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uter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운데)가 11월7일 당선 축하행사 무대에서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2020년 미국 대선의 승자와 패자는 누구인가? 승자는 바이든이고 패자는 트럼프다. 이차적 승자로는 조지아주를 민주당 손에 안긴 스테이시 에이브럼스와 공화당의 상원 다수당 지위를 지켜낸 미치 매코널 등을 거론할 수 있다. 이차적 패자는 플로리다주에서 민주당 승리를 위해 천문학적 돈을 투자하고도 진 마이클 블룸버그가 꼽힌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미국 대선의 궁극적 승자와 패자는 따로 있다. 토마 피케티와 그의 신간 〈자본과 이데올로기〉가 승자, 여론조사가 패자다.

대학 교육을 받은 도시 유권자들이 대거 바이든을 지지하고, 농촌에 살고 대학 교육을 받지 않은 유권자들이 대거 트럼프를 지지했다. 2016년 감지되기 시작한 변화이지만, 이번 대선으로 경향이 심화되었다. 교육수준에 따라 정치적 균열이 형성되었다는 피케티의 관찰이 그대로 들어맞았다. 피케티는 자신의 날카로운 관찰이 다시 확인됐다는 사실에 웃겠지만, 피케티가 전망한 정치 변화를 제대로 따라잡지 못한 여론조사 업체들은 울상을 지을 듯하다.

이 글에서는 여론조사에 대해 진단하고자 한다. 그동안 여론조사는 시민의 의사를 측정하는 청진기 구실을 해왔다. 그런데 이번 선거에서는 2016년 때보다 더 큰 오차를 보였다. 여론조사는 이제 수명이 다한 것일까? 2020년 대선에서 미국 여론조사 업체들은 무엇을 틀렸고 무엇을 정확히 맞혔는가. 그리고 틀렸다면 왜 틀렸을까.

6.2%포인트 오차. 11월3일 미국 대선에 대한 여론조사 업체들의 성적표다. 표본오차 범위를 벗어나는 차이다. 미국 갤럽이 1992년에 클린턴 당시 후보의 지지율을 6%포인트 낮게 예측한 이후로 가장 최악의 결과다. 2016년의 실패 이후 미국의 여론조사 업체들은 교육 변수를 가중치 계산에 추가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했다. 하지만 오히려 결과는 더 나빠졌다. 실패라고 기억된 2016년의 트럼프-힐러리 대선 여론조사도, 사실 전국 조사는 상당히 정확했다. 선거 전문 예측 웹사이트 ‘파이브서티에이트(fivethirtyeight.com)’ 분석에 따르면 힐러리와 트럼프의 차이는 3.9%포인트. 힐러리가 그만큼 앞섰다. 실제 결과도 힐러리가 2.1%포인트 이겼다. 결과적으로 여론조사 업체들의 오차는 4년 전보다 3배 더 벌어졌다. 여론조사의 품질이 더 나빠졌다는 의미다.

주별 여론조사 결과는 더 처참하다. 평균 7.4%포인트 오차다. 알래스카주에서 최고 22.7%포인트의 오차가 발생했다. 총 576회의 여론조사가 이뤄진 최고 경합지 플로리다주는 5.3%포인트 벗어났다. 2016년 여론조사와 비교하면 어떨까? 2016년의 실패는 주별 여론조사에서 두드러졌다. 공화당의 득표율이 올라갈수록 오차는 더 커졌다. 이번 대선을 앞두고 여론조사 업계 관련자들과 정치학자들은 ‘2016년 패턴을 정확히 이해했고,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2020년 여론조사 결과가 더 뼈저린 점은 2016년 패턴이 그대로 반복되었다는 사실이다. 2020년 대선에서 공화당 지지세가 높은 지역일수록 여론조사의 정확도는 떨어졌다. 선거인단 수로 대통령을 뽑는 미국의 정치제도에서 주별 여론조사의 부정확성은 치명적이다. 아직 개표가 끝나지 않았기에 좀 더 지켜보자는 관련 업계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있지만, 속내는 ‘당혹’이라는 단어로도 표현되지 않을 만큼 심각하다.

