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14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상대해상 미사일 시험발사를 지도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
2월14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상대해상 미사일 시험발사를 지도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교묘하게 섞어 쓰는 언어 때문에 우리 사회가 혼란스럽다. 김정은 위원장 처지에서는 나쁘지 않은 상황일 것이다. 아니 그는 환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과 함께 우리를 조롱하는 대화를 나누고 있을 수도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해 연말부터 연일 남북 관계를 ‘교전 중인 두 개의 적대국가’로 설정하는 말을 쏟아냈다(〈시사IN〉 제854호 ‘단순 말 폭탄인가, 진짜 전쟁할 결심인가’ 기사 참조). 그의 발언 가운데 우리 사회가 혼돈을 겪고 있는 단어는 ‘영토 평정’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최근 세 차례에 걸쳐 이 단어를 사용했다. 남한을 군사적으로 점령하겠다는 엄포다.

“유사시 핵 무력을 포함한 모든 물리적 수단과 력량(역량)을 동원하여 남조선 전 령토(영토)를 평정하기 위한 대사변 준비에 계속 박차를 가해 나가야 하겠습니다(2023년 12월30일 노동당 제8기 제9차 전원회의 보고)” “조선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에는 대한민국을 완전히 점령, 평정, 수복하고 공화국 령역(영역)에 편입(1월15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하겠다고 말하는가 하면, “제1의 적대국가, 불변의 주적으로 규정하고 유사시 그것들의 영토를 점령, 평정하는 것을 국시로 결정(2월9일 북한군 창군 76돌 연설)”했다고 거듭 말했다.

김정은 위원장의 ‘령토 평정(영토 평정)’이라는 엄포에 한국 사회는 김일성 주석의 침략 야욕이 담긴 ‘국토 완정’,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과거 언급했던 ‘영토 완정’을 묶어, 모두 동일한 의미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완정’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이 해석은 번지수가 틀렸다. 이런 잘못된 해석이 도리어 우리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최근 사용한 ‘영토 평정’은 분명 도발적 언어다. 물론 그는 전쟁이 일어나는 유사시를 조건으로 영토 평정을 주장했다. 이 경우는 군사작전에 해당한다. 최고지도자가 공개적으로 떠들 일이 아니다. 김 위원장의 말대로 자위적 목적이라면 내부에서 군사 대비 태세를 갖추면 그만이다. 이렇게 공개적으로, 그것도 여러 차례 강조하는 것은 숨은 의도가 있다.

노동당 제9차 당대회가 2026년 1월 열릴 예정이라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김정은 위원장의 숨은 의도를 가늠할 수 있다. 노동당 당대회는 서방 시각에서 볼 때 일종의 대의원 총회다. 북한 노동당의 최고 의사결정기구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이 지금까지 노동당 당대회 일정을 5년 전에 미리 밝힌 적은 한 차례도 없었다. 노동당 규약에 5년마다 당대회를 하기로 되어 있지만 이를 지키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북한이 2021년 1월 제8차 당대회 개최 이후 제9차 당대회를 2026년에 열겠다고 미리 밝힌 것 자체가 매우 특이한 일이다.

2019년 북·미 하노이 정상회담 좌절은 김정은 위원장에게 트라우마를 남겼다. 이후 그는 절치부심하고 체제 생존을 위해 2026년을 1차 목표로 둔 계획을 나름대로 세웠다. 〈노동신문〉은 이를 ‘웅대한 작전(great operation)’이라고 치켜세웠다(〈시사IN〉 제852호 ‘교전국 관계라는 낯설고 심각한 위기’ 기사 참조).

웅대한 작전이 추구하는 바는 군사력 강화와 경제발전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취임사와 다름없는 2012년 4월 김일성 출생 100주년 기념 연설에서 “우리 인민이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 하며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리게 하자는 것이 우리 당의 확고한 결심”이라고 강조했다.

웅대한 작전은 사실 이 결심을 허문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웅대한 작전 구상 이후 실제로 2019년 12월30일 노동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허리띠를 졸라매더라도 기어이 자력 부강, 자력 번영”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웅대한 작전은 북한판 ‘와신상담’이다. 장작 위에 누워서 잠을 자고 쓰디쓴 쓸개를 맛보며 허리띠 졸라매야 하는 것이다.

