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시사IN 조남진, 사진합성 :시사IN 이정현

지난 3월2일, 정부는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4차 맞춤형 피해지원 대책’을 발표했다. 15조원 추가경정예산안(국가의 1년 예산이 성립되고 난 후에 부득이한 사유로 자금을 추가 편성해서 성립시킨 예산)을 편성하면서, 이를 위해 9조9000억원 규모의 국채를 발행하기로(9조9000억원을 빌리기로) 했다. 국채는 국가가 돈을 빌리는 대신 그 자금을 빌려준 사람이나 법인에 건네는 증서다.

이날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지난해 네 차례 추경에 이어) 사실상 다섯 번째 추경안’이라며 자신의 페이스북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금번 추경으로 2021년 우리나라의 국가채무 비율은 48.2%로 높아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절대 수준을 보면 아직 OECD 국가 평균보다 낮지만 부채 증가 속도를 보면 결코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20%에서 30%대, 30%대에서 40%대로 넘어오는 데 7~9년이 걸렸지만, 금번 전대미문의 코로나 위기 대응으로 현재 속도라면 40%대에서 50%대에 이르는 데 2~3년밖에 걸리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아울러 우리나라와 같은 비기축통화국은 대외신인도 관리가 중요한데, OECD 국가 중(2019년 기준) 기축통화국 국가채무 비율(평균)은 100%를 넘어서나 반면 비기축통화국 채무비율은 50%를 넘지 않는 수준이라는 점도 유념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특히 우리의 경우 중장기적으로 성장률 저하 추세, 초저출산 대응, 초고령사회 도래, 통일 대비 특수상황 등으로 재정지출이 빠르게 증가할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포인트입니다. 여러모로 궂은소리를 듣더라도 재정 당국의 목소리를 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연합뉴스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5월16일 세종컨벤션센터에서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정부가 ‘4차 대책’으로 9조9000억원을 더 빌리면 국가채무는 966조원, 국가채무 비율(국가채무/국내총생산)은 48.2%로 추산된다는 내용이다. 3월2일의 정부 발표 이후, ‘국가채무 1000조원 시대’를 걱정하는 경제지와 보수지의 보도가 줄이어 쏟아졌다. 한국은 1997년에 외환위기를 겪은 바 있다. 시민들이 나랏빚 증가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홍남기 경제부총리의 페이스북 글은 국가채무 증가에 대한 우려를 담고 있다. 실제로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점진적 하락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에 비해 고령화 속도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빠르다. 잠재성장률이 떨어진다는 것은 그만큼 시민들의 소득 증대가 지체될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다. 정부로서는 ‘들어오는 돈’, 즉 조세수입의 기반이 약화된다. 이에 비해 고령화가 빨리 진척된다는 것은 복지수요 증가로 ‘정부에서 나갈 돈’이 늘어난다는 뜻이다.

지난 1월 류덕현 중앙대 교수(경제학)가 국회사무처에 제출한 연구용역 보고서(〈코로나19 대응 재정정책의 효과와 재정건전성 관리방안 연구〉)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일본의 경우 고령화 비율 1%가 증가할 경우 GDP 대비 복지지출이 1%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도 일본과 유사한 추세를 보이고 있다.” 그는 예산 당국의 속내를 다음과 같이 추정하기도 했다. “한국의 예산 당국은 60% 내외의 국가채무 비율을 ‘마음속 적정수준’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고령화로 복지지출 소요가 늘어날 것과 통일 이후 사용할 재원에 대한 대비로 어림잡아 (60% 가운데) 20%를 감안하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난은 홍남기 경제부총리의 말처럼 전대미문의 위기였다. 한국 정부는 2020년 한 해 동안 네 차례나 추경예산을 편성했다. 이는 59년 만의 일이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한 재정지출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 역시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국가채무 비율은 과연 어느 수준이 적정할까?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인 2019년 5월16일로 돌아가 보자. 이날 대통령이 주재하고 각 부처 장관과 금융위원장 등이 참여하는 국가재정전략회의가 열렸다. 매년 봄에 이 회의가 열린다. 이 회의에서 향후 5년간의 국가재정 운용계획(‘2019~2023년’ 같은 방식으로)과 다음 해(여기서는 2020년) 예산안 편성의 기본 틀이 정해진다. 이 회의에서 방향을 정한 국가재정 운용계획은 9월 정부 차원에서 확정된다. 그날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국가채무 비율 40%를 유지하면서 나라 살림을 운용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이 “국가채무 비율을 40%로 삼는 근거가 무엇이냐”라고 한 발언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한동안 화제가 되었다.

