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이 12·3 비상계엄 선포 당일 오전,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과 대화한 이후 예정돼 있던 지방 만찬 일정을 취소하고 서울로 복귀한 사실이 새롭게 드러났다. 계엄 선포 직후에는 한덕수 전 국무총리와 함께 계엄 문건을 읽으며 협의했다. 이 전 장관이 소방청장에게 내린 단전·단수 지시는 불과 7분 만에 일선 소방서들에 전파됐다. 내란 특검은 이를 근거로 이 전 장관을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겼다.

대통령에게 계엄 선포를 건의할 수 있는 국무위원은 국방부 장관과 행정안전부 장관 둘이다. 특히 행안부 장관은 정부조직법에 따라 치안과 안전 사무의 두 축인 경찰청과 소방청을 관할하고, 경찰청장과 소방청장을 지휘할 수 있다. 비상계엄 선포 당일, 윤석열 정부의 초대 행정안전부 장관이자 최장수 장관이었던 이상민 전 행안부 장관의 행적과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

〈시사IN〉이 국회를 통해 입수한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공소장에는 2024년 12월3일 비상계엄 선포 당일 이 전 장관의 행적이 시간대별로 고스란히 적혀있다. 이 전 장관은 이날 오후 2시30분부터 울산 출장이 예정돼 있었다. 울산 남구에서 행안부가 주최하는 ‘국민 통합 김장 행사’에 참석하고, 이후 울산 시청에서 열리는 중앙지방정책협의회 회의에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과 참석한 뒤 저녁 만찬(오후 5시50분~7시20분)까지 한 후 서울로 돌아올 계획이었다.

7월25일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이 내란특검 조사를 받기 위해 특검팀 사무실로 들어가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7월25일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이 내란특검 조사를 받기 위해 특검팀 사무실로 들어가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그런데 이날 오전, 예정돼 있던 저녁 만찬 일정이 돌연 취소됐다. 이상민 전 장관이 정부서울청사에서 국무총리 주재로 오전 10시부터 30분간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한 뒤, 자신의 집무실에서 한 국무위원과 따로 만나 대화한 직후였다. 이 전 장관이 만난 국무위원은 윤석열과 내란을 오랜시간 계획하고 주도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었다.

실제 이상민 전 장관은 울산시청에서 열린 중앙지방정책협의회 도중 회의장을 떠나 만찬 행사에 참석하지 않고 오후 5시43분께 울산역에서 서울행 KTX 열차에 탑승했다. 이 전 장관은 오후 6시12분 KTX 열차 안에서 김용현 전 장관으로부터 걸려 온 전화를 받아 통화한 후, 2분 뒤 과거 미리 지급받은 비화폰으로 김용현 전 장관이 사용하는 비화폰에 다시 전화를 걸고 통화하면서 오후 8시께 서울에 도착 예정임을 알렸다.

이상민 전 장관은 오후 8시3분 서울역에 도착하자마자 관용차를 이용해 용산 대통령실로 이동했다. 오후 8시36분께 대통령실에 도착한 그는 곧장 윤석열과 김용현 전 장관이 있던 대통령 집무실로 향했다. 윤석열로부터 “내가 오늘 밤 22시에 비상계엄을 선포해야겠다”는 취지의 말을 듣고, 언론사 단전·단수 지시가 담긴 문건을 건네받았다. 문건에는 ‘언론사 5곳을 포함한 주요 기관에 대한 시간대별 봉쇄 계획 및 24:00경 언론사 5곳의 건물을 봉쇄함에 있어 소방청이 단전·단수에 필요한 조치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상민 전 장관은 같은 날 8시45분, 뒤를 이어 집무실에 들어온 한덕수 전 국무총리, 김영호 전 통일부 장관, 조태열 전 외교부 장관 등에게 윤석열이 비상계엄 선포 계획을 알리는 장면을 목격했다. 이 전 장관은 각 국무위원들에게 대국민 담화문을 포함한 비상계엄 관련 문건과 비상계엄 관련 조치사항이 담긴 문건, 각종 지시 사항이 담긴 문건 등이 전달되는 장면을 확인하면서 세종시에서 머물고 있던 행안부 장관 비서실장에게 연락해 급히 서울로 올라오라고 지시했다.

