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법의 바다
이언 어비나 지음, 박희원 옮김, 아고라 펴냄

“바다에서 법은 유동적이며 사실 존재감조차 미미하다.”

40개월, 40만4000㎞, 1만2000해리. 저자가 비행기 85회를 타고 40개 도시를 넘나들며 만난 바다는 ‘공백’ 그 자체였다. 해적, 동물 학대, 노예 노동처럼 “좀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 바짝 다가선 저널리스트에게 바다에 대한 낭만은 들어설 틈이 없었다. 인간은 자신이 주인일 수 없는 곳에서조차 존재감을 기입한다. 바다의 광활함과 묵묵함은 온갖 폐기물을 투기할 핑계가 되고, 인신매매와 강제노동을 묵인하게 만드는 환경이었다. 출렁이는 국경을 따라 기록한 끈질기고 성실한 취재는 고발에 그치지 않는다. 이 책의 가장 아름다운 대목은 부록에 있다. 저자는 “먼 바다의 혼란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놓치지 않았다.

베테랑의 몸
희정 지음, 최형락 찍음, 한겨레출판 펴냄

"몸은 일의 기억을 새기는 성실한 기록자이다."

노동에 대해 써온 기록노동자의 시선이 이번에는 베테랑이 된 이들의 '몸'으로 향했다. 그들의 성실과 생의 굴곡이 몸에 새겨져 있다. 뱃심 든든한 몸통, 짧게 다듬어진 손톱, 갈라진 발바닥…. 기계화와 외주화가 진행되면서 이들은 언젠가 대체될 노동력쯤으로 치부된다. 베테랑이 되어온 시간이 알고 싶어 베테랑 13인을 만나 인터뷰했다. 안마사는 근육을 세세하게 아는 손을 가졌고 조산사는 예민함과 평정심을 동시에 지녔다. 로프공은 안전을 통제하겠다는 감각이 온몸에 배었다. 생애사나 다름없는 인터뷰는 '일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나아간다. 몸에 '붙은' 숙련과 기술이 과연 대체 가능한 것인지 묻는다.

딸이 조용히 무너져 있었다
김현아 지음, 창비 펴냄

“의사 앞에서도 나는 우리 아이가 그럴 리 없다고 부인했다.”

뭔가 잘못되고 있었다. 아이의 팔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칼자국을 본 뒤에야 아이가 완전히 무너졌다는 걸 알게 되었다. 7년 전 둘째 딸이 양극성 스펙트럼 장애 진단을 받고 보호병동에 입원했다 퇴원하길 반복하면서 저자의 삶도 달라졌다. ‘가족의 고통의 기록이다’라는 말처럼 정신질환 당사자와 그 가족이 겪은 고통이 담겼다. 류마티스내과 교수인 그는 부부 모두 의사인 가정도 이렇게 힘든데, 전문지식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이 이런 상황을 어떻게 견뎌낼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고통을 드러내는 데에서 나아가 병의 양상과 사회적·의학적 논의까지 짚어낸다. 당사자이자 연구자로서의 강점이 녹아 있다.

AI 윤리에 대한 모든 것
마크 코켈버그 지음, 신상규·석기용 옮김 ,아카넷 펴냄

"우리는 과장된 이야기들을 넘어설 수 있을까?"

저명한 과학철학자인 저자는 우선 AI(인공지능)를 둘러싼 양극화된 이야기들을 비판적으로 소개한다. 한쪽이, 폭발적 기술 발전으로 결국 기계가 인간 사회를 지배하게 될 것이라는 ‘기술적 특이점’류의 숙명론이라면 그 반대쪽에선 인간이 첨단기술을 통해 스스로를 신으로 업그레이드해야 AI를 통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런 이야기들의 기저에 '인간 대 기계의 경쟁' '프랑켄슈타인 콤플렉스' 등 낯익지만 과학적이지 않은 사고방식이 깔려 있다는 점을 폭로하면서 종말론이나 플라톤적 초월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해법을 찾아 나선다. 이 같은 방법론 위에서 AI 기술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며 프라이버시, 투명성, 설명 가능성, 편향, 공정성, 불평등 등 AI 윤리의 쟁점들에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접근한다는 점이 이 책의 특장점이다.

퀴어문화축제 방해 잔혹사
구권효·나수진 지음, 한티재 펴냄

“예수님으로부터 시작하는 기독교의 역사는 사실 소수자의 역사이기도 하잖아요.”

두 저자는 〈뉴스앤조이〉 취재기자다. 〈뉴스앤조이〉는 ‘금권과 교권에 얽매이지 않는 독립언론’을 지향하는 기독교 인터넷 신문사다. 연혁을 보면 더 독특하다. 민주언론시민연합에서 ‘이달의 좋은 보도상’을 자주 받았고,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에서 주는 무지개인권상과 국제앰네스티 언론상도 수상했다. ‘기독교 언론’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곳이다. 이 책도 그렇다. 올해 ‘반동성애 개신교인들의 퀴어문화축제 방해가 10년이 되는 해’라는 것을 깨달은 〈뉴스앤조이〉 기자들이 그간의 방해 행위를 기록으로 엮었다.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김의경 외 10명 지음, 문학동네 펴냄

“후대 작가들은 알 수 없는 것, 동시대 작가의 눈에만 보이는 것도 있다.”

'월급사실주의' 동인의 첫 앤솔러지. 동시대 한국 사회의 노동 현장을 사실적으로 다루는 문학이 더 많이 창작되어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한 작가들이 모였다. 팬데믹의 직격탄을 맞은 여행사, 지방에서 상경한 일간지 편집기자, 택배 상하차로 근근이 생활하는 스무 살 청년까지 작가들이 포착한 여러 노동의 현실이 단편소설로 구체화되었다. 먹고사는 문제가 왜 ‘힘 있는 문학’이 되는지 보여준다. 장강명 작가는 서문에서 “아름다운 노래가 재난을 당한 이들에게 위로를 줄 수 있고 그것은 예술의 힘이다”라고 썼다. 이런 시대에 문학을 왜 읽어야 하느냐라는 질문에 대한 작가들의 대답이기도 하다.

기자명 시사IN 편집국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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