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월21일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제3부(부장검사 임삼빈)가 SPC그룹 허영인 회장, 황재복 대표이사를 구속 기소했다. 두 사람에게 적용된 혐의는 크게 두 가지다. SPC그룹에 비판적인 노동조합을 와해하려 시도했고, 회사에 우호적인 ‘어용노조’(공소장 내 표현)를 만들어 대내외적 목적으로 활용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러한 일련의 범행이 허영인 회장의 주도로 이루어졌다고 판단했다.
허영인 회장은 어쩌다 ‘노조 파괴’ 혐의를 받는 피고인이 됐을까. 사건의 발단은 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7년 당시 임종린씨는 파리바게뜨 제빵기사로 일하고 있었다. 제빵기사들은 전국 파리바게뜨 매장에서 매일 빵을 굽는 핵심적 업무를 했지만 SPC그룹 직원이 아니었다. 이들은 SPC그룹에서 퇴직한 임직원들이 운영하던 11개 협력업체에 소속돼 있었다. 2017년 4월 자신의 고용 형태가 불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임종린씨는 문제를 제기했고, 그해 9월 고용노동부로부터 불법파견을 인정받았다.
임종린씨가 결성한 민주노총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파리바게뜨지회(이하 파리바게뜨지회)가 SPC그룹과 ‘사회적 합의’를 맺은 2018년 1월까지만 해도 노사갈등은 일단락되는 듯했다. 합의에 따라, SPC그룹은 기사들을 자회사인 해피파트너즈(현 피비파트너즈)를 통해 직접 고용하고, 임금을 본사 직원과 동일하게 맞추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SPC그룹은 파리바게뜨지회의 영향력을 줄이기 위한 전략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2017년 12월 해피파트너즈 정홍 당시 대표는 회사 입장을 대변할 노동조합 설립을 지시했다.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기 불과 한 달 전이었다. 그렇게 지시를 받아 설립된 노동조합이 현재 교섭대표 노조인 한국노총 피비파트너즈노동조합(이하 피비노조)이다.
사회적 합의 미이행에 대한 파리바게뜨지회의 항의가 거세지면 SPC그룹은 직고용 직전에 미리 만들어둔 피비노조를 동원했다. 2019년 7월엔 임종린 파리바게뜨지회장이 근로자 대표로 선출되자 SPC그룹은 피비노조를 과반수 노조로 만드는 계획에 착수했다. 피비노조가 과반수 노조가 되면 임 지회장의 근로자 대표 지위가 박탈되기 때문이었다. 황재복 SPC 대표이사 등은 조합원 모집을 돕기 위해 피비노조 측에 노동자들의 신상정보를 제공하고, 피비노조 조합원 모집에 회사 관리자들을 동원했다.
파리바게뜨지회를 와해시키기 위해 ‘조합원 빼가기’를 실행하기도 했다. 2021년 1월경 파리바게뜨지회가 합의 이행을 촉구하며 SPC그룹을 비판하는 대외 활동을 하자, SPC그룹은 파리바게뜨지회 조합원에게 탈퇴를 종용하기 시작했다. 각 지역 사업부장에게 탈퇴 목표치를 지정해주고 탈퇴 ‘실적’을 보고하게끔 했으며, 직원들을 시켜 노조 탈퇴를 설득하도록 했다. 파리바게뜨지회 조합원들을 승진 대상에서 누락시켜 불이익을 주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부당노동행위에 관련한 공소사실은 이미 경기지방노동위원회·중앙노동위원회 판정을 통해 일부 인정되었다. 회사도 부당노동행위와 관련해 대표이사가 사과하고, 이를 실행한 사람들을 인사 조치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검찰이 이번 수사를 통해 새롭게 밝힌 것은, 부당노동행위를 주도한 ‘윗선’이 허영인 SPC그룹 회장이라는 사실이다. 검찰은 허 회장이 “그룹 전체를 총괄하며 노조에 대한 대응방안을 최종 결정·지시하는 등 범행을 주도”했다고 발표했다.

‘교섭할 권리’ 되찾을 수 있을까
그룹 총수를 부당노동행위로 구속 기소하는 것은 파리바게뜨지회 조합원과 이들을 도운 시민단체도 쉽사리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이번 역시 ‘꼬리 자르기’로 끝날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 예상을 뛰어넘은 검찰의 이례적인 결정에 대해 권영국 ‘파리바게뜨 노동자 힘내라 공동행동’ 공동대표는 “SPC그룹은 사실상 허영인 회장 일가가 소유한 가족기업이다. 이런 기업에서 그룹사 차원으로 노조 파괴 행위가 벌어졌다는 것은 총수의 결정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검찰도 이 부분을 고려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불법파견에 대한 고발로 시작해 그룹 총수를 부당노동행위로 구속시켰으니 ‘성공’한 것일까? 피해 당사자인 파리바게뜨지회의 상황은 좋지 않다. 무엇보다 소수 노조가 되는 바람에 잃어버린, ‘회사와 교섭할 권리’를 되찾지 못했다.
2023년 1월 ‘2차 사회적 합의’가 법원에서 효력정지 가처분 결정을 받은 것이 파리바게뜨지회 입장에선 뼈아팠다. 부당노동행위 판정을 받은 후 단식 농성을 거쳐 2022년 11월 파리바게뜨지회는 회사와 노사협약을 맺었다. 노사협의체 구성, 임금협상 및 단체교섭 실무협약 시 참여 권한 등을 회사로부터 약속받아, 소수 노조임에도 회사와 교섭할 권한을 일정 부분 확보했다. 하지만 피비노조는 이 협약이 자신들의 단체교섭권·단체협약권을 침해한다며 법원에 효력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과반수 노조인 피비노조가 회사와 교섭할 독점적 권리를 가지고 있는데, 이를 침해했다는 주장이다.
파리바게뜨지회는 피비노조가 제기한 소송에 회사가 관여했다는 의혹을 제기한다. 회사가 사회적 합의 이행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피비노조의 ‘항의’를 활용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검찰에 따르면 2022년 7월 SPC 대외협력본부 김 아무개 부사장은 전진욱 피비노조 위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회사에) 강한 항의성 공문을 보내달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가 사회적 합의 이행을 검증하려 하자 ‘피비노조가 반대해 이행 검증을 못하고 있다’라는 명분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임종린 파리바게뜨지회장은 “피비노조가 제출한 소장을 보면, 회사와 우리 지회 이외에는 비공개하기로 합의한 내용이 포함돼 있다. 회사가 피비노조에 협력한 것 말고는 설명이 안 된다”라고 말했다. 피비노조와 SPC그룹은 해당 의혹에 대한 〈시사IN〉 질의에 답변을 거부했다.
현재 수원고등법원에서 진행 중인 가처분 이의 소송 결과는 파리바게뜨지회에 중요한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만약 이 소송에서 승소한다면 2차 사회적 합의에서 얻은 권한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더 나아가, 파리바게뜨지회 측은 피비노조에 대한 노조설립 무효 확인 소송까지도 염두에 두고 있다. 노조 파괴 수단으로 회사가 주도해 설립한 ‘어용노조’의 설립 자체를 무효로 한 대법원 판례가 있기 때문이다. 권영국 대표는 “검찰의 공소사실이 법원에서 유죄로 밝혀진다면, 피비노조 설립무효 판결도 충분히 받아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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