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민주화, 실패한 민주주의

황두영 지음, 클 펴냄

“‘사람 사는 세상’ ‘사람이 먼저다’라는 두루뭉술하고 아름다운 말들이 우리의 폐허를 가리고 있는 파사드다.”

수많은 사회적 의제가 선거 이후로 밀려난다. 그리고 한국 정치는 늘 선거 전이거나 선거 직전이다. ‘나중에’는 한국 정치를 상징하는 말이라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돌림노래처럼 더불어민주당 내 ‘86 용퇴론’이 반복되는 것도 제법 익숙한 풍경이다. 그러나 세대 갈등은 본질이 아니다. 국회와 청와대에서 정치 노동자로 일했던 저자는 이 책을 “실패한 업무에 대한 뒤늦은 시말서”라고 말한다. 민주화에 기여했지만, 민주주의에서 계속 미끄러지고 있는 86 정치인 집단에 현미경을 들이댄다. 한국 현대사의 맥락에서 이들의 세계관이 어떻게 형성됐는지 살펴보고, 그것이 어떻게 포퓰리즘과 맞닿아 있는지 분석한다. “이렇게 다 함께 주저앉을 순 없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파시즘 vs 안티파

고드 힐 지음, 김태권 옮김, 아모르문디 펴냄

“어째서 그대는 내버려두는가?”

1차 세계대전 직후 이탈리아에서 싹튼 파시즘이란 독초는 나치 독일, 프랑코의 스페인, 미국의 KKK 등 전 세계 모든 지역으로 뿌리를 뻗으며 잔학한 반인류적 범죄를 저질러왔다. 그러나 파시즘이 활개를 치는 곳엔 언제나 ‘안티파(안티파시스트)’가 있었다. 독일 나치만 해도 적색전선, 에델바이스 해적단, 화이트 로즈(백장미단) 같은 안티파들에게 시달림을 당했다. 안티파들은 무장투쟁을 마다하지 않았으며 무자비한 고문과 징역, 처형에도 굴복하지 않았다. 이 책은, 지난 100여 년 동안 파시즘과 안티파 간 대결의 역사를 만화 형식으로 담아낸 작품이다. 20세기는 물론이고 독일, 프랑스, 스웨덴, 이탈리아, 그리스 등에서 일어나는 21세기 파시즘 운동과 이에 맞서는 안티파 운동까지 추적했다. 〈십자군 이야기〉 등으로 유명한 ‘지식 만화가’ 김태권이 처음 번역자로 나섰다.

노들바람

노들장애인야학 기획, 한혜선 엮음, 고병권 외 지음, 봄날의 책 펴냄

“그 싸움이 많은 것을 바꾸었다.”

노들야학이 30주년을 맞았다. 서른 해를 정리하기 위해 그간 펴낸 노들 소식지 〈부싯돌〉 〈노들바람〉에 실렸던 원고를 추려 책을 냈다. 책을 엮은 한혜선 노들야학 교사는 원고를 고르는 데 애를 먹었다. 덜어내도 좀처럼 줄지 않았고 오랜 기억이 떠올라 자주 멈췄다. 2000년 그가 처음 야학에 왔을 때나 지금이나 노들은 싸우고 있다. 1993년 개교 당시 학생이던 김명학 현 노들야학 교장, 49년 만에 시설을 떠나 얼마 전 탈시설 장애인 상도 받은 박만순, 노들에서 한글을 배우고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노동자로 참여해 난생처음 돈을 벌고 있는 이영애. ‘세상을 바꾸고, 자기 자신이 곧 역사가 된 사람들’의 목소리가 담겼다.

인셀 테러

로라 베이츠 지음, 성원 옮김, 위즈덤하우스 펴냄

“이 문제의 절반은 그 누구도 이게 얼마나 심각한지 이해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온라인 여성혐오가 현실의 폭력으로 점점 넘어온다. 하지만 ‘남성 가해자’에 대해서는 ‘짐승’ ‘괴물’이라고 묘사할 뿐, 이들을 유의미한 방식으로 연구하지 않는다. 페미니스트 작가로서 지난 10년간 사이버불링에 가까운 메일을 받아온 저자도 “인터넷일 뿐”인 줄 알았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커뮤니티들의 힘이 밖으로, 일상으로 점차 새어나오고 있음을 목도한다. 1년간 온라인 커뮤니티 안에 잠복한 저자는 ‘강간 합법화’를 주장하는 인셀(비자발적 독신주의자), 성폭력을 가르치는 픽업 아티스트, 반페미니즘의 선봉장에 선 남성권리운동가 등 혐오 운동의 실상을 파헤친다. 귀 기울일 만한 정당한 가치가 있어서가 아니라, 이 집단이 제기하는 실체적 위협에 맞서기 위해서라고 저자는 말한다. 남성성이 빚어낸 유해한 사회구조를 겨냥한다.

우리에겐 비빌 언덕이 필요해

최정은 지음, 오월의봄 펴냄

“겨우 생존을 유지하는 삶이 아닌 다른 가능성으로 꿈틀대는 삶을 살아보자고.”

사회복지제도는 어쩌면 ‘주는 자’와 ‘받는 자’ 사이의 위계가 만들어지는 곳이다. ‘쉼터’에서 직업 ‘훈련’을 제공하는 것도 저자의 눈에 그렇게 보였다. 그는 쉼터가 집이 될 수 있을지 고민하고, 훈련 대신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70년간 폭력 피해여성들을 도운 사회복지법인 ‘윙’에 관한 이야기다. 한국전쟁 후 홀로 된 어머니와 아이들을 위한 ‘데레사원’으로, 1970년대 취업을 하려는 여성들에게 숙식과 직업교육을 제공한 은성원으로 이어지다 2000년대 반(反)성매매 운동을 시작했다. 책에는 2000년대 이후 복지 프레임을 벗어던진 윙의 남다른 시도를 주로 담았다. 서로를 돌보며 존엄한 삶을 가꾸는 관계망이 왜 중요한지 이야기한다.

괴물 부모의 탄생

김현수 지음, 우리학교 펴냄

“자녀 문제를 두고 우리는 거울 앞에 서야 한다.”

“내 딸이 들판에 가는 바람에 햇볕에 타서 왔습니다. 우리 아이 피부를 원상복구해 놓으세요.” “왜 학교 입학식에 벚꽃이 피지 않았습니까?” 믿기 어렵지만, 농담이 아니다. 일본과 홍콩의 일부 학부모들이 실제로 학교와 선생님에게 제기한 민원 내용이다. 2000년대 초 일본에서는 ‘괴물 부모(monster parents)’라는 말이 만들어졌다. 정신과 의사인 저자는 왜 ‘괴물 부모’가 되는지, ‘괴물 부모’가 되지 않으려면 어떤 노력과 사회적 뒷받침이 필요한지를 정리했다.

기자명 시사IN 편집국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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