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6일 윤석열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북한의 도발 가능성을 언급했다. ⓒ연합뉴스
3월6일 윤석열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북한의 도발 가능성을 언급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은 북한이 총선에 개입하기 위해 도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발언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새해 들어 몇 차례 이어졌다. 미국 국무부의 판단은 이와 다르다고 밝혀졌다. 북한이 총선 전에 도발할 조짐이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한·미 연합 군사연습에 대해서도 워싱턴의 움직임은 윤 대통령 발언과 미세한 차이를 드러냈다.

3월6일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총선을 앞두고 우리 사회를 흔들기 위한 북한의 도발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이번 한·미 연합 군사연습을 통해 한·미 동맹의 굳건한 연합 방위 태세를 확인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1월3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57차 중앙통합방위회의, 2월28일 2024년 학군장교 임관식에서도 ‘총선 전 북한 도발’을 강조한 바 있다.

3월 실시할 예정이던 한·미 연합 상륙훈련인 쌍룡훈련이 실시되지 않았다. 8월께 실시하는 한·미 연합 군사연습인 을지프리덤실드 기간에 실시하는 방안을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상반기에 쌍룡훈련을 하지 않기로 한 것은 정부 발표가 아닌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3월6일 윤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한·미 연합 방위 태세가 굳건하다고 언급했는데, 그 전날 쌍룡훈련을 실시하지 않는다는 보도가 난 것이다.

석연치 않은 한·미 쌍룡훈련 연기

뭔가 흐름이 어색하다. 최근 미국의 움직임은 윤석열 대통령 발언과 미세하지만, 지나칠 수 없는 엇박자가 나고 있다. 북한 도발 가능성을 두고 다양한 분석과 전망이 있었다. 지난 1월8일 북한 전문가인 미국의 시그프리드 헤커 박사와 로버트 칼린 미들버리 국제문제연구소 연구원이 온라인 매체 〈38 노스〉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전쟁을 전략적으로 결심했다’라는 내용의 글을 기고했다. 이 글의 취지는 북한 군사력 강화와 이에 따라 심각해지는 한반도 정세를 워싱턴이 안이하게 생각한다며 이에 일침을 놓으려는 것이었다(〈시사IN〉 제854호 ‘김정은의 말 폭탄인가, 진짜 전쟁할 결심인가?’ 기사 참조). 국내 전문가들은 김정은 위원장이 전쟁을 일으키기보다는 서해 5도 인근 수역에서 국지적 도발을 시도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국내외 전문가들의 의견은 윤석열 대통령이 말한 ‘총선 전 북한 도발’이라는 정략적 판단과는 결이 달랐다. 안보 상황에 대한 우려였다. 윤 대통령이 군 통수권자인데도 정략적으로만 접근하며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는 점이 오히려 불안 요인이라는 것이다.

외교부는 윤 대통령의 인식을 뒷받침하기 위해 한·미 외교장관회의에서도 이런 상황 인식을 한·미 사이에 공유하려고 시도했던 것으로 보인다. 2월29일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취임 이후 처음으로 미국 국무부 청사에서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을 만났다. 한국 언론은 한·미 외교 수장들이 “북한이 우리 총선과 미국 대선을 겨냥한 추가 도발에 나설 수 있다는 인식을 같이했다”라고 보도했다. 물론 이 보도가 미국 국무부 당국자를 인용한 것은 아니다. 취재원은 한국 외교부 당국자다.

정 박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담당 겸 동아시아태평양담당 부차관보. ⓒEPA
정 박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담당 겸 동아시아태평양담당 부차관보. ⓒEPA

최근 미국 국무부 당국자가 이런 보도와 다른 발언을 했다. 정 박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담당 겸 동아시아태평양담당 부차관보는 “우리가 전쟁의 벼랑 끝에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근래에 공격이 있을 것이라는 신호나 증거는 보이지 않는다. 김정은 위원장이 전쟁을 일으키는 것에 관심이 있다고 보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정 박 부차관보가 워싱턴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팟캐스트 프로그램 ‘불능 국가(Impossible State)'에 출연해서 한 말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말한 ‘총선 전 북한 도발’과는 확연히 다르다. 한·미 외교 수장이 북한의 총선 전 도발에 대해 인식을 같이했다는 한국 정부 당국자의 언급을 부정하는 발언일 수도 있다. 미국 관리들이 정책 추진 환경을 만들기 위해 민감한 사안을 싱크탱크에 흘리는 것은 낯설지 않은 일이다.