비상계엄 선포 직후 이상민 전 장관은 윤석열에게 지시 받은 ‘조치 사항’을 한덕수 전 국무총리와 따로 협의하고, 이를 이행했다. 이 장면들이 대통령실 대접견실 CCTV에 고스란히 촬영됐다. 이 전 장관은 비상계엄 선포 이후인 밤 10시54분부터 11시5분까지 다른 국무위원들이 모두 퇴실한 대접견실에 한 전 총리와 단둘이 남았다. 이 자리에서 이 전 장관은 앞서 집무실에서 김용현 전 장관을 통해 윤석열로부터 받은 계엄 관련 문건 3장을 양복 상의 안주머니에서 꺼내 읽었다. 이 전 장관이 꺼낸 계엄 관련 문건에는 ‘국회 등 주요 기관의 시간대별 봉쇄 계획’과 특정 ‘언론사 5곳에 대한 단전·단수’ 지시가 담겨 있었다. 이 전 장관은 이 문건들을 읽다가 그 중 1장을 테이블 맞은편에 있던 한덕수 전 총리에게 2차례에 걸쳐 보여주고, 또 다른 1장을 건네주며 읽어보게 했다. 이 전 장관과 한 전 총리는 이 과정에서 문건 내용을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협의하기도 했다.

한덕수 전 총리와 협의를 마친 이상민 전 장관은 오후 11시34분께 조지호 전 경찰청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조 전 청장은 이날 오후 7시께 이상민 전 장관이 울산에서 KTX를 타고 서울로 올라오며 김 전 장관과 전화통화를 하던 시각, 윤석열과 삼청동 안가에 함께 있었다. 윤석열은 이 자리에서 조지호 전 경찰청장에게 계엄 선포 계획과 국회 및 언론사 봉쇄 및 통제 지시를 내렸다.

조지호 전 경찰청장과 2분여간 통화한 이상민 전 장관은 오후 11시37분께 허석곤 소방청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 전 장관은 전화로 “0시께 경찰이 특정 언론사 5곳에 투입될 예정인데, 경찰로부터 단전·단수 요청이 오면 소방청에서 조치를 해줘라”라고 지시했다. 이 전 장관의 지시는 곧바로 허 청장→이영팔 소방청 차장→서울소방재난본부 당직관 순으로 전파됐다. 이어 당직관은 오후 11시44분께 서울소방재난본부관할 소방서에 ‘[긴급] 비상계엄 선포에 따른 출동대비태세 철저 알림’이라는 제목의 공문을 발송해 일선 소방서에서 경찰의 단전·단수 요청에 즉각 응할 수 있도록 했다. 이상민 전 장관이 허석곤 소방청장에게 지시한 지 불과 7분 만이었다.

2024년 12월5일 국회 비상계엄 관련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상민 당시 행정안전부 장관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2024년 12월5일 국회 비상계엄 관련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상민 당시 행정안전부 장관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이상민 전 장관은 2월11일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탄핵 심판 제7차 변론기일에 증인으로 출석해 앞서의 모든 의혹들을 부인한 바 있다. “대통령이나 국방부 장관이 최상목 경제부총리에게 쪽지 주는 것을 보셨습니까”라는 질문에 “저는 못 봤습니다”라고 답하거나 “(비상 계엄 선포 당일) 외교부 장관이 (문건을) 받는 것은 보셨습니까”라는 질문에도 “그것도 못 봤습니다”라고 증언했다. 언론사 단전·단수 문건을 김용현 전 장관을 통해 윤석열로부터 건네 받거나, 소방청장에게 단전·단수를 지시한 적 있느냐는 질문에도 모두 “전혀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내란 특검은 이 증언들이 모두 허위라고 판단해 위증했다고 공소장에 적시했다.

내란 특검은 공소장에서 이상민 전 장관에 대해 “윤석열, 김용현 전 장관 등과 순차 공모해 헌법기관인 국회 및 선거관리위원회의 권능행사를 강압에 의하여 불가능하게 하고, 헌법과 법률에 의해 보장되는 언론, 출판의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조치를 했다”며 “행정안전부장관으로서 그 소속 외청인 소방청으로 하여금 경찰과 긴밀히 협력하여 위 언론사 건물 5곳에 대한 단전, 단수 조치를 시행하도록 지시함으로써 내란행위에 있어 중요한 임무에 종사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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