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칼럼니스트 조귀동이 지난해 발간한 〈이탈리아로 가는 길〉은 다음과 같은 구절로 시작된다. “한국은 어떤 개혁도 바랄 수 없는 사회가 됐다. 정치가 헛돌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을 충실히 반영한 문장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연금 개혁과 노동시장 개혁은 몇 년 전부터 말만 무성하다. 의대 정원을 늘리는 문제로 의료 대란이 벌어지고 있다. 잠재성장률이 하락 추세라는데 이를 반전시키기 위한 논의는 어디서도 진지하게 전개되지 않는다. 출산율은 바닥을 뚫고 계속 내려간다. 그런데 왜 ‘이탈리아’를 화두로 삼았나? 조귀동의 답변은 이렇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출산율이 가장 낮은 나라는 한국인데 바로 위가 이탈리아다. 이탈리아는 2차 대전 이후 수출지향형 공업화로 ‘경제 기적’을 이룬 나라다. 제조업 비중이 유럽에서 독일 다음일 정도로 높다. 더 닮은 것이 있다. 두 나라 모두 정치가 사회·경제적 변화에 대응하는 데 실패했다. 정치 시스템이 의사결정을 내리지 못하면서 사회적으로 필요한 개혁들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리고 포퓰리즘 정치 세력이 판친다. 한국은 이탈리아로 가는 길을 밟고 있다.”

조귀동 경제 칼럼니스트. ⓒ시사IN 박미소
조귀동 경제 칼럼니스트. ⓒ시사IN 박미소

잠재성장률이나 수출이 불안정한 추세를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정치 때문인가?

대(對)중국 수출은 줄어드는 반면 한국과 중국 간 산업 경합도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한국의 수출시장이던 중국이 산업부문의 경쟁자로 바뀌었다. 예견된 사태다. 그러나 한국 정치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의제로 삼지 못했다. 장기 계획도 세우지 못했다.

중국 문제뿐만이 아니다. 고령화(에 따르는 복지제도의 위기), 저출생, 빠른 기술 변화, 불평등 심화, 외국인 이민자의 증가, 지방 소멸 등에 대해서도 정치는 제대로 된 의사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예컨대 지금 같은 인구구조에서 복지 수요가 계속 늘어나면 한국의 복지 시스템이 버틸 수 있을까? 정부 재정을 확대하면 될까? 그러나 고도성장이 끝났다면 국가 재정 역시 크게 확대하기 어렵다. 증세도 쉽지 않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이런 이슈들을 다룰 국가의 정치적 역량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정치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사회는 미래를 위해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그저 운이 좋기만 바라게 된다.

바로 연금 문제가 떠오른다. 문재인 정부는 연금 개혁을 하지 않았다. 이를 비판하던 윤석열 정부가 지난해 낸 개혁안 역시 보험료 인상폭이나 급여 수급 연령 등을 뺀 ‘맹탕’이었다.

합리적이지 않은 것으로 유명한 근로소득세 관련 제도도 10년째 그대로다. 괜찮은 안을 내면 지지율을 올릴 수 있는데도 그렇다. 정치권은 유권자의 실질적 이해관계나 국가의 장기적 이익과 관련된 사안들에 관심이 별로 없는 것 같다.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일단 양대 정치세력(국민의힘과 민주당)이 고도성장기의 이데올로기(보수는 산업화와 반공, 진보는 민주화)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미 ‘끝난 이야기’인데도 말이다. 민주당 역시 40~50대 대졸 대기업 화이트칼라의 이익 옹호에 머물러 있는 것 아닌가? 민주당이 복지·기초연금·수도권 집중 등 40~50대 화이트칼라의 부담을 늘릴 수 있는 개혁 의제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일 때 그런 생각이 든다.