사실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어느 정도 수준일 때 적정한지에 대해서는 ‘정답’이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의문을 품었던 ‘국가채무 비율 40%’ 역시 특정한 이론적 근거는 없는 임의적 수치일 뿐이다. 2015년 발표된 장기재정 계획에서 처음 만들어진 숫자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장기재정 계획을 발표할 2015년 당시 국가채무 비율이 40%에 육박했기 때문에 (예산 당국이) 채무비율 관리 수준을 40%로 정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우석진 명지대 교수(경제학)는 국가채무 비율에 관한 한 일화를 전해주었다.

“20여 년 전쯤에 한 국책연구원의 연구자가 ‘국가채무가 20%가 된다, 그러면 위기가 온다’는 내용의 논문을 냈다가 문제가 돼 민간 연구소로 옮긴 적이 있다. 그리고 국가채무가 증가하다 보면 관성이 생긴다. 지금 추세대로라면 국가채무 비율이 60%까지 갈 수밖에 없을 터인데 그 시점에선 ‘80%가 마지노선이냐, 아니냐’는 식으로 기준을 바꾸고 논쟁을 벌이게 될 것이다.”

적정한 국가채무 비율? “모른다”

지난해 10월 정부는 ‘한국형 재정준칙 도입 방안’을 발표했다. 2025년부터 매년의 재정적자(정부의 총수입에서 총지출을 뺀 값이 마이너스 수치인 경우)를 GDP의 3% 이내로 관리하겠다는 내용이다(GDP 대비 -3%). 대체로 재정적자가 쌓여 형성되는 국가채무 역시 GDP의 60%를 넘지 못하게 통제한다는 내용도 들어가 있다. 재정준칙으로 정한 상한선을 넘어가는 경우에는 정부지출이 필요하더라도 돈을 사용하는 것이 매우 어렵게 된다. 이런 내용을 담은 ‘국가재정법 일부개정법안’이 이미 국회로 넘어가 있는 상태다.

기획재정부가 주도한 것으로 보이는 재정준칙이 국가채무 비율 60%를 상한선으로 잡은 이유는 무엇일까? 일부 재정학 연구자들은 이 수치가 1992년 유럽연합의 마스트리히트 조약(1992년 유럽 12개국이 타결한 유럽의 정치·경제 통합에 관한 조약)과 관련 있을 것으로 본다. 당시 유럽연합에 가입하려는 나라들은 먼저 자국의 국가채무 비율을 60% 이하로 맞춰야 했다. 하지만 이 수치를 정할 당시, 유럽연합을 추진하는 세력들 역시 국가채무 비율이 60%여야 하는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지는 못했다. 다만 1990년대 초반 유럽 주요국들의 국가채무 비율을 평균으로 산출하면 60% 내외였던 것으로 알려진다. 유럽의 경제통합에 필요한 나라별 국가채무 비율을 이 수치에 맞춘 것이다. 이런 사례를 보더라도 ‘국가채무 비율이 어느 정도가 적정한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모른다’가 정답에 가깝다.

한국은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 올해 들어 홍남기 경제부총리의 표현대로, ‘사실상 다섯 번째 추경’을 했다. 그러면서 국가채무가 증가했다. 이 규모는 적정한 것일까? 일단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서 가늠할 필요가 있다.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국가별 지출을 비교한 IMF의 자료(〈COVID-19 대유행 국가 재정 조치의 재정 모니터 데이터베이스〉, 2020년 12월 말 기준)에 따르면, 한국의 코로나19 대응 재정지출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선진 10개국 중에서 가장 낮다. 이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는 일본(44.0%)이다. 그다음 이탈리아(42.3%), 독일(38.9%), 영국(32.4%), 프랑스(23.5%) 순이다. 한국은 13.6%로 이들 나라에 비해 크게 낮았다. 한국은 ‘코로나 재정’을 굉장히 아껴 쓴 나라인 셈이다.