정 박 부차관보의 이 발언에는 김정은 위원장의 벼랑 끝 전술을 잘 이해하고, 워싱턴은 평양의 의도에 이끌려 벼랑 끝에 서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정 박을 비롯한 워싱턴 관리들이 최근 북한에 유화적인 발언을 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 비롯되었다.

3월20일 경기도 연천군에서 실시된 한·미 연합 제병협동 도하훈련. ⓒ연합뉴스
3월20일 경기도 연천군에서 실시된 한·미 연합 제병협동 도하훈련. ⓒ연합뉴스

3월4일 미라 랩후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대양주 선임보좌관은 북한 비핵화와 관련해 “중간 조치를 고려할 것”이라고 처음 밝혔다. 이 발언을 받아 정 박 부차관보도 ‘중간 조치’는 당연하다며, 워싱턴 기류에 변화가 있음을 시사했다.

정 박 부차관보가 CSIS 팟캐스트에 출연해서 한 발언은 미국 정부가 원론적으로 밝혔던 ‘북한에 외교 문이 열려 있다’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번에는 초보적이지만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했다. 우선 눈에 띄는 대목은 비핵화 중간 조치와 관련해 ‘제재 문제’를 북한과 이야기할 수 있다고 밝힌 점이다. 북한을 비핵화 대화로 끌어내기 위해 ‘제재 완화’를 가지고 협상하겠다는 뜻이다.

실효성 여부를 떠나 워싱턴이 처한 상황을 짐작해볼 수 있다. 워싱턴은 헤커 박사의 기고문대로 북한 군사능력 강화에 대한 관리 필요성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정 박 부차관보는 “오판이나 우발적 확전 위험을 줄이기 위한 위협 감소를 포함해 제재나 신뢰 구축, 인도주의적 협력에 관해서도 얘기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코로나19 이후 처음으로 국경 개방을 했다는 점을 환영하면서 “인도주의적 협력으로 이어지길 희망한다”라고 말했다.

정 박 부차관보의 제안은 초보적 수준이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독기를 품은 김정은 위원장을 대화 테이블로 이끌 방안으로 부족해 보인다. 그런데도 이런 방안을 모색하는 워싱턴과 ‘오직 힘만 쓰는 평화’에 몰두하는 용산 사이에 거리가 생기고 있어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런 워싱턴의 흐름은 주한 미군사령관 발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한·미 연합사령관을 겸하고 있는 폴 러캐머라 사령관은 3월11일 〈월스트리트저널〉 인터뷰에서 “과거에는 북한의 핵 능력 개발 중단에 전념했다. 지금 초점은 김정은 위원장의 핵무기 사용을 막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발언은 북한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전제한 것이다. ‘확장억제’뿐 아니라 다른 수단도 검토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그것이 바로 정 박 부차관보의 입을 통해 흘러나온 셈이다.

3월13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북한군 탱크 연합 부대 훈련을 참관했다. ⓒ평양조선중앙통신
3월13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북한군 탱크 연합 부대 훈련을 참관했다. ⓒ평양조선중앙통신

이런 워싱턴의 움직임에서 한국 정부와 차이를 발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워싱턴 싱크탱크에서 비슷한 지적이 나오고 있다. 앤킷 팬다 카네기국제평화기금 선임연구원은 〈월스트리트저널〉 인터뷰에서 “한·미 두 나라 사이에는 빛 샐 틈이 꽤 있다”라고 지적했다. 정 박 부차관보와 러캐머라 사령관의 발언으로 보면, 이런 분석은 무리가 아니다.