ⓒEPA11월7일 대선 결과에 반발한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여론조사는 왜 실패했을까

물론 가장 중요한 득표율 예측에 실패해 당장 폐업하라 해도 할 말 없는 여론조사 업계지만, 여론조사가 정확하게 맞힌 점도 없지 않다. 어떤 유권자 그룹이 트럼프와 바이든에게로 옮겨갔는지 여론조사는 정확히 예측했다. 트럼프와 바이든 캠프는 모두 이런 예측에 따라 선거운동을 전개했다. 바이든이 백인·중도·교외 지역 여성의 지지세를 획득했다. 트럼프가 일부 비백인·백인 저학력·농촌 지역의 표를 얻는다는 사실은 사전 여론조사와 일치했다.

여론조사는 트럼프와 바이든 캠페인에 무엇을 알렸는가. 흑인 유권자 사이에서 바이든은 트럼프보다 77%포인트 앞섰지만, 2016년 힐러리가 얻은 82%포인트보다 적다. 우위 폭이 약 5%포인트 줄었다. 바이든은 ‘라티노 표심’에서 트럼프보다 24%포인트 우세했다. 하지만 힐러리보다 13%포인트 감소한 수치다. 트럼프 캠페인이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비백인 유권자를 공략한 것은 이런 자료에 기반한 것이다.

바이든이 ‘라티노 지지’에서 비상등이 켜진 것이 각종 여론조사를 통해 밝혀지면서, 바이든 캠프는 9월부터 선거 전략을 수정했다. 미국에서 대히트를 친 스페인어곡 ‘데스파시토(Despacito)’에 따라 바이든이 춤추는 영상이 유명해진 때도 정확히 9월 중순이다. 민주당이 전통적으로 열세였던 교외 지역에서 우위를 보이기 시작한 것도 여론조사에 포착됐다. 교외에 사는 백인 여성은 처음으로 9%포인트의 바이든 우위를 보여줬다. 이런 추세는 조지 플로이드 사망사건과 인종차별 시위 이후 더욱 뚜렷해졌다. 여론 변화에 따라, 바이든은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메시지를 선거 내내 유지했다.

미국 여론조사 업체들의 정확한 예측은 두 가지 더 있다. 국정 지지도와 바이든 득표율이다. 미국 역사상 대통령 국정 지지도 조사가 이뤄진 이래, 대선 전 마지막 조사에서 부정이 긍정보다 높았던 현직 대통령이 당선된 사례가 없다. 트럼프는 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보다 6%포인트 높았다. 국정 지지도로 현직 대통령의 선거인단 수를 예측하는 앨런 애브라모위츠의 모델을 따르면, 트럼프는 228석 확보로 예상됐다. 실제로 얻을 것으로 예측되는 선거인단 232석과 매우 유사하다.

여기서 질문이 생길 수 있다. 위에서 분명 선거 여론조사들이 실제 미국 대선 결과와 6.2%포인트 오차를 보였다고 했는데, 어떻게 바이든의 득표율은 정확하게 예측됐을까? 파이브서티에이트에 따르면, 개표 전 바이든은 51.8% 득표를 할 것으로 예측됐다. 미국 시각 11월11일 현재, 바이든의 득표율은 50.8%다. 캘리포니아주와 뉴욕주의 개표가 완료되면 바이든의 득표율은 51.8%에 가까울 것으로 예상된다. 선거 여론조사의 절반은 매우 정확했다.

결국 여론조사가 틀린 부분은 47.4%의 트럼프 득표율이다. 파이브서티에이트 집계의 43.4%보다 4%포인트 높다. 숨은 4%포인트의 정체는 무엇인가? 세간에 잘 알려진 가설은 ‘샤이 트럼프 현상’이다. 트럼프 지지는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기에, 응답자들이 여론조사를 거부하거나 거짓말을 한다는 설명이다. 이 가설은 매우 널리 퍼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론조사 업계와 학계에서 모두 기각된 지 오래다.

