENM 제공
혈귀의 본거지인 무한성의 공간은 시시각각 바뀐다. ⓒCJ ENM 제공

귀칼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액션이다. 특히 혈귀의 본거지인 무한성에서 펼쳐지는 귀살대와 최정예 혈귀들의 최종 결전을 담은 이번 극장편은 그 절정이라고 할 수 있다. 배경이 되는 무한성은 평면적인 공간이 아니다. 시시각각 공간이 왜곡되고 변형되는 가운데 벌어지는 전투가 긴장감을 높인다. 웅장한 사운드와 함께 빠르게 전개되는 액션 장면을 넋 놓고 보게 된다. 성상민 평론가는 이번 작품이 “세계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레퍼런스급으로 여겨질 정도의 퀄리티”라고 평가했다. “원작 만화는 움직임이 있는 매체가 아니라 아무래도 한계가 있는데 애니메이션에서 액션을 효과적으로 구현했다. 2D와 3D를 왔다 갔다 하는 장면이 계속해서 나온다. 액션에 충실한 액션 만화라는 점에서 정말 잘 해냈다.”

액션뿐만 아니라 드라마 요소도 강하다. 주인공이 잠시 아랫 마을에 다녀온 사이, 가족들이 모두 혈귀에게 죽임을 당하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동생이 혈귀로 변한다는 초반 설정부터 강렬하다. 강상준 대중문화 칼럼니스트는 “귀칼이 〈주간 소년 점프〉 만화들이 다룬 유구한 주제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긴 한데 독특한 점이 하나 있다면 남매가 이야기의 중심이라는 것이다. 원작도 그렇지만 가족애, 형제애적 요소가 꽤 강하다”라고 말했다.

주인공과 동료들뿐만 아니라 거기에 맞서는 악의 캐릭터들도 알고 보면 가슴 아픈 사연을 하나씩 간직하고 있다. 이번 극장판에서도 혈귀 아카자의 과거 회상 분량이 길어 호불호가 갈렸다. 귀칼 팬들 사이에서는 ‘사연의 칼날’이라고 불릴 정도다.

혈귀인 아카자에게도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다. ⓒCJ ENM
혈귀인 아카자에게도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다. ⓒCJ ENM

‘귀칼 열풍’을 최근 몇 년 사이 일본 작품이나 문화에 대한 선호가 늘어난 흐름에서 해석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2023년 〈스즈메의 문단속〉이 관객 수 558만명을 기록하며 역대 일본 극장 애니메이션 1위에 올랐다. 그보다 앞서 〈너의 이름은〉(2017)도 393만명이 찾았다. 애니메이션뿐만이 아니다. 2022년 극장이 침체기에 접어든 상황에서 일본 영화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가 121만명을 모았다. 현재 상영 중인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는 호러물인데도 9월2일 기준 25만명이 들었다.

최근에는 일본의 개봉 작품이 한국에 들어오는 속도도 빨라졌다. 김봉석 평론가는 “일본의 학원물이나 청춘물을 즐기는 20대가 많다. 애니메이션을 전문으로 하는 라프텔은 국내 유일의 흑자 OTT이기도 하다. 마니아가 아니더라도 일본 문화를 즐기는 젊은 층이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고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번 극장 편은 귀칼 원작 만화의 최종 결전 3부작 중 제1장을 담았다. 일단, 두 편이 더 남은 셈이다.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