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9월2일(현지 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미국작가조합(WGA) 소속 작가들이 파업을 벌였다.ⓒAFP PHOTO
2023년 9월2일(현지 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미국작가조합(WGA) 소속 작가들이 파업을 벌였다.ⓒAFP PHOTO

2023년의 화두는 단연 AI(인공지능)였다. 2022년 11월 서비스를 시작한 챗지피티(ChatGPT)가 2023년 1월 국내에서도 널리 알려져, 그야말로 판을 뒤집어엎는 ‘게임 체인저’로 등극한 것이다. 챗지피티는 질문을 입력하면 그게 어떤 물음이든 스스럼없이 답을 내놓았다. 물론 틀린 정보나 아예 없는 정보를 마치 있는 것처럼 전해주는 빈도도 높았지만, 지금까지 본 챗봇과는 완전히 다른 수준이었다. 텍스트를 생성하는 챗지피티 말고도 그림이나 사진을 뚝딱 만들어주는 이미지 생성형 AI 서비스도 등장했다.

AI 서비스들의 출시 이후, 현재 노동환경이 훨씬 더 빨리,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변화할지 모른다는 날 선 불안이 사회를 뒤덮었다. 이전에는 비교적 공정이 단순하거나 반복적인 노동이 AI에 의해 대체되리라 여겨졌지만, 2023년 우리가 목도한 AI는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 간주되던 창작에 침투한 것이다. 예를 들어 소설 창작이나 작곡, 그림과 사진 촬영 말이다. 챗지피티가 출시되고 몇 개월 되지 않아 챗지피티로 썼다는 책이 출간되었고, AI가 작곡했거나 편곡한 노래가 유튜브에 게시되기도 했다. 이전에는 웹소설의 표지를 전문 일러스트레이터에게 청탁하곤 했지만, AI 서비스가 대중화된 이후에는 웹소설 플랫폼마다 이미지 생성형 AI로 만든 듯한 표지가 눈에 띄었다.

눈부시게 발전하는 AI 기술과 반대로 테크기업의 노동시장은 내내 먹구름이었다. 경기침체가 직접적 원인이라고는 하나, 글로벌 대기업들이 일제히 대규모 구조조정을 감행한 데에는 AI의 영향도 있었다. 그 수도 어마어마하다. 메타, 구글, 아마존, 링크드인 등 유명 글로벌 테크기업이 각각 수만 명의 인력을 해고했다. 2023년에만 테크업계에서 해고당한 이들이 26만명을 넘어섰다. 글로벌 테크기업의 해고 동향을 기록하는 웹사이트(Layoff.fyi)에 기록된 숫자다. 글로벌 테크기업의 거센 해고 동향에 가려지긴 했지만, 국내 테크기업도 만만치 않다. 올해 카카오엔터프라이즈가 희망퇴직 등을 시행해 임직원 규모를 절반 이상 줄였고, 야놀자 역시 전 직원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받았다. 2023년 초에는 게임 〈쿠키런〉의 개발사인 데브시스터즈가 직원들에게 당일 프로젝트 종료를 통보하여 논란이 된 바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언급한 것처럼, 2023년은 분명 ‘AI 일상화의 원년’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테크기업 해고의 해’이기도 했다. 기술은 가파르게 성장했지만 기술을 만드는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떠나야 했다. AI 일상화의 원년, 테크기업 해고의 해. 여기에 2023년을 기억하는 문장을 하나 더 추가하고 싶다. 바로 ‘테크 시민의 해’라고 말이다. 눈을 감았다가 뜨면 새로운 서비스가 나올 정도로 정신없이 쏟아지던 AI 뉴스와 ‘또?’라는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였던 대규모 구조조정이 쉴 새 없이 몰아쳤지만, 많은 사람이 이 흐름을 흔들림 없이 주시했다. 그뿐 아니라 연대하여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대표적 예가 할리우드의 작가 파업이다. 미국작가조합(WGA)에서 주도한 이번 작가 파업은 무려 148일 동안 지속됐다. 미국작가조합의 요구안에는 작가들의 처우 개선과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여러 항목이 기재됐는데, 그중에서도 ‘최소 인력 수’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최소 인력 수란 바로 하나의 작품을 제작할 때 투입되어야 하는 최소한의 작가 수다. 최종 합의안에 따르면, 6부작 시리즈에 3명, 7~12부작에는 5명, 13부작 이상은 최소 6명 이상 작가가 투입되어야 한다. 명령어 한 줄만 넣으면 어떤 글이든 뚝딱 만들어내는 챗지피티로 인해 작가들의 노동권이 크게 위협받자, 제기된 대안이다. 이렇게 하면 AI의 활용 자체를 막지 않으면서도 작가들의 일자리 또한 유지할 수 있다.

