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 이용마에 대한 공소를 기각한다.” 2012년 ‘공정방송’을 요구하며 170일간 파업한 뒤 기소된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집행부 4명은 2022년 12월16일 대법원에서 업무방해 혐의에 대해 무죄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이용마 기자는 ‘공소기각’ 결정을 받아야 했다. 2014년 1월 기소, 2014년 5월 1심 선고, 2015년 5월 2심 선고 이후, 대법원에서만 7년 넘게 사건을 검토하는 동안,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궁금했다. 피고인에게 더 이상 닿을 수 없게 되어버린, ‘공소기각’이라는 판결주문을 쓰면서, 대법관들은 언제 선고가 날지 알 수 없는 피고인들의 마음을 떠올려보았을까.
판결문을 다 읽고 나니 더 궁금했다. 6쪽의 판결문에는 원심판결 이유를 요약하고, ‘법리와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의 판단은 잘못이 없다’는 설시 외에 특별한 내용이 없었다. 결국 항소심 말이 다 맞는다는 이 판결문을 쓰는 데 왜 7년이 넘는 세월이 필요했던 걸까.
판결문의 길이만으로 대법원에서 했을 논의의 깊이를 재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검사의 상고이유와 관련하여 심층적인 검토가 필요했다면, 상고이유가 왜 부당한지에 대한 논증이, 대법관들이 고민한 지점이 판결문에 나와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나는 “방송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자는 것은 방송사 근로자들의 구체적인 근로환경 또는 근로조건에 관한 사항으로 쟁의행위의 정당한 목적이 될 수 있다”라고 판단한 이 사건의 결론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피고인들을 기소했던 검사는 대법원 판결문을 읽고 설득되었을 것 같지 않다. 검사를 설득하기 위하여 판결문을 쓸 필요가 있지는 않지만, 적어도 사회적으로 논쟁적인 주제라면, 대법원조차 결론을 내리는 데 7년이 넘는 시간이 필요한 정도의 사안이었다면,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한 논증이 있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좋은 재판부를 만나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
최근 나는 공들여 진행하던 사건에서 패소했다. 판결문을 읽고도 패소한 이유가 도저히 납득되지 않았다. 내가 주장한 내용들에 대해 그 주장이 왜 수용될 수 없는지, 혹은 재판부가 내린 결론을 바꿀 근거가 되기에 부족한지 설명이 없었다. 재판부가 내린 결론과 그 결론에 부합하는 논거들만 나열되어 있었다. 사건 기록 전체를 보지 않은 제3자가 보기에 판결문은 그 자체로 논리적 흠결이 없을지 몰라도, 평가되고 반박되지 못한 주장이 판결문에 쓰이지 않은 채로 남아 있는 한, 소송당사자는 재판 결과에 승복하기 어렵다.
변호사 초년 시절, 변호사 없이 ‘나홀로 소송’에 임한 이를 상대로 한 소송을 담당한 적이 있다. 그는 억울한 마음이 가득했지만, 자신의 주장을 잘 정리하지 못했다. 쟁점이 간단하고 상대방이 횡설수설하니 쉽게 이길 사건이라 생각하고 첫 변론기일에 출석했지만, 너무나 성실한 재판부를 만나고 말았다. 판사는 두서없는 상대방 주장을 잘 듣고 핵심을 잘 요약하여 길을 내어주었고, 상대방 주장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따지며 증거를 확인했다. 빨리 사건을 끝내고 싶던 나로서는 반갑지 않았다.
그 사건은 항소심 초반에 합의로 잘 마무리되었다. 1심에서 주장과 사실관계를 꼼꼼하게 빠짐없이 판단해주었기 때문에, 억울하다며 펄펄 뛰던 상대방도 합의할 마음을 먹을 수 있었다. 쟁점이 간단하고 청구금액도 작았던 그 사건을 지금도 기억하는 이유는, 좋은 재판부를 만나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 변호사 경력이 쌓이면서 더 절실히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법조계의 화두는 단연 ‘재판 지연’이다.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는 사법부의 가장 시급한 현안으로 신속한 재판과 국민 신뢰 회복을 꼽았다. 그러나 패소한 당사자가 납득할 수 있도록 논증하고 설득하는 노력 역시 신속한 재판만큼 중요하다. 당사자에게는 ‘공정하고 신속하고 경제적으로 진행되는’ 재판이 이상적이지만, 요즘처럼 분열된 사회에서는 ‘생각이 다른 상대방을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재판이 이상적이지 않을까. 재판부가 내린 결론과 다른 주장을 하는 당사자를 납득시키는 데 좀 더 많은 공을 들이는 판결이 많아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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