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중국이 극심한 코로나19 통제를 끝내고 리오프닝(re-opening)을 선언했을 때, 전 세계는 긴장했다. 방역 조치를 먼저 완화한 다른 국가들에서 인플레이션이 심해지고 있던 시기였다. 세계 2위 경제대국 중국의 경제활동이 정상화되면 그만큼 수요가 늘어나 인플레이션이 더욱 심각해질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각국 중앙은행을 긴장하게 했다.

반년 넘게 지난 현재, 이 걱정은 기우가 됐다. 예상과 달리 중국은 좀처럼 경기가 회복되지 않아 고전하고 있다. 중국 국가통계국이 7월17일에 발표한 2분기 국내총생산(GDP)은 작년 동기 대비 6.3% 성장했다. 1분기 성장률(4.5%)보다는 높지만 시장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수치였다. 언뜻 높은 경제성장률 수치로 보이지만, 지난해 봉쇄에 가까운 방역 조치로 경기가 둔화됐기에 기준점이 낮아서 나타난 착시다.

세부 지표들도 경기침체를 가리킨다. 중국의 청년 실업률은 올해 6월 21.3%를 기록했다. 앞으로도 경기가 나쁠 것이라 예측한 기업들이 신규 채용을 줄인 것으로 해석된다. 소비자 역시 마찬가지다. 소비자신뢰지수(consumer confidence index)는 소비자들이 경기를 어떻게 내다보는지 확인할 수 있는 대표적 지표다. 중국의 소비자신뢰지수는 지난 3월 94.9를 기록했다. 소비자신뢰지수가 100보다 낮으면 경기 전망이 비관적임을 뜻한다. 결과가 부정적으로 나오자 중국은 이후 두 지표를 더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중국은 오히려 인플레이션이 아닌 디플레이션을 걱정하는 처지가 됐다. 올해 7월 중국의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기 대비 0.3%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그림 1〉 참조). 디플레이션이 현실화하면 소비자들은 가격이 더 하락할 것을 예상해 소비를 줄이고, 이는 다시 경기 부진으로 나타날 수 있다. 중국 국가통계국이 지속적으로 “결코 디플레이션이 아니다”라고 밝혔지만 물가상승률이 계속 하락하며 디플레이션 위기설은 점차 자라났다.

중국 경제의 두 축인 수출과 부동산 개발의 하향세가 불황 요인으로 꼽힌다. 올해 상반기 수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2% 감소했다.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대부분의 국가가 긴축정책을 시행하고 있어 글로벌 수요가 부진한 데다 미·중 무역 갈등에 따라 시장이 분절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 원인 모두 단기간에 해결되기는 어렵기에 앞으로도 중국의 수출이 회복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또 다른 축인 부동산은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중국 GDP의 30%가량을 차지하는 부동산 개발 경기가 둔화되자 중국 경제는 직격탄을 맞았다. 부동산 활황은 전후방으로 경기를 끌어올리는 효과가 있다. 건설 자재뿐 아니라 새 집에 채워 넣을 전자제품까지 수요가 늘어난다. 자산 가치가 상승하며 주택 소유자들의 소비가 늘어 내수가 진작되는 효과도 있다. 그러나 부동산 경기가 나빠지자 정반대 여파가 중국 경제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건설 관련 산업이 위축되고, 자산 가치가 감소하면서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았다.

8월7일 달러 부채 이자 지급에 실패한 중국 1위 부동산 개발기업 비구이위안(컨트리가든) 사태는 부동산 경기 하락의 단면을 보여준다. 2021년 사실상 파산까지 갔던 헝다그룹(에버그란데)과는 달리 비구이위안은 상대적으로 부채 문제가 그동안 도드라지진 않았다. 2020년 8월 부동산 기업 부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국 정부가 제시한 ‘3대 레드라인’을 기준으로 봤을 때, 2개 부문(순부채 비율, 단기부채 대비 현금성 자산 비율)에서 비구이위안은 다른 거대 부동산 개발기업들과 비슷한 수준을 기록했다.

비구이위안을 흔든 부동산 경기 침체

문제의 원인은 비구이위안이 비교적 인구가 적은 도시에서 부동산 개발을 벌여왔다는 것이다. 중국은 자국 도시를 중요도에 따라 5개 등급으로 분류하는데, 비구이위안이 진행한 부동산 개발의 60%가량이 3·4등급 도시에 집중됐다. 한국에서 부동산 불황기에 지방의 부동산 가격이 먼저 하락하는 것처럼 중국 역시 등급이 낮은 도시일수록 집값 하락이 가파르다. 결국 부동산 경기가 악화되자 비구이위안의 자금 사정 역시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했다. 지난 7월 발표에 따르면, 전년 동기 대비 연간 누적 매출이 34% 급감했다. 비구이위안 사태는 중국의 부동산 불황이 개별 대기업을 위협할 정도로 심각해졌다는 것을 보여줬다.

