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국무위원장(맨 오른쪽)이 2월14일 신형 지대함 미사일 ‘바다수리-6형’ 검수 사격 시험을 지도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
김정은 국무위원장(맨 오른쪽)이 2월14일 신형 지대함 미사일 ‘바다수리-6형’ 검수 사격 시험을 지도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서해 백령도 북쪽 수역과 연평도 인근 수역 두 군데를 꼭 집었다. 이 두 지역에서 ‘군사적 대비 태세를 강화할 데 대한 중요 지시’를 내렸다. 남한이 두 지역에 ‘구축함과 호위함, 쾌속정을 비롯한 전투함선들을 자주 침범’시킨다며, 2월14일 지대함 미사일 검수 훈련 때 이런 지시를 내렸다. 김 위원장의 지시에 따라 북한 서해함대 사령부는 군사적 대비 태세를 강화하는 조치를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당 규약이나 헌법보다 더 우위에서 북한 체제를 통제하고 있는 것이 ‘당의 유일적 영도체계 확립의 10대 원칙’이다. 이 원칙에 따르면, 김정은 위원장의 지시는 “무한한 헌신성과 희생성을 발휘하여 무조건 철저히 관철하여야 한다”. 김 위원장의 지시 가운데, 남한 함정들이 ‘해상국경선’을 침범해 북한 ‘주권을 심각히 침해’하고 있다고 말한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해상주권을 ‘실제적인 무력행사로, 행동으로 철저히 지켜야 한다’며 남한 함정을 ‘제압 분쇄할 데 대한 방도들을 제시’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그의 발언은 해양주권 침해를 가정하고 대응하는 차원이 아니다. 남한 함정들이 북한 국경선을 침범하고 있다고 인식하고 실제적인 무력행사를 언급한 것이다. 즉, 현재 진행형이다.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 내용을 분석해보면, 지대함 미사일을 전진 배치하고 최대로 강화해 남한 해군을 제압·분쇄하겠다는 의도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 지대함 미사일은 2월14일 김정은 위원장이 검수 사격 시험을 한 ‘바다수리-6형’이다. 이 미사일을 실전 배치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당장 지대함 미사일보다는 해안포가 문제다.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황해도 일대에 배치된 북한 해안포 10여 대가 포문을 개방한 상태다. 우리 함정을 타격할 태세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2010년 11월 북한이 포격한 직후 연평도 피해 현장. ⓒ시사IN 포토
2010년 11월 북한이 포격한 직후 연평도 피해 현장. ⓒ시사IN 포토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는 한반도의 화약고다. 그동안 세 차례 서해교전 그리고 연평도 포격이 있었다. 김정은 위원장의 발언으로 서해 NLL 일대에서 다시 남북한이 충돌할 위험성이 높아졌다. 김 위원장은 서해 NLL을 노골적으로 부정하고 자신들이 설정한 선을 해상국경선으로 규정했다. 그는 지난 1월15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불법 무법의 ‘북방한계선’을 비롯한 그 어떤 경계선도 허용될 수 없으며 대한민국이 우리의 영토, 영공, 영해를 0.001㎜라도 침범한다면 그것은 곧 전쟁 도발로 간주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여기서 더 나아가 2월14일, 우리 함정들이 국경선을 침범했다며 이에 대한 군사 대비를 지시한 것이다. 그는 “서해에 몇 개의 선이 존재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으며 또한 시비를 가릴 필요도 없다. 명백한 것은 해상국경선을 적이 침범할 시에는 그것을 곧 우리의 주권에 대한 침해로, 무력도발로 간주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서해에서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김 위원장의 단언과 달리 서해에 몇 개의 선이 존재하는지 그에 대한 시비를 가리고, 선을 넘는 일이 발생할 경우 충돌하지 않도록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 남북한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서해에 남북한이 서로 인정하고 합의한 선은 없다. 애초 1953년 정전협정을 체결할 때 육지에는 군사분계선을 설정했지만, 해상에는 분계선을 설정하지 않았다. 그 후에도 남북한이 서로 인정하고 합의한 선은 없으며,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선만 존재했다. 이것이 서해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해상분계선 설정하지 않은 정전협정

남한이 영토선으로 주장하고 있는 경계선은 1953년 10월 당시 클라크 유엔사령관이 선포한 북방한계선(NLL)이다. ‘북방한계선’은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유엔군과 한국군의 초계 활동을 제한하기 위한 목적에서 설정했다. 국방부가 발간한 자료에도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NLL은 애초 남북한이 서로 통보하고 인정하는, 합의한 경계선이 아니다.

하지만 1953년부터 지금까지 가장 오랫동안 기능해온 역사가 있다. 남북한 사이 서해경계선을 둘러싼 갈등이 있을 때마다 남한은 일관되게 NLL을 준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북한은 1999년 서해 해상경계선을 선포했다. 북한이 서해에서 경계선을 설정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이 경계선이 서해 5도 남쪽에 있기 때문에 2000년 서해 5도를 출입할 수 있는 서해 통항 질서 수로를 발표한다. 물론 모두 북한의 일방적인 주장이었다. 현실에서는 아무런 실효성을 지니지 못했다. 북한은 이후 2007년 또 서해 경비계선을 설정했다(〈그림〉 참조).

ⓒ연합뉴스 그래픽
ⓒ연합뉴스 그래픽

NLL은 당초 경계선으로 기능한 것은 아니지만, 남한은 오랫동안 NLL이 경계선이라고 주장해왔다. NLL을 인정하지 않는 북한은 자신들이 주장하는 경계선마저 오락가락했다. 그래서 서해에는 여러 가지 선이 존재한다고 말한 것이다.

