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저항 성격의 보수적 풀뿌리 운동 ‘티파티’는 이민 반대 등을 구호로 내세운다.ⓒAP Photo
조세저항 성격의 보수적 풀뿌리 운동 ‘티파티’는 이민 반대 등을 구호로 내세운다.ⓒAP Photo

케빈 매카시 미국 하원의장의 낙마가 확실시되던 때, 소셜미디어와 언론 보도에선 〈영 건스(Young Guns)〉라는 책의 표지가 돌기 시작했다. 영 건스는 ‘젊은 유망주’로 번역된다. 낙마한 케빈 매카시뿐만 아니라 전직 공화당 출신 하원의장 폴 라이언, 2011~2014년에 하원 내 공화당 2인자였던 전직 원내대표 에릭 캔터를 일컫는 표현이다. 한때 공화당의 미래를 자처한 이들 세 명 모두 현재 공화당 내부 분열과 갈등으로 정치 생명이 끝났다. 공화당의 현주소를 너무나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미국 정치에는 “민주당원은 (자기 당과) 사랑에 빠지고, 공화당원은 (자기 당의) 규율을 지킨다(Democrats fall in love, Republicans fall in line)”라는 격언이 있다. 민주당은 여러 이익단체와 인종이 불규칙하고 느슨하게 묶여 있어 잘 조직된 정당이라 보기 어려운 데 비해, 공화당은 통일된 이념과 응집성 높은 조직력을 보이는 현실을 반영한 말이다.

오늘날의 현실은 달라 보인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에즈라 클라인의 말을 빌리면, “민주당원은 규율을 지키고, 공화당원은 분열한다(Democrats fall in line and Republicans fall apart)”. 이러한 공화당의 급격한 변화는 일견 혼란스럽다. 하지만 2008년 이후 공화당의 변화 그리고 공화당 내 현재 기류, 특히 활동가 그룹과 지식인들의 행태를 보면 이해하기 쉽다.

공화당은 전통적으로 기업 이익을 대표하는 경제적 보수주의에 기반한다. 이러한 토대 위에 사회적 보수주의를 내세우는 이른바 ‘포퓰리스트’적 흐름의 풀뿌리 운동이 공존해왔다. 이러한 공존은 2008년을 전후로 큰 변화를 맞이한다. 2008년, 미국 경제위기와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이 있었다. 오바마 대통령 취임식날 밤, 공화당 지도부는 ‘코커스 룸’이라는 이름의 스테이크 식당에 모였다. 이들은 오바마의 재선 실패를 당의 최우선 목표로 삼았다. 이를 위해 오바마 대통령의 모든 국정 운영을 총력 저지하고 절대 협력하지 않기로 결의한다.

‘젊은 유망주’로 꼽혔던 폴 라이언, 에릭 캔터, 케빈 매카시(왼쪽부터)는 프리덤 코커스와 부딪치며 정치적 위기를 겪었다.
‘젊은 유망주’로 꼽혔던 폴 라이언, 에릭 캔터, 케빈 매카시(왼쪽부터)는 프리덤 코커스와 부딪치며 정치적 위기를 겪었다.

마치 이 전략에 부응하는 것처럼, ‘티파티(Tea Party)’라는 조세저항 성격의 보수적 풀뿌리 운동이 벌어졌다. 그 덕에 공화당은 2010년 중간선거에서 대승을 거뒀다. 이 운동이 당의 성격까지 바꾸었다. 티파티를 촉발케 한 무분별한 정부지출 반대라는 움직임은 이민 반대와 인종적 적대감에 기댄 에너지로 변했고 공화당 전체를 뒤흔들었다.

‘사냥개’가 주인을 무는 일이 반복됐다. 대표적 사건은 ‘영 건’ 중 한 명인 에릭 캔터의 2014년 경선 실패다. 하원의장 후보감으로 언급되던 에릭 캔터가 티파티 후보이자 무명의 대학교수인 데이브 브랫에게 패배했다. 오바마 대통령과 협의해 이민 개혁 법안을 통과시킬 의향이 있다고 말한 게 화근이었다. 트럼프의 2016년 대선을 도운 스티브 배넌이 데이브 브랫에게 이민 문제로 에릭 캔터를 물고 늘어질 것을 권유했다. 그 결과, 30%포인트 차이로 앞서던 에릭 캔터는 11%포인트 차이로 졌다. 다수당 원내대표가 경선에서 패배한 것은 1899년 이후 처음 벌어진 일이었다.

제도화된 티파티, 프리덤 코커스

풀뿌리 운동의 에너지는 프리덤 코커스(Freedom Caucus)라는 의원 그룹으로 제도화됐다. 이 에너지의 다음 희생자들은 공화당 하원의장 존 베이너와 나머지 영 건 두 명, 폴 라이언과 케빈 매카시였다. 1970년대 이후로 꾸준히 보수화되던 공화당은 2010년 선거 이후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정치 초보와 티파티·프리덤 코커스 성향 의원들이 공화당의 보수화를 주도해왔다. 프리덤 코커스 소속 의원들은 공화당 의원 이념의 중간값보다 오른쪽에 있다(〈그림 1〉).

프리덤 코커스 소속 의원들이 공화당 지도부와 부딪치는 부분은 바로 예산안이었다. 이들은 매년 정부 예산안 협상에서 비현실적인 예산 삭감을 요구해왔다.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예산안 통과를 거부하고 정부 운영을 중지하는 셧다운(government shutdown)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비타협적 태도를 보였다. 결국 존 베이너 의장과 폴 라이언 의장 모두 프리덤 코커스와 여타 공화당 의원들을 조정하는 데 한계를 느껴 직을 내려놓고 정계를 은퇴했다. 심지어 케빈 매카시는 사상 초유로 하원의장 자리에서 해임됐다.

