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최근 시끄럽다. 논란의 중심에 이충상 인권위 상임위원이 있다. 인권위 내부에서 먼저 목소리가 나왔다. 2월17일 인권위 공무원 노조는 이충상 상임위원에 대한 진정서를 제출했다. ‘인권위 조사관의 인격권을 침해했다’라는 내용이다. 이충상 위원이 인권위 내부 게시판에 ‘A 조사관의 조사 경과와 방법에 잘못이 있고 조사 결과가 미흡하다’라고 쓴 것을 문제 삼았다. 이어 4월4일에는 인권위 공무원 노조가 인권위원(인권위 상임위원 4명과 비상임위원 7명) 전원에게 “인권위원과 사무처 직원의 관계는 높고 낮음, 갑을 관계가 아니다”라며 이메일을 보냈다.
인권위 노조 관계자는 이러한 움직임의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공개적으로 조사관들을 향해 쟁점과 관련 없는 불필요한 호통·무시·비아냥 등을 하지 말라는 의미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조사관들의 자기 검열이 시작된다. ‘이렇게 하면 욕먹을까’ 하고 생각하면서 움츠러든다. 무엇보다 인권위 안에서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우리가 엉망이면 인권위 권고의 권위도 함께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이충상 위원은 〈시사IN〉에 “인격권 침해에 해당할 리 없고, 조사 업무 자체를 위축시킬 사안이 전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인권위 바깥에서 크게 문제가 된 건 이충상 위원의 ‘혐오 발언’이다. “기저귀를 차고 살면서도 스스로 좋아서 그렇게 사는 경우에 과연 그 게이는 인권침해를 당하면서도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며 인권위원회가 그것을 인식시켜줘야 하는가? 아니다.” 이충상 위원이 결정문 초안에 썼다가 삭제한 내용이다. ‘군의 두발 규제가 인권침해라는 것을 알리는 교육이 필요하다’라는 인권위 권고안에 반대하며 적은 부분이 5월21일 뒤늦게 알려졌다. 성소수자 혐오 발언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5월24일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김영배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의원이 해당 발언을 지적했다. 인권위의 기능 자체를 마비시킨다며 사퇴를 요구하자, 이충상 위원은 “초안에 썼다가 바로 삭제했기 때문에 사퇴할 내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라고 답했다. 관련해 이 위원은 〈시사IN〉에 “게이 중에 항문이 파열되어 기저귀를 차고 사는 경우가 있는 것은 객관적 진실인데도 이를 허위 주장이라고 한 보도는 허위 보도이다. 나의 표현은 혐오 표현도 아니다.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회적 약자인 성소수자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는 것이다. 위 말이 진실이기는 하지만 사회적 약자인 성소수자를 배려해서 그런 말을 초안에서라도 쓰지 않았어야 한다”라고 추가로 입장을 밝혔다.
인권위 구성원들은 이충상 위원의 ‘인권위에 대한 인식’에도 의문을 품는다. 인권위원 전체 11명은 독립성과 다양성 확보를 위해 국회 선출 4인, 대통령 지명 4인, 대법원장 지명 3인으로 구성된다. 이충상 위원은 지난 대선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캠프에서 ‘사법개혁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판사 출신 인사다. 지난해 10월 국민의힘 추천으로 인권위 상임위원 임기를 시작해 2025년 10월까지 역할을 한다. 현 송두환 인권위원장의 임기는 내년 9월까지다. 송 위원장이 퇴임하기 전, 서미화(4월·후임 공모 중)·석원정(7월)·윤석희(내년 2월)·김수정(내년 8월) 비상임위원과 남규선(내년 8월) 상임위원의 임기가 끝난다.
현병철 위원장 시절 침묵 거듭한 인권위
이런 상황 속에서 이충상 위원은 지난해 11월10일 인권위 내부 게시판에 “인권위원 11명 중 4명을 지명하는 대통령이 올해 바뀌었기 때문에 멀지 않아 나와 의견을 같이하는 위원들이 인권위 다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라고 썼다. 이에 대해 이 위원은 〈시사IN〉에 “대통령이 바뀌면 대법관 중 진보와 보수의 비율이 바뀌어온 것이 사실인데, 그게 대법원의 독립성을 해치는 것이 아니다. ‘현재 인권위 다수파가 불공정한 절차에 의해 특정 정파를 편드는 것’이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복수의 인권위 직원들은 〈시사IN〉에 인권위의 기본 존재 이유가 부정되는 상황에 위기의식을 느낀다고 말했다. 권력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운영되면서 국내 인권침해 상황을 감시해야 할 인권위를, 이충상 위원이 정권이나 인권위원 구성에 따라 입장을 달리하는 허수아비 취급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당장 인권위가 이명박 정부에서 임명한 현병철 인권위원장(2009년 7월~2015년 8월) 시절로 돌아가는 거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현병철 위원장이 부임한 후 인권위는 침묵을 거듭했다. 용산 참사(2009년), 총리실의 민간인 사찰 폭로(2010년)를 비롯해, 세월호 참사(2014년) 등 주요 인권 현안에 인권위는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서미화 비상임위원은 최근 연달아 발생한 건설노동자 분신과 시위 노동자 곤봉 진압 사건에 인권위가 침묵한 것에 대해 “인권위 퇴행의 한 현상”이라고 말했다(24~25쪽 기사 참조).
특히 노동 사안을 두고 인권위원 간 의견 차이가 뚜렷하게 나뉘고 있다. 이충상 위원은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 관한 의견 표명의 건’은 “좌파에서는 과감한 법안이라고 할지 모르겠으나 중도나 우파가 보기에 무모하거나 조악한 입법안(지난해 12월28일 제38차 상임위)”이라며 반발했다. 노란봉투법에 대한 의견 표명은 이날 상임위에서 ‘찬성 3(송두환·박찬운·남규선) 대 반대 1(이충상)’로 원안대로 의결됐다.
박찬운 상임위원이 임기를 마치고 2월6일 김용원 상임위원(대통령 지명)이 새로 합류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지난해 11월 화물연대 파업 이후 공론화된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상 업무개시명령 관련 제도개선 권고 및 의견 표명의 건’에 대해서 이충상 위원은 “이 법률안에 인권위가 찬성하면 민주당보다도 더 앞장서서 민주노총을 지지하는 인권위가 될 것(3월30일 제10차 상임위)”이라고 말했다. 이후 해당 안건은 부결됐다. 상임위에서 해당 안건에 대한 의견이 가부 동수로 합치되지 않자, 송두환 위원장이 인권위원 모두가 참여하는 전원위에 올릴 것을 제안했다. 김용원·이충상 두 상임위원의 반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한 인권위 관계자는 일련의 상황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노동문제를 다룰 때 노동 현장에서 어려움을 겪는 노동자들이 마치 정부의 비판 세력인 것처럼 편 가르기 하는 프레임이 작동했다고 본다. 화물차 업무개시명령, 노란봉투법 등이 정치적으로 뜨거운 쟁점이니 인권위가 아무 얘기도 안 해야 하나? 인권위가 그저 관료 집단으로서, 들어온 진정 사건에만 조용히 의견을 내고 사회적으로 민감한 이야기는 하지 말라는 취지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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