한·미 간에는 김정은 위원장의 벼랑 끝 전술 대응에서도 ‘빛 샐 틈’이 생기고 있다. 워싱턴은 가파른 벼랑으로 끌고 가려는 김정은 위원장의 술수를 읽고 있다. 반면 용산은 자칫 김 위원장의 술수에 말리기 딱 좋은 ‘힘만 쓰는 평화’를 매일 외친다.

쌍룡훈련을 연기하는 과정에서도 ‘빛 샐 틈’이 보였다. 윤석열 정부는 쌍룡훈련을 한·미 연합 군사연습과 연계해 사단급 규모로 확대 시행하겠다고 말했다. 미군 일각에서도 쌍룡훈련 부활을 기대한다는 분위기가 전해졌다. 훈련 장소인 포항 해안은 미국 해병대가 상륙훈련을 하기에 최적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인 2022년 7월 처음 열린 한·미 국방장관회담에서 쌍룡훈련 재개를 합의했다. 지난해 쌍룡훈련은 5년 만에 재개되었다. 지난해 3월20일부터 4월3일까지 보름간 진행한 이 훈련에 한·미 양국 군병력 1만3000여 명이 동원되었다. 미국 본토에서 제1해병 원정군이 참여하고, 영국 해병대 코만도 1개 중대도 참여했다. 영국 해병대가 참여한 것은 처음이다. 1만명 이상 사단급이 참여한 상륙훈련은 이명박 정부 때인 2016년 이후 처음이다.

쌍룡훈련은 통상 6단계로 진행한다. 2023년에도 전개 및 준비(3월20~23일)→수송함 병력 탑재(3월24~26일)→여건 조성 작전연습(3월27~28일)→결정적 행동(3월29일~4월1일)→철수 탑재(4월1~2일)→사후 강평(4월3일) 등 6단계로 진행했다. 이 훈련의 핵심은 4단계 ‘결정적 행동(decisive action)’인데, 한·미 해군과 해병대가 연합해 공중과 해상에서 상륙 돌격 훈련을 실시했다.

2023년 쌍룡훈련에 대해 북한은 강경하게 반응했다. 북한은 “미국과 남조선의 전쟁 광기는 연합 상륙훈련 쌍룡에 병행 돌입한 이후 최절정으로 치닫고 있다”라며 “핵을 두려워할 줄 모르고 날뛰는 자들에게 만약 전쟁 억제력이 효력이 없다면 우리의 핵이 그다음은 어떻게 쓰이겠는가 하는 것이야 너무도 명백할 것이다”라고 반발했다. 북한은 방어보다 공세 성격이 강한 쌍룡훈련을 시작하던 2012년부터 ‘북침 전쟁 연습’이라며 비난했다.

2012년 첫 쌍룡훈련 당시 짝수 해에 열리는 한·미 연합 군사연습에만 공식적으로 쌍룡훈련이라는 명칭을 썼다. 짝수 해에 파견되는 미국 해병대의 병력과 장비가 홀수 해에 비해 통상 2배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쌍룡훈련을 할 때마다 규모가 점차 커져서 2016년에는 사단급 병력이 동원되는 최대 규모 상륙훈련을 했다. 쌍룡훈련은 한·미 연합 야외 기동연습인 독수리훈련(FE)과 연계해 실시해왔다. 문재인 정부는 평창 동계올림픽 이후인 2019년 3월2일 연대급 이상 대규모 한·미 연합 군사연습은 한·미 양국 군이 단독 진행하기로 합의했다. 당시 브룩스 주한 미군사령관과 트럼프 대통령이 동의해 사실상 한·미 연합 군사연습 규모를 축소했다. 쌍룡훈련도 중단했다.