양당 모두에서 거시적인 정치 기획이 나오지 않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당내 경쟁구조 탓이 크다고 본다. 정치인이 당내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길은, ‘적’을 설정하고, 그 적을 타도하는 것만이 지지자들이 상정한 정치적 목표를 이룰 방법이라고 선동하는 것이 되었다. 반공이나 민족주의로 허구의 갈등 전선을 만드는 것도 효율적 방법이다. 이런 상황에서 ‘뜨뜻미지근한’ 사회·경제 개혁 프로그램이나 내세웠다간 정치적 경쟁에서 도태되기 십상이다. 결국 정치인들은 사회개혁보다 ‘우리 편 내에서의 대중 동원 기제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골몰하게 되었다. 진보나 보수나 크게 다르지 않다.

1935년 8월14일 백악관에서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사회보장법에 서명하고 있다. ⓒAP Photo
1935년 8월14일 백악관에서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사회보장법에 서명하고 있다. ⓒAP Photo

그렇다면 정치는 어떤 일을 해야 하나.

공동체에서 늘 발생할 수밖에 없는 갈등과 대립을 조율하고 집단적 선택을 내리는 결정이 바로 정치의 본질이다. 정당은 ‘우리 편’만이 아니라 사회·경제적으로 이해관계가 다른 여러 집단을 하나의 안정적 지지 연합으로 구성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변화가 가능해진다. 예컨대 노동시장을 개혁하면 이로 인해 손해를 보는 사람들이 분명히 나온다. 그러나 그 누구도 손해 보는 사람들에게 투입할 재교육 등 복지비용을 세금으로 감당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노동시장뿐 아니라 모든 사안에서 개혁을 둘러싸고 여러 이해관계가 대립하게 된다. 그렇다면 사안들을 묶어서 여러 이해관계자들이 타협할 수 있는 정책 패키지를 구성하고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야 한다. 정당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진보든 보수든 먹고사는 문제에서 해결책을 만들어 정치적으로 의제화하고 그걸 바탕으로 안정적 지지 연합을 구축해서 표를 얻어 내야 한다. 그래야 정치적 의사결정을 내리고 그것을 굳건히 추진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어떤 정당도 하지 않는 일이다. 나는 정당들의 그런 상태가 위기의 근본 원인이라고 본다.

역사적 사례로 설명한다면?

그 유명한 미국의 ‘뉴딜’은, ‘꼴통 남부’가 본진이던 민주당이 공화당 지지 성향의 가난한 중하층 노동자들을 끌어모을 수 있는 정책 패키지로 탄탄하고 안정적인 지지 연합을 구축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미국 역사상 유일한 4선 대통령으로 20년간 집권했다. 2차 대전 이후 미국은 중하층 대중의 재분배 요구를 적극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다음에 등장한 공화당 정부도 민주당의 ‘뉴딜 질서’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의 사회·경제 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의제 자체가 보이지 않는다. 의제가 있어야 할 자리를 ‘투자자 포퓰리즘’으로 채우고 있다. 공매도 금지, 최근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윤석열 정부가 한국 기업 주식의 저평가 현상을 해결하겠다며 내놓은 정책)’ 등이 대표적 사례다. 특히 ‘기업 밸류업’은 대기업 지배구조를 바꿔야 하는데, 윤석열 정부가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일까? 엑스포 유치 이후 부산 국제시장에서 열린 ‘떡볶이 먹방’ 당시 대통령 뒤에 도열한 재벌들을 상기하면,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린벨트 해제나 GTX 연장 방안 등도 일종의 투자자 포퓰리즘이다. 철도 교통망으로 서울 중심성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것 아닌가. 윤석열 정부가 한국의 큰 사회문제 중 하나인 수도권 집중에 아무런 생각도 없다는 의미다.

지금까지 윤석열 정부의 움직임엔 거시적 정치 기획을 통해 지지 연합을 형성하고 더욱 강고하게 만들겠다는 장기 플랜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때그때 이슈에 반응하면서 관련 정책을 던져 표를 얻으려는 의도만 나타난다. ‘반응형 포퓰리즘’으로 표현할 수도 있겠다.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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