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 올트먼은 이사회에서 자신의 해고를 결정한 지 5일 만인 11월22일 오픈AI에 복귀했다. ⓒEPA
샘 올트먼은 이사회에서 자신의 해고를 결정한 지 5일 만인 11월22일 오픈AI에 복귀했다. ⓒEPA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쿠데타가 ‘5일 천하’로 막을 내렸다. 챗지피티(ChatGPT)로 일약 인공지능 분야 선두주자가 된 오픈AI는 11월17일 금요일 최고경영자 샘 올트먼을 해고했다고 발표했다. 오픈AI의 깜짝 발표 이후 실리콘밸리는 혼란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해고 사유에 대해 추측과 뜬소문이 나돌았다. 11월20일 월요일, 올트먼의 복귀 협상이 무산되자 오픈AI의 최대 투자자인 마이크로소프트는 그를 인공지능 연구팀 리더로 고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오픈AI 직원 대다수는 올트먼과 함께 이직하겠다고 회사를 압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11월22일 수요일, 오픈AI는 올트먼이 다시 최고경영자로 돌아왔음을 알렸다. 해고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이사진 세 명은 전면 교체됐다.

오픈AI 이사회가 샘 올트먼을 해고한 이유에 대해선 정확히 밝혀진 바가 없다. 오픈AI는 해고 소식을 발표하며 그가 “이사회와의 소통에 일관되게 솔직하지 않아 이사회가 책임을 다하는 것을 방해했다. 이사회는 그가 오픈AI를 계속 이끌 능력이 있다는 확신을 더 이상 가지지 못한다”라고 추상적으로만 이유를 밝혔다. 해고당한 올트먼도, 해고를 단행한 이사진도 구체적 이유에 대해선 침묵했다.

현재로선 인공지능 개발 목적과 방향을 둘러싼 이사진 사이 의견 대립이 해고의 진짜 이유란 추측에 무게가 실린다. 해고의 주동자로 여겨지는 이사진 세 명과 올트먼이 인공지능을 둘러싸고 미묘하게 다른 견해를 보여왔기 때문이다. 오픈AI 이사진 중 올트먼의 복귀와 함께 교체된 사람은 일리야 수츠케버, 타샤 매콜리, 헬렌 토너 세 명이다. 이들은 인공지능 발전이 불러올 위험성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인공지능이 허위 정보 양산과 실업, 더 나아가서는 자의식을 가진 기계의 폭주 등 다양한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기에 이를 충분히 방지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발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반면 올트먼은 이들에 비해 더 사업가적인 면모를 뽐내왔다. 그는 자금을 끌어모으고 상업적 모델을 구축하는 데 유능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그가 인공지능의 위험성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는 인공지능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가 일부분 과장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해고 이틀 전인 지난 11월15일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올트먼은 “오픈AI의 최고경영자는 (인공지능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진영과 더 빠른 개발을 추구하는 진영 사이) 중간 어딘가에 있기를 바라며, 나는 내가 중간에 위치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인공지능 분야에는 두 가지 서로 다른 가치관이 존재해왔다. 하나는 ‘파멸론자(Doomer)’라고 불리기도 하는, 인공지능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집단이다. 이들은 앞서 설명한 것처럼 인공지능이 갖가지 위험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한다. ‘인공지능의 대부’이자 오픈AI 전 이사 일리야 수츠케버의 스승인 제프리 힌턴이 대표적이다. 힌턴을 비롯한 테크 분야 리더와 연구자들은 올해 5월 “AI로 인한 인류 절멸 위험을 완화하는 것은 팬데믹, 핵전쟁과 같은 다른 사회적 규모의 위험과 함께 전 세계적인 우선 순위가 되어야 한다”라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파멸론자와 개발론자의 대결

제프리 힌턴 교수를 비롯한 ‘파멸론자’들은 인공지능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해왔다. ⓒAP Photo
제프리 힌턴 교수를 비롯한 ‘파멸론자’들은 인공지능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해왔다. ⓒAP Photo

인공지능에 대한 경고는 주로 인공지능이 비영리적이고 개방적으로 개발되어야 한다는 신념과 궤를 같이한다. 인공지능의 미래를 특정 기업의 손에 맡겨두는 것은 너무 위험하며, 연구 과정과 결과가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더 나은 방향으로 기술이 발전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들은 인공지능이 ‘민주적 통제’를 통해 인류 전체에 이익이 되는 방식으로 발전해야 함을 강조한다. 다만 파멸론자들이 산업혁명 시기 러다이트 운동처럼 인공지능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인공지능을 개발하되 그 개발의 방향성이 현재와 같이 흘러가선 안 되고, 인공지능의 발전 경로를 재설정할 수 있다고 보는 쪽에 가깝다.

파멸론자의 반대편에는 ‘개발론자(Boomer)’라고 불리는 집단이 있다. 이들은 인공지능 개발의 방향을 인위적으로 설정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며, 개발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작용이 극복 가능할 것이라고 믿는다. 이들이 낙관주의자라고도 불리는 이유다.

