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5일 서울의 한 쪽방촌 골목에 ‘빈대’ 등 감염병 예방 수칙을 담은 안내문이 부착돼 있다. ⓒ연합뉴스
11월5일 서울의 한 쪽방촌 골목에 ‘빈대’ 등 감염병 예방 수칙을 담은 안내문이 부착돼 있다. ⓒ연합뉴스

“바퀴벌레보다 끈질기다.” 서울시 중랑구에서 민간 방역업체를 운영하는 박근옥 대표가 말했다. 지난 10월 대구 소재의 한 대학교 기숙사와 인천에 위치한 사우나에서 빈대 피해가 알려진 이후 전국에서 방역 문의가 이어지고 있었다. “최근에는 시흥·안산·의정부·인천 등지에서 작업을 많이 했다. 외국인이나 여행객이 머문 숙소나 해외 물품을 취급하는 물류업체들 근처의 고시원이나 오피스텔이었다.”

빈대 방역은 대개 3차까지 이어진다. 1차 방역으로 성충이 죽어도 끝난 게 아니다. 알에서 나오는 데 7~14일 걸리는 약충(불완전변태를 하는 곤충의 유충)까지 박멸하려면 그만큼의 기간을 두고 다시 서식처를 추적해 제거해야 한다. 빈대 한 마리는 하루에 2~5개의 알을 2~3일 간격으로 낳는다. 빈대가 많이 퍼진 상태에서 스팀다리미로 매트리스에 열 가하기, 규조토 분말 뿌리기, 가정용 바퀴벌레 약 살포하기 같은 ‘셀프 빈대 퇴치법’이 효과가 없는 이유다.

박근옥 대표는 왜 빈대 박멸이 바퀴벌레 박멸보다 어려운지 이렇게 설명했다. “바퀴벌레는 몸에 약이 묻은 채로 서식처로 돌아간다. 그러면 개체들 사이에 약이 빠르게 퍼지기 때문에 살충 효과가 눈에 확 보인다. 개인 혼자서 박멸도 할 수 있다. 빈대는 다르다. 알이 딱딱해서 살충제가 침투하기 어렵다 보니 성충이 사라져도 남은 알에서 부화가 계속된다.” 그래서 서식처를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마저도 쉽지 않은 이유가 있다. 빈대는 한 번 흡혈을 하면 6개월 이상 피를 빨지 않고도 살아남는다. 어둡고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긴 시간 잠복할 수 있는 해충인 것이다.

베드버그(Bed Bug)라는 이름처럼 빈대는 주로 침대 매트리스 근처에서 서식한다. 몰딩·콘센트·화재경보기처럼 좁은 틈새에서도 살 수 있다. 성충의 크기는 4~7㎜에 불과하다. 옷이나 가구, 카펫에 붙어 이 집 저 집을 옮겨 다니기도 한다. “길에 멀쩡해 보이는 가구가 폐기물로 나와 있더라도 손도 대지 말아야 한다.” 박 대표의 조언이다.

혹시 우리 집에 빈대가 생긴 건 아닐까? 매트리스를 뒤집어보면 알 수 있다. 빈대는 서식처 주변에 검붉은 잉크 같은 모양의 혈액 성분들을 배설한다. 검은 곰팡이처럼 번진 얼룩이 발견되거나 그 근처에 빈대가 탈피한 노란색 껍질까지 발견된다면 그 집에는 빈대가 서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물림 자국으로도 빈대 발생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빈대에게 물리면 크고 작은 붉은 반점 여러 개가 넓게 퍼진다. 성충뿐만 아니라 알에서 막 깨어난 약충도 흡혈을 하기 때문에 상처 크기가 다양하다. 빈대의 흡혈 시간은 10여 분에 이르며, 한 번 피를 빨면 일반 모기 한 마리가 흡혈하는 양의 5~7배에 달한다. 수십 마리가 동시에 활동하다 보니 붉은 반점이 일렬로 늘어선 형태도 자주 볼 수 있다. 가렵다고 긁다 보면 2차 감염으로 염증이나 피부색이 바뀌는 병변이 생기기도 한다. 빈대는 질병을 옮기지는 않지만 극심한 가려움증과 수면 방해, 불안, 공포감 등 정신적 고통을 일으킬 수 있는 해충이다.

