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지구 알아흘리 병원의 폭격 사건(10월17일) 다음 날부터 중동 전역에선 이스라엘을 규탄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대한 포위·공습을 이어오다가 심지어 병원까지 공격 대상으로 삼은 만행이라는 것이다. 가자지구를 통치하는 하마스는 폭격 사건으로 471명이 사망하고 314명이 부상당했다고 발표했다.

10월18일, 이집트 카이로에서 카이로대 학생들이 이스라엘과 미국을 규탄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REUTERS
10월18일, 이집트 카이로에서 카이로대 학생들이 이스라엘과 미국을 규탄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REUTERS

그러나 이스라엘은 병원 폭발 시점엔 ‘공습이 없었다’고 주장한다. 하마스의 협력‧경쟁 상대인 무장 단체 ‘이슬라믹 지하드’가 이스라엘 쪽으로 쏜 로켓이 알아흘리 병원으로 떨어졌다는 입장이다. 미국 정부 역시 이스라엘엔 “책임이 없다”라며 오랜 동맹국의 손을 들어줬다.

그렇다면 누가 그날 처참하게 숨진 수백여 희생자에 대한 책임을 질 것인가? 이 기사에서는 이스라엘의 입장과 서방 언론들의 취재 결과를 먼저 서술하고자 한다. 하마스와 중동 언론의 입장은, 이어지는 기사에서 전하겠다.

가자지구 상공의 섬광

책임자를 규명하기 위한 중요한 단서가 있다. 폭발 사건은 10월17일 오후 7시~7시20분에 발생했다. 그 시점에 가자지구 상공을 찍은 동영상이 있다. 아랍권을 대표하는 방송사인 〈알자지라〉가 입수해 현장 촬영 자료로 확인한 뒤 송출한 것으로 보인다. 20여 초 길이인 동영상을 보면, 어두운 가자지구 상공으로 어슴푸레한 작은 빛 덩어리가 떠오른다. 발사체다. 빛 덩어리는 두어 차례에 걸쳐 섬광으로 번득이더니 다시 암흑 속으로 녹아든다. 몇 초 뒤 지평선 어딘가에서 불길이 치솟으며 주변의 허공을 주황색으로 물들인다. 알아흘리 병원이다.

ⓒ〈알자지라〉 송출 동영상 갈무리.
ⓒ〈알자지라〉 송출 동영상 갈무리

영국 BBC(10월18일)의 현지 취재에 따르면, 당시 알아흘리 병원엔 팔레스타인 사람 1600여 명이 몰려 있었다. 환자 600여 명이 병원 건물 안에서 진료를 받았다. 나머지 1000여 명은 건물과 담으로 둘러싸인 병원 내 부지에 있었다. 자신의 집보다 안전할 것으로 여겼던 병원으로 피신한 사람들이었다. 발사체는 이 사람들을 덮쳤다.

발사체를 쏜 자는 이스라엘 방위군이었을까, 이슬라믹 지하드였을까?

JDAM 혹은 ‘불량품 로켓’

발사체의 정체를 알면 풀릴 문제다. 가자지구 상공에서 관찰된 빛 덩어리가 번득인 현상도 중요한 단서다.

이스라엘과 미국 정부, 서방 언론들은 대체로 발사체가 이슬라믹 지하드 측의 ‘불량품 로켓’이라고 본다. 이스라엘 방위군이 이번 공습에 주로 사용했던 미국산 통합정밀직격탄(JDAM)이 그 발사체의 정체였다면, 동영상에 나온 빛 덩어리의 궤적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컨대 BBC가 인터뷰한 안드레스 개넌(Andres Gannon) 미국 반더빌트대 조교수에 따르면, 동영상의 발사체가 지상으로 떨어지면서 보여준 폭발력(불길)은 그리 강하지 않다. 영국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의 저스틴 브롱크(Justin Bronk) 선임연구원도 비슷한 의견이다. 그는 로켓이 가자지구 상공에서 (엔진 과열 등의 이유로) 이미 폭발해버렸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 잔해가 연료와 함께 알아흘리 병원으로 떨어진 뒤 얼마 남지 않은 파괴력을 주변으로 방사한 결과가 이번 참사라는 이야기다. 동영상의 폭발력이 약했던 이유다.

