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원 그림
ⓒ한성원 그림

이불 빨래를 했다. 삭신은 쑤시지만 말간 햇볕에 이불을 널어 말리니 기분이 개운하다. 이참에 찌든 머릿속도 깨끗이 세탁해볼까. 뇌를 세탁하는 데는 과학책만 한 것이 없지. 카를로 로벨리의 〈보이는 것은 실재가 아니다〉(김정훈 옮김, 쌤앤파커스)를 펼친다. 몇 번이나 읽었는데 매번 새롭다. 내용을 기억하거나 이해하기엔 내 물리학 지식이 워낙 일천하다. 그래도, 아니 그래서, 읽을 때마다 뇌가 놀라고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이탈리아 출신의 이론물리학자인 카를로 로벨리는 일반상대성 이론과 양자이론을 결합한 새로운 시각에서 현대 물리학의 최신 흐름을 대중적으로 설명하는 책을 썼다. 어찌나 잘 썼는지 전 세계에서 100만 부 넘게 팔렸고, 상대성이론도 양자이론도 모르는 나 같은 문외한도 책장을 덮지 못하고 끝까지 읽게 된다.

로벨리는 ‘시간과 공간이 없는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 현대 물리학의 아이디어들이 잉태된 2600년 전 고대 그리스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왜?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모든 과학 지식이 소실되고 딱 한 문장만 후대에 전할 수 있다면 그건 원자 가설일 거라고 했다. “모든 것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라는 한 문장에서 세계에 관한 막대한 정보를 볼 수 있다고. 한데 이렇게 중요한 원자 가설을 처음 생각한 것이 바로 데모크리토스였고, 그는 스승 레우키포스를 통해 서기전 6세기 과학적 사고를 꽃피운 밀레토스 학파와 이어진다. 그러니 현대 물리학을 고대에서 시작할 수밖에.

로벨리는 밀레토스 학파와 그 후예인 데모크리토스가 이런 획기적인 사고를 할 수 있었던 힘을 다양성과 민주주의에서 찾는다. 밀레토스는 그리스·메소포타미아·이집트 문명이 만나는 접점에 위치해 있었고, 역사상 최초의 의회가 소집된 곳이었다. “토론을 통해 공동체를 위한 최선의 결정에 이를 수 있다, 토론을 통해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이 밀레토스가 남긴 위대한 유산이다.” 이 유산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에 숨통이 조이고 기독교에 의해 아주 끊어질 위기에 처했으나 단 한 권의 책이 남아 르네상스를 일으킨 역사는, 스티븐 그린블랫의 흥미진진한 책 〈1417년 근대의 탄생〉(이혜원 옮김, 까치)에서 확인할 수 있으니 참고하시압.

데모크리토스와 밀레토스 학파를 재조명한 로벨리의 시각은 참신하고 전복적이다. 그는 데모크리토스의 저작 목록 수십 권을 열거하고 이 모두가 소실되었음을 상기시킴으로써, 과학은 물론 지식의 역사 전체를 돌아보게 한다. 지금 우리가 고전이라 알고 있는 것 외에 얼마나 많은 혜안들이 사라지고 잊혔을까? 제임스 포스켓의 〈과학의 반쪽사〉가 하나의 답을 제공한다. 이제껏 어디서도 본 적 없는 과학자들의 이야기, 근대 과학사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통해.

고대 과학을 재구성한 로벨리도 이후의 과학사에 대해선 통념을 따른다. 2세기경 프롤레마이오스의 천문학을 끝으로 고대 과학은 몰락했고 인도와 페르시아, 아랍 과학자들이 이를 보존하긴 했지만 그뿐, 코페르니쿠스가 등장할 때까지 긴 암흑기가 이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포스켓은 코페르니쿠스에서 시작해 갈릴레이, 뉴턴, 다윈, 아인슈타인으로 이어지는 과학사, 16~17세기에 유럽에서 과학혁명이 일어났고 이를 통해 서구가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다는 통설에 반기를 든다.

다윈은 진화론을 창조하지 않았다

그에 따르면, 과학혁명은 유럽과 아시아·아프리카·아메리카의 다양한 문화가 조우한 결과이며, 그 역사는 아즈텍 제국에서 중국 명나라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를 아우른다. 코페르니쿠스만 해도 11세기 이집트의 이븐 알하이삼을 비롯해 13세기 페르시아의 나시르 알딘 알투시, 15세기 사마르칸트 연구자 알리 쿠시지 같은 이슬람 과학 전통에 기반을 두고 있었으니, “태양이 우주의 중심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주장조차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뉴턴 같은 ‘고립된 천재’의 연구를 통해 계몽주의 과학이 발전했다는 이야기 역시 유럽식 신화일 뿐이다. 포스켓은 뉴턴이 노예무역에 투자한 금융인이었음을 상기시키면서, 뉴턴은 골방의 천재가 아니라 제국과 노예제라는 외부 세계와 연결되어 있었고 제국이 후원하는 국가적 탐사와 데이터 수집의 수혜자였다고 지적한다. 더욱이 제국주의 국가들이 단독으로 탐사에 성공하거나 중요한 사실을 발견한 것도 아니었다. 잉카, 폴리네시아, 시베리아 등 각지에서 만난 뛰어난 토착민 과학자들과 전통 지식 덕분에 유럽인들은 새로운 물리학·식물학적 지식에 눈을 떴고 항해와 측량 같은 실용 과학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그림문자로 기록하는 아즈텍 전통은 세밀화를 넣은 자연사 서술로 이어졌고, 영국인들이 “진정한 천재”라 칭한 폴리네시아의 투파이아가 제공한 해도(海圖)는 제임스 쿡의 오스트레일리아 발견을 이끌었다. 또한 유럽의 자연학자들은 아프리카 치료사들, 인도 브라만 사제들, 중국의 〈본초강목〉 등에서 식물과 분류법에 관한 지식을 얻었다. 다윈의 진화론조차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종의 기원〉에서 러시아와 중국 학자들을 인용했을 만큼 진화 개념은 널리 논의되고 있었다. 특히 메치니코프와 베게토프 같은 러시아의 진화론자들은 다윈과 달리 자원 경쟁보다 ‘환경과 질병’에 초점을 맞추며 진화론의 지평을 넓혔다. 제국과 냉전 시대에 잊혔던 러시아의 ‘협동의 진화론’이 현대 생태학의 토대가 된 것은 과학도 사회문화적 영향 아래 있음을 말해준다.

포스켓은 방대한 자료를 통해 현대 과학이 유럽에서 발명되었다는 냉전 시대의 신화를 무너뜨리고 그동안 지워졌던 ‘반쪽의 과학사’를 복원한다. 그렇게 완성된 온전한 과학사를 알고 나면 더 이상 세상을 전 같은 눈으로 볼 수 없다. 과학사의 혁명이라 할 만하다.

기자명 김이경 (작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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