중국의 경기침체를 전 세계 시장이 우려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중국 정부가 강한 부양책을 시행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영국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8월9일자 기사에서 “현재 중국 경제엔 딜레마가 없다”라고 썼다. 한국처럼 불황과 인플레이션을 함께 겪을 경우 딜레마가 존재한다. 경기를 살리기 위해 이자율을 낮추거나 정부 재정지출을 늘리면 인플레이션이 심각해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은 물가 하락과 경기 불황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어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게 〈이코노미스트〉 주장이다. 완화적 통화정책으로 이자율을 낮추고 적극적 재정정책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장의 기대와 달리 중국 정부는 경기부양책에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8월21일 중국 정부는 일반 대출의 기준이 되는 1년 만기 대출우대금리(LPR)를 0.1%포인트 인하했고, 주택담보대출의 기준이 되는 5년 만기 LPR은 동결했다(중국은 한국 또는 미국처럼 단일한 기준금리가 존재하지 않고, 각기 다른 유형의 대출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정책금리가 존재한다). 완화적 통화정책을 취한 것이긴 하지만, 부양론자들의 기대보다 인하폭이 작아 중국 통화당국이 지나치게 망설이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8월17일 중국 베이징에 있는 비구이위안 주택 건설 현장 모습.ⓒAP Photo

중국이 신중한 모습을 보이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우선 부동산 개발을 단기 부양책으로 사용할 수 없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2010년대 이후 부동산 개발은 중국 경제의 핵심 엔진이 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수많은 문제를 노출했다. 헝다그룹과 같이 부채를 무리하게 일으키는 사례가 속출했다. 집값 역시 지나치게 상승해 거품이 끼면서 미분양 사태가 발생했다. 영국의 경제 연구기관 ‘캐피털 이코노믹스’에 따르면, 2021년 중국의 미분양 아파트는 3000만 채에 달했다.

중국 정부 역시 부동산 과열 문제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시진핑 주석은 2016년 이래 “부동산은 주거용이지 투기나 투자 대상이 아니다”라고 줄곧 강조했다. 부동산 경기를 진정시키겠다는 의도를 담은 말이었다. 지난해 들어 부동산 경기 하락에 따른 악영향이 커질 조짐이 보이자 중국 정부는 속도 조절에 나섰다. 특히 부동산 기업들이 선분양한 아파트를 채 다 짓지도 못하는 사태가 발생해 분노한 분양권자들이 주택담보대출 상환 거부 움직임을 보이자 연이어 부동산 규제를 완화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부 규제를 완화했음에도 중국 정부는 부동산 시장을 다시금 경기부양책으로 사용하는 데는 신중한 모습을 보인다. 중국 정부는 더 이상 부동산 개발로 경제개발을 이끌 수 없으며,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이를 대체해야 한다는 커다란 그림을 그리고 있다. 8월21일 5년 만기 LPR을 동결한 것도 부동산을 통한 무리한 경기부양을 추진하지 않겠다는 정책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한국 경제 회복 위협하는 중국의 불황

중국 경제의 미래에 대한 신뢰가 저하된 상황에서 금리를 큰 폭으로 낮춰도 경기가 호전되지 않으리라는 판단도 통화 완화정책을 망설이는 이유로 꼽힌다. 중국의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에 따르면, 중국 국민들은 저축한 돈이 평소보다 많다고 해도 이를 소비에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대출을 조기 상환하는 데 쓰고 있다. 앞으로도 경기가 안 좋을 것으로 예상해 당장의 소비보다 빚을 갚는 데 돈을 쓴다는 의미다. 이 같은 배경에 대해 정지현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중국지역전략팀장은 “이런 상황에서 금리를 크게 낮춘다면 소비 촉진에 따른 경기부양은 되지 않은 채, 앞으로 사용할 수 있는 카드를 줄이는 행동이 된다. 중국 정부는 금리 인하 효과가 현실화할 수 있을 때를 기다리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전망했다.

정부 재정을 통한 경기부양 역시 어렵긴 마찬가지다. 중국에서 재정정책은 주로 지방정부를 통해 시행되는데, 이들의 부채 문제가 심각하다. 공산국가인 중국은 사적 소유권이 인정되지 않기에 재산세를 매기지 않는다. 따라서 지방정부의 세수는 약 40%를 토지 사용권 매각 수입에 의존한다. 그런데 부동산 경기가 나빠지자 이 수입이 급감했고, 코로나19 기간 방역 비용 등 상당한 지출을 감수한 지방정부의 재정건전성이 빠르게 악화했다. 현재 지방정부와 지방정부의 인프라 투자 자금조달 창구인 LGFV(local government financing vehicle)의 부채를 합치면 중국 GDP 85% 수준에 이른다(〈그림 2〉 참조). 부채 상환에 어려움을 겪는 지방정부가 경기부양을 위한 추가 재정지출을 집행하기는 쉽지 않다.

적극적인 경기부양책을 실시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중국은 결국 이대로 디플레이션의 늪에 빠지게 될까? 한국은행 베이징사무소는 지난 8월 발간한 보고서에서 “최근 물가 하락이 제한된 품목을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으며, 디플레이션에 수반되는 실물경기의 극심한 침체와 금융시장 불안도 나타나지 않는다”라며 디플레이션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했다. 또 시장의 기대만큼은 아니더라도 이번에 1년 만기 LPR을 소폭 인하한 것처럼 중국 통화당국이 ‘제한적인’ 경기부양 기조도 이어가고 있기에 침체를 방치할 확률은 적다. 다만 중국의 경기침체가 구조적 문제에서 기인한 만큼 물가 하락세와 불황은 당분간 지속되리라 보인다.

중국 리오프닝에 따른 ‘상저하고(상반기에 경기가 나쁘고, 하반기에 좋아진다는 의미)’를 기대하고 있던 한국 입장에서 중국의 경제 불황은 악재다. 한국은 중국에 주로 중간재를 수출하기 때문에, 중국 산업이 살아나지 않는다면 한국 기업들의 실적도 부진해진다. 실제로 올해 상반기 중국의 10대 수입 대상국 중 수입이 가장 큰 폭으로 줄어든 국가는 한국이었다. 전년 동기 대비 전체 수입이 6.7% 감소할 동안 한국으로부터의 수입은 24.9% 감소했다. 같은 기간 한국 입장에서 중국은 최대 무역 흑자국에서 최대 무역 적자국으로 전환되며, 한국의 무역수지 적자를 심화시켰다.

기자명 주하은 기자 다른기사 보기 kil@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