10월16일,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 남부의 라파를 공습한 뒤 생긴 거대한 구덩이. ⓒAFP PHOTO
10월16일,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 남부의 라파를 공습한 뒤 생긴 거대한 구덩이. ⓒAFP PHOTO

이 시각에서 보면, 발사체가 가자지구 상공에서 보인 번득임은 폭발로 해석될 수 있다.

목표물까지 도달하지도 못하고 폭발해버린, 이런 불량품을 쏘아 올린 자는 누구였을까? 서방 언론들은 이슬라믹 지하드라고 암시한다. 발사체가 이스라엘군의 JDAM이었다면 목표물 적중은 물론 훨씬 강한 폭발력이 관찰되었을 것이라고 분석한다(위 사진 참조).

"알아흘리 병원엔 큰 ‘구덩이’가 없다"

이슬라믹 지하드를 책임자로 지목할 또 하나의 정황 증거가 있다. 참사 현장의 모습이다. 발사체가 떨어진 알아흘리 내부 부지를, 일부 언론이 촬영해 송출했다. 자동차들이 불에 타는 등 심하게 파손되고 주변의 병원 건물들도 거뭇하게 그을렸지만 심각한 손상은 피한 것으로 보인다. 로켓이 명중했다면 움푹 파였을 큰 구덩이도 보이지 않는다(아래 사진 참조).

알아흘리 병원 내부 부지의 참사 현장. ⓒAP Photo
알아흘리 병원 내부 부지의 참사 현장. ⓒAP Photo

진보 성향 영국 매체인 〈가디언〉(10월18일)과 인터뷰한 마크 갈라스코(Marc Garlasco, 2003년 이라크 전쟁 당시 미국 국방부의 고위 관료)는 “구덩이 형태가, 이스라엘의 공습 발사체가 남겼을 모습과 일치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JDAM이 지상에 충돌하는 경우, 거대한 구덩이를 남길 뿐 아니라 주변 건물도 휩쓸어버리는데 알아흘리 병원 참사 현장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구덩이가 전혀 관찰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지나치게 얕다.” 이 또한 발사체의 정체가 JDAM이 아니라 ‘불량품 로켓’이라는 방증이 된다.

이스라엘 방위군이 제시한 증거

발사체의 정체를 가릴 수 있는 또 하나의 ‘스모킹 건’이 있다. 파편이다. 그러나 아직 파편은 발견되지 않고 있는 듯하다. 앞으로 나올지도 불확실하다.

BBC와 〈가디언〉의 사례를 들었지만, 대다수 서방 언론들은 비슷한 입장으로 보도하고 있다. 이스라엘 방위군(IDF)군의 주장과 대동소이하다. 이스라엘군은 사건 당일인 10월17일에 이미 참사 현장의 이미지를 제시하면서 “이스라엘군이 공습했다면 나타나야 하는 심각한 건물 손상이나 구덩이가 없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 논리를 밀고 나가서 ‘하마스 측이 주장하는 사상자 수는 엄청나게 과장된 것’이라는 추측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슬라믹 지하드가 쏜 불량품이 상공에서 폭발한 뒤 떨어졌다면 이로 인한 사상자가 수백 명에 이를 이유가 없다는 주장이다.

이스라엘군은 ‘하마스 대원 2명의 대화’를 감청한 것이라며 오디오 자료를 언론에 공개하기도 했다. 이 자료에서 두 요원은 “‘그들’이 말하기를, 미사일 파편이 이스라엘 쪽이 아니라 우리 쪽인 것 같다는군” 같은 이야기를 나눈다. 여기서 ‘그들’은 이슬라믹 지하드를 의미한다. 다만, 이 건을 보도한 매체들은 오디오 자료의 진위 여부를 확인할 수는 없었다고 전했다.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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