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19일 이란 테헤란에서 이스라엘 국기를 불태우는 반이스라엘 시위대. ⓒREUTERS
10월19일 이란 테헤란에서 이스라엘 국기를 불태우는 반이스라엘 시위대. ⓒREUTERS

가자지구를 봉쇄한 이스라엘이 여러 차례 공언한 대로 하마스를 뿌리뽑고자 본격적으로 지상전에 돌입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이스라엘 방문 직후, 이스라엘 군은 지상전을 피할 수 없다며 가자지구 진입이 곧 이루어질 것임을 시사했다. 그런데 사실 지상전을 개시할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도 이스라엘은 선뜻 가자지구로 진격하지 못했다. 하마스보다 화력이나 전투력이 10배 이상 뛰어난 헤즈볼라가 북부 레바논 국경에서 반격할 것을 걱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마스가 도발한 전쟁이지만, 이스라엘의 대응에 따라 헤즈볼라가 개입하여 국지적으로나마 확전할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하마스의 전쟁에 헤즈볼라는 왜 개입하는가?

1928년 이집트의 수에즈 운하 인근 이스마일리야에서 스물두 살 청년 하산 알반나는 영국의 지배에서 이집트를 독립시키고, 이집트를 뛰어넘는 범이슬람 국가를 꿈꾸며 6명 젊은이와 함께 ‘무슬림형제단’을 창설했다. 무너진 이슬람 세계 재건과 부흥을 목표로 기존 국경을 뛰어넘는 이슬람 공동체를 만드는 걸 궁극적 목표로 삼았다. 하마스는 무슬림형제단의 팔레스타인 지부로 시작했다. 1987년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스라엘 정부에 항거해 일어난 제1차 민중봉기(인티파다)에서 하마스가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슬람 저항운동’의 아랍어 약자를 따서 이름을 붙인 하마스는 나약하고 부패한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를 본격적으로 비판하면서 그 존재를 알렸다.

1988년에 발행한 하마스 헌장에 따르면, 하마스가 이루려는 팔레스타인 국가는 전통적으로 팔레스타인이라고 부르는 영토로, 현재 이스라엘이 차지하고 있는 땅을 말한다. 무슬림형제단은 탈민족 이슬람주의를 표방했는데, 하마스는 이슬람주의에 팔레스타인 민족주의를 결합했다. 하마스는 이스라엘을 멸한 후 팔레스타인 국가를 세우려 한다. 이스라엘을 결코 인정하지 않는다. 대화나 타협의 대상이 아니라 멸망시켜야 할 대상이다.

하마스는 이슬람 세계가 불타고 있기에 무슬림 각자가 "다른 사람을 기다리지 말고 할 수 있는 한 물을 부어 불을 꺼야 한다"라는 절박한 의식 속에서 대이스라엘 투쟁을 전개한다. 1988년 헌장에서 하마스는 이렇게 표현한다. “우리의 투쟁은 이 존재(이스라엘)가 사라질 때에만 끝날 것이다. 우리는 이스라엘과 어떤 조약도, 휴전도, 평화협정도 인정하지 않는다.” “이스라엘은 이슬람이 그 이전의 다른 나라를 멸망시킨 것처럼, 이슬람이 이스라엘을 멸망시킬 때까지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하마스가 꿈꾸는 독립 팔레스타인은 세속주의를 지향하는 PLO와 달리 이슬람 국가다. 헌장 제1조에서 이렇게 표현한다. “이슬람 저항운동의 프로그램은 이슬람이다. 이슬람을 기준으로 우주, 삶, 인간을 생각하고, 생각하는 방식을 만들고 이해한다. 모든 행동을 이슬람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이슬람에서 영감을 얻어 행동 지침을 만든다.”

