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을 도와 IS 추종자 검거를 도운 푸트리 씨와 가족들은 여전히 신변 위협을 받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국정원을 도와 IS 추종자 검거를 도운 푸트리 씨와 가족들은 여전히 신변 위협을 받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푸트리 씨(가명)가 국정원 직원 ‘미스터 박’을 처음 만난 건 2018년 1월이었다. 동네 언니 ㄱ씨가 국가정보원(국정원) 직원이 와 있으니 잠깐 만나보라고 했다. 이주노동자 ‘안디(가명)’ 때문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폭탄과 총 만드는 영상을 종일 찾아보고 아랍어를 중얼거리며 테러를 암시하는 말을 하는 탓에 동료들이 ‘이슬람 급진 무장세력 IS 관련자인 것 같다’며 무서워했다. 푸트리 씨도 그의 기행을 1년 전부터 들어오던 터였다. ㄱ씨에게 안디에 대한 걱정을 말한 것은 한 달 전이었다.

“무서워요. 만나기 싫어요. 나 불법 사람이라 안 돼요.” 당시 푸트리 씨는 체류 기간을 넘긴 미등록 이주노동자 신분이었다. 2005년 한국에 E9(비전문취업) 비자로 입국했던 푸트리 씨는 경기도 의정부에 있는 공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공장주는 계약서에 적힌 월급을 주지 않았다. “주는 대로 받아라” “나는 사업장 변경에 사인해주지 않을 거다. 공장 나가면 너희는 다 불법이다”라는 말만 했다. 결국 푸트리 씨는 ‘불법 사람’이 됐다. 그 이후로 여러 지역을 돌아다녔다. 익산, 화순, 완주, 김제. 신발 공장부터 농공단지까지. 임신 중에도 식당에서 궂은일을 했다. 그러다 2013년 첫째 아이를 낳고 5년 전부터 남편과 광주 광산구에 자리를 잡았다.

푸트리 씨는 마을 ‘해결사’로 통했다. 도박을 하거나 문제를 일으키는 외국인 노동자가 있으면 앞장서서 야단을 치고 주의를 줬다. 위험한 일에 누군가 연루되면 다 같이 피해를 보게 된다는 걸 오래전에 배운 까닭이었다. 그래서인지 한국 사람들도, 당장 병원에 가야 하는 다친 공장 노동자들도, 통역이 필요한 이주민들도 제일 먼저 푸트리 씨를 찾았다. 생활은 조금씩 안정돼갔지만 남편도, 첫째 딸 하영이(가명)도 모두 ‘불법’이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뱃속에는 둘째 아이도 있었다.

당찬 성격의 푸트리 씨도 국정원 직원을 만나기는 두려웠다. 짧은 시간 고민이 이어졌다. IS가 고향 인도네시아에서도 테러를 일으키던 때였다. ‘만약 정말 테러라도 한다면….’ 불안한 생각이 자꾸 떠올랐다. 공장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정보수집은 한국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푸트리 씨는 미스터 박의 정보원이 되기로 결심했다.

2인 1조였다. 안디와 같은 기숙사를 쓰던 ‘타이(태국) 동생’이 파트너였다. 수시로 바뀌는 안디의 근무시간을 미리 체크하고 방이 비었을 때 몰래 들어가 USB,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빼내 공장 앞에서 기다리는 미스터 박에게 건넸다. 안디가 눈치 채지 못하게 제자리에 돌려놓는 것까지가 임무였다. 미스터 박이 문자로 지시하면 방 안 곳곳 사진을 찍어서 보냈다. 실탄과 사제 총이 발견됐다. 어느 날은 안디가 자신이 직접 만든 총으로 강아지에게 사격 연습을 하는 모습도 목격했다. 미스터 박은 안디가 SNS로 연락을 나누는 IS 요원들에 대해 알아보라고도 했고, 한밤중에 요구 사항을 문자로 남기기도 했다. 이런 활동이 끝난 것은 그해 6월이었다. 안디는 국가안보 침해사범으로 강제 출국됐다.

푸트리 씨 가족에 대한 위협은 안디의 출국 이후 시작됐다. 밤중에 인도네시아에서 발신자 번호가 제한된 국제전화가 수시로 걸려왔다. 전화를 받으면 ‘푸트리가 맞느냐, 안디를 아느냐’고 물었다. 숨이 막혔다.