기술에 맞서 권리 요구한 ‘테크 시민’들

한국에서도 AI에 대항하는 창작자들의 움직임이 가시화된 바 있다. 2023년 6월 네이버웹툰에서 일어난 일이다. 며칠 사이로 네이버웹툰 ‘도전 만화’ 게시판에 똑같은 섬네일 이미지를 한 작품이 우후죽순 게시된 것이 그 시작이었다. 이 게시물들은 창작자들의 동의 없이 창작물을 학습하여 만든 AI의 사용을 반대한다며, 이미지 생성형 AI 웹툰을 보이콧하겠다는 목소리를 담고 있었다. 네이버웹툰이 매년 개최하는 ‘지상최대 공모전’에 창작자들이 직접 의견을 낸 사례다. 여기에는 AI를 활용한 웹툰에 대한 반발과 공모전 접수 작품을 네이버웹툰에서 자체적으로 AI 학습 데이터로 사용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동시에 담겨 있었다. 도전 만화 게시판뿐만 아니라 SNS에서도 뜨겁게 이슈가 되자, 네이버웹툰은 2차 접수부터 생성형 AI 기술을 활용한 작품은 출품을 제한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러한 의견을 반영해 카카오웹툰에서는 웹툰 공모전에서 아예 ‘인손인그(인간의 손으로 인간이 그린)’ 작품만 받겠다고 공지하기도 했다.

카카오웹툰이 2023년 6월1일부터 6일까지 진행한 웹툰 공모전 안내문.
카카오웹툰이 2023년 6월1일부터 6일까지 진행한 웹툰 공모전 안내문.

한편 시민사회에서도 AI 기술에 대항하는 움직임을 꾸준히 보여줬다. 2020년 통과된 데이터 3법에 따라 현재 기업들은 개인정보를 가명 처리하여 활용할 수 있다. 가명 처리된 데이터는 공익과 연구 목적 등으로 쓰일 뿐 아니라 AI 학습에도 사용되곤 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개인이 가명 처리와 개인정보 활용을 원치 않는다 하더라도 이를 요구할 통로가 없었다. SKT에서는 심지어 이 요청을 거절한 바도 있다. 이에 참여연대, 진보네트워크센터 등 정보·인권 단체들이 규합해 SKT를 대상으로 개인정보의 가명 처리 정지 요구권 소송을 제기했다. 1심에서 원고들이 승소했으나 패소한 SKT 측에서 항소해 2심이 진행됐다. 2023년 12월20일 2심 판결에서도 법원은 시민의 편을 들어주었다. 이제 자신의 개인정보를 AI 학습 등에 자체적으로 활용할 수 없도록, 사용자가 가명 처리 정지를 요청할 수 있게 된 것이다.

2023년, AI가 발전한 만큼 사람들은 행동했다. 기술을 따라가기 급급한 게 아니라, 기술에 맞서 자신의 권리를 요구하며 싸웠다. 우리는 비단 우리가 거주하는 국가의 시민일 뿐 아니라, 글로벌 테크기업이 주도권을 쥔 테크업계라는 제국 안에서도 시민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이들을 ‘테크 시민’이라고 명명한 건 이 때문이다.

기술로 인해 세상은 점점 더 나아지고 있을까? 그런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서로의 어깨를 겯고 당당히 목소리를 냈던 2023년의 풍경이 증명하는바, 적어도 사람들은 세상이 더 나은 곳이 되기를 원하고, 그렇게 행동하고 있다. 2024년의 시민들은 또 어떤 모습으로, 어디에서 나타날까? 나날이 가혹한 시절이지만, 기대와 희망을 품고 새해를 맞는다. 해가 넘어가는 새해가 아니라, 빛나는 사람들이 스스로 열어낼 새해를.

기자명 조경숙 (테크-페미 활동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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