서해 분쟁을 해결하려면 이 선들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떤 성격을 지니는지 시비를 가려야 한다. 서해 충돌을 방지할 조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이 선에 대해 굳이 시비를 가릴 필요가 없을 것이다.

서해에서 세 차례 충돌을 겪으면서 우리 국방부는 ‘서해 NLL은 반드시 사수해야 할 경계선’이라는 인식을 굳혔다. 국민들 생각도 마찬가지다. 또 NLL 자체가 가지는 역사성 때문에 우리 정부는 “NLL이 여러 관행과 역사에 따라 법 제도로 응고되었다”라는 ‘응고의 원칙’에 따라 해상경계선이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북한 김정은 위원장도 자신의 서해 선에 대한 주장을 펼치면서 시비를 가려야 한다. 시비가 가려지기 전까지는 남북한이 함께 충돌을 막기 위한 위기 관리체계를 작동시켜야 한다.

시비를 가리는 과정에서 북한이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북한은 정전협정을 체결할 때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서해에서 해상경계선을 설정하자고 주장해왔다. 달리 말하면 NLL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북한은 NLL을 인정하지 않았으므로 ‘응고의 원칙’을 적용할 수 없다고 얼마든지 주장할 수도 있다.

정전협정을 체결할 당시 공산(중국군과 북한군) 측은 해상경계선 설정을 주장했다. 정전협정 당시 육상에는 경계선을 설정했지만, 해상경계선은 두지 않았다. 유엔군 측이나 공산 측 모두 유엔군이 바다에서 제해권을 완전히 장악한 현실을 묵인할 수밖에 없었다. 대신 정전협정 제4조 60항에 ‘한 급 높은 정치회의’를 통해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약속했다. 아마도 이 정치회의에서 평화협정을 체결했다면 서해 해상경계선도 당연히 논의되어 확정되었을 터이다. 1954년 제네바에서 정치회의 소집을 시도했지만, 문도 열지 못하고 막을 내렸다. 그 상태가 지금까지 이어졌다.

2007년 10월4일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남북 공동선언문에 서명한 뒤 손을 맞잡았다. ⓒ사진공동취재단
2007년 10월4일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남북 공동선언문에 서명한 뒤 손을 맞잡았다. ⓒ사진공동취재단

남북한이 서해 해상경계선을 두고 처음으로 합의한 것은 1992년 체결된 남북 불가침 부속합의서다. “남과 북의 해상불가침 경계선은 앞으로 계속 협의한다. 해상불가침 구역은 해상불가침 경계선이 확정될 때까지 쌍방이 지금까지 관할하여온 구역으로 한다.” 이 합의도 불완전한 합의였다. 북한은 해상불가침 경계선을 계속 협의한다는 조항을 강조했다. 이 조항에 따라 해상경계선이 없으니 합의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반면 남한은 협의 과정에서 ‘지금까지 관할하여온 구역’은 NLL이라고 밝혔으니, 북한이 NLL을 해상경계선으로 인정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평행선은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해평화협력지대를 합의한 2007년 남북 정상회담에서도 좁혀지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NLL을 ‘함부로 못 건드리는 물건’이라, 서해평화협력지대라는 평화와 경제의 지도로 남북이 협력할 것을 제기했다. 황준호 박사는 이를 ‘선의 갈등’을 ‘면의 협력’으로 전환하는 발상이라고 평가했다(황준호, 〈서해 평화정착 구상과 공동어로구역 협상〉, 2022).

‘선의 갈등’과 ‘면의 협력’

하지만 선의 갈등을 완전히 해소하지는 못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서해평화협력 구상으로 ‘선의 갈등’을 피했지만, 서해평화협력 구상의 바탕에는 NLL이 자리 잡고 있었다. 북한은 이 NLL을 인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서해평화협력 구상이라는 ‘면의 협력’에 합의했던 것이다.

이후 남한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이 NLL을 포기했다는 정치 공세가 시작되었다. ‘면의 협력’으로 ‘선의 갈등’을 풀어보려는 노무현의 꿈은 이렇게 정략적인 공세 대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같이 남북이 진행해온 논의를 ‘선의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단초로 발전시켜야 한다. 남북 불가침 부속합의서에서부터 2007년 서해평화협력지대 구상에 이르기까지 불완전하지만, 남북이 의견 접근을 이룬 역사적 토대이기 때문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이런 역사적 토대를 완전히 부정하고 있다.

3월4일 자유의 방패 훈련에 참여한 해군2함대와 미2사단이 연합 해상작전능력 강화를 위한 아파치 공격헬기 전개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해군2함대 제공
3월4일 자유의 방패 훈련에 참여한 해군2함대와 미2사단이 연합 해상작전능력 강화를 위한 아파치 공격헬기 전개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해군2함대 제공

남북은 3월4일부터 3월14일까지 한·미 연합 군사훈련인 ‘자유의 방패(FS·Freedom Shield)’ 기간에 대규모 야외 기동훈련을 48회 실시한다. 지난해 23회에 비해 두 배 이상 증가했다. 그뿐만 아니라 오스트레일리아·캐나다·프랑스·영국 등 12개 유엔군사령부 회원국도 참가한다. 북한은 이에 대해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3국 어선 및 선박 단속과 해상 순찰 같은 구실을 내들고 각종 전투함선들을 우리 수역에 침범”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단속과 순찰이라는 정당한 활동이 북한에게 도발할 구실을 줄 수 있다. 대규모 야외 기동훈련을 실시하는 한·미 연합 군사훈련은 마른 잎으로 뒤덮인 거대한 숲이나 다름없다. 담배꽁초 하나가 대형 산불을 일으키는 발화점이 될 수 있다.

4·10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윤석열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윤 대통령은 3·1절 기념사에서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통일대박론’ 같은 구름 잡는 이야기만 했다.

기자명 김창수 (전 코리아연구원 원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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