더욱이 ‘코로나 재정을 어떻게 썼나’도 살펴봐야 한다.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한 정부지출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뉠 수 있다. 하나는 실업급여, 임금보조금, 감세, 기업보조금, 가계에 대한 현금 지급 등 각종 경제주체들에게 직간접으로 현금 혜택을 제공하는 방법이다. 여기서는 ‘재정지원’이라고 부르자. 다른 하나는 빌려주는 방법이다. 기업이나 은행, 중소 자영업 등에 대출이나 보증 등으로 ‘유동성 지원’을 시행하는데, 이는 혜택을 입은 개인이나 업체가 언젠가 갚아야 할 돈이다.

IMF 자료에 따르면, G20 가운데 미국·일본·독일·프랑스·한국 등 10대 경제 선진국들의 재정지출 방법을 보면, 대출이나 보증 같은 ‘유동성 지원’이 직간접적 현금 지급인 재정지원보다 많은 편이다. 10개국은 평균적으로 GDP의 11.3%를 재정지원에 사용했다. 그런데 한국은 GDP 대비 재정지원의 비중이 다른 경제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낮은 편이다. 나라살림연구소는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한국은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재정지출에 GDP의 13.8%를 쓰고 있다. 그런데 재정지원(‘추가 지출 등’)의 비중이 다른 나라에 비해 크게 낮은 편이다.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추가로 쓴 재정지원은 GDP 대비 3.4%로 G20 경제 선진국 10개 국가 중 매우 낮은 편에 속한다.”

참고로 다른 나라들의 GDP 대비 재정지원(‘추가지출 등’) 비율은 일본 15.6%, 영국 16.3%, 독일 11.0%, 프랑스 7.7%, 이탈리아 6.8% 등이다. 한국은 국가채무가 직접적으로 늘어나는 재정지원보다 가계·자영업자 등 민간이 부담을 지는 유동성 지원(저리대출, 대출 원리금 상환유예 등)에 더 적극적이었던 셈이다.

이상민 연구위원은 ‘고령사회 도달 시점 국가채무 비율’에 주목한다. 한국은 저출산 고령사회로 급격하게 진행 중인 나라다. 고령화가 급속히 전개되면 그만큼 노인이 많아지므로 복지수요가 크게 늘어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이미 고령사회(65세 인구가 비중이 14% 이상)에 도달한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의 국가채무 비율을 바로 비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 그렇다면 각국별로 ‘고령사회에 도달한 시점’을 따로 포착해서 비교해보면 어떨까? 그렇게 해보니 한국의 ‘고령사회 도달 시점(2018년)’의 일반정부 부채비율은 40.0%로 나타났다. 독일(1972년 36.8%), 프랑스(1979년 32.6%)보다는 조금 높지만 미국(2013년 105.1%), 일본(1995년 84.4%), 영국(1975년 50.1%)에 비해서는 낮다. 이상민 연구위원은 “비슷한 조건의 시점에서 국가채무 비율을 비교해보면 한국의 국가채무 비율이 다른 나라에 비해 위험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높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라고 말했다.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라는 개념 자체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게 나온다. 먼저 국가채무 비율 지표만으로는 ‘나쁜 부채’와 ‘좋은 부채’를 구분할 수 없다는 점이다. 국가채무는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금융성 채무’와 ‘적자성 채무’다.