2020년 미국의 여론조사 업체 모닝컨설트(Morning Consult)는 ‘샤이 트럼프’의 존재를 밝히기 위해 유권자 2400명가량을 조사했다. 전화 절반, 인터넷 절반으로 조사를 실시했다. 인터넷 조사는 조사원과 대화를 할 필요가 없기에 응답자가 더 솔직할 수 있다. 전화 조사와 비교하면 샤이 트럼프 유권자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놀랍게도 인터넷 조사와 전화 조사의 차이가 크지 않았다. 오차범위 내에서 차이가 없었다. 2015년 공화당 경선 당시에 같은 업체가 조사했을 때는 꽤 큰 규모의 샤이 트럼프 지지자를 확인했다. 또한 2016년 대선 당시에 고학력 고소득 유권자들 사이에서도 작은 규모의 샤이 트럼프가 발견됐다. 이와는 대비되는 결과다. 트럼프를 대상으로 하지 않는 상원 선거 여론조사에서도 6.4%포인트의 오차가 있다. 이를 종합해보면 샤이 트럼프 가설은 지지받기 어렵다.

ⓒCNN 화면 갈무리11월3일 CNN의 미국 대선 개표방송 모습. 개표 결과와 여론조사 사이에 차이가 컸다.

학계와 여론조사 업계에서 주목하는 것 중 하나는 트럼프 지지자들, 특히 민주당을 지지했다가 2016년부터 트럼프를 지지한 유권자들이 사회 일반에 대해 낮은 신뢰 수준을 갖는다는 점이다. 여론조사는 낯선 조사원이나 업체에 자신의 솔직한 정치 성향을 밝히는 일이다. 낯선 사람에 대한 신뢰가 낮은 사람일수록 여론조사에 응답할 가능성 또한 낮을 것이다. 오바마 캠프 출신의 선거 데이터 분석가 데이비드 쇼어가 이 가설의 증거를 제시했다. 그의 2016년 선거 분석에 따르면, 2016년 힐러리-트럼프 대선의 성적은 2012년 오바마-롬니 대선과 비교했을 때 ‘낯선 이웃을 신뢰한다’고 응답한 층에서 차이가 난다. 고신뢰·고학력층에서 힐러리가 오바마보다 공화당에 대한 우세를 7%포인트 벌렸다. 고신뢰·저학력 유권자층에서는 힐러리가 오바마보다 5%포인트 더 얻었다. 힐러리 지지자의 고신뢰 성향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반면 저신뢰·고학력 유권자들 사이에서 힐러리는 1%포인트 추가 득표를 했지만, 트럼프는 저신뢰·저학력 유권자들에게서 9%포인트 더 많은 표를 얻었다. 저학력 유권자일수록 낮은 신뢰 수준을 보이는데, 이러한 유권자들은 여론조사에 응답할 가능성도 낮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년간 제도권 언론과 여론조사 업체를 공격했다. 트럼프 지지자 사이에서는 이러한 성향이 더욱 극대화되었을 것이라 추정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지는 것으로 나오는 여론조사는 모두 가짜라고 수차례 강조해왔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대통령이 제도권 관료·정치인·언론과 홀로 싸운다고 믿기에 트럼프의 여론조사 공격에 호응했을 것이다.

저신뢰 사회에서 트럼프를 신뢰한 사람들

당파성이 짙은 유권자들이 여론조사에서 지지 정당에 유리한 답을 하는 ‘당파적 응원(partisan cheerleading)’ 행태는 정치학 연구로 여러 차례 밝혀져왔다. 브라이언 샤프너와 서맨사 럭스는 조사 참여자들에게 트럼프와 오바마의 대통령 취임식 사진 두 장을 보여주고 어느 사진에 더 많은 참석자가 있는지 물었다. 오바마 취임식 참석 인구가 압도적으로 많음에도 불구하고, 15%의 트럼프 지지자들은 트럼프의 취임식 사진을 골랐다(오른쪽 〈그림〉 참조). ‘트럼프를 매우 지지한다’고 응답한 유권자들이 3~7배 가까이 높은 확률로 사실과 다른 선택을 했다. 트럼프 지지자들이 이런 사실관계를 묻는 질문에서조차 트럼프에게 유리한 응답을 했다면, 선거에 영향을 미칠 여론조사에서도 트럼프의 뜻에 따라 제대로 응답을 안 했을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지지자의 15%는 트럼프 취임식 사진인 A가 더 사람이 많다고 골랐다.

