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월2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3 경제계 신년인사회에서 경제인들과 떡을 자르고 있다.ⓒ연합뉴스

세금이 안 걷히고 있다. 정부가 1년간 목표로 잡은 국세 수입과 비교해 실제로 걷은 세금의 비율을 뜻하는 ‘진도율’은 올해 4월 기준 33.5%다. 지난해 같은 기간(42.4%)은 물론이고 2014년에서 2022년까지 8년간의 평균 4월 진도율(약 40%)에 크게 못 미친다(〈그림 1〉 참조). 올해 1~4월 걷힌 국세는 134조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33조9000억원이 덜 들어왔다.

핵심은 법인세다. 1~4월 법인세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5조8000억원 적게 걷혔다. 법인세는 기본적으로 기업들이 전년도 수익을 기준으로 매해 3월과 4월에 걸쳐서 나누어 내는 세금이다. 2021년 수출 실적이 좋았던 덕분에 지난해에는 법인세가 많이 들어왔다. 그런데 지난해 하반기부터 반도체 업황이 좋지 않고, 대중국 수출이 부진한 이유 등으로 기업의 영업이익이 곤두박질쳤다. 따라서 지난해 실적을 기준으로 내는 올해 법인세가 줄어들었다.

기업들 중 상당수는 매년 8월에 법인세 일부를 ‘중간 예납(미리 납부)’한다. 거기에 기대를 걸어볼 수 있지 않을까? 그것도 어렵다. 보통은 지난해 낸 법인세의 절반을 올해 미리 납부하는데, 올 상반기 실적(1~6월)이 더 낮다면 이를 기준으로 계산해서 납부할 수도 있다. 그러면 법인세 중간 예납액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법인세를 많이 내는 대기업들의 올해 1분기 실적이 회복될 기미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8월 법인세 중간 예납 역시 지난해보다 줄어들 것이 사실상 정해져 있다.

또 하나의 구멍은 소득세다. 올해 1~4월 소득세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8조9000억원 덜 걷혔는데, 이 중 7조2000억원이 양도소득세다. 부동산 거래 감소 영향이라는 게 정부 설명이다. 2020년 이후 소득수준이나 사용가치와 괴리된 채 부동산 가격이 큰 폭으로 올랐다가, 지난해 하반기 이후 조정되는 중이다. 부동산 거래가 얼어붙은 상황 역시 단기간에 회복되지는 않을 것 같다. 한국은행은 높아진 금리 부담, 약화된 가격상승 기대를 고려할 때 당분간 부동산 경기 둔화가 이어지리라고 내다봤다.

만약 5월에서 연말까지 국세가 지난해만큼 걷힌다고 가정해도, 정부가 올해 예상한 세금 수입(세수)인 400조5000억원에서 38조5000억원이 모자랄 전망이다. 이조차 지나친 낙관일지 모른다. 세수는 경제 상황을 반영한다. 기획재정부는 ‘상저하고’, 즉 상반기에는 저조했다가 하반기에 경기가 회복될 거라는 기대를 갖고 있다. 문제는 하반기에 경기가 다소 나아지더라도, 지난해보다 나아지리라고 볼 근거는 없다는 점이다. 한국은행은 올해 경제성장률을 1.4%로 전망했다.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1.5%로 예상한다. 지난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2.6%였다. 5월에서 연말까지 지난해만큼 국세가 걷힌다는 가정이 ‘낙관’인 이유다.