금융성 채무의 경우, 해당 채무를 지는 것과 동시에 ‘그 채무를 상환할 자산(대응자산)’이 발생한다. 빚을 갚기 위해 별도의 재원을 따로 마련할 필요가 없다. 예를 들어 정부가 시민들에게 돈을 빌리면 국가채무가 발생한다. 그런데 그 돈으로 달러화를 사들여 자산으로 갖게 된다면, 해당 국가채무의 리스크는 어떨까? 외국환 평형기금(외평기금)을 사례로 설명해보자.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외국환(주로 달러)을 사들이기 위한 목적으로 조성되는 기금이다. 정부는 예컨대 민간으로부터 1141만원을 빌려 조성한 외평기금으로 1만 달러를 사들일 수 있다. 빌린 1141만원은 국가채무로 잡히지만, 1만 달러라는 대응자산이 정부에 발생하는 것이다. 이처럼 외평기금을 조달하기 위해 빌리는 돈을 금융성 채무라고 할 수 있다.

국가채무의 만기 구조 살펴야

적자성 채무의 경우에는, 정부가 돈을 빌릴 때 대응자산이 발생하지 않는다. 그래서 세금을 걷는 등 빚을 갚기 위한 재원을 따로 마련해야 한다.

2020년 기준으로 한국의 국가채무 835.6조원 가운데 적자성 채무는 506.9조원(60%)이다. 나머지 40%는 대응자산이 발생해 있는 금융성 채무다. 한국의 국가채무에서 금융성 채무의 비중이 적지 않은 셈이다. 금융성 채무는 대응자산을 발생시키기 때문에 재정의 지속가능성에 미치는 악영향이 적자성 채무에 비해 훨씬 작다.

이상민 연구위원은 “한 사람은 빚이 1000만원 있고, 다른 사람은 빚이 1억원 있다고 해서 1억원 빚이 있는 사람이 더 불건전하다고 말할 수 없다. 1000만원 빚진 사람은 생활비가 없어서 신용대출을 받았고, 1억원 빚진 사람은 10억원짜리 아파트를 사기 위해 1억원 담보대출을 받은 사람이라고 치자. 빚은 10배가 넘지만 아파트라는 대응자산을 가진 사람이 재무적으로 훨씬 더 건전하다고 볼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여론이 국가채무 비율에만 ‘집착’하다 보면, 국가기관이 수치를 ‘마사지’하기 위해 ‘장난’을 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지난해 2차 추경에서 정부는 외평기금으로 지출할 예산을 크게 줄였다. 그 덕분에 국가채무는 당초 예정보다 2조8000억원 정도 덜 발생했다. 국가채무 비율도 그만큼 낮아졌을 것이다. 그러나 당초 계획에서 확보하기로 되어 있었던 달러 등 외화 자산도 2조8000억원만큼 줄어들었다. 외화 자산이 많을수록 경제위기에서 국가경제를 방어하는 능력이 강해지는 경향을 부인할 순 없다. 그렇다면 한국의 나라 살림은 국가채무 비율의 저하에 따라 더욱 건전해진 것인가, 아니면 위태로워진 것인가.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국가채무(분자)를 GDP(분모)로 나눈 것이다. 분자인 국가채무는 이전부터 누적해 쌓이는 저량(stock) 개념이다. 분모인 GDP는 1년간 국내에서 발생한 부가가치를 합한 유량(flow) 개념이다. 한번 늘어난 국가채무는 누적되어 채무비율을 지속적으로 증가시키기 쉽다. 그래서 누적되는 국가채무(저량)를 1년 단위 GDP(유량)로 나누면 해당 국가의 부채 상황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국가재정이 성숙한 나라일수록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높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연합뉴스지난해 3월 서울 서대문구 대학가 인근 상점에 휴점 안내문이 붙어 있다.

이처럼 국가채무의 규모나 국가채무 비율 수준만을 두고 적정성 여부를 따지는 것은 그 자체로 논란의 소지가 있다. 또 총량에 따라 재정건전성을 따지다 보면 ‘낮으면 건전하고, 높으면 불건전하다’는 식의 논의로 흘러가기 쉽다. 그래서 다양한 보조 지표를 활용해 국가채무의 지속가능성 측면(국가채무를 부담 가능한가, 지속 가능한가)에서 논의해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국가채무(저량) 대신 국가채무 이자(유량)를 GDP(유량)로 나눈 국가채무 이자비율을 통해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판단하기도 한다. 글로벌 저금리 기조가 계속되고(정부들이 돈을 빌리기 쉽게 되면서) 팬데믹이 장기화하면서 지난 수년 동안 세계 거의 모든 나라에서 국가채무 규모가 지속적으로 증가해왔다. 그러나 국가채무 이자비용은 안정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의 2019년 국가채무 이자비용은 18.0조원으로 전년보다 7000억원 감소했다.