김 위원장이 지난해 연말부터 통일을 포기하고 남한을 주적으로 삼으며 ‘영토 평정’을 내세우는 도발적인 발언을 하는 것도 이 같은 배경에서 기인한다. 2026년까지 목표를 달성하려면 외부를 협박하고 내부는 다그쳐야 한다. 김정은 위원장의 이런 발언은 윤석열 정부가 ‘힘만 쓰는 평화’에 입각해 펼치는 대북 강경책과 충돌할 소지가 있다. 한반도 군사적 위기 고조는 이 같은 남북 충돌에서 비롯될 가능성이 크다.

〈손자병법〉에 나오듯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로움이 없다’. 김정은 위원장이 주장한 영토 평정을 ‘국토 완정’ ‘영토 완정’과 같은 뜻으로 해석하는 것은 위태롭다. 먼저 ‘국토 완정’은 김일성 주석이 1948년부터 사용했던 용어다. 말 그대로 ‘남조선 혁명’을 위해 남한을 군사적으로 점령하겠다는 뜻이다.

김일성 주석은 북한 정권 수립 다음 날인 1948년 9월10일 ‘국토 완정’을 언급한다. 북한은 〈조선말대사전〉에서 ‘국토 완정’을 “한 나라의 영토를 단일한 주권에 완전히 통일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김 주석은 1949년, 1950년 신년사에서 “모든 것을 국토 완정을 위해 바치자”라며 더욱더 ‘국토 완정’을 강조했다. 그는 국토 완정을 해서 민족 통일을 이루는 것을 신생국가 북한의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북한이 새로 개발한 지상대해상 미사일 시험발사 장면.  ⓒ조선중앙통신
북한이 새로 개발한 지상대해상 미사일 시험발사 장면. ⓒ조선중앙통신

슬그머니 사라진 김일성 ‘국토 완정’

김일성 주석의 ‘국토 완정’은 ‘민주기지론’을 근거로 하고 있다. 김일성 주석은 북한 정부가 수립도 되기 전인 1945년 12월17일 일찌감치 북한을 ‘통일된 민주주의적 독립국가를 위한 강력한 민주기지’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북한은 민주기지에 대해 “혁명이 진행되는 나라에서 다른 지역보다 먼저 혁명이 승리하고 개혁이 실시되어 앞으로 전국적 혁명 과업을 수행하기 위한 근거지가 되는 지역”이라고 정의했다. 즉 북한을 기지로 해 전국적인 범위에서 혁명을 완수하겠다는 것이고, 이것이 바로 ‘국토 완정’이다.

한국전쟁은 민주기지론에 따른 국토 완정과 필연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북한이 한국전쟁을 ‘조국해방전쟁’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김일성 주석은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민주기지론을 ‘남조선혁명론’으로 변경한다. 민주기지론을 포기했다고 볼 수 없지만,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남한 혁명 역량에 대한 비중을 높였다고 할 수 있다. 국토 완정이라는 용어는 슬그머니 사라질 준비를 했다.

1970년대에는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 혁명’ 전략을 만들고 이를 노동당 규약에 명시했다. 그러면서 연방제 통일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때까지 연방제는 통일로 가는 과도기 형태였다. 북한은 1980년 통일국가의 완성된 형태라며 ‘고려민주연방제 통일’을 주장했다. 북한이 1980년부터 제안한 고려민주연방제 통일은 ‘고무줄’ 같은 것이다. 남한 국력이 강화될 경우에는 연방제에 의해 북한의 체제 보장을 모색하고, 북한 국력이 강할 때는 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 혁명노선에 따라서 남조선 혁명을 시도하는 것이다.

북한의 이런 의도는 1990년대에 들어오면서 사실상 실현 불가능한 공상거리가 되어버렸다. 현실 사회주의가 붕괴하고, 남한과 국력 차이가 크게 벌어졌다. ‘고려민주연방제 통일방안’이나 ‘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 혁명론’은 북한 노동당 당대회 문건이나 노동당 규약에만 남았다. 실효성 없는 문구로 퇴색해갔다.