고향에 있는 가족에 대한 위협도 이어졌다. 신원을 알 수 없는 사람이 협박 메모를 붙인 돌을 던져 창문을 깨뜨리는가 하면 처음 보는 사람이 ‘누나는 언제 한국에서 돌아오느냐’며 푸트리 씨 동생을 붙잡고 물었다. 최근까지도 보복 협박은 계속됐다. 지난해 4월, 새벽 1시가 넘은 시간에 본국의 동생은 낯선 발신자가 보낸 메시지를 받았다. “난 알아. 날 경찰에 신고했지. 너희 가족과 함께 죽고 싶냐. 경찰에 또 신고하면 죽일 거야.”

광주이주여성지원센터 정미선 소장과 구명활동을 돕고 있는 학부모 한수미, 권다영, 이여향씨(왼쪽부터).ⓒ시사IN 이명익
광주이주여성지원센터 정미선 소장과 구명활동을 돕고 있는 학부모 한수미, 권다영, 이여향씨(왼쪽부터).ⓒ시사IN 이명익

테러 막아도 신변 보호 기간은 2년?

국정원은 푸트리 씨에게 신변 보호를 약속했다. 그 약속은 G1-99 비자로 돌아왔다. G1 비자는 불가피하거나 인도적인 사유 등으로 출국을 하지 못할 경우 일정 기간 체류를 허가해주는 임시 비자다. 최대 체류 기간은 1년이지만 심사를 거쳐 연장할 수 있다. 산업재해로 치료 중인 사람, 소송을 하고 있는 사람, 난민 신청자 등이 G1 비자를 받고 한시적으로 한국에 머물 자격을 얻는다. 체류 자격에 따라 G1 뒤에 붙는 숫자가 달라진다. 푸트리 씨 가족이 받은 G1-99 비자는 앞서의 자격들 이외에 ‘기타 이유’에 속하는 이들을 위한 비자다.

2019년 11월, 푸트리 씨 가족은 G1-99 비자로 합법적인 체류 자격을 얻었다. 당시 전라남도지방경찰청에서는 푸트리 씨의 국익 기여를 인정하며 광주출입국관리사무소에 협조요청서를 보냈다. 그렇게 발급받은 비자의 만료 기간은 2020년 6월. 불과 8개월짜리 비자였다. 비자 만료를 앞두고 2020년 5월에 두 번째 체류 기간 연장을 신청했다. 심사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비자가 만료됐다. 신분증인 ID카드도 뺏기고 취업도 할 수 없었다. ‘출국기한 유예 확인서’ 한 장을 받은 채 심사 결과가 나오기를 하염없이 기다렸다. 그렇게 7개월이 흐른 뒤, 다시 7개월짜리 비자가 나왔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체류 기간 만료를 앞둔 2021년 5월18일, 푸트리 씨 가족은 세 번째 체류 기간 연장허가 신청서를 광주출입국관리사무소에 제출했다. 그러나 두 달 후인 7월15일, 광주출입국관리사무소는 ‘테러단체로부터 받는 신변 위협에 관한 소명자료가 부족하다. 연장 사유가 더 이상 없다’며 이들의 체류 기간을 더 이상 연장해주지 않았다. 남은 것은 강제추방이었다. 국정원을 도와 IS 추종자 안디의 정보를 수집하던 시기에 뱃속에 있던 둘째 아이가 만 두 살이 된 때였다. 이듬해 푸트리 씨 가족은 광주지방법원에 체류자격 연장 불허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왜 광주출입국관리사무소는 돌연 푸트리 씨 가족의 비자 연장을 거부한 걸까? 푸트리 씨를 지원하는 광주이주여성지원센터 정미선 소장은 ‘돌연’이 아니라고 말한다. 애초 안정적으로 삶을 꾸릴 수 있는 ‘보호’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합법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해 불법체류 기간에 해당하는 만큼 범칙금을 내며 주위에 빚도 졌던 푸트리 씨 가족은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할 수도, 마음 편히 미래를 계획할 수도 없었다. 광주출입국관리사무소는 7개월짜리, 8개월짜리 비자를 내주고는 몇 달씩 심사를 끌었다. 정 소장은 그 기간을 “불법체류자보다 못한 시간”이라고 말했다.