류덕현 교수가 국회사무처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국가채무의 지속가능성을 검토할 때 고려해야 할 몇 가지 조건이 있다. 그중 하나가 국가채무의 만기 구조다. 한국 국가채무의 평균만기는 2015년부터 2019년까지 7.2년, 7.7년, 8.4년, 9.2년, 9.7년으로 지속 증가해왔다. 10년 이상 장기물의 비중이 증가해서다. 정부가 장기적으로 돈을 빌릴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해당 국가의 신용도가 높다는 의미다. 단기에 상환해야 할 돈이 많을수록 그 나라 경제는 위험에 취약해진다.

한국의 2019년 국가채무는 2020년부터 2068년까지 분산해서 상환할 예정이다. 이 중에서 잔존만기가 1년 미만인 국가채무 비중은 7.3%다. 1~3년 미만의 경우 19.4%, 3~5년 미만의 경우 18.9%. 5~10년 23.5%, 10년 이상 30.8%로 구성되어 있다. 잔존만기 1년 이하인 단기채무 비중(7.3%)이 주요 선진국의 평균(20.4%)보다 현격히 낮다.

다른 나라의 단기채무 비중을 살펴보면 이탈리아 40.4%, 스웨덴 33.2%, 프랑스 23.7% 등으로 한국보다 훨씬 높다. 한국 정부가 1년 안에 당장 갚아야 하는 국가채무가 적다는 점은 재정의 지속가능성에서 대단히 유리한 측면이다.

두 번째로 봐야 할 것은 ‘외국인 보유 국가채무 비중’이다. 한국은 기축통화국이 아니다. 미국·유럽연합·일본 같은 기축통화국보다 재정을 좀 더 보수적으로 운용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어떤 정부가 돈을 빌릴 때, 빌려주는 측은 국내 연기금이나 금융기관일 수도 있지만 외국인 및 해외 기업일 수도 있다. 전체 국가채무 가운데 외국인으로부터 빌린 돈의 비중(‘외국인 보유 국가채무 비중’)이 크면 그 자체로 국가경제의 리스크가 커지는 경향이 있다. 다행히 한국의 ‘외국인 보유 국가채무 비중’은 주요 선진국에 비해 낮은 편이다.

기획재정부의 ‘2020~2024년 국가채무 관리계획’에 따르면, 외국인 보유 국가채무 비중은 14.1%(정부의 국채 백서 〈국채 2020〉에 따르면, 외국인은 2020년 말 기준 국고채 발행 잔액의 약 16.7%를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다. 다른 주요국의 외국인 보유 국가채무 비중은 평균 25.7%로 나타났다. 한국의 경우 대략 86%의 국채를 내국인·금융기관이 갖고 있는 셈이다. 외국인들이 한국 경제에 대한 신뢰가 떨어져 국채를 판다고 해도 국가경제에 대한 충격이 적다.

류덕현 교수는 ‘적정 국가채무 수준 논쟁은 결국 향후에 필요한 재원 조달을 위해 어느 정도의 국채 발행을 통해 조달할 것인가의 문제이고, 이는 조세부담률-국가채무-국가복지 수준이라는 재정 트릴레마(fiscal trilemma)와 연결 지어 논의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트릴레마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힘든 딜레마가 3중으로 엮여 있는 것을 말한다. 어떤 한 나라가 ‘높은 복지수준, 낮은 국가채무 비율, 낮은 조세부담률’을 동시에 만족시키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세 가지 지표 가운데 두 가지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는 희생할 수밖에 없다. 류 교수는 2019년 OECD 자료를 통해 여러 나라를 4개 그룹으로 분류했다. 국가채무 비율과 국민부담률(조세부담률은 GDP에서 조세가 차지하는 비중을 나타내고, 국민부담률은 여기에 연금이나 사회보험 등의 부담을 포함한다)의 평균치를 기준으로 삼았다. 그룹 1(높은 국채비율-높은 국민부담률-높은 복지수준), 그룹 2(낮은 국채비율-높은 국민부담률-높은 복지수준), 그룹 3(낮은 국채비율-낮은 국민부담률-낮은 복지수준), 그룹 4(높은 국채비율-낮은 국민부담률-높은 복지수준)로 나눌 수 있다. 한국은 그룹 3에 속한다. 한국은 OECD 국가들 중에서 복지수준이 낮은 편이고 국가채무 비율과 국민부담률도 낮다. 불평등 완화와 국민 삶의 질을 높이는 것에 정책 우선순위를 둔다고 하면 국가채무를 늘린 일본(그룹 4)의 길을 가거나 국민부담률 혹은 조세부담률을 높인 스웨덴(그룹 2)의 길을 갈 수밖에 없다.

