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미화 인권위원은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최초 시각장애인 비상임위원이다. 전남 지역에서 장애 인권 활동을 한 경력을 바탕으로 2020년 5월 인권위에 합류했다. 서 위원의 후임 공모가 한창인 요즘 인권위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내부에서 ‘인권위가 어두웠던 과거로 돌아가는 거 아니냐’라는 우려가 나온다. 하지만 공개 발언이 쉽지만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런 내부 상황을 알기에, 임기 만료로 퇴임을 앞둔 그가 공개적으로 ‘인권위 퇴행’을 걱정하는 목소리를 냈다.
현재 인권위가 정파적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절대 동의할 수 없다. 인권위는 진영과 정파를 넘어 기본권 보장을 이야기하는 곳이다. 시민의 관점에서 (특정 사안의) 인권침해 여부를 결정한다. 정치적 편향성이 기준이 되어서도 안 되고, 내가 일한 3년 동안 그렇게 한 적도 없다. 이충상 상임위원은 회의 때면 ‘좌파’ ‘우파’ ‘다수파’라는 표현을 쓰는데, 인권위에 ‘파’가 어디 있나. 다 ‘인권친화파’다.
‘인권친화파’가 뭔가?
2020년 8월24일 인권위가 이해찬 당시 민주당 대표의 장애 비하 발언(“선천적 장애인은 의지가 약하지만, 사고로 장애인이 된 분은 ‘정상적’으로 살던 것에 대한 꿈이 있어 의지가 강하다”)에 대해 인권침해 결정을 내린 적이 있다(당시 인권위는 재발 방지책 마련, 이 대표와 민주당 전체 당직자에 대한 인권교육 실시를 권고했다). 인권위가 처음으로 소수자 ‘집단’을 향한 혐오·비하 표현을 조사 대상으로 삼은 사건이다. 이전까지 인권위는 특정 피해자가 지목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정치인의 장애인 비하 발언을 아예 조사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 나는 당시 ‘정치인의 발언은 다른 시민보다 파급력이 커 개인의 인격권이 충분히 침해된다’라고 주장했다. 게다가 해당 발언이 사회에서 허용되는 것처럼 여겨질 수 있어서 엄중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강력히 말했다. 나는 민주당 출신 시의원이었다. ‘인권친화파’가 아니라, 정치적 편향성을 갖고 있다면 민주당 대표와 민주당을 교육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었겠나.
이충상 위원 이전에도 보수정당에서 임명한 인권위원이 있었다.
인권은 점점 확장되면서 발전하는 특성이 있다. 이해찬 대표 사례처럼, 인권위가 조금씩 과거와 다른 결정을 할 때 인권이 확장된다. 과거 보수정당이 추천했던 이상철 상임위원(2019년 9월~2022년 10월)·김민호 비상임위원(2018년 8월~2021년 10월)은 보수적이지만 편향되지 않게, 인권의 가치에 따른 판단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 내 생각과는 다르지만 설득되는 부분이 있었다. 설득은 상대방이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깨닫고 공감하게 하는 일이다. 달라도 존중해야 한다. 그런데 이충상 위원은 동료 위원들을 향해 “수필보다 못한 악의적 허위 공문서를 근거로 인권위 역사에 오점을 남기려 하고 있다. 인권위가 개판 5분 전(4월20일 제13차 상임위)”이라고 비난한다.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상 업무개시명령 관련 제도 개선 권고 및 의견 표명의 건’ 전원위 상정 의견서 제출을 두고 나온 발언이다.
화물차 기사의 수익구조를 고려했을 때, 업무개시명령이 담긴 법률의 개정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해당 안건이 상임위에서 부결됐다는 소식을 듣고, 전원위에서 심도 있게 논의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석원정·윤석희·김수정 위원과 함께 ‘국가인권위원회 운영규칙’ 제16조 제11호에 따라 전원위 상정을 요청했다. 그동안 상임위에서 합의가 안 되면 관례적으로 대부분 안건이 전원위에 올라왔다. 그래서 우린 당연히 전원위에 올라왔어야 할 안건으로 판단한 거다. 김용원·이충상 위원이 전원위 상정을 반대하면서 전원위에서 논의 한번 못해보고 끝났다. 앞으로 누가 제동을 걸지 않으면 이런 일이 반복될 거다.
인권위 개입이 필요한 현장이 어디인가?
장애 당사자로서 장애인 인권침해 현장을 찾는 게 언제나 시급하다고 느낀다. 다음으로 노동 현장이다. 연달아 발생한 건설노동자 분신·곤봉 진압 사건에 인권위가 아무런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인권위 퇴행의 한 현상이다. 노동자의 기본권이 최소한 경찰 권력으로부터 탄압받아서는 안 된다.
4월4일 인권위 공무원 노조가 이례적으로 인권위원 전원을 대상으로 메일을 보냈다.
인권위 회의에서 부적절한 언사를 삼가고, 조사관들에 대한 무시·비아냥 등으로 인권위 역사에 오물을 끼얹지 말아달라고 하더라. 이렇게 표현할 정도로 충격을 받았나 싶어서 굉장히 미안했다. (이충상 위원을 상대로 한 ‘조사관 인격권 침해’ 진정에 관한) 조사는 인권위가 하면 안 된다. 인권위원이 다른 위원 사건을 어떻게 결정하겠나. 외부에서 객관적으로 할 수 있는 사람들로 조사위를 다시 꾸려야 한다. 지금대로라면 인권위가 무슨 결정을 내도 상당히 비판받을 수 있다.
후임 인선이 끝나면 3년간 활동이 마무리된다.
너무 힘들었다. 안건마다 서너 페이지에서 수십,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조사 자료를 검토해야 했기 때문에 3년간 밤과 주말이 없었다. 낮에는 늘 하던 지역 활동을 하고, 밤과 주말에 자료를 들었다. 글을 소리로 들으면, 눈으로 보고 줄 치며 읽는 것보다 훨씬 시간이 오래 걸린다. 여러 번 듣고 또 들어야 이해가 된다. 그래도 보람 있었다. 장애인 활동 지원 서비스는 심한 장애가 있더라도 시설로 가지 않고 지역사회에서 지낼 수 있게 하는 제도다. 그런데 65세가 넘으면 활동 지원을 받지 못했다. 24시간 활동 지원을 받던 사람이 65세가 되는 순간부터 2~3시간밖에 지원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해봐라. 장애인 생존권과 관련돼 있으니 끊임없이 진정이 들어왔고, 인권위가 적극 복지부·지자체에 권고했다. 그 결과 2020년 12월 관련 법안(장애인활동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은 연령 상한을 없애도록 개정됐다. 인권위 권고는 한국 사회를 인권친화적으로 가장 빠르게 바꿔내는 제도적 장치다.
후임으로 어떤 사람이 와야 한다고 보나?
내 자리는 여성이면서 장애인의 자리라고 생각한다. 법적으로 장애 여성 인권위원 몫이 정해져 있진 않지만, 인권위 초창기부터 최경숙·장명숙·장향숙·배복주 등 장애가 있는 여성 인권위원의 역할과 중요성이 인정되어 왔다. 인권위원으로 활동하는 동안 내 의견이 장애 관련 사건에서 굉장히 존중받았다. 장애 당사자성과 장애 영역에서 활동해온 인권 활동가로서의 전문성 때문이다. 현재 인권위원 11명 중 7명이 법조인 출신이다. 소수자 대표성을 가진 전문가들이 법조인 출신과 비교해 적어도 동수는 돼야, 인권위가 더 많은 자료와 사례를 근거로 진일보한 결정을 해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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