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33)은 경기도 부천에서 태어나 안산에서 성장했다. 세월호 참사 후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정부의 책임을 묻기 위해 ‘가만히 있으라’ 침묵 행진을 제안했다. 행진 도중 연행된 그는 6년간의 법정 싸움 끝에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판결을 받았다.
“당시 대학생이었고, 4월16일이 중간고사 전 주였어요. 학생회 회의실에서 수업시간을 기다리다 세월호 속보를 봤어요. 처음에 ‘전원 구조’라는 속보를 보고 안심하고 수업을 들으러 갔죠. 제가 안산에서 오래 살아서 단원고를 잘 알아요. 교복이 예뻐서 친구들이 많이 가려고 했거든요. 아마 제 동기들이 2회 졸업생일 거예요. 수업을 다 듣고 나와서 오보였다는 것을 알았는데, 한 명도 구조를 못할 거라는 생각은 전혀 안 했어요.
정치활동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세월호 특별법을 만들기 위해 유가족들이 단식할 때였어요. 그들도 국민이고, 참사의 유족이고, 100만명 넘는 국민의 서명을 받았는데 여당 정치인들이 그들을 국민이 아닌 것처럼 대하는 모습에서 충격을 받았어요. 뭔가 한참 잘못되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죠. 저에게 세월호가 남긴 질문, ‘살아남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것은 제가 정치를 하면서도 계속 답을 찾아가는 과정인 것 같아요.
세월호 이전에 한국 사회는 참사가 ‘사회적 책임’이라는 인식이 적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세월호 유가족들이 참사 희생자와 유가족의 권리를 요구했고, 사회적 지지를 모아가는 데 긴 시간을 거쳐 유의미한 결과를 만들어냈다고 생각해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하는 국가의 책무에서 참사는 개인의 불행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의 책임이라는 인식 전환이 분명히 있었죠.
진상을 규명하고 좀 더 안전한 사회, 참사가 반복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많은 노력이 있었어요. 그리고 가장 최근에 그 노력의 결과로 ‘사참위(사회적참사조사위원회) 보고서’와 권고 사항들이 나왔어요. 굉장히 오랜 시간 사회적 진통과 합의를 통해서 이런 권고 사항들이 나왔으면 그 결과를 국가 운영에 반영시키기 위해 정부가 노력해야 하는데 정부 부처에서 너무 무관심한 것 같아요. 오랜 시간 유가족과 시민들이 결과물을 만들고자 노력했는데, 또다시 벽에 부딪혀 있는 상황이 너무 아쉽고 죄송한 마음도 들었어요.
참사의 트라우마는 극복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 함께 성장하는 것이라고도 하고, 또 상처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굳은살이 박이는 과정이라고도 해요. 상처를 회피하지 않고 직시하는 것, 그것이 제가 약속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해요. 회피하지 않겠다, 그리고 그 상처를 직시하겠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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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년 1반 문지성 학생 아빠 문종택씨 [세월호 10년, 100명의 기억-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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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영 기자
세월호 유가족 방송 ‘416TV’를 만드는 문종택씨(62)의 컴퓨터 모니터는 자주 꺼졌다. 햇수로 10년을 넘긴 모니터다. 경기도 안산시에 위치한 사무실 내부는 세월호 참사와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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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자 학생 엄마 문석연씨 [세월호 10년, 100명의 기억-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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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소 기자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에 자신의 모습을 비치는 것 자체가 조심스럽던 생존자 학생 엄마 문석연씨(57)는 언니라 불린 지 오래됐다. 생존자 가족의 대표일 적에, 목소리를 당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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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년 6반 이태민 학생 엄마 문연옥씨 [세월호 10년, 100명의 기억-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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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소 기자
문연옥씨(51)는 참사를 겪은 후, 떠난 아들에게는 미안하지 않을 부모로, 남은 딸들에겐 안전한 세상을 만들어줄 수 있는 부모로 살기로 결심했다. 현재 4·16공방의 공방장으로 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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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년 1반 이수연 학생 아빠 이재복씨 [세월호 10년, 100명의 기억-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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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소 기자
이재복씨(60)에게 딸은 세상의 전부이자 그가 사는 이유였다. 하나뿐인 딸을 잃은 후, 25년간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칩거 생활을 이어가던 그가 집 밖으로 나오게 된 건 책임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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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피해자권리센터 유해정 센터장 [세월호 10년, 100명의 기억-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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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영 기자
유해정씨(48)는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의 한 명으로 세월호 참사에 관한 책을 세 권 펴냈다. 올 3월에는 세월호 가족들 10년의 기록이 담긴 〈520번의 금요일〉, 생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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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재단 상임이사 박래군 [세월호 10년, 100명의 기억-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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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진 기자
세월호 1주기 당시 인권활동가 박래군씨(63)는 4·16연대 상임운영위원을 맡고 있었다.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의 조사권을 무력화하려는 시행령 폐기 촉구 집회를 열었는데, 그 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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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자 전종현씨의 아들 전태호 위원장 [세월호 10년, 100명의 기억-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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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진 기자
전태호씨(47)는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로 아버지 전종현씨를 잃었다. 2015년부터 세월호 일반인유가족협의회 위원장으로 활동하며 진실을 찾는 일을 해오고 있다.“업무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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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자 신경순씨의 아들 김영주 부위원장 [세월호 10년, 100명의 기억-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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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진 기자
세월호 일반인유가족협의회 김영주 부위원장(49)의 어머니 신경순씨는 자전거 동호회원들과 함께 제주로 가던 세월호에 탑승했다가 유명을 달리했다. 김 부위원장은 사고 사흘째 되던 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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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자 김순금씨의 아들 배상수 부위원장 [세월호 10년, 100명의 기억-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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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진 기자
세월호 일반인유가족협의회 배상수 부위원장(48)의 어머니 고 김순금씨는 그날 환갑 기념으로 초등학교 동창들과 함께 제주도 여행을 떠나던 길이었다. 배 부위원장은 지난 10년 세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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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연장전’에 참여했던 연극인 이종승씨 [세월호 10년, 100명의 기억-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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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진 기자
공연예술인노동조합 이종승 위원장(50)은 연극배우다. 세월호가 침몰한 뒤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촛불을 들고 단식에 동참했다. 세월호 추모 활동 과정에서 개인의 목소리보다는 연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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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세월호 활동가 김남용 [세월호 10년, 100명의 기억-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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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진 기자
진도에 거주하는 세월호 활동가 김남용씨(52)는 세월호 기억관을 ‘생활의 일부’라고 했다. 단원고 2학년 8반 우재 군의 아빠 고영환씨가 팽목항을 떠난 후에도 그는 이곳을 지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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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목바람길’의 안병호 공동대표와 임정자 사무국장 [세월호 10년, 100명의 기억-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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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진 기자
세월호 팽목 기억관을 출발해 팽목 기억관으로 돌아오는 ‘팽목바람길’은 사람이 걷는 길이다. 66차 걷기 행사가 이어지고 있는 이 길은 아동문학가인 임정자 사무국장(58)과 지역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