공화당 풀뿌리의 에너지가 이렇게 공화당 전체를 송두리째 흔드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제도와 관련된 측면이 있고, '공화당 지지 유권자들의 정치적 성향'에서도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먼저 '제도 문제'를 살펴보기 위해선 공화당 의원들의 선거 경쟁이라는 현실을 이해해야 한다. 미국 하원의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재선이다. 게다가 임기가 2년이다. 다음 선거가 빠르게 다가온다.

공화당 의원들의 재선 전망은 어떤가? 의석 성향 분류로 명성이 높은 ‘쿡 폴리티컬 리포트(Cook Political Report)’에 따르면, 총 435석 중 공화당 절대우위 지역구는 188석, 민주당 절대우위 지역구는 170석이다. 선거 경쟁이 무의미한 의석이 83%에 달한다. 나머지 다소 우위 지역을 제외하면, 민주당과 공화당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지역구는 10% 정도다.

진정한 경쟁은 경선에서 펼쳐진다. 특히 공화당 경선은 현역 의원들을 떨게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다. 현역 의원보다 더 보수적인 정치 신인이 현역 의원이 ‘충분히 보수적이지 않다’고 주장하며 출사표를 던진다.

〈그림 2〉는 경선 경쟁과 정치 신인의 위협을 잘 보여준다. 2010년 이전 민주당과 공화당 양당 모두 현역 의원이 경선에서 경쟁하는 비율은 큰 차이가 없었다. 2010년 이후 비율을 살펴보면 공화당이 민주당을 크게 앞섰다. 또한 정치 신인이 더 경험 있는 후보를 이기는 경우도 2010년 이후 공화당이 앞선다. 특히 2016년에는 정치 신인이 경선에서 승리한 비율이 50%를 넘었다.

보수적 정치 신인의 돌풍이야말로 공화당의 내분을 가속하는 원동력이 된다.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2023년 현재 프리덤 코커스 의원 중 71%가 의원 경력이 6년 이하다. 민주당은 소속 의원 중에서 경력 6년 이하 의원이 50%를 차지한다.

그러면 ‘새로운 공화당’을 뒷받침하는 유권자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공화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은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위협으로 인식하는 성향이 강하다. 제도권에 대한 불신 또한 강력하다. 영국 경제 전문지 〈이코노미스트〉와 여론조사 기관 유고브(YouGov)는 9월23~26일 미국 성인 1500명에게 ‘자신에게 더 부합하는 세계관’을 물었다. 공화당 유권자의 67%는 '자신들의 삶이 테러리스트, 범죄자, 불법 이민자로부터 위협받고 있다'고 답했다. 이들로부터 보호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반면 민주당 유권자의 71%는 '세상은 넓고 아름다우며 좋은 사람으로 가득해 서로를 받아들일 수 있다'고 본다.

‘세상은 위협으로 가득 차 있다’는 공화당 유권자의 세계관은 공화당 지도부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진다. 여론조사 기관 시빅스에 따르면, 상원 원내대표 미치 매코널 의원에 대한 공화당 유권자의 비호감도가 호감도를 49%포인트 상회한다. 민주당 유권자들이 상하원 원내 지도부에 갖는 호감도가 비호감도보다 60%포인트 더 높은 것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공화당 내 전파되는 ‘비자유주의’

공화당 유권자는 지지 정당 원내 지도부를 싫어하는 반면, 민주당 유권자는 지지 정당 원내 지도부를 좋아한다. 트럼프 전 대통령처럼 ‘위협으로부터 지켜주고 싸워주겠다’는 인사가 아닌 이상에야, 공화당 유권자들에게 워싱턴 제도권 정치인은 (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 그저 진흙탕에 불과하다. 이런 불신을 먹고사는 정치 신인들이 공화당을 통치 불능 상태로 몰아가고 있다.

케빈 매카시 의장 해임 이후에도 놀랄 일은 아직 남아 있으리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공화당의 풀뿌리 운동과 정치인을 이어주는 활동가·지식인 그룹의 행태 때문이다. 티파티 운동과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으로 이어진 에너지를 반영하기 위해 활동가와 지식인들은 ‘비자유주의’를 적극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소수자 권리 보호와 다원주의적 공존을 위해서는 권력에 대한 견제와 균형이 필수인데, 비자유주의는 이를 거부한다. 대신 보수주의 목적을 달성하려면 국가권력을 이용해 반대 세력을 적극 탄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보수주의 활동가와 지식인들은 경쟁적으로 비자유주의를 설파한다. 인종주의, 국가와 종교의 분리 거부, '기독교와 백인의 미국 회귀' 같은 목표를 공공연히 내세운다.

케빈 매카시 등 영 건 3인방의 퇴장을 단순히 ‘공화당의 내부 분열 심화’나 ‘공화당의 국가 통치 능력 상실’로만 볼 수 없는 이유다. 공화당은 2008년 이후 항구적으로 이어져오던 당의 위기를 풀뿌리 운동의 힘으로 극복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는 제도권에 대한 깊은 불신을 당 안으로 가져오는 결과를 낳았다. 민주주의를 거부하는 기류가 당의 주류가 되어가는 과정만 가속화했다.

영 건 3인방은 파우스트처럼 ‘악마와 계약을 맺고’ 보수주의의 부흥을 꿈꿨다. 그러다가 정작 이들이 역사 속 뒤안길로 사라졌다. 마저리 테일러 그린, 맷 게이츠, 로런 보버트와 같은 새로운 3인방이 공화당의 다음 얼굴이 되었다. 영 건 3인방은 그때 자신들의 선택이 민주주의의 위기를 낳으리라는 점을 알고 있었을까.

기자명 국승민 (미시간 주립대학교 정치학과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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