많은 수의 저신뢰 유권자들이 트럼프에게로 넘어갔고 이들은 트럼프를 열성적으로 지지하는 형국이다. 트럼프의 어떤 점이 저신뢰 유권자들을 매혹시켰을까? 2008년 미국 사회를 뒤흔든 두 가지 사건에 주목한다.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과 금융위기다. 오바마 당선 이후로 미국에서 인종에 따른 분열이 끝나고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희망이 부풀었다. 그러나 현실은 반대 방향으로 향했다. 인종에 대한 태도는 미국 시민을 반으로 갈랐고, 이는 오바마케어 지지 여부로까지 연결되었다. 오바마의 미국 태생을 의심하는 운동을 이끌었던 트럼프가 오바마 이후 차기 대통령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또한 오바마 시대를 거치면서 과거에는 관찰되지 않았던 백인 정체성과 백인 집단의식이 형성되었다. 정치학자들이 개발한 인종차별 지수는 2016년에 이어 2020년까지 트럼프 지지를 설명하는 가장 강력한 변수가 되었다. UCLA 네이션스케이프 조사를 직접 분석해봤다. 결과에 따르면, 인종차별 지수가 가장 낮은 유권자들은 2% 확률로 트럼프를 지지한다. 반대로 인종차별 지수가 가장 높은 유권자들은 92% 확률로 트럼프를 지지한다. ‘흑인은 노력이 부족해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겪는다’는 생각이 ‘트럼프 지지’와 ‘트럼프 반대’를 가른다. 최초의 흑인 대통령 당선은 미국을 인종이라는 이슈로 갈라놓았다.

미국 사회의 신뢰 수준을 무너뜨린 또 다른 사건은 2008년 금융위기다. 금융위기 이후 약 10년간 경제회복의 과정에서 도시와 농촌 그리고 고학력과 저학력 노동자의 격차가 극명하게 벌어지기 시작했다. 불평등의 심화는 미국 농촌 지역에서 자살률과 마약 사용 증가와 같은 다양한 사회문제로 나타나고 있다. 신뢰에서도 마찬가지다. 신뢰 조사가 처음 이뤄진 1970년대 이후 미국의 신뢰는 꾸준히 떨어졌지만, 금융위기 직전인 2000년대 중반에는 저점을 찍었다. 2008년 이후 신뢰 수준이 회복되어갔지만, 도시와 농촌의 회복 수준은 간극이 크다. 학술 조사인 ANES 데이터에 따르면, 도시 지역 유권자 59%가 ‘대부분의 경우 다른 사람을 신뢰할 수 있다’고 응답했지만, 농촌 지역의 이 응답은 44%에 불과하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과학적 여론조사는 안정적으로 미국 대통령을 예측해왔다. 업계의 선두주자 갤럽은 1936년부터 2008년까지 단 두 번 틀렸다. 여론조사가 위기에 처했다는 것은 단순히 조사 방법의 한계라고 보기 어렵다. 여론조사의 실패를 좀 더 깊이 들여다보니, 도시와 농촌, 교육수준 그리고 인종에 대한 인식으로 갈린 미국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과연 바이든은 분열된 미국을 통합할 수 있을까? 피케티는 재분배로 문제를 해결하라고 조언하겠지만, 분열된 미국은 바이든에게 많은 선택지를 주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악조건에도 여론조사 업체들은 양극화된 미국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실패하든 성공하든 다시 노력할 것이다.

기자명 국승민 (오클라호마 대학 정치학과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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