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년 전 딸을 잃은 진옥자씨(72)가 서울 서초구 법원 청사 맞은편 아크로비스타 건물 앞에 섰다. “사람이 그렇게 많이 죽었는데··· 아무것도 없네.” 윤석열 부부가 살던 아파트로 유명한 이곳은 30년 전인 1995년 6월29일, 삼풍백화점 A동이 무너져 내린 장소다. 사망자 502명(실종자 32명)과 부상자 937명이 발생한, 건국 이래 최대 사상자를 낸 대형 참사였다. 당시 스물두 살이던 진씨의 첫째 딸 정창숙씨는 삼풍백화점 A동 지하 1층 아동복 매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분장사 자격증을 딴 후 유학을 목표로 돈을 벌겠다고 시작한 일이었다. 퇴근길에 먹고 싶은 우윳값을 아꼈다는 일기를 쓸 정도로 알뜰하고 성실했던 딸은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당시 진씨를 포함한 ‘삼풍참사 희생자 대책위원회’의 유족들은 참사가 발생한 곳에 위령탑을 세워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보상금 마련을 명분으로 서울시가 상업지구로 용도변경을 승인하면서 참사 현장은 부동산시장의 매물로 나왔다. 결국 ‘강남 노른자위 땅’에는 참사를 추모하는 위령탑 대신 값비싼 아파트가 세워졌다. 위령탑은 참사 현장에서 6㎞ 떨어진 양재시민공원에 세워졌는데, 그마저도 인근 지역의 반대 여론을 겨우 뚫은 결과였다.



“혼이라도 왔다 갈 것 같아서 못 떠나고 있어요.” 그로부터 30년, 진씨는 서울 마포구 망원동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삼풍백화점 붕괴 잔해물이 마구잡이로 버려진 난지도(현 노을공원)가 근처에 있기 때문이다. 당시 서울시 사고수습대책본부는 참사 보름 뒤 잔해물을 난지도 매립지에 내다 버리기 시작했다. 실종자 다수를 아직 찾지 못한 시점이었다. 1996년 서울시가 발간한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백서’에 따르면 ‘7월21일 04시 반입 종료 시까지 전체 잔재의 99.6%에 해당하는 3만2699t의 잔재를 (난지도에) 처리했다.’
그때까지 딸의 흔적을 하나도 찾지 못한 진씨는 다른 실종자 가족들과 함께 삽과 호미를 들고 난지도 매립지로 향했다. ‘7월18일부터 시작된 난지도 잔재물 검색 과정에서 7월21일까지 유골로 추정되는 골편 21점과 유류품 1140점을 발견(백서 중에서)’했다. 상당수가 유가족이 직접 찾은 것들이었다.

2002년 5월 난지도는 노을공원과 하늘공원 등 네 개의 공원으로 조성됐다. 진씨는 지금도 난지도 공원이 보이는 망원동의 한 주택에 살고 있다. 딸을 찾진 못했어도 늘 공원을 바라보고, 매주 찾아가 표지석 하나 없는 잔디 위에 술과 과일을 올린다. “우리 딸이 가까이 있다고 느끼”며 30년을 보냈다. 이후 새로운 참사가 과거의 참사 위에 계속 쌓이는 동안에도, 삼풍백화점 참사는 여전히 많은 것들이 ‘미수습’인 채로 남았다.
진씨를 비롯해 고령이 된 유가족들의 남은 바람은 희생자 유해와 유류품을 포함한 잔해가 묻혀 있는 노을공원에 삼풍백화점 참사 희생자 추모비를 세우는 일이다. 기억하는 이들이 많아지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이를 위해 유족회는 재난피해자권리센터와 함께 6월17일부터 온라인 서명(https://campaigns.do/campaigns/1612)을 받고 있다. 서명 문구는 ‘삼풍백화점 30년의 기다림, 노을공원에 표지석을 세워주세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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