침대 매트리스 커버에서 발견된 빈대 추정 벌레. ⓒ연합뉴스 독자 제공
침대 매트리스 커버에서 발견된 빈대 추정 벌레. ⓒ연합뉴스 독자 제공

1960년대 ‘기적의 살충제’라고 불리던 DDT가 도입된 이후 한국도 ‘위생의 시대’를 맞이했다. 빈대는 역사책에나 존재하는, 박멸된 해충으로 취급됐다. 하지만 최근 “특정 온라인 쇼핑몰의 택배 상자에서 빈대가 발견됐다” “지하철과 KTX 좌석에서도 빈대가 발견됐다”라는 소문이 돌면서 택배 상자를 현관 밖에서 뜯고 상품만 집에 들인다거나, 좌석이 있어도 대중교통을 앉아서 이용하지 않는 등 시민들의 ‘빈대 공포증’이 확산되고 있다. 개인이 빈대 발생 지역을 집계한 웹사이트 ‘빈대 보드(https://bedbugboard.com)’까지 만들어졌다. 확산 속도도, 번식력도 빠르다 보니 ‘빈대 목격담’이 전국에서 나오고 있다. 11월3일 행정안전부가 빈대 확산을 막기 위해 정부합동대책본부를 꾸린 이후, 전국 17개 시도에서 접수된 빈대 의심 신고는 30여 건에 이른다.

빈대의 명확한 유입 경로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이후 글로벌 물류 유통량과 해외 출입국자가 증가한 것을 원인으로 추측하고 있다. 또한 최근 국내에서 발견되는 빈대가 아열대기후에서 서식하는 ‘반날개빈대’라는 점에서 기후위기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엄훈식 한국방역협회 기술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반날개빈대는 국내에서 1930년대에 보고된 것이 마지막이었다. 열대종이 한국에 유입될 수는 있지만, 이후 번식까지 왕성하게 하고 있다는 점은 한국이 아열대 곤충이 서식할 만한 환경이 됐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정부는 국민들의 불안감을 낮추기 위해 대책을 내놓는 중이다. 11월7일에는 정부합동대책본부가 총리실 총괄로 격상된 이후 첫 회의를 열기도 했다. 정확한 빈대 발생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민간 방역업체와 협조 체제를 구축하고, 방역업체에서 바퀴벌레용으로 사용하던 네오니코티노이드계 살충제를 빈대 방역용으로 긴급 승인하는 방안 등이 검토됐다.

하지만 방역 사각지대에 대한 논의가 충분하지 않다는 비판이 나온다. 공중위생관리법상 관리 대상인 목욕탕·사우나와 달리 해당 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도시민박용 시설, 한옥 체험 시설, 고시원 같은 경우에는 자체 소독을 권고하는 것에 그쳤기 때문이다. 여행객이나 외국인이 머물 가능성이 높은 곳들이지만 자율방역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유입 경로는 아직 밝혀지지 않아

국무총리실 국무조정실 담당자는 〈시사IN〉과 통화에서 “방역 사각지대가 존재하지만 이에 대한 업무를 맡을 수 있는 소관 부처를 정하기가 어려웠다. 결과적으로는 지자체 중심으로 방역을 진행하기로 방향을 잡았다. 정부는 고시원 등 다중이 이용하는 자유업종 시설 등을 ‘빈대 취약시설’의 예로 들며 점검 시 주의를 기울이도록 지자체에 권고했다”라고 설명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취약계층에 대한 방역비 지원 필요성도 거론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구체적인 방안 없이 의견 표명에 그쳤다. 방역 업체에 따르면, 99㎡(약 30평형) 아파트 한 채당 1회 방역 비용은 60만~70만원에 이른다. 통상 최소 3회 방역을 해야 한다면, 그 비용은 약 200만원에 달한다.

김종헌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사회의학교실 교수는 관리의 대상도, 역학조사의 대상도 아닌 ‘법정 감염병을 매개하지 않는 해충’ 문제를 맡을 공공 파트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했다. “지자체 보건소에서도 주도성을 갖기 어려울 거라고 본다. 보건소는 만성질환·전파매개 감염병 대응이 주 업무다. 민원이 들어오고, 정부가 권고하니까 떠맡듯 해당 업무를 하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와 다른 보건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누가 이 업무를 주도해 맡을지에 대한 창의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인력과 예산을 확보하는 관문이기 때문이다.”

11월3일 서울시는 ‘빈대 제로 도시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며 쪽방촌, 고시원 같은 위생 취약시설의 빈대 예방·방제에 5억원을 긴급 교부하겠다는 계획을 알렸다. 이곳에 자율점검표를 배부하고 소독제 등을 지원하겠다고도 했다.

프로젝트가 발표되고 일주일이 지난 11월9일,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동자동 쪽방촌을 방문했다. 쪽방촌 입구에 위치한 동자동 사랑방에는 주민 차재설씨가 쉬고 있었다. 그는 위생용품도, 자율점검표도 받은 적이 없다고 답했다. 빈대 방역은 금시초문이라고도 했다. “여기는 빈대가 몇 년 전부터 있었다. 예전에 빈대가 나온 방이 있었는데 쓰던 가구를 다 버려야 한다고 했지만 어디 그럴 수가 있나. 눈에 보이는 데만 방역하고 끝내서 결국 빈대가 다시 생겼다. 다른 방으로도 번졌을 거다. 가구를 새로 장만할 돈이 없는 사람들한텐 선택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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