정부가 이미 재정 운용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수치가 있다. 올해 들어 3월까지 정부가 한국은행(한은)에서 빌린 금액이 48조1000억원을 넘어섰다(〈그림 2〉 참조). 이 중 17조1000억원은 상환했으므로 대출 잔액은 3월 말 기준 31조원이다(장혜영 정의당 의원실). 물론 정부는 일시적으로 세금이 덜 들어왔을 때 한은에서 단기로 돈을 빌려 자금을 융통할 수 있다. 나중에 세금이 들어오면 갚으면 된다. 그러나 지난해 일시차입금이 모두 34조2000억원이었고 2021년에는 7조5000억원이었음을 고려하면, 불과 3월 시점에 48조원을 넘어선 것은 이례적이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코로나19만큼의 충격이 없는데도 벌써 30조원 넘게 한은 돈을 빌려야 한다는 건 그만큼 재정 운용에 문제가 생겼다는 의미다. 금방 갚기 때문에 물가에 당장 영향을 주진 않지만, 누적되면 시중에 돈이 풀린 것과 마찬가지 효과라서 통화정책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 38조5000억원, 어디서 가져올 것인가

세수에 문제가 생겼다는 점은 정부도 인정한다. 그렇다면 38조5000억원에서 많게는 50조원까지 예상되는 세수 부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윤석열 정부 기획재정부의 계획은 이렇다. 첫째, 세계잉여금, 즉 지난해 쓰고 남은 세금을 활용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2022년 일반회계 세계잉여금 중에서 정부가 여윳돈으로 쓸 수 있는 액수는 약 2조8000억원밖에 안 된다. 특별회계 세계잉여금 3조1000억원은 일반회계와 달리 써야 할 곳이 정해져 있다. 이 중에서 일부분을 융통할 수 있다지만, 정확히 얼마나 쓸 수 있는지 기재부는 밝히지 않고 있다. 일반회계와 특별회계 세계잉여금을 모두 쓰더라도 5조9000억원으로, 여전히 30조원 넘는 세금이 모자라게 된다.

둘째, 기금의 여유 재원을 일반회계에 편입해 쓰는 방법이다. 정부는 총 68개 기금을 운용하고 있는데, 이 중 국민연금 같은 사회보험성 기금들은 여유자금이 있더라도 활용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다만 주택도시기금이나 국민건강증진기금, 영화발전기금 같은 ‘사업성 기금’의 여유 재원을 일반회계로 돌려 쓰는 것은 가능하다. 지난해 2월 기준 사업성 기금의 여유자금 규모는 26조9000억원이다. 하지만 실제로 이를 모두 세수 부족을 메우는 데 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각 기금별로 기재부가 협상을 통해 재원을 끌어내야 하는데, 장혜영 정의당 의원실에 따르면, 2016년 이래 기금 여유자금을 5조원 이상 끌어 쓴 적이 없다. 이례적으로 10조원을 당겨쓴대도 20조원 이상의 세수 부족은 해결되지 않는다.

2022년 10월 제11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추경호 부총리(왼쪽)와 윤석열 대통령이 대화하고 있다.ⓒ대통령실 제공
2022년 10월 제11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추경호 부총리(왼쪽)와 윤석열 대통령이 대화하고 있다.ⓒ대통령실 제공

결국 남는 것은 ‘불용(不用)’이다. 1년간 쓸 예산을 편성해놓고서는 쓰지 않겠다는 뜻이다. 이와 관련해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묘한 말을 했다. “강제 불용할 의사는 지금 전혀 검토하고 있지도 않고 그런 생각을 갖고 있지를 않습니다. … 집행 실적을 앞으로 점검해나가면서, 통상적으로 집행 관리상 이것은 연내 집행이 되지 않겠구나 하는 부분이 있으면 그런 부분은 자연스럽게….” 어디까지나 ‘강제 불용’이 아닌 ‘자연스러운 불용’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국가 재정을 들여다보는 시민단체인 나라살림연구소의 이상민 수석연구위원은 이렇게 비유했다. “중국집에 갔는데, 같이 간 부장님이 ‘나는 짜장면 먹을 테니 너희들은 알아서 비싼 메뉴 시켜’라고 말한 상황과 비슷하다.”

예산을 쓰다 보면 불용이 나기 마련이다. 예컨대 코로나19 중증 환자의 입원치료비나 생활지원비를 편성했는데, 예상보다 코로나 확산세가 꺾여서 중증 환자가 줄었다면 그 예산은 쓸 이유가 사라진다. 또는 실업자 고용을 촉진하려고 고용장려금을 편성했는데, 고용 지표가 좋아져서 해당 예산을 덜 쓰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런 ‘자연스러운 불용’은 대체로 연간 6조원 안팎이다.

