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원 그림
ⓒ한성원 그림

비를 피해 들어간 서점에서 〈비바레리뇽 고원〉(매기 팩슨 지음, 김하현 옮김, 생각의힘)을 만났다. 짐이 많았는데도 500쪽 넘는 책을 사고 말았다. “폭력에 저항하고 고집스레 예의를 잃지 않는 공동체가 존재할 수 있을까?”라는 저자의 질문에 혹했기 때문이다. 전쟁이 아니라 평화를 연구하고 싶다는 저자처럼 나 역시 전쟁과 폭력에 대해 더 이상 알고 싶지 않았다. 인간이 얼마나 나빠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라면 이미 알 만큼 안다. 그 앎이 전쟁이나 폭력을 끝내는 데 아무 도움도 못 된다는 것도. 이제 나는 평화에 대해 알고 싶다. 내 안의 미움으로 숨이 막히는 이즈음, 평화를 갈구하는 것은 결국 내가 살기 위해서다.

인류학자 매기 팩슨은 책에서 천국처럼 아름답지만 추상적인 평화가 아니라 실재하는 평화의 사례를 찾아 나선다.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평화를 되찾을 수 있을지, 평화가 어떤 관습에 달려 있는지” 알아내기 위해 그가 찾은 곳은 프랑스의 비바레리뇽 고원. 이 외딴 마을은 16세기 종교전쟁 때는 개신교도를, 18세기 공포정치 때는 가톨릭 신부를 보호했던 곳이며, 나치가 발호하던 1940년대에는 마을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수많은 이방인을 구해준 곳이었다. 팩슨이 찾아갔을 때 그곳은 여전히 세계 각지에서 온 난민과 아이들에게 국적, 종교, 이념 등과 상관없이 거처와 교육을 제공하는 환대의 땅이었다.

이 선함의 뿌리를 찾기 위해 저자는 나치 시절 그곳에서 피난민 아이들을 지키다 죽은 다니엘 트로크메의 행적을 좇는 한편, 고원의 ‘망명 신청자 환영 센터(CADA)’를 통해 마을 주민과 난민들을 만난다. 그리고 만남이 깊어질수록 저자는 흔들린다. 어느 날 그에게 한 난민이 말한다. “쿠란에서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세 가지 있어요. 첫째, 죄는 3일이 지나면 반드시 용서하거나 잊어야 한다. 둘째, 그래야 할 70가지 이유가 있을 때만 남을 판단할 수 있다. 셋째, 우리는 반드시 서로를 사랑해야 한다. 그게 다예요. 그게 우리의 의무예요.” ‘평화의 작동 방식’을 밝혀내겠다는 인류학자로서의 포부는 그렇게 사람을 사랑하라는 인간으로서의 소명으로 대체된다.

팩슨이 긴 여정을 통해 찾은 평화의 비결은 새로운 원리라기보다 익숙하고 오래된 진리다. 모든 종교가 한결같이 말하지만 그 종교의 이름으로 배반당하는 윤리, ‘사람을 사랑하라.’ 비바레리뇽 고원은 이를 실천하는 데 필요한 것은 종교적 계율이 아니라 “모든 것이 마땅하게 흘러가리라”는 소박한 믿음임을 보여준다. 끔찍한 살인사건이 이 믿음을 흔드는 와중에도 흔들리지 않는 마을 사람들을 통해 저자는 조건 없는 환대의 어려움과 함께 그 가능성을 확인한다.

“무엇이 선함을 가능하게 하는가?”라는 질문에 인류학·역사학·회고록 등 장르를 넘나들며 답하려 한 팩슨의 시도는 흥미롭다. 하지만 홀로코스트 역사와 다니엘 트로크메의 삶과 〈어린 왕자〉와 개인적인 고백을 나열하는 서술은 자주 독자의 집중력을 흐트러뜨리고, 그래서 저자가 중요한 길잡이로 삼은 트로크메 이야기를 길게 이어가는 동안 내가 머릿속에 떠올린 것은 비슷한 시기 죽음으로 사랑의 윤리를 실천한 또 다른 사람 야누시 코르차크였다. 폴란드의 저명인사로 독일군에게 수용소행을 면제받았음에도 자신이 돌보던 고아들과 함께하기 위해 아이들의 손을 잡고 죽음의 수용소로 행진했던 야누시 코르차크. 그이야말로 “무엇이 선함을 가능하게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하나의 응답이 아닐까.

‘사용가치 없는 어린이’만이 가진 능력

폴란드 출신의 교육자이며 의사고 작가인 야누시 코르차크는 유엔 아동인권선언의 사상적 토대를 마련한 아동인권 옹호의 선구자로 꼽힌다. 그의 이름을 딴 ‘2163코르차크’란 별이 있을 만큼 빛나는 자취를 남겼으나 한국이나 서구 세계엔 별로 알려지지 않은 인물인데, 다행히 작가이자 심리치료사로 전쟁고아에 관심이 많았던 베티 진 리프턴이 〈아이들의 왕 야누시 코르차크〉란 책에서 이 비범한 인물의 삶과 사상을 깊이 있게 그려냈다.

코르차크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은 이상주의자였다. 아이들이 세상을 구원하리라 믿었던 그는 ‘정의로운 공동체’를 지향하는 진보적 고아원을 만들어 아이들을 보살폈고, 최초로 전국적인 어린이신문을 창간했으며, 소년법원에서 아이들의 인권을 보호하려 애썼고, 개혁적인 소년 왕을 그린 이야기로 아이들의 꿈을 키웠고, 오늘날 ‘도덕교육’이라 불리는 교육 방식을 교사들에게 가르쳤다. 동시에 그는 “꿈은 결국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아는” 회의주의자였다. “삶에 강한 애착을 느껴본 적 없이” 늘 우울과 외로움에 시달린 비관주의자였다. 그럼에도 그는 단 한 번도 제 앞에 닥친 일을 피하거나 행동을 멈추지 않았으며 마지막 순간까지 아이들의 손을 놓지 않았다. 무엇이 절망을 넘어 희망으로 나아가게 했을까?

다섯 살 때 그는 처음으로 도덕적 결정을 내렸다. 세상에서 돈을 없애 가난하고 배고픈 친구들이 없도록 하겠다는 대담한 꿈을 꾸었다. 훗날 그는 “어린이는 작고 약한 존재로서 사용가치가 거의 없다”라고 썼는데, 그가 어린이를 “세상을 바꾸는 대담한 계획”의 주체로 본 것은 그래서이지 싶다. 사용가치가 없는 인간-어린이만이 가치를 따지지 않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 꿈을 위해 그는 평생을 걸었다. 돈키호테처럼 불가능한 꿈을 꾸었다고 누구는 비웃겠지만, 무기를 든 군인들 앞에서 “어떤 이유에서든 전쟁에 나서기 전에, 다치고 죽고 고아가 될 무고한 아이들을 먼저 생각해보라” 하고 외친 그의 용기까지 비웃진 못할 것이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 타인을 사랑하고 환대하는 세상을 만드는 일은 이토록 어렵고 이토록 간절한 것. 지치지 말자, 지지 말자.

기자명 김이경 (작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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