‘암묵적 재정준칙’ 운용이 적절

급속한 고령화에 따른 복지지출이 자연적으로 증가한다면 이에 대한 재원 조달을 일본처럼 할 것인가, 스웨덴처럼 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않는다면, 국가채무 규모가 늘어날 때마다 ‘재정건전성 논란’은 반복되기 쉽다. 지난해 코로나19 대응에 기획재정부가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재난지원금 등을 위해 추경을 편성할 때마다 국가채무 비율 규모를 두고서 보수·경제지가 재정건전성 논란을 지폈던 것처럼 말이다.

ⓒ시사IN 신선영지난해 6월 ‘코로나19 긴급 고용안정지원금’ 신청을 위해 고용노동청을 찾은 시민들.

최근 ‘나랏빚 1000조원’을 이야기하면서 국회가 재정준칙 도입에 나서기를 바란다는 내용의 보도가 여럿 나왔다. ‘한국형 재정준칙’은 국가채무 비율을 60%, 통합재정수지 -3%를 기준으로 계산식을 만들었다. 우석진 교수는 “재정 당국의 고민이 이해는 된다. 재정지출이 늘어날 때 재정관리 측면에서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도입하려는 재정준칙 기준 계산식으로는, 국가채무 비율이 60%가 될 경우 정부가 재정정책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2025년부터 시행한다고 하지만 재정준칙을 적용하게 되면 그 이전부터 기준을 맞추기 위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류덕현 교수에 따르면, 한국은 IMF와 OECD 등에서 재정준칙이 ‘암묵적으로 존재하는 나라’로 분류된다. 중기 재정운용계획, 재정성과 평가, 장기 재정전망 등 정부 재정의 적자 편향을 감소시킬 만한 여러 정책적 기제가 있다. 류 교수는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 상황에서 재정준칙이 경기의 회복을 지연시키며 공공서비스 수준을 낮추는 긴축정책을 채택하도록 정부를 압박할 우려가 있다. 법으로 만드는 순간 손발이 묶여 오히려 혼란이 올 수도 있다. 채무 수준의 상한선을 두는 것에 대한 객관적 근거가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못한 것도 문제다. 단기적으로 채무 증가 속도를 완화할 수 있는 실효적 조치를 도입해 이 방식을 ‘암묵적 재정준칙’으로 운용하는 것이 적절하다”라고 말했다.

‘재정이 화수분이 아니다’라는 기획재정부의 고민에는 귀 기울일 만하다. 정부가 합리적 재정 관리에 힘써야 한다는 말은 항상 옳은 말이지만, 효율적으로 자원을 배분하고 소득분배를 개선하며 경제안정과 성장에 기여하는 것이 정부 재정의 역할이다. 특히 코로나19 시기에 국가채무의 증가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각국 정부도 확장적인 재정정책으로 위기 대응에 나섰다. 한국의 GDP 대비 정부 총지출 비중은 31.2%(2018년 기준)에 이른다. 경제에서 정부가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커졌다. 위기의 순간에 재정정책의 손발이 묶이면 국민 삶이 고단해진다. 국가채무 비율만 쳐다봐서는 안 되는 이유다.

기자명 차형석 기자 다른기사 보기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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