정부가 세수 부족에 ‘불용’으로 대응한 적이 한 번 있었다. 박근혜 정부 때였다. 2013년 당시 국세 수입이 8조5000억원 부족하자, 정부는 18조1000억원을 ‘불용’했다. 2014년에도 국세가 10조9000억원 덜 걷히자, 편성한 예산 중에서 17조5000억원을 쓰지 않았다. 2011년과 2012년에는 5조7000억~5조8000억원 수준이던 불용액이 갑자기 20조원 가까운 금액이 된 것이다. “당시 기재부가 비공식적으로 불용을 종용했음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각 부처들로서는 예산을 쥐고 있는 기재부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의 말이다. 자연스러운 불용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세금도 모자란데 아껴 썼다니 칭찬할 일 아닌가? 그러나 “아무리 쓸데없는 돈 낭비처럼 보이는 사업이라도, 편성한 예산을 쓰지 않겠다는 판단을 ‘관료’가 하면 안 된다. 그게 민주주의다”라고 이상민 수석연구위원은 말했다. “시민의 대표인 의회가 10억원을 쓰라고 했다면 10억원을 써야 한다. 국회는 재난지원금을 1조원 통과시켰는데 관료가 보기에 9000억원짜리라고 해서 9000억원을 쓰고, 국회가 장애인 예산 5000억원을 통과시켰는데 관료가 자의적으로 1000억만 쓴다면, 이는 국회의 예산심의권을 침해하는 행위다. 기재부가 감액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려면, 정정당당하게 국회의 심의를 다시 받아야 한다. 그러나 모두가 짜장면을 먹어도 짜장면 값도 안 나올 만큼 세수가 모자란다. 이러면 사실 돈을 빌려야 하는데, 이 역시 국회를 거쳐야 한다.”

반도체 업황 악화 등으로 법인세수가 크게 줄었다. 사진은 삼성전자 클린룸 반도체 생산 현장.ⓒ삼성전자 제공
반도체 업황 악화 등으로 법인세수가 크게 줄었다. 사진은 삼성전자 클린룸 반도체 생산 현장.ⓒ삼성전자 제공

‘경정(更正)’이란 바르게 고친다는 뜻이다. 이미 성립한 예산을 바꾸기 위해 정부가 국회에 새로 내는 예산안이 바로 ‘추가경정예산(추경)’이다. 세수가 부족해서 추경을 편성할 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하나는 불필요하거나 급하지 않은 사업의 예산을 줄여달라고 국회 심의를 받는 것이다. 세금이 덜 들어왔으니, 나갈 돈도 줄이는 접근법이다(세출 감액 경정 추경).

돈을 덜 쓰는 선택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세금이 덜 들어왔지만, 그럼에도 편성한 예산을 예정대로 쓸 수 있게 국채 발행 한도를 늘려달라고 할 수도 있다(세입 감액 경정 추경). 국채란 국가가 돈을 빌릴 때 그 돈을 빌려준 사람이나 법인에게 건네는 채무증서다. ‘국채를 발행한다’는 것은, 국가가 채무증서를 발행해 돈을 빌리는 일을 뜻한다. 그동안 추경을 편성한다고 할 때는 대체로 이렇게 나랏빚을 더 내는 걸 뜻했다. 윤석열 정부의 기재부가 절대로 하지 않으려는 행동이 바로 이것이다. “나랏빚을 더 안 늘리고 대응할 수 있는 방법으로 최선을 다하겠다” “현재로서는 추경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추경호 부총리). 그는 의원 신분이던 문재인 정부 시절 자신의 애칭을 ‘추경 불호(不好·좋아하지 않음)’로 불러달라고 할 정도였다.

