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은 여당이던 2019년 12월, 소수당이 비례대표 의석을 더 많이 가져가도록 하는 선거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지역구 의석을 많이 얻은 민주당이 비례대표 의석은 좀 손해를 보더라도, 진보정당을 의회에 더 많이 진출시켜서 ‘진보파 전체’를 다수파로 만들자는 기획이었다. 거대 양당이 위성정당을 만들며 개혁의 취지는 사라졌지만, ‘비례대표제를 강화해 다당제로 가야 한다’는 논의는 주로 진보 진영에서 꾸준히 제기돼왔다.

미국 예일 대학의 두 정치학자가 쓴 〈책임 정당〉은 이런 통념을 깨는 책이다. ‘크고 강한 두 개의 정당’이 경쟁하는 체제야말로, 정당들이 핵심 지지층의 단기적 이익을 넘어 ‘다수 유권자’의 ‘장기적 이익’을 고려하게 만드는 데 더 좋다고 주장한다. 많은 이들이 유럽을 찬미하지만, 저자들이 보기에 “노동 및 진보적 분배와 관련해 비례대표제가 지니는 장점은 앞으로 축소될 가능성이 있다”. 세계화와 기술 발전이 조직 노동을 약화시키고 있어서다. 각국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주요 지지 기반이 사라지면서 이들이 여러 좌파 정당으로 분열하는 동안, 비례대표제는 우파 포퓰리즘에 자리를 내어주고 있다.

저자들은 미국이 양당제여서가 아니라, 미국의 두 정당이 약해서 문제라고 주장한다.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 선거가 따로 진행되고, 당 지도부 선출이나 후보 선정에 당원들이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면서 정당의 규율이 무너졌다. 정당의 의사결정을 ‘분권화’하는 게 좋은 개혁이라고 흔히 생각하지만, 그런 변화가 극렬 소수에게 힘을 실어 당을 더 약하게 만든다. 대통령실이 의회 위에 군림하고 팬덤 당원이 후보 선출을 좌지우지하는 현실을 고려할 때, 어쩌면 한국의 거대 양당도 크기만 클 뿐 지나치게 허약해서 다수 시민을 대표하는 데 실패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 시대 정치를 토론하기에 최고의 책이다.

기자명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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