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일 죽음을 입는다

올든 위커 지음, 김은령 옮김, 부키 펴냄

“유행은 짧고 부작용은 길다.”

‘넘치는 생산, 빠른 폐기’를 생존 전략으로 택한 패션업계는 지구 곳곳에 옷 더미 쓰레기를 쌓아나갔다. 놀랍게도 의류업계는 또 다른 섬뜩한 방식으로 인류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독성 의류’는 2016년 미국의 한 항공사에서 새 유니폼을 지급받은 승무원들이 발진·호흡곤란·갑상선 질환 등을 동시다발적으로 호소한 일을 계기로 세상에 알려졌다. 탐사 전문 패션 저널리스트인 저자가 화학산업 및 일부 패션 회사가 감추려 한 진실을 담았다. 섬유조직과 원단 염색 등 각 공정에 쓰이는 유해물질의 종류, 독성 의류가 유발할 수 있는 질병에 대한 생생한 기록을 보면 옷장을 여는 게 망설여질지도 모른다. 유해물질 없는 옷 고르는 법을 소개한 마지막 장은 특히 꼼꼼히 봐둘 만하다.

 

로힝야 제노사이드

이유경 지음, 정한책방 펴냄

“미얀마는 로힝야의 과거를 왜곡하고, 현재를 짓누르며, 미래를 ‘집단 살해’하는 중이다.”

국제분쟁 전문기자로 활동해온 저자는 말한다. 여러 분쟁을 취재해왔지만 로힝야처럼 완벽하게 고립되고, 이토록 처절하게 짓밟힌 커뮤니티를 본 적이 없다고. 미얀마는 2021년 군부 쿠데타와 시민 저항으로 국내에서 주목받았지만 이미 그 전에 로힝야 제노사이드라는 큰 비극을 겪었다. 우리의 경험을 세상 분석의 잣대로 삼으려는 ‘K-중화론’적 습성을 비판해온 저자는 로힝야 비극의 복잡다단한 역사를 고유하고 심도 있게 파헤친다. 권력은 소수자들을 어떻게 희생양 삼아 정권을 유지하는가. 국가가 특정 집단을 차별해도 된다는 신호를 끊임없이 보내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로힝야 제노사이드’가 우리에게 보내는 경고이기도 하다.

 

상나라 정벌

리숴 지음, 홍상훈 옮김, 글항아리 펴냄

“64괘는 왜 짝을 이루는가?”

읽으며 깜짝깜짝 놀라다가 저자의 경력까지 확인하게 되는 책들이 있다. 〈상나라 정벌〉이 그렇다. 전설로 알고 있었던 ‘주나라의 상나라 정벌’을 고고학적 자료와 갑골문 연구를 통해 규명한 역사서다. 상나라는 인신공양을 종교적 수준으로까지 격상시킨 ‘카니발리즘 국가’였다. 주나라 문왕은 상나라의 인신공양에 바칠 인간 제물을 잡으러 다니던 사냥꾼이었는데, 자신마저 희생될 위기를 넘긴 뒤 저술한 책이 그 유명한 점술서 〈역경(易經)〉이라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역경〉은 문왕의 개인적 경험과 상나라 정벌 계획을 담은 책이다. 주나라는 상나라를 멸한 뒤 인신공양을 근절하고 체계적 과거사 은폐로 ‘새로운 황하 문명’을 이뤄냈다. 공자가 주나라를 그토록 숭앙했던 이유다. 중국과 타이완에서 출간 1년 만에 인문 역사서로서는 드물게 40만 부 판매라는 기록을 세웠다.

 

별을 향해 떠나는 여행자를 위한 안내서

레스 존슨 지음, 이강환 옮김, 문학수첩 펴냄

“성간 여행은 가능하다. 그저 지극히 어려울 뿐이다.”

1990년대 말 미국 항공우주국(나사)은 ‘성간 추진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지금까지 인류가 직접 가본 가장 먼 곳은 달이다. 태양계를 벗어나 다른 별로 가는 성간 여행이 가능한 날이 올까? 가장 가까운 별인 프록시마 센타우리는 약 4.2광년 떨어져 있다. 빛의 속도(초속 30만㎞)로 4년 넘게 날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1977년 발사된 보이저 1호는 현재 태양과 지구 거리의 156배인 156AU(천문단위)만큼 우주를 항행했다. 만약 보이저호가 프록시마 센타우리로 간다면 약 7만 년이 걸린다고 한다. 핵융합, 반물질, 레이저 광선 에너지 등 단순히 속도를 높이는 접근과 차원을 달리하는 최첨단 공학 기술이 필요하다. 나사 프로젝트 책임자였던 물리학자 겸 SF 작가가 썼다.

 

한국 요약 금지

콜린 마샬 지음, 어크로스 펴냄

“프라이드치킨은 한국에서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다.”

저자 이름만 보고 번역서라고 생각했는데, 옮긴이가 없다. 어떻게 된 거지? 저자는 10년째 한국에 체류하며 〈뉴요커〉 등에 한국에 대한 글을 기고하는 칼럼니스트다. 이 책은 저자가 영어로 쓰고서 편집부와 함께 한국어로 고친 글과, 처음부터 한국어로 쓴 글로 구성돼 있다. 출근길 만원 지하철부터 프라이드치킨, 저출생 문제를 거쳐 황석영까지 각종 소재와 공간을 종횡무진으로 넘나들며 ‘외부인의 시선’으로 본 한국의 모습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한국 요약 금지’라는 제목처럼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 복잡하고 모순적인 나라를 온전히 담아내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한국 사회를 읽어내는 또 하나의 해설서가 되기에 충분하다.

 

엄마의 역사

세라 놋 지음, 이진옥 옮김, 나무옆의자 펴냄

“명사를 동사로, ‘어머니’라는 정체성을 ‘엄마 노릇 하기’라는 행동으로 바꿔보라. 전망이 아주 다르게 보일 것이다.”

역사의 관심사가 전쟁·정치·혁명인 것은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렇다면 ‘어머니’라는 주제는 어떤가. 역사학자인 저자는 둘째 아이를 막 낳은 자신의 삶이 던진 질문 앞에 선다. ‘어머니가 된다는 것이 예전에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일견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일상의 역사는 일기와 편지, 의학 안내문이나 의복 아이템 같은 토막으로 존재했다. 부족한 사료의 빈틈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상상력이야말로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이다. 자신의 경험 위에 겹쳐본 역사는 내밀한 동시에 생생하고 광범위하다. 아이를 일고여덟 명씩 낳았던 17세기에서 아이를 가질지 말지 결정할 수 있게 된 20세기까지, 어머니라는 존재로 역사를 톺아보고 요동치는 미래를 전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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