■ 윤석열 정부가 국채 발행을 피하는 이유

왜 역대급 세수 부족에도 국회의 심의권을 우회하면서까지 추경을 통한 국채 발행을 피하려 할까. 윤석열 대통령은 4월18일 국무회의 모두 발언에서 이렇게 말했다. “방만한 지출로 감내할 수 없는 고통을 미래세대에 떠넘기는 것은 미래세대에 대한 착취다. 재정건전성 강화는 우리 공동체의 지속가능성과 미래세대를 위해 반드시 해내야 한다.” 지난해 말 나랏빚이 1000조원을 넘어섰다. 한국은 고령화로 가만히 있어도 재정지출이 급속도로 늘어날 예정이다. 윤석열 정부는 지금부터라도 재정지출을 붙들어매서 국가채무를 줄이길 원한다. 그것이 미래세대에 대한 책임이라는 논리다.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가 잊어서는 안 될 한 가지 사실이 있다. 지금은 경기가 좋지 않다는 점이다. “재정정책은 카운터-시클리컬(counter-cyclical)하게, 즉 경기와 반대되는 방향으로 펴야 한다. 경기가 좋을 때는 지출을 줄이고, 안 좋을 때는 지출을 늘려서 경기를 안정화하는 게 정부의 역할이다. 그런데 경기가 좋지 않다면서 재정지출을 줄인다면 경기와 같은 방향으로 정책을 펴는 셈이 된다. 이러면 오히려 경기의 진폭을 키울 수 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의 말이다.

이는 일부 경제학자의 생각이 아니라 교과서적인 처방이다. 기재부 스스로도 올해 1월 중앙재정의 65%를 상반기에 조기 집행하겠다고 했다. 경기가 나쁘니 더 나빠지지 않게 노력하겠다는 신호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돈을 안 쓰겠다고 하는 것이다. 세수가 부족하다고 정부지출을 줄이면 정부가 경제성장에 기여할 여지가 줄어든다. 기재부가 전망하는 경제성장률 1.6%도 쉽지 않을 수 있다. “역(逆)경기적으로 재정정책을 펴야 할 정부가 엉뚱하게 재정건전성 깃발을 휘날리고 있다. 서민에게 피해가 없게 한다는데, 직간접적으로 정부지출로 먹고사는 사람들이 다 복지 재정에만 기대서 사는 건 아니다. 역대 정부가 경제가 어려울 때 중산층과 서민을 위해 추경을 편성한 이유다. 그걸 빼는데 타격이 안 갈 리가 있나?(우석진 교수)”

정부는 개의치 않는 모양새다. 아예 연간 재정적자 폭을 1년 동안 한 나라에서 생산된 모든 부가가치의 합인 ‘국내총생산(GDP)’의 3% 이내로 관리하는 ‘재정준칙’을 도입하려 한다.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60%를 초과하면, 적자 폭을 GDP의 2% 이내로 유지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급격한 국가채무 비율 증가를 막기 위한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나라에 비하면 한국 국가채무 비율은 심각하게 높지 않다. IMF에 따르면, 국제 비교의 기준이 되는 GDP 대비 ‘일반정부부채(중앙·지방정부 국가채무에 비영리 공공기관 부채를 합한 금액)’의 비율은 한국이 지난해 54.3%다. 선진국 평균은 123.1%다. 물론 2028년 58.2%로 높아질 예정이지만, 해당 시점의 선진국 평균은 130.9%다.

김유찬 전 조세재정연구원장은 “재정적자를 줄이는 것이 정책 목표가 될 수는 없다. 더 상위의 목표는 경제 자체를 나빠지지 않게 막는 일이다. 국가부채를 피하기 위해 경제에 불리한 정책을 쓰면, 세금이 덜 걷혀 장기적으로 재정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라고 말했다. “물론 재정적자가 늘어나는 게 마냥 좋은 일은 아니다. 정부가 꼭 필요로 하는 지출은 세금으로 충당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정말로 재정건전성과 미래세대를 생각한다면 사실은 증세를 해야 하는데, 윤석열 정부는 거꾸로 감세를 했다.”

