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맘카페에서 여러 번 도움을 받았다. (24시간 편의점에서 상비약을 판매하지 않던 시절) 밤중에 아기 해열제가 똑 떨어졌을 때 맘카페에 SOS 글을 올리면 줄줄이 도와주겠다는 댓글이 달렸다. 잃어버린 아이 킥보드와 어린이집 가방도 맘카페를 통해 찾았다. 인기 많은 떡집 앞에 선 대기줄 실시간 상황이 어떤지, 불규칙하게 출몰하는 순대 트럭과 찰옥수수 리어카가 오늘 우리 동네에 나왔는지 어쨌는지도 맘카페가 아니면 얻기 힘든 귀한 정보였다.
맘카페에서 여러 번 상처도 받았다. 쓰던 물건을 무료 나눔(드림)할 때 ‘내가 먼저 손 들었는데 왜 뒷사람에게 주느냐’며(며칠간 메시지에 답이 없기에 다음 순번으로 넘겼을 뿐인데) 따지는 회원에게 험한 말 섞인 쪽지를 받은 적이 있다. 맘카페에서 맛있다고 추천해서 갔는데 심하게 맛이 없어서 아리송했던 맛집 추천 글은 알고 보니 교묘한 광고 글이었다. 특정 어린이집 교사나 학교 교사, 학부모, 동네 아이에 대해 확인되지 않은 험담을 주고받는 모습을 보고 적잖이 실망하기도 했다.
〈맘카페라는 세계〉는 지금 한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라면 한 번씩 느껴보았을 맘카페의 양면성을 매우 구체적이고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책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저자가 5년 넘게 맘카페를 운영해본 경험에 밑바탕을 두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본명 대신 필명으로 책을 썼다. 그랬기에 더 내밀한 이야기가 가능했다.
책에서 가장 공감한 부분은 저자가 ‘둥글둥글한 세계’라고 표현한 맘카페의 세계관이다. ‘누구도 불편하지 않은’ ‘순한’ ‘민폐 없는’ 공간을 지향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둥글둥글함이 어떨 때는 가장 모나고 뾰족한 공격 무기로 전환된다. “~한 거 저만 불편한가요?” “제가 예민한 건가요?”라며 사실상 누군가를 저격하는 게시글 아래 ‘공감’과 ‘위로’를 가장한 화살촉 같은 댓글들이 줄줄이 달리는 모습을 보면서, 저자와 같은 문제의식을 느낀 적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맘카페에서 종종 발견되는 ‘작은 선의’들에 주목한다. “우리는 얼굴도 나이도, 정확히 어디 사는 누군지도 모르지만 아무 대가 없이 타인에게 선의를 베풀고 싶을 때가 있다. 서로에 대한 걱정의 마음으로 자잘한 질문을 지나치지 않고 댓글을 달아주는, 이웃으로서의 신뢰와 선의를 띤 모습과도 닮아 있다. 이런 선의로 생겨나는 작은 사회적 소속감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살 만한 곳으로 만드는 윤활유와 같은 것이다.”
다만 그 선의의 모양과 방향을 우리 사회는 끊임없이 관찰할 필요가 있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엄마들의 ‘작은 선의’가 어떻게 발현되고 있거나 때때로 어긋나고 있는지, 아이를 키우는 것은 과연 우리 사회에서 어떤 의미인지를 묻지 않으면 안 된다.” 저자는 맘카페라는 공간을 통해 그 질문에 답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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