하마스를 엄호하는 헤즈볼라는 수니파인 하마스와 달리 시아파 이슬람주의 조직이다. 아랍어로 ‘알라의 당’이라는 뜻인 헤즈볼라는 1979년 ‘억압받는 자를 해방한다’라는 구호로 세속 이란 왕정을 이슬람 공화정으로 바꾼 이슬람혁명의 산물이다. 1982년 6월4일 이스라엘은 PLO를 약화시키기 위해 레바논을 침공했는데, 이란은 이란혁명 정신에 따라 “깊은 신앙 설명과 코란에 표현된 하나님의 말씀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데 기반해 헤즈볼라라는 반이스라엘 저항 조직을 만들었다. 하마스와 종파만 다를 뿐 이스라엘이 없는 팔레스타인 국가를 건설하고자 하며, 이스라엘을 결코 인정하지 않는다. 대화나 타협의 대상이 아니라는 말이다. 하마스나 헤즈볼라가 이스라엘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뜻은 이란이 국제경기에서 보여주는 모습에서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란 선수나 대표팀이 이스라엘과 만나면 금메달이 걸린 결승전이라도 기권한다. 이스라엘을 어떤 형식으로든지 인정할 수 없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10월11일 레바논의 헤즈볼라 대원들이 이스라엘 공격으로 사망한 대원들의 관을 옮기고 있다. ⓒEPA
10월11일 레바논의 헤즈볼라 대원들이 이스라엘 공격으로 사망한 대원들의 관을 옮기고 있다. ⓒEPA

이스라엘의 고민이 깊은 이유

이란은 헤즈볼라와 하마스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한다. 지난 10월7일 하마스의 기습 공격 배후에 이란이 있다는 의심이 나오는 것도 이란의 하마스 지원 때문이다. 그러나 이란은 작전 개입을 부인한다. 지원하고 후원하고 지지하고 또 작전 성공을 기뻐하지만, 하마스 작전에 어떤 형식으로든지 참여한 적이 없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도 만일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공습을 지속하고 지상전에 돌입한다면 헤즈볼라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한다.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의 지상전에 적극 개입하려고 준비 중이다. 이스라엘이 10월13일 이래 가자지구 지상 진입 준비를 갖췄지만, 헤즈볼라의 움직임을 우려해 시간을 끌고 있다. 하마스 기습 직후 미국이 항모를 보낸 것도 헤즈볼라의 움직임을 제어하기 위해서였다. 1982년 헤즈볼라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이후, 이란은 테헤란에서 레바논 남부까지 도달하는 육로를 구성하는 데 마침내 성공했다. 이른바 ‘시아 초승달’이라는 이란의 영향력이 미치는 세력권을 형성해 이란-이라크-시리아-레바논을 이었다. 헤즈볼라에 무기와 자금을 전달하는 통로를 만든 것이다.

2006년 레바논을 침공한 이스라엘이 물러난 것을 이란은 헤즈볼라의 승리로 여기며, 정규군도 아닌 헤즈볼라도 이기지 못한 이스라엘이 이란 정규군과 맞서 싸울 수 없을 것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이란의 말을 빌리면 이란과 이스라엘의 국경은 레바논 남부 헤즈볼라 근거지다. 헤즈볼라에 비하면 어린아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닌 하마스에 처참한 기습을 당한 이스라엘이 헤즈볼라 때문에 가자지구 개입을 망설이는 상황에서 확전을 꾀하여 이란에 싸움을 걸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스라엘의 압제에 허덕이는 팔레스타인을 해방하는 것이 이란혁명의 종착점이다.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이란은 이라크에 있는 시아파의 성지 카르발라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진격한다는 구호를 외쳤다. 이란 혁명수비대의 최고 정예부대명은 고드스 군단, 즉 예루살렘 군단이다. 테헤란에서 카르발라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가는 이란혁명에 레바논의 헤즈볼라가, 가자의 하마스가 함께한다. 10월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은 중동 평화에 팔레스타인이 여전히 중요한 변수임을 드러냈다. 이란과 헤즈볼라도 강력한 변수다. 이스라엘의 고민이 깊은 이유다.

기자명 박현도 (교수·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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