올해 1~4월의 세수 부족은 정부가 예측한 것보다 세금이 덜 걷혔다는 의미다. 지금까지는 감세보다는 경기의 영향이 크다. 지난해 말 국회를 통과한 세법 개정안에 따른 감세 효과는 내년부터 본격화될 예정이다. 세법 개정안에 따른 법인세 감소 규모는 올해에는 4062억원이지만 내년부터는 연 6조~7조원에 달한다. 전년도 실적을 기반으로 납부하는 법인세의 특성 때문이다.

국회예산정책처는 2023년부터 2027년까지 5년간 누적 64조4000억원(연평균 12조8000억원)만큼 세수가 감소하리라고 추정했다. 세목별로 보면 법인세가 27조4000억원, 소득세가 19조4000억원, 증권거래세가 10조9000억원, 종합부동산세가 5조7000억원 등이다(〈그림 3〉 참조). 윤석열 정부는 법인세를 깎아주면 단기적으로는 세수가 줄어들지만 장기적으로 기업이 생산이나 고용 등에 재투자하고 그 결과 경제가 성장해 세수가 늘어난다는 논리를 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가 감세안을 낸 지난해 7월 이후 경기가 둔화됐을 뿐 아니라 미·중 무역 갈등에 따른 불확실성이 커졌다. 세금이 줄었다고 기업이 투자를 늘리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럼에도 윤석열 정부의 감세안은 (더불어민주당과의 합의 과정에서 규모가 줄어들긴 했지만) 대부분 그대로 관철되었다. 심지어 세법 개정안 통과 이후에도 두 정당은 반도체 등 국가전략기술 산업에 대해 투자 세액공제를 추가로 확대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윤석열 정부의 감세 계획에 대해 이렇게 평한 바 있다. “최근 불확실한 경제 여건을 고려할 때 감세를 추진하더라도 기업의 투자 증대 등 정책 효과가 제한적일 수 있으며, 효과가 발생하더라도 상당한 시차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 … 특히, 우리나라는 법인세수에 대한 세수 의존도가 높은 만큼 법인세율 인하가 세수 감소에 미치는 충격이 더 클 수 있음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정부 세법 개정안의 세부담 귀착 분석 결과 개인의 경우 서민·중산층보다 고소득층의 세부담 감소가 크고, 법인의 경우 중소기업보다 대기업의 세부담 감소가 더 클 것으로 전망된다. 사회적 양극화 해소를 위하여 정부의 적극적인 소득재분배 역할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감세정책의 효과가 고소득층에 더 크게 나타남에 따라 (소득이 높은 사람이 세금을 더 많이 내야 한다는 의미의) 수직적 형평성을 악화시킬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국회예산정책처, 〈2022년 세법개정안 분석〉, 2022년 11월).”

■ 위기는 일시적인가, 구조적인가?

기재부의 세수 추계 실패는 처음이 아니다. 2021년에는 61조3000억원, 2022년 53조3000억원 세수 오차를 냈다(〈그림 4〉 참조). 당시에는 예상보다 세금이 ‘더’ 걷혀서 문제였다. 이번에는 역대급으로 ‘덜’ 걷힐 전망이다. 기재부는 2022년 2월 세수 오차 개선 대책을 내놓았다. “8월 세입예산안 편성 후 11월 국회심의 과정에서 경제위기 등으로 세입예산안과 (실제 세수 전망의) 차이가 상당히 큰 경우 재추계”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하지만 경제성장률을 지난해 6월 2.5%에서 12월 1.6%로 낮춰 전망했으면서도 재추계를 하지 않았다. 감세 기조를 가져가려고 재추계를 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의심까지 나온다.