언제나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개발론자들은 상업적이고 폐쇄적인 방식의 인공지능 개발을 옹호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 위해 때로는 인공지능의 위험성을 논거로 삼기도 한다. 인공지능은 위험성이 크기 때문에 아무나 악용하지 못하도록 ‘레시피’를 숨겨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초창기 오픈AI는 대립하는 두 입장 중 파멸론자에 더 가까운 모습을 보였다. 이름에 ‘오픈(open)’을 넣은 것처럼 연구 결과를 소상히 공개하고, 비영리 목적의 인공지능 개발에 힘써왔다.

오픈AI가 변화하기 시작한 것은 2020년 무렵이다. 오픈AI는 챗지피티의 기반이 되는 GPT-3를 발표하며 이전과는 달리 알고리즘을 공개하지 않았다. 업그레이드 버전인 GPT-4를 발표할 때는 모델 크기와 데이터세트 구성 등 주요한 정보를 대부분 비밀에 부쳤다. GPT-4 기술 리포트에서 오픈AI는 “경쟁 환경과 안전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자세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창립 당시부터 주창해온 개방성을 상당 부분 포기한 것이다.

GPT-3를 발표하기 1년 전인 2019년에는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며 비영리성을 일부분 포기하기도 했다. 당초 비영리조직으로만 운영되던 오픈AI는 자회사로 ‘오픈AI 글로벌’을 만들었다. 투자자에게 귀속되는 수익의 상한선을 두는 등 과도한 상업화를 막기 위한 나름의 안전장치는 마련됐다. 투자 계약서에도 “오픈AI 글로벌에 투자하는 것은 기부의 일종으로 보는 것이 현명하다”라고 명시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이러한 다짐이 옅어졌다. 오픈AI는 비영리 연구보다도 챗지피티를 비롯한 상업적 서비스를 개발하는 데 박차를 가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봤을 때, 샘 올트먼의 거취를 둘러싼 갈등은 오픈AI의 과거과 현재 사이의 충돌로도 해석할 수 있다. ‘개방성, 비영리성’이라는 전통적 가치와 ‘폐쇄성, 영리성’이라는 새로운 가치가 부딪친 것이다. 결과적으로 올트먼이 오픈AI의 최고경영자로 다시 복귀하며 오픈AI의 기존 가치들은 다소 힘을 잃게 됐다. 올트먼을 축출하고 전통적 가치를 지키려던 시도는 오픈AI의 변화를 더 가속화시키는 것으로 결론지어질 가능성이 높다.

쿠데타를 가능하게 한 오픈AI 지배구조

ⓒ자료 오픈AI
ⓒ자료 오픈AI

비록 ‘5일 천하’에 그치긴 했지만, 이사회에서 올트먼을 축출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오픈AI만의 독특한 지배구조가 있다. 2019년 자회사로 오픈AI 글로벌을 만들면서 오픈AI는 독특한 지배구조를 갖추었다. 마이크로소프트로부터 100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받고도 마이크로소프트가 오픈AI의 의사결정 구조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만들었다.

오픈AI의 지배구조를 단순화한 〈그림〉을 보면 이 사실이 명징히 드러난다. 오픈AI는 영리법인 자회사 ④오픈AI 글로벌을 만들면서, 지분을 한정해 마이크로소프트를 소수 주주에 머물게 했다. 지배주주는 ③오픈AI 지주회사이고, 기존 ①비영리조직이 ②관리 법인을 통해 지주회사를 통제할 수 있도록 했다. 결국 마이크로소프트를 비롯한 투자자들은 투자 수익을 거둘 수는 있지만, 오픈AI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진 못하게 되었다. 오픈AI는 자회사 설립을 발표하며 “오픈AI 글로벌은 비영리조직 이사회에 의해 통제된다. 모든 투자자와 직원은 지분의 일부 또는 전부를 희생하더라도 (오픈AI의 목표를 발전시키는) 의무가 항상 최우선이라는 계약에 서명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올트먼의 축출 과정에서 마이크로소프트는 어떠한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 심지어 샘 올트먼을 해고했다는 소식을 공식 발표 불과 몇 분 전에 전달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대다수 직원의 반발과 투자자들의 압박, 여전히 건재한 올트먼의 위상은 오픈AI의 지배구조마저 무력하게 만들었다. 해고에 동참했던 오픈AI 전 이사 일리야 수츠케버는 해고 사흘 만인 11월20일 X(옛 트위터)에 “이사진의 행동에 동참한 것을 후회한다”라는 글을 올렸다. 최고경영자로 복귀한 올트먼은 새로운 이사회를 구성하며 오픈AI의 지배권을 사실상 손아귀에 넣었다.

올트먼의 완벽한 승리로 일단락된 이번 쿠데타 시도가 오픈AI와 인공지능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당장 가늠하기 어렵다. 이번 소동의 최대 수혜자인 마이크로소프트와 올트먼이 오픈AI의 지배구조를 어떻게 바꿀지, ‘파멸론자’ 진영과 ‘개발론자’ 진영 사이 갈등이 어떻게 흘러갈지 현재로선 장담할 수 없다. 다만 인공지능 발전의 역사에서 이번 사건이 하나의 변곡점이 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돌아온 샘 올트먼과 오픈AI의 행보에 다시금 세계의 눈길이 쏠리는 이유다.

기자명 주하은 기자 다른기사 보기 ki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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