정 소장이 ‘불법체류보다 못하다’고 말한 이유는 또 있다. G1 비자를 받는 바람에 아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다른 비자 신청 자격도 뺏겼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 학교와 어린이집을 다니고 있는 첫째 하영이와 둘째 정민이(가명)는 인도네시아어를 할 줄 모른다. 좋아하는 음식은 묵은지김치찜과 마라탕, 떡볶이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한국에 머물 방법을 찾아야 했다. 비자 연장 방법을 찾던 중 2022년 2월부터 시행 중인 ‘국내 장기체류 아동 교육권 보장을 위한 체류자격 부여’ 제도를 알게 됐다. 한국에서 출생하거나 영유아기에 입국해 6년 이상 국내에 체류하면 고교 졸업 때까지 학업을 위한 체류 자격(D4)을 부여해주는 제도였다. 자녀가 D4 비자를 받으면 가족들 역시 임시 체류 비자인 G1 비자를 발급받아 국내에 머물며 양육권을 보장받을 수 있다.

하지만 정작 D4 비자를 발급받으려 했을 때, ‘합법 신분’이 된 것이 걸림돌이 됐다. 광주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비자 발급 조건인 ‘6년 체류 기간’은 ‘순수한 불법체류 기간’만 뜻한다고 했다. 6년을 채우기 전에 한 번이라도 합법 신분이 됐다면 이 비자는 발급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첫째 딸 하영은 푸트리 씨의 공적 기여로 2019년 11월, G1 비자를 발급받았다. 그때 하영의 나이는 5살11개월이었다. “D4 비자에 희망을 걸고 있었는데 ‘불법’으로 체류한 기간이 6년이 안 됐다. G1 비자가 나온 날이 하영이가 6살 되기 며칠 전이었다. 그때 국정원에 제보를 하고 안디를 검거하는 일을 돕지만 않았어도 D4 비자를 받을 자격이 있었던 거다.” 정미선 소장이 말했다.

푸트리 씨의 딸 하영의 학급 친구들이 쓴 탄원서. ⓒ시사IN 이명익

푸트리 가족의 사연은 첫째 하영이가 다니는 초등학교에도 알려졌다. 재판부에 제출할 학부모와 학생·주민들의 탄원서 수십 장이 모였다. 주민 한수미씨가 이 사실을 고등학생 아들에게 들려줬더니 아들이 방 안에 들어가 잠시 뒤 종이 한 장을 들고 나왔다. “종이에 ‘부탁합니다’ ‘호소합니다’ 이렇게 큰 글씨를 적어놓고 푸트리 씨 가족들에 대한 국민청원 QR코드도 넣어놓았더라고요. 테러범을 잡는다는 게 자신이 생각해도 무서운 일이고, 한국 사람도 선뜻 할 수 없는 일인데 정말 대단한 사람이고 억울한 사람 아니냐고, 도와줘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아이들도 푸트리 씨 가족이 겪는 일이 부당하다는 걸 아는데 왜 법무부에서는 모르는 건지 묻고 싶어요.”

“모든 문제, 해결된 게 아니다”

푸트리 씨 가족의 사연이 보도를 통해 알려지자 지난 6월16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직접 카메라 앞에 섰다. 푸트리 씨 가족의 체류 기간이 사흘 남은 날이었다. 법무부에서는 이날 국익에 기여한 외국인을 보호하기 위해 푸트리 씨 가족의 체류를 허가하기로 결정했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하지만 법무부가 푸트리 가족에게 발급한 비자는 이번에도 G1-99 비자다. 이 사실은 법무부 보도자료에 기재되지 않았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체류관리과 담당자는 〈시사IN〉과의 통화에서 G1 비자가 발급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기여 정도를 판단했을 때 이 정도가 적합하다. 현 상황에서 푸트리 씨 가족에게 맞는 비자는 G1-99 말고 없다.”

푸트리 씨의 구명운동을 함께했던 학부모 권다영씨는 법무부의 이번 결정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보일까 봐 걱정했다. “저희도 처음에 체류 기간을 연장해준다는 소식을 듣고 ‘다 해결됐구나, 국민청원도 이제 내리자’ 그랬거든요. 그런데 또 언제 추방될지 모르는 G1 비자인 거예요. 7월12일까지 국민청원도 받고 있는데 이번 결정으로 사람들이 다 끝난 일이라고 생각할까 봐, 1년 뒤 체류 기간이 만료된 후에는 더 이상 사람들이 관심도 가져주지 않을까 봐 걱정이에요.”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법무부 장관이 대한민국에 특별한 기여를 했거나 공익 증진에 이바지했다고 인정하는 자’에게 줄 수 있는 F2-16(특별기여자) 비자 허가 가능성에 대해 법무부에 답변을 요구했다. 6월22일 현재까지 법무부는 아무런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

기자명 광주·김다은 기자 다른기사 보기 midnightblu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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