어찌어찌 예산 불용으로 부족분을 메운다 한들, 근본 질문은 남는다. 이 위기는 일시적인가, 구조적인가? 답에 따라 해법도 달라질 것이다. 김용범 전 기재부 차관은 지금의 위기를 구조적이라고 본다. “지금 상황을 단순한 경기 사이클의 문제로 보기 어렵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인플레이션이 나타나며 기존의 저금리·저유가 체제가 고금리·고유가 체제로 바뀌었다. 거시경제 기조가 근본적으로 변화한 것이다. 세수 추계 오차 역시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변화된 경제 상황을 정교하게 예측할 수 있는 모델링이 아직 마련되지 않은 것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김 전 차관이 보기에 연내 추경 편성을 통한 국채 발행은 불가피하다. “경기가 지금 얼마나 어려운지 공감한다면 재정이 최소한의 경기조절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동시에 재정준칙에 대해선 “유보적”이라고 말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의 정책 판단이 반년마다 바뀐다. 그만큼 경제가 어렵고 불확실하다. 재정준칙이라는 것은 장기적인 전망이 선 상태에서 어떤 위험성을 (국가채무가 증가하지 않는 방향으로) 묶어두자는 접근이다. 그러나 팬데믹이 바꿔놓은 이 거시경제 질서의 미래에 대해서 어느 누가 단정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을까? 있는 준칙도 다 예외를 인정하는 판인데. 논의 자체는 할 수 있으나, 성급히 결론을 내서 우리의 손발을 묶는 건 시기상조라고 본다.”

2023~2027년 5년간 누적 64조4000억원이라는 감세 규모는, 2008년 이명박 정부의 감세안(5년간 82조5000억원) 이후 최대 규모다. 후임 박근혜 정부는 이명박 정부의 감세 여파로 재정 운용에 어려움을 겪었다. 예산 불용 끝에 비과세·감면 축소 등 증세를 단행했다.

그로부터 시간이 많이 흘렀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지난해 10월5일 기사에서, 선진국들 사이에 ‘거대한 정책 역전’이 일어나고 있다고 썼다. 2010년대를 지배했던 ‘빡빡한 재정정책과 느슨한 통화정책의 조합’이 이제는 반대로 ‘느슨한 재정정책과 빡빡한 통화정책의 조합’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정부는 돈을 쓰되 중앙은행은 금리를 올린다는 의미다. 지난해 9월 취임한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는, 법인세 인상 계획 철회와 최고 소득세율 인하를 포함한 감세를 추진하다 파운드화 가치 폭락을 겪고 44일 만에 사퇴했다.

감세를 추진하다 파운드화 가치 폭락을 겪고 44일 만에 물러난 리즈 트러스 전 영국 총리(가운데).ⓒAP Photo
감세를 추진하다 파운드화 가치 폭락을 겪고 44일 만에 물러난 리즈 트러스 전 영국 총리(가운데).ⓒAP Photo

추경호 부총리는 국회에서 “영국은 (감세를 하면서) 재정지출도 늘리니 재정건전성이 악화되고 국가채무비율이 오르면서 신용등급 하향 전망까지 나와 국제사회가 경고한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과 한국은 다르다고 선을 그은 것이다. 그러나 하준경 교수는 “트러스 전 영국 총리 사태의 진정한 문제는, 전시에 버금가는 어려운 상황에서 부자감세와 같은 이념적 정책을 무리하게 추진했다는 점이다”라고 짚었다. “세계 주요 국가는 에너지 가격을 올리고 에너지 사용을 줄이려 노력하면서도 재정을 통해 어려워진 경제 주체들을 지원하는 정책을 쓰고 있다. 유럽은 이를 위해 횡재세를 도입했고, 미국도 증세를 추진한다. 우리는 어떤가. 전기요금 인상 요인을 한전이 적자로 다 흡수하고 있다. 적자 보전을 위한 한전의 대규모 채권발행이 금융시장에 부담을 주고, 에너지 사용이 줄지 않으면서 무역수지 적자는 계속된다. 감세를 추구하면서도 재정건전성을 높이고 동시에 취약계층도 지원한다고 하는데, 감세와 긴축재정 기조가 고통 분담, 사회연대라는 위기 극복의 토대를 다지는 데 도움이 될지 의문이다. 중요한 것은 이념을 앞세우는 것이 아니라 급변하는 경제 환경에 능동적이고 실용적으로 대응해 시장의 신뢰를 얻는 것이다.”

기자명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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