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회사 계정으로 메일 한 통이 날아왔다. “기사에 코멘트를 해줄 변호사, 회계사, 세무사, 노무사가 필요하신가요?” 메일의 요지는 간단했다. 기사에 들어갈 ‘전문가 코멘트’를 손쉽게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는 것이다. 전형적인 기사는 말미에 전문가 인터뷰 한두 마디를 덧붙여 사건의 의미를 해설하는데, 해당 업체는 이러한 ‘간단한’ 코멘트를 줄 수 있는 ‘사(士)자 직업인’을 대신 섭외해주겠노라 말했다.
업체는 노골적으로 자신의 서비스를 홍보했다. “타이틀만 있다면 누가 대답을 해주든 빠르고 취재 방향에 맞게 답을 해줄 사람이 가장 필요”하지 않으냐고 말이다. 〈미디어오늘〉이 이를 비판적으로 보도하자 업체는 더욱 뻔뻔하게 나섰다. 법률에 저촉되는 것은 없으며, 자신들의 서비스를 이용할지는 기자 개인의 자유에 달린 일이라는 논리를 내세웠다. 심지어 “인류는 보다 편한 것을 원하게끔 진보”해왔다며 “멘트를 쉽게 구하면 안 되느냐”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깊이 생각해볼 필요도 없다. 해당 업체의 제안은 천박하게 느껴졌다. 기자 입맛에 맞춰 대답하는 전문가의 코멘트는 필요하지도 않거니와, 그런 코멘트를 주는 이들은 전문가라는 명칭이 아까운 부류다. 정체를 제대로 알 수 없는 전문가의 말을 인용한다면 기사의 신뢰도가 오히려 더 떨어질 뿐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 메일은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세상에 저런 식으로 기사 쓰는 기자가 어딨나”라고 코웃음치기엔 비슷한 일이 실제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각종 매체 소속 기자들이 모여 있는 단체 메신저방에는 종종 “○○○ 관련 코멘트해줄 수 있는 사람 연락처 구합니다”라는 글이 올라온다. 가끔은 어떤 주제를 취재하는지도 밝히지 않고 “멘트 잘 해주시는 ○○학과 교수 연락처”를 구하기도 한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으로부터 이른바 ‘전문가’를 소개받는 과정에 제대로 된 검증이 끼어들긴 매우 어려울 것이다. 소개팅을 할 때도 그런 식으로 상대방을 소개받진 않는다. 뜬금없이 날아온 메일 한 통은 거울이 되어 우리의 모습을 비추는 듯했다. 모욕감과 수치심을 피할 길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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