사실 민주기지론에 근거한 국토 완정은 이미 1970년대 접어들면서 일찌감치 역사의 기록 속으로 사라졌다. 심지어 김정은 위원장은 지금 ‘고려민주연방제 통일방안’이나 ‘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 혁명론’을 모두 포기하는 것을 넘어 부정해버리고 있는 실정이다.

북한은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 핵과 미사일과 관련한 입장을 밝히며 영토 완정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북한은 ‘나라의 주권과 영토 완정을 수호’하기 위해 전략무기를 개발했다는 것이고(2017년 11월29일 북한 정부 성명), 핵무력도 ‘국가주권과 영토 완정, 인민의 생명 안전을 수호하는 국가방위의 기본 역량’이라는 것이다(2022년 9월8일 북한 핵무력법).

여기서 북한이 사용한 ‘영토 완정’은 적화통일의 의미보다는 일반적인 국가 권리인 주권과 영토를 지킨다는 뜻이다. 북한이 다른 나라에 외교적으로 표현한 사례는 이를 더 분명히 드러낸다. 김정은 위원장은 시진핑 중국 주석에게 ‘사회주의 현대화 국가를 전면적으로 건설하며 국가의 주권과 영토 완정을 믿음직하게 담보하기 위한 위업 수행’을 바란다는 의사를 전달하기도 했다(2022년 10월1일 김정은 위원장이 시진핑 주석에게 보낸 축전). 러시아 국민들은 ‘자기 나라의 안전과 영토 완정을 수호할 의지와 능력을 지녔다’고 말했다(2022년 12월23일 북한 외무성 대변인).

1월10일 윤석열 대통령이 해병 청룡부대 천무 진지에서 대비 태세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대통령실 제공
1월10일 윤석열 대통령이 해병 청룡부대 천무 진지에서 대비 태세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대통령실 제공

밖으로는 협박, 안으로는 기강 잡기

‘영토 완정’은 주권국가가 다른 국가로부터 자국의 국경과 모든 영토를 방어할 권리를 갖는 국제법의 원칙이다. 그래서 2022년 10월 유엔총회에서 143개국이 찬성한 결의안 표제가 ‘우크라이나의 영토 완정(Territorial integrity)’이었다. 북한 핵무력법에서 명시하고 있는 ‘영토 완정’의 영문 표기도 이와 동일하다.

‘영토 완정’이라는 단어가 중국어에서 온 것이라 우리에게 익숙한 말은 아니다. 영토 평정이나 국토 완정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북한이 사용해온 이 세 단어는 그 뜻과 의미가 분명히 다르다. 김일성 주석이 사용한 국토 완정은 힘에 의해 통일을 이루겠다는 공격적인 언어다. 김정은 위원장이 사용했던 영토 완정은 국제법적 원칙에 해당하며, 일반적으로 쓰는 단어다.

김정은 위원장이 최근에 사용하는 ‘영토 평정’은 또 다른 뜻을 지니고 있다. 김 위원장이 말했던 단어는 유사시 남한을 군사적으로 점령하겠다는 위협적인 뜻이다. 하지만 맥락 속에서 살펴보면 다른 의미가 있다. 그의 메시지는 밖으로 협박을 하고, 안으로 허리띠를 조이라는 의미다.

김정은 위원장의 이런 말 폭탄을 김일성 주석이 사용했던 ‘국토 완정’과 같은 공격적인 단어로 받아들인다면 밖을 향해 협박하려는 그의 의도가 먹혀드는 결과를 초래한다. 밖을 향한 그의 의도가 먹혀 호들갑스럽게 대응하면 김정은 위원장은 김여정 부부장과 함께 우리를 비웃을 것이다. 우리의 호들갑은 북한 주민들에게 대외적인 긴장 조성 요인으로 작용해 더욱더 허리띠를 졸라매도록 하는 채찍이 될 수 있다. 국제사회는 ‘코리아 리스크(Korea Risk)’를 떠올릴 것이고, 그러는 사이 대한민국 자산가치가 저평가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는 속도를 낼 것이다.

국제사회는 이미 한국이 선진국 문턱을 넘어섰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집권 세력조차 한국이 하락하고 있다는 ‘피크 코리아(Peak Korea)’를 입에 담는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책임감도 엿볼 수 없다. 우리의 현주소다.

기자명 김창수 (전 코리아연구원 원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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