윤석열 정부가 쌍룡훈련을 재개한 것은 문재인 정부 정책을 부정하는 차원이었다. 그런데 올해 갑자기 쌍룡훈련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실시되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가 한반도 위기 상황을 관리하기 위해 미국과 협의해 상륙훈련을 연기하기로 한 것이라면 의문을 제기할 수 없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그동안 ‘힘만 쓰는 평화’만 강조해왔다. 올해 상반기 쌍룡훈련이 연기되었다는 보도가 나왔는데도, 윤 대통령은 한·미 연합 군사연습을 통해 굳건한 한·미 관계를 확인할 것이라고 국무회의에서 발언했다. 국방부는 뒤늦게 상반기에는 실시하지 않는다는 알쏭달쏭한 해명만 했다. 윤석열 정부가 그토록 재개를 강조해 2023년 최대 규모로 진행했던 쌍룡훈련이고, 짝수 해에는 훈련 규모가 더 커졌던 점을 복기한다면, 쌍룡훈련을 실시하지 않은 점에 대한 의구심은 커진다.

사격 자세 취하고 탱크 타는 김정은

지난 1월부터 워싱턴 일각에서 제기된 한반도 전쟁 시나리오에 대한 우려 때문에, 미국이 한반도 상황을 관리하기 위해 쌍룡훈련을 연기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와 관련해 합동참모본부 관계자는 한 언론에 “미국 해병대가 동시다발적으로 원정 훈련에 참여함에 따라 병력 운용 사정이 여의치 못해 쌍룡훈련을 할 수 없게 됐다”라고 말했다. 미국 해병대는 우크라이나, 가자지구, 타이완이라는 3개 전선을 동시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한반도는 우선순위에서 밀렸다는 뜻이다.

우선순위 문제라면 윤석열 대통령이 한·미 연합 군사연습을 통해 굳건한 한·미 관계를 확인한다는 국무회의의 발언은 우스꽝스럽다. 미국이 북한 도발 위협에 대한 관리 방안을 만들기 위한 차원에서 쌍룡훈련을 연기한 것이라면, 윤석열 정부에게는 ‘엎친 데 덮친 격’이다. 북한과 러시아, 북한과 중국 관계가 강화되고, 일본도 북한과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에 ‘몰빵’하는 윤석열 정부의 외교에 금이 가는 것이다. 아직 정부는 아무런 말이 없다.

3월6일 김정은 위원장이 북한군 서부지구 중요 작전훈련 기지를 방문했다. ⓒ평양 조선중앙통신
3월6일 김정은 위원장이 북한군 서부지구 중요 작전훈련 기지를 방문했다. ⓒ평양 조선중앙통신

3월4~14일 진행한 한·미 연합 군사연습인 ‘자유의 방패(FS)’ 기간에 북한의 대남 도발은 없었다. 서해 5도 일대에서도 북한이 해안포를 노출하거나 방해 전파를 발사하는 수준이었다. 북한 도발이 없었던 것이 쌍룡훈련 연기 때문인지, 3월11일 끝난 중국의 양회(전국인민대표자회의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때문인지, 3월18일 실시한 러시아 대선 때문인지 알 수는 없다.

물론 이 기간에 김정은 위원장이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다. 김 위원장은 직접 현장에서 군사 시범을 보이기도 했다. 김 위원장의 이런 행동은 북한 군부를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김정은 위원장이 벼랑 끝 전술을 사용하며 쏟아낸 거친 말은 작년 연말부터 계속되었다. 거칠기만 했던 그의 말이 최근에는 ‘가시’가 조금 빠진 듯하다. 전쟁을 대비한다는 말을 계속하지만, ‘영토 평정’같이 노골적으로 침략을 표시하는 단어는 사용하지 않고 있다.

말 대신 행보가 심상치 않다. 한·미 연합 군사연습을 계기로 김정은 위원장은 연일 북한군 군사훈련장에 등장했다. 그는 소총을 들고 직접 사격 자세를 취하거나, 탱크를 운전하겠다며 탑승하기도 했다.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 때는 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과거 김정일 위원장은 한·미 연합 군사연습 기간에 종적을 감추기도 했다.

이런 김정은 위원장 행보를 보면 북한의 위협은 여전하다. 김 위원장이 의도하는 벼랑 끝 전술일지라도, 한반도를 바람 앞의 촛불로 내미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윤석열 정부가 ‘힘만 쓰는 평화’를 외친 결과는 안보 무능으로 이어지고 있다.

기자명